회복의 섬. 솔라리스...타르코프스키의 메시지
영화를 보고 곧장 글을 올린다는 것이 너무 늦어져 버렸습니다.
영화를 보고 그때의 감동을 곧장 옮기는 것과 이렇게 며칠씨;r 묵혀 두었을때의 차이
물론, 묵직한 내상을 입은 영화 일 수록 며칠 씩 묵히면 묵힐 수록 나름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며칠씩 묵히지 못한 채 방치 하고 있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사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솔라리스 보다 나의 지구일이 더 중요 했으므로 ..)
그래서 이미 용도 폐기된 당시의 감성을 다시 글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입니다.
양지 하시고,........
편히........
읽어 주시면.........
-----------
-----영화를 보기 전에
조금 바쁘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몇 번의 모임을 빠지고
피곤한 정신 상태로 만난 솔라리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라는 사전 지식에 두가지의 옅은 생각으로 영화를 본다
1. 안드레이 루돌로프라는 막강한 예빵주사를 맞았으므로 왠만하면
빨리 타르코프스키의 속도에 적응 하여 예상외로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2. 아예 적응이 늦어 진다면 그 느리디 느린 타르코프스키의 속도에 맞춰 한숨 자는 것도
괜찬을 것이라는 생각
----영화에 들어 가면서
역시나 러닝 타임 2시간30분의 정신적 압박을 딛고 시작하는 장면
아니나 다를까 느리게 아주느리게 풍경을 훑어 온다. 연못의 나무 .아름답다.
저런 영상.... 저기 연못에 기하학적으로 굽은 나무들이 한국의풍경이라면 어떨까.
그런 영상이 하나 있으면 써먹을 때가 의외로 많겠구나......
안드레이 류돌로프 때보단 화면의 전환이 빠르다... 잠이 안온다.
난데없이 내리는 비...
고속도로... (고속도로 장면에서 잠이 드는 확률의 아주 높다는 사전 지식을 받은 바라 빠짝 긴장 했는데.,..) 의의로 지루하지 않다..
----- 영화에 집중 하면서
우주 스테이션의 혼돈. 우주의 혼돈이 아니라 휴먼 (박사의 방에 걸린 명찰 처럼) 의 혼돈
하리의 등장 하리의 정체성의 혼돈에 나의 정체성의 혼돈의체널이 맞추어 진다. 이미 영화적 공간은 우주를 초월해 버렸다.
나와 나의 정체성. 그리고 사람의 관계만이 중심이 된다. 그사이의 스토리를 이어주는 두사람의 박사들. 하리의 급속한 자아의 성장은 공포스럽다. 캘빈의 의식의 변화 역시 공포 스럽다.
과연 나에게 저런 일이 나타 난다면.. 나의 하리가 문득 나타나서 새로운 삶을 나와 만들어 간다면,,,,, 소름이 끼친다..
---- 영화를 마친후
김규종 선생님의 영화의 시대적 배경 설명이 유익하다.
*타르코프스키의 영상 미학. 전반부의 자연을 훑어 가는 그의 눈은 아름답다.
그러나, 한편의 아쉬움은 우주공간이라는 배경으로 옮기는 순간. 그의 영상미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
1972년 당시를 생각한 다면 CG나 여타의 영상적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는 기술적인
한계가 가장 컷으리라. 자연이라는 실물적 대상이 아닌 상상의 공간에 대한 타르 코프스키의 이미지를 제대로 볼 수 없음에 대한 안타 까움이 가득해진다.
이문제만 생각한다면 , 굳이 우주라는 공간 적 배경을 가지지 않았었다면 그의 영상미는 더욱 빛을 발 할 수 있을 것인데,,라는 아쉬움을 한 가득 가져 본다.
*끝 없는 고속도로의 질주 장면.,. 김규종 선생님의 표현으로 보자면 미로 이고 내 생각으로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무한 순환과 무규칙의 직선적인 질주의 결합.
전체적인 영화의 맥을 주는 장면임에는 분명 한 듯하다.
순환과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질주의 무규칙적인 배합. 솔라리스의 상황이다
*비
영화의 전반부에 캘빈과 아버지의 만남의 장면에서 난데 없이 내리던 비. 캘빈은 비를 맞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의 캘빈과 아버지의 재회에 나타나는 비, 따뜻한 비는 아버지의 어깨와 집안에만 내린다.
설푸른 상상으로 본다면 비는 캘빈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상징적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차가운비,와 따뜻한 비. 캘빈이 맞는 비와 아버지의 어깨에 내리는 비.
얼어있는 연못과 잔잔한 파장이 있는 연못의 대비 역시 감정선의 복선으로 읽힌다
* 드디어 문제의 하리
하리를 바라보는 가장 근본 적인 고민은 하리가 끝없이 나타나면서도 똑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성장하는 자아를 지닌 하리. 끝없이 정체성을 고민하는 하리인것이다.
김규종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끝없이 부활하는 하리.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캘빈이 만들어낸 허상인 하리가 캘빈에게 제어되지 않을뿐더러 지속적으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휴먼화 된다는 것이다. 캘빈이 만들어냈지만 캘빈에게 제어되지 않는 하리. 솔라리스가 던지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캘빈의 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하리가 캘빈의 의지와 상관없이 끝없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
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따르코프스키는 우리에게 던져준다.
캘빈이 마지막으로 잠든 때 캘빈의 의식세계는 그가 만들어낸 문제들, 상처들을 드러낸다.
섹시한 어머니는 오디푸스컴플렉스를 보여준다. 우주로 떠나기전 아버지와의 싸움 (상처)의 근본은 어머니에 대한 오디푸스콤플렉스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이는 하리의 죽음에 대한 이유 역시 넌지시 던져 주는 듯하다.
즉, 솔라리스에서 만난 하리라는 캘빈의 내제된 문제는 바로 아버지, 어머니, 하리와 캘빈이라는 가족의 내적인 상처의 결과물이다.
캘빈은 이 마지막 잠을 통해 하리에 대한 극복을 이루어 낸다
이 극복의 과정은 문제를 넘어선다기 보다도 상처에 대한 인정의 과정으로 보여진다.
상처난 가족 그것을 드러내고 캘빈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 그것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이다.
지구로 돌아온 캘빈
그가 다시만나는 아버지의 어깨에는 따뜻한 비가 내리고 있고(화해) 마지막 장면은 아버지앞에 무릎 꿇은 캘빈을 통해 상처의 치유와 회복이라는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이장면은 줌아웃을 하면서 솔라리스의 새롭게 드러나는 하나의 섬으로 형상화되며 그곳에는
녹색의 자연이 다시 살아 난다.
이장면이 바로 솔라리스의 핵심이며 따르코프스키가 하고 싶은 말인듯 하다.
|우주로 떠나서 자신의 상처(하리)를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치유(마지막 어머니를 만나는 그의 잠)을 통해 하리라는 존재를 이겨내고 솔라리스라는 우주에 작은 섬들이 나타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 섬은
지구로 돌아온 캘빈의 아버지와의 회복이라는 상징적인 장면을 통해 확연히 드러나고
그장면은 솔라리스와 지구의 공간적인 차이가 사라진다
즉, 솔라리스라는 우주에 모든 것이 극복된 섬이 나타나는 것과
지구에서 캘빈가족의 상처의 치유와 화해라는 극적인 장면은 같은 것이다.|
상처의 드러냄
회복,과 치유,,,,,,,,
그것이 솔라리스를 통해 따르코프스키가 우리에게 던지는
우주적 메시지인것이다.
나 역시 지금도 내가 만든 하리와 끝없이
싸우며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나 역시 나의 감추어진 상처를 통해
객관적으로 실존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들지는 않았는가??
혹은, 그것의 극복은 외부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상처를 드러내고 나로부터
용서하고 화해 하는 것 만이 유일한
우리의 희망이 아닌가????
내가 읽은
따르코프스키의 메시지.,..
----맺으며
행복한 영화
나를 돌아보기 위해 끝없이 줌아웃하는 영화
우주까지 올라 갔다가
결국은 내 속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영화
그 영화를 더 즐겁해주는
영화후의 시간................
다음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