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 깨어진 北伐의 꿈 효종(孝宗=西紀 1649-1659)은 나이 심십일세에 왕위에 올랐다. 효종은 그 형 소원세자와 더불어 아홉해라는 긴 세월을 볼모잡이의 몸이 되어 심양과 북경에서 갖은 풍상을 다 겪은 분이다. 그가 탄생되기는 인조가 아직 능양군으로 있을 때였고, 그의 모후(母后)는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韓氏)이다. 그는 여덟살 때 봉림대군에 봉해졌 으며 부인으로는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 장유(張維)의 따님을 맞았다. 효종은 심양과 북경에서 오랜 볼모잡이 생활을하고 있었을 때 지그시 입술 을 깨물고 맹세한 사실이 있었다. (첫째 군사를 기를 줄 아는 장수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병자, 정축의 뼈에 사무치는 부끄러움을 씻을 수 있다.) 이렇게 마음 속으로 깊이 맹세했던 것이다. 효종은 즉위 초에 거유(巨儒)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俊吉), 이유태(李惟台) 등을 불러서 정치를 보 좌케 하고, 일단 멈추었던 대동법(大同法)을 다시 시행하고 수차(水車)를 장려하여 농사관계에 쓰게 하는 등 내정 충실에 힘을 섰다. 이리하여 세월이 흐르기를 오년... 갑오년에 이르러서 웬만큼 국고(國庫) 가 충실히 된 뒤에 비로소 삼남 각도에 오영장을 두었다. 그 어느날 임금은 야반에 갑자기 침전에서 무감을 불렀다. 야반에 급한 어 명이라 황황히 무감이 달려서 뜰 아래 국궁하고 영을 기다릴 때에 임금은 손짓으로 무감을 툇마루 가까이까지 불러서 무감의 귀에 무슨 분부를 내렸 다. 그날밤 자정이 훨씬 지나서 대궐 별감 십여명은 말을 달려서 장안 각 무신(武臣)의 집으로 향하였다. "지금 입궐하라는 분부가 계시오." 이 분부를 들은 무신들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다. 아닌 밤중에 갑자기 대 궐에서 부르는지라 황급히 옷을 입고 혹은 말로, 혹은 가마로 대궐로 달려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이 대궐에 들어서자마자 사면에서 빗발치듯 화살이 날아와서 들어서는 무신은 모두 이 불의의 화살에 맞아서 거꾸러 졌다. 그러나 화 살에 촉은 없었다. 이런한 가운데 단지 한 사람, 빗발치는 살도 모르는 듯이 손을 앞으로 읍하고 국궁한 채로 정전(正殿)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용상 아래 읍하고 섰던 한 내관의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라는 하문이 계시오!" "삼도 도통사 이완(李浣)으로 여쭈오." 우렁찬 대답은 마치 대궐이 드렁드렁 울릴 듯이 터져 나왔다. "오, 오!" 그것은 내관의 소리가 아니었다. 용상 위의 임금의 옥음이었다. '오, 오!' 한 마디 뿐 임금은 용상에서 내렸다. 부축하려는 내관을 물리치 고 몸소 옥보를 정전 밖으로 옮겼다. "상감마마, 야반의 급명, 어떤 사연이온지?" "저 빗발치는 화살은 어떻게 하고 들어왔소?" "상감마마." 이완은 의대 앞자락을 약간 들쳐보였다. 겉은 예사 의대지만 그 속에는 든 든히 갑옷을 두른 것이었다. "그 갑옷은?" "예, 야반에 지급 입궐하랍시는 어명, 범상치 않은 일이옵기 총망중이오나 속에 무장을 하고 왔나이다." "오오, 국가의 동량." 임금은 몸소 이완을 붙들었다. 그리고 몸소 인도하여 내전으로 들어갔다. 그날 임금은 이완과 단 둘이 밀의로써 밤을 새웠다. 이튿날 이완은 특지로 훈련대장의 임무를 띠게 되었다. 그새 오년간을 임금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오로지 그 준비 행동으로서 국 력 충실에만 힘쓰던 궁극의 목적 북벌(北伐)은 드디어 공포되었다. "최근 오년간을 두고 보아야 이 대임을 맡을 장신(將臣)은 대장 한 사람밖 에 없었소. 그 안식이 틀리지 않아 그날밤 예궐할 때에 총망중에도 몸단 속을 잊지 않은 점은 가히 대임을 넉넉히 맡을 만하니 나를 도와서 병자의 치욕을 씻어 주시오." 임금이 손을 잡고 간곡히 이렇게 당부할 때에 이완은 눈물을 흘리며 이 성 지(聖旨)에 보답하기를 맹세하였다. 임금과 이완은 의논한 끝에 전국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 육백명을 모아들였 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술을 연습시키어서 장차 북벌의 웅지를 펼때에 쓰 려고 준비했다. 임금은 또한 송시열의 협조를 얻어 정치에도 몰두하여 장차 북벌할 때라도 그 군량이 부족하거나 국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 방면으로 노 심하였다. 갑오년에 드디어 전제(錢制)를 시행했다. 이전까지는 베로써 서로 바꾸어 물물교환(物物交換)을 하던 것을 장차 웅지를 갖고 있는 임금은 그런 불편 한 제도를 그냥 두었다가는 큰일을 할 때에 지장이 되겠으므로 당전(唐錢) 십오만문(萬文)을 사다가 먼저 평양, 안주 등에 사용케 하여 보고, 그 결 과가 양호하므로 훈련도감에 명하여 돈을 만들어 퍼뜨렸다. 돈으로 바꿀 물가표(物價表)까지 작성하여 이 낯선 쇳덩이가 퍼지기 편토록 하였다. 군사들의 옷제도도 너무 거추장스럽다 하여 경편하고 편하도록 개량케 했 다. 말하자면 퐁속제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세밀하게 관찰하여 개량한 것 이다. 그 개량이라는 것은 장차 북벌할 때 유리하도록 하자는 복선에서 나 온 것이다. 전국에 금은광(金銀鑛)을 장려하여 거기서 나는 금은을 모두 거두어 올려 서 바둑돌 모양으로 만들어 두었다. 이것도 장래 군용금으로 쓰려는 것이 었다. (소위 금바둑쇠라는 것으로서 대원군 집정 초까지 그냥 곱다랗게 보관되어 있다가 경복궁 대궐 영조에 쓰였다.) 이렇듯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임금의 마음에 있는 바는 북벌 뿐이요, 무슨 일이든 모두가 북벌에 이용하자는 복선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느덧 창고 에는 그득히 곡식과 재물이 꽉 차게 되었다. 이리하여 을미(乙未), 병신(丙申), 정유(丁酉), 무술(戊戌)을 지나서 기해 년(己亥年)에는 국력과 군력이 아울러 충실하여 인제는 거사(擧事)라는 단 한가지의 과정이 남아있게 되었다. 드디어 출사(出師)의 날까지 결정되었다. 효종 십년 기해 오월 오일. 이 최후의 결정까지 끝났다. 그 해 봄에 임금은 이황(李滉), 이이(李珥), 김린(金麟), 송인수(宋麟壽), 이항복(李恒福), 김장생(金長生) 등의 서원에 사액(賜額)을 하였다. 지금 바야흐로 북벌의 대군을 떠나 보냄에 국내의 말썽 많은 유생들이 이렇다 저렇다 말썽을 부리다가 다시 당쟁이 일어나면 대사를 그릇치겠으므로 그 들을 회유하기 위해 선유(先儒)들 서원에 사액을 하여 그들의 환심을 하 둔 것이다. 삼월에서 사월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북벌 준비 때문에 온 나라가 뒤끓었다. 이렇게 사월 달도 휙하니 지나가고 오월 초하루. "인제 나흘이 남았구나." 손꼽아 기다리는 출사일(出師日)을 다시 꼽아 보면서 이완 대장은 엄중히 갑옷으로 몸을 싼채로 잠간 잠을 자려고 안석에 기대었다. 안석에 기대는 참에 무슨 불길한 꿈을 걸핏 꾸면서 이완은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귀를 울리는 것은 누군가 대문을 요란히 두드리는 소리였다. 대궐에서 급사(急使)가 달려온 것이었다. 급히 입궐하라는 분부였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슴이 철썩 내려앉은 이완 대장은 까닭없이 떨리 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여 등대하는 말에게 올라 곧장 대궐로 달려 들어갔 다. 들어가니까 기다리고 있던 승전빗이 곧 이완을 인도하여 내전으로 들어갔 다. 내전 뜰아래 국궁하고 서 있으려니 안으로 들라는 것이었다. 이완은 국궁하고 황급히 동온돌 문 밖에서 승후하였다. "이완, 참내하였습니다." "들, 들어오오." 가슴이 서늘했다. 옥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우렁차던 임금의 음성으로는 들을 수가 없었다. 분부를 따라 동온돌 안에 들어서면서 힐끗 보매 용안이 검붉게 변하고 온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는 것이었다. "상감마마!" 이완은 넓죽 엎드렸다. "대장, 내 몸이 편찮아!" 아래 윗 이가 떡떡 마주치기 때문에 분명치 못한 옥음으로 임금은 이렇게 말했다. "상감마마!" "좀 가까이..." 이완은 무릎 걸음으로 나아갔다. "대장, 오월 단오, 오월 단오..." "예, 출사가 인제 겨우 나흘 남았습니다." "내가 죽는 일이 있을지라도 기어코 북벌은 진행하오." "마마! 그게 무슨 하교이시온지. 마마!" 그러나 임금은 인제 기운이 없는지 그 자리에 모로 눕고 말았다. 그날밤 이완은 내전 뜰에 서서 밝혔다. 천가지 만가지 생각이 이완의 머리 를 오락가락 했다. 출사하기로 결정된 날이 이제 겨우 나흘이 남았고 그 날이 이 용감한 북벌군을 임금이 몸소 모악원까지 배웅하기로 내정이 되 고, 그 준비조차 다 되었거늘 갑자기 옥체 미령하니 이 일을 장차 어쩌나. "하늘이여. 우리 전하의 환후를 쾌차케 해주시오." 이완은 밤새도록 하늘을 우러러보며 빌었다. 그러나 이튿날은 환후가 더욱 침중하였다. 이리하여 이틀, 사흘, 나흘(출사키로 작정한 그전날)에 마흔하나라는 한창 장년으로서 평생의 웅지를 펴보지 못하고 임금은 황천의 길을 밟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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