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의 겨울 화악산 단독 산행
보천욕일(補天浴日)
🙏🎋幸福한 삶🎋🎎🎋梁南石印🎋🙏
25년 12월 28일, 일요일
새벽잠에서 깨어나 뒤척이다가
산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자성어 하나가 떠올랐다.
보천욕일(補天浴日).
찢어진 하늘을 기우고,
태양을 씻는다는 말.
허황한 말장난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더구나 나는
1월 3일, 겨울 화악산 단독 산행을 앞둔 사람이다.
기온 낮기로 손꼽히는 산,
난이도 또한 만만치 않은 곳을
칠십을 앞둔 나이에 홀로 오른다는 상황에서
이런 과장된 말이 떠올랐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조금은 우스웠다.
그러나 곧 생각이 달라졌다.
이 말은 웃기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정확해서
나는 잠시 말을 고르게 되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겨울 화악산 산행 계획을 세우다
끝을 맺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었고,
눈을 뜨는 순간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를 그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그 뜻을
내 삶의 문맥 속에 꿰맞추기 시작했다.
몹쓸 세상이다.
둘로 갈라져 서로를 증오하는 사회,
날 선 말은 비수가 되고
진실은 거짓의 소음 속에 묻혀버린 정치.
힘 있는 자들의 날강도 같은 행태 아래
평범한 사람들이 눌려 신음하는 풍경.
이건 그런 세상을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 내뱉는
자조 섞인 한탄일지도 모른다.
고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지나갈 수 없는 자의 넋두리다.
그래서 나는
보천욕일이라는 말에
이런 태도를 담고 싶었다.
세상을 꿰매겠다는 오만이 아니라,
찢어졌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마음.
이건 무지한 자의 헛소리가 아니다.
현실을 똑바로 본 사람이 어쩌지 못해
분노를 삼킨 울부짖음이다.
이 마음을 산행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가당치 않게 산을 바꾸겠다는 것도,
날씨를 통제하겠다는 것도 아니며,
위험을 없애겠다는 허세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그날, 이 조건을
나는 감당할 수 있는가,
그걸 스스로에게 묻고
확인하러 찾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화악산에 가는 것은
도전도, 도피도 아니며,
과시는 더더욱 아니다.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몸으로 때우러 가는 일이다.
보천욕일(補天浴日).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감히 마음에 품는다는 이 말이
겨울 화악산 단독 산행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산을 ‘정복’이나 ‘도전’의 언어로만
바라볼 때의 이야기다.
내가 말하는 화악산 등정은
정상 인증도 아니고,
난이도 자랑도 아니며,
SNS나 커뮤니티에 올릴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유튜브용 기록과는 애초에 결이 다르다.
내가 뜻하는 겨울 산행은
나 자신과의 정렬에 가깝다.
하늘을 바꾸겠다는 오만이 아니라,
북방의 겨울 산 위 하늘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끝까지 바라보겠다는 태도다.
불덩이 같은 태양을
씻겠다는 허세가 아니라,
노루 꼬리만큼 떠 있는
겨울 태양 앞에 설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을 단정히 다듬겠다는,
조용하고 순백한 결기다.
나는 화악산을 이겨내러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세운 기준이 아직 유효한지,
흐려진 사고와 인지 속에서도
나의 판단이 여전히 옳은지,
그걸 내 몸으로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체험 속에서 드러나는 늙은 몸의 리듬,
거친 산세를 조심스레 밟아 오르며
군더더기 없이 드러나는 판단의 속도,
북방한계선의 강추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
그리고 늦었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결단성 있게 돌아설 수 있는 결단.
이 산행은 젊음의 힘만으로는 밀어붙일 수 없다.
축적된 경험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변수가
겨울 산에는 끝없이 숨어 있다.
오직 자기 한계를 정확히 아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산행이다.
그래서 보천욕일은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에 가깝다.
내가 세상을 꿰맬 수는 없을지라도
다만 찢어진 하늘을 보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곧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겨울 화악산은 산을 찾은 이에게
아무것도 증명해 주지 않는다.
다만 거짓이 있다면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산에 가는 것일 뿐이다.
허튼 말이 많아지는 시대에 사는 나는
말을 줄이는 쪽을 택했고,
그 선택이 산으로 향했을 뿐이다.
이 사자성어를 떠올린 일요일 아침,
이미 몸보다 마음이 산행의 절반을
먼저 다녀온 것이나 다름없다.
지식을 주입하는 공교육,
교과서로만 가르칠 수 없는 삶의 지혜.
오직 경험에서만 생겨나는 질서가 있다.
산을 오를 때처럼
어디서 힘을 아끼고,
어디서 멈추며,
어디서 돌아서야 하는지
몸으로 아는 사고.
배웠다, 못 배웠다는 문제가 아니라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방향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던 사고.
그런 사람은 이미 경험적 삶을 통과해 온 사람이다.
다만,
날씨가 도와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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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북면 화악리와 적목리에 걸쳐 솟은 화악산(1,468.3m)은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측량 기술이 없던 시절, 선조들은 이 산을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정중앙에 놓인 산이라 여겼다.
그 인식은 이름에 남아 있다. 화악산의 정상은 ‘가운데 중(中)’ 자를 써 중봉(中峰)이라 불려왔다. 이웃 나라 중국이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 여겼던 사고방식과 닮아 있다.
지도를 펼쳐보면 그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국토 자오선이라 불리는 동경 127도 30분선은 평북 중강진에서 전남 여수까지 이어지고, 위도 38도선과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화악산 중봉 부근이다.
지도상 두 선이 만나는 지점은 화악산 정상 또는 중봉으로 표기되곤 한다.
이는 화악산 전체가 자오선 위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국토의 기준이 되는 두 선이 만나는 지점이 중봉 부근이라는 의미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평북 삭주에서 경남 울산으로 이어지는 선, 그리고 백두산에서 한라산을 잇는 가상의 축 역시 이 일대에서 교차한다고 여겨져 왔다는 점이다.
화악산은 운악산·송악산·관악산·감악산과 함께 ‘경기 오악’으로 꼽혔으며, 풍수적으로는 조선의 심장에 해당하는 대길복지의 명당으로 전해진다.
『산경표』에는 화악산을 화악산(花岳山)으로 기록했고,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화천과 가평 고을에서 산제(山祭)를 올리던 명산이라 적혀 있다.
중봉 갈림길 공터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면 촉대봉을 앞에 두고 몽덕산과 가덕산 능선이 이어지고, 그 너머로는 홍천 가리산과 춘천 대룡산이 아득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산 아래에서 여러 세대를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에 따르면, 옛사람들은 산세가 크고 넓다는 뜻에서 화악산을 광악산(廣岳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6·25전쟁 직후 미군이 정상 부근에 주둔하며 막사를 짓기 위해 터를 고르던 과정에서 제기(祭器)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는 이 산에서 산신제를 지냈다는 흔적으로 여겨진다.
해발 1,400미터가 넘는 화악산은 적설량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설경은 중급 산을 훌쩍 넘는 규모로, 때로는 헤비급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출발점 : 삼팔교 → 조무락골 → 석룡산 → 중간, 계곡 따라 이동, 석룡산, 중봉 갈림길, 조무락골 계류 및 숲길, 일부 오르막 험로 도착, 중봉 정상 언저리(군부대 바로 아래) 거리/시간, 약 11 km / 약 6시간 예상
가평군은 경기도 동북 산간 지역에 놓여 있으며, 홍천강이 북한강과 합류하여 서남 방향으로 흐르는 고장입니다.
북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최고봉인 화악산이 진산(鎭山)이 되어 촛대봉, 매봉, 국망봉, 강씨봉, 명지산, 수덕산, 계관산을 거느리며, 해발 700∼800m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끼고 웅장한 맥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산들의 계곡을 따라 흐르며 이어지는 가평천과 조종천의 수많은 지류는 모두 북한강으로 유입되어 흐른다. 남쪽으로는 중미산, 화야산, 장락산이 산맥을 이루어 용문산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주금산, 축령산 등이 끝없는 산맥을 이어 나간다.
지역의 경계를 보면 동쪽으로는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와 홍천군이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남양주시, 남쪽으로는 양평군과 북쪽으로는 포천시, 화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한반도의 가장 중앙에 있는 서울과 춘천과의 철도, 도로 교통의 요지로서 산과 강이 어우러진 수도권 최고의 휴식처이다.
겨울철 화악산 설경 산행은 해가 짧은 만큼 동선이 비교적 짧은 화악리 방면이 수월하다.
화악리 방면에서도 종점인 중간말에서 출발해 건들내→칠림계곡→천도교 수도원→오림계곡을 경유하는 코스가 정상으로 오르는 최단 거리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