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11 믿음의 말씀이라.
로마서 10장 8절-15절
18세기에 혜성같이 나타난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조지 휫 필드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바울처럼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일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30년 동안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주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1주일에 무려 40시간 내지 60시간을 설교할 정도로 열심이었던 분이었습니다. “주께서 주신 생명 가만히 있어 녹이 쓸어 없어지게 하느니, 차라리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낫다”라고 하면서 너무 무리하는 것이 아니냐고 만류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쳤습니다. 한마디로 주를 위해 짧고 굵게 살자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1770년 9월 29일 전도 집회를 마치고 보스톤으로 돌아가던 길에 엑스터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 당도했습니다. 때마침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몰려들어 설교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들판에 강단을 마련하고 예배를 시작하였습니다. 몰려 온 군중들은 뜨겁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윽고 설교 시간이 되었습니다. 조지 휫 필드는 강단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때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그분을 만류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뵐 때 설교는 무리이신 것 같습니다. 너무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러니 좀 누워 쉬십시오.” 그렇지만 그분은 강단을 향해 나가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일에 지쳐있기는 하지만 이 일에 실증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제가 아직 갈 길을 다 가지 못했다면 저로 하여금 이 들판에 서서 주의 복음을 말하게 하시고, 주님의 진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인 치게 하옵시고, 그 다음에 죽어 본향에 돌아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난 후 그는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두말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 왔습니다. 더욱이 그날의 설교가 그의 설교 중 가장 감동적인 설교였습니다. 그 다음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그분을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잠자는 중에 평안히 주님의 부름을 받아 천국으로 떠난 뒤였습니다. 그때 그분의 나이 불과 56세였습니다.
그렇다면 조지 휫 필드는 어찌하여 그토록 자기를 돌보지 않고 자신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생명이 닳아 없어지도록 하였습니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 하시도다.”라는 말씀에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히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즐겨 쓰시는 도구가 된 것을 감사하며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면 언제나 자신을 기꺼이 내어 드리는 즐겨 쓰시는 도구요, 선한 도구가 됨을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바울은 죄인의 괴수인 자신이 죽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죽여 버리지 않고 도리어 값없이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그 구원의 확신으로 인하여 감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에 감격하면 감격할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그에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 동족들이 하나님을 잘 못 알고, 하나님을 잘 못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도리어 자꾸만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그는 안타까워 어찌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동족들이 구원 받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 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할 정도로 자기 동족들의 구원이 자기의 진심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하여 값없이 얻은 구원에 대해 감사하면서 내 골육 친척에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간절하게, 진실하게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은 무엇이며, 그들에게 무엇을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까?
우리들이 가장 사랑하는 분들에게 전하여야 할 것은 네 입과 내 마음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내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니라.” 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분들에게 전하여야 할 말씀은 내가 믿으므로 항상 마음에 두고 있는 말씀이며, 늘 내 입술로 고백하고 감사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의 말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바로 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의 말씀 즉 복음의 내용은 바로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알고 보면 구원의 조건은 그리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주인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뀐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전의 우리들의 주인은 누구이고, 이번에 바뀐 새로운 주인은 누구입니까?
두말 할 것 없이 우리들의 이전의 주인은 사탄이고, 새로운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전에는 사탄의 종노릇하느라 정신없이 죄를 지었던 우리들을 이제는 예수께서 자신의 이름대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자기 백성이 되게 하셨음을 믿고 그 분을 주인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 이제 예수를 주로 믿고 예수님이 자신의 生死禍福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할 수 있도록 도우셔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 절대적으로 생명을 바쳐 충성하고 순종해야만이 진정으로 주인으로 시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살려 준다’ ‘복을 준다.’ 는 말에는 솔깃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종해야 한다.’ ‘헌신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머뭇거리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겟세마네 동산까지는 주님과 함께 갔지만 골고다 언덕까지 따라가지 않았던 제자들을 보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신앙생활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에 믿는 것과 늘 입술로 고백하는 말씀을 그분들도 함께 시인하며 고백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이라는 두 번째 조건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과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시인하고, 믿어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나의 구원자로 고백한다는 것은 진실한 신앙고백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과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나를 위하여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의 내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사랑하는 분들에게 무엇을 믿고, 무엇을 시인하여야 하는 가를 분명하게 알려 주시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예수를 주인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신다면 그 믿음은 마음에 깊이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반드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은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또한 이제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다는 고백을 예수님께서 들으시기 원하지만, 또한 사람들이 듣도록 시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믿음이 좋다 큰소리친다 하더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예수님의 사람이요, 예수님께 소속되어 있다고 외치지 못할 사람이라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달라진 신분과 소속을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내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 소속은 천국의 시민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참된 구원을 얻은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떠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
11절에서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자는 높여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높여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이 땅에서 살면서도 무시당하지 않고 살도록 해 주시지만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가서 왕 노릇할 정도로 높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요한계시록 3장 21절 말씀에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않은 것과 같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왕자 병, 공주병 걸린 분들도 절대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분들이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면 왕자 병, 공주병이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진심으로 복음을 전하더라도 다 듣고 나서 엉뚱한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나도 염치가 있지 이제까지 죄라는 죄는 다 짖고 어찌 용서해 달라고 합니까?”
“저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본문의 주인공 바울이 예수를 믿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기 이전에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은 ‘큰 자’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이름부터가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믿는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열심을 보이기 위해서 그가 한 짓이라고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에도 돌로 치는 사람들의 감독관으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그것도 양에 차지 않아서 멀리 다마스커스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여도 좋다는 공문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러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에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큰 빛으로, 그리고 큰 소리로 나타나신 예수님은 결코 그의 죄를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의 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시므로 사울의 죄를 분명히 알고 계셨지만 따지지 않으시고 값없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여러 위인들을 보십시오.
우리들보다 지은 죄가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었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구원받은 분들이 지은 죄가 작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값없이, 누구든지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간절히 말씀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신 요한 1서 1장 9절 말씀으로 위로하십시오.
그렇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믿음과 미련한 열심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무식한 열심, 잘못된 열심을 내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다고만 할 수 없는 무섭고, 안타까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열심히 없어서 망하는 사람들보다 잘못된 열심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국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에도 한국에서 건너간 이단과 사이비들이 너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참된 신앙은 머리는 차가워야 하고,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그런데 머리가 열 받았으니 그 머리를 무엇으로 식혀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영혼을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지고 그들에게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잘못된 열심을 경계하다가 옳은 열심마저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내는 열심, 그분의 사랑에 사로잡혀 하나님 앞에 나의 전부를 드리는 열심은 절대로 나무랄 데가 없는 열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선한 열심을 내라고 우리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할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씀입니다.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이 인간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들을 수가 있으며, 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이며, 믿지 못하는데 누구를 부를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누군가가 전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고, 믿어야 주님을 부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17절에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에만 믿음이 생긴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못 들어서 못 믿었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못 들어서 못 믿었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우리의 책임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열심을 내야 할 것이 확실하게 정해졌습니다.
그것을 15절 말씀을 통해서 정확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 받은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보냄 받은 목적대로 행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십시다.
우리들은 결코 ‘게으르고 악한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인정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으로 보냄 받은 자의 소명을 다하여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글로벌 찬양의 교회 형제자매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