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24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 상 4장 9절 - 10절
성경 중에서도 역대 상은 상당한 인내를 가지고 읽어야 하는 역사서입니다.
1장 1절부터 읽어 내려가다 보면 사람들의 이름들의 나열이 시작됩니다. 그것이 2장에도, 3장에도, 4장에도, 그래서 9장까지 계속됩니다. 아담을 시작으로 후손들의 족보를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름이 약 500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름만 계속 나오다가 4장 6절 ,7절, 8절을 넘어가면서 9절에 이르게 되면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집니다. 마치 평평한 사막만 달리다가 갑자기 푸른 산이 나타나듯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리고는 11절부터 다시 글룹, 므힐, 에스돈, 베드라바와 바세아 등등 이름이 계속해서 나열됩니다.
저희 집안의 족보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 민족에게 지금도 존경받고 계신 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안창호 선생과 안중근 의사입니다. 그렇지만 족보에는 그분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어떤 위대한 일을 하셨다는 이야기는 전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와 결혼했고, 누구의 아버지인가만 기록할 뿐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족보란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9절에 이르러서는 족보답지 않게 야베스란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 두 절 밖에 안 되지만 사실은 야베스의 일생을 이야기로 표현한 내용인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자주 놀랍니다. 성경 안에 나타나는 성령의 영감에도 놀라지만, 성경을 기록한 분들의 문학성에서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어떻게 단 두절로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아울러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그처럼 명확하게 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야베스’란 사람을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라고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보통 ‘존귀하다’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존귀하다’는 말은 ‘출세하다’, ‘유명하다’, ‘존경받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야베스를 가리켜 굳이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야베스는 모든 형제들보다 출세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보다 유명하게 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거기에다 성경은 그가 출세하여 유명하게 된 것보다도 더 강조하려고 하는 것이 있는데 ‘야베스는 존경까지 한 몸에 받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베스는 가정에서 뿐 아니라, 그 가문에서 가장 출세한 사람, 그리고 그 가문에서 가장 유명할 뿐 아니라 가장 존경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처럼 한 가정에서 가장 잘 된다는 것도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가문에서 가장 출세한 사람, 거기다가 존경까지 받는 사람이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 라 하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단지 야베스가 그처럼 유명하게 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이처럼 그의 이야기를 특별히 기록하게 된 것일까요? 세상에서 출세하고 유명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에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도대체 야베스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성경은 이 사람의 일생을 이처럼 특별하게 기록하였을까요?
‘야베스’란 이름의 뜻은 “고통”이란 뜻입니다. 그것도 그의 어머니가 그가 태어날 때 지어준 이름입니다.
보통 이름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니면 아버지가 지어줍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면 “어머니가 이름 하여 야베스라 하고”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집은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어머니가 야베스에게 그렇게 이름을 지어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라고 번역했습니다만 사실은 누가 고통을 당한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야베스’ ‘수고’ 이처럼 고통을 의미하는 단어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므로 누가 고통을 당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통을 당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고통 중에 있는 너를 고통스럽게 낳았다.”
아마 그 집에는 아버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어머니 혼자서 이 아이를 해산하고, 아이 이름도 어머니가 지어 준 것을 보아서 충분히 그렇게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볼 때 이 아이를 낳으면서, 산모도 아이도 죽을 고비를 넘긴 난산이었던지, 아니면 어머니가 불구자여서 죽을힘을 다해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이름 자체를 보면 이 아이는 지독히 어려운 상황에서 아주 불행하게 태어난 아이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입장에서 볼 때 야베스는 일생을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가 도리어 가정의 형제들 중에서, 아니 가문에서 가장 훌륭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베스는 도저히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 된 것, 이것이 성경에 그를 특별하게 기록한 이유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가 그처럼 성경에 기록될 만큼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유태영 교수 이야기입니다. 그분의 가정은 많이 가난했던 것 같습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남들이 중학교 갈 때, 남의 집 머슴살이하면서 독학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아마 그 가문에서는 제일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여기서 훌륭하다는 말은 야베스처럼 가문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 됐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비결을 여쭤 보았더니 그분의 성공 비결은 뜻 밖에도 ‘빌사 일삼’이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해서 다른 것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는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일생동안 붙들고 기도하며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처럼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공 비결을 ‘빌사 일삼’이라고 소개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하고 있으니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된 일입니까? 그러면 ‘빌사 일삼’이란 어떤 뜻을 내포한 말일까요?
그렇다면 야베스가 그처럼 존경 받는 인물이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0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여기서 “아뢰어 가로되”라는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아뢰어 가로되”란 구약에서 그처럼 강조되는 “ארק(카라아), Cry out”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울부짖으며 부르짖다’ ‘강력이 호소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기록했던 기록자가 야베스의 이름을 적으면서 그의 머리에 퍼뜩 떠 오른 생각은 야베스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산 사람. 하나님께 호소하며 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베스가 얼마나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를 많이 했으면 성경의 저자가 그를 가리켜 “이스라엘 하나님께 부르짖고 산 사람”이라고 표현 했을까요? 우리들 중에도 이런 분이 계십니까? 그러므로 야베스가 그처럼 가문의 영광, 훌륭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이 된 이유는 바로 기도생활에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입니까? 비록 주님께서 이 땅을 떠나가시지만 여전히 같이 있을 때처럼 우리를 돕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시지만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기도하기만 해라. 그리하면 언제든지 너희를 도와주마.”
그러므로 지금도 주님은 천국에 계시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주실 엄청난 복을 소유하시고, 아낌없이 주시려고 그 복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우리들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들이 요청하지 않아서 주지 못하시고 계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도란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수영하듯 뛰어드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야베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신앙 안에서 유명하게 된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자기 것으로 끌어들여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좀 모자라더라도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높여 주십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격이 못되었더라도 열심히 기도하면 사람을 변화시켜서 주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비범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살면 비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말로 의미 있고 만족스런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려운 일을 만나고, 불가능한 일이 눈앞에 닥쳐 있으십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어떤 내용의 기도를 하면서 살았습니까?
기도 내용이 10절에 아주 짤막하게 나옵니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시고.”
그런데 이 기도문을 자세히 보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장이 명쾌하게 끝나는 기도가 아닙니다. 끝을 흐려 버리는 기도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내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신다면, 만약 나의 지경을 넓혀주신다면”
그러므로 미완성으로 되어 있는 기도입니다. “네게 복에 복을 주소서”라고 딱 끝나는 기도가 아니라, “만약 네게 복에 복을 주신다면” 하고 기도를 하다 마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어떻게 보면 더 간절한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 정확하게 복을 달라고 외치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네게 복에 복을 주신다면,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이 생략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잘 생각해 보면 딱 잘라서 “네게 복에 복을 주소서”하면 기복주의 신앙이 되어 버리고 말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복에 복을 주신다면”하고 기도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복만 받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복을 원하는 더 큰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가정하고 이 기도문을 완성시켜 본다면 이렇게 됩니다. “만약 내게 복을 주신다면, 이 불행을 이길 수 있으며, 나아가서 이런 불행 속에서도 비록 나 같은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과 5절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렸던 주님의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여,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Father, glorify your son.”
그때, 그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영화롭게 해달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기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라고 하지만, 감히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죽어가면서 어떻게 자신을 영화롭게 해 달라는 것입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기도 내용입니다. “나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신을 영화롭게 해 달라고 하셨던 이유는, 바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당당히 기도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기도대로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정말 영화롭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도 주님으로 인하여 영광 받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렇게 기도 드려야 합니다.
“주여, 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저의 교회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야베스는 당당하게 기도합니다. “내게 복에 복을 주옵소서.”
그렇다면 복이란 무엇입니까?
복이나 축복이란 사람의 힘으로 얻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은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구할 때 그것은 우리가 자력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을 좀 더 요구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랍고도 무조건적인 은혜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주시도록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베스가 받기를 원하는 복은 좀 더 좋은 차를 달라거나, 좀 더 많은 수입, 아니면 좀 더 좋은 집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합니다. 야베스가 구하는 복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그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결론으로 야베스의 기도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비록 고통 중에 태어난 사람이고,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아버지께서 나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으실 줄 압니다. 그 복을 내게 넉넉히 주사, 아버지의 일을 넉넉히 이루며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제가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며 살게 하옵소서.”
이처럼 진심으로 하나님께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을 주시기를 구할 때 기적의 흔적들이 우리의 삶 속에 반드시 열매로 남게 됩니다. 출애굽기 33장 18절의 모세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이 기도는 자기가 영광스럽게 되어 다른 사람 위에 뛰어나고 싶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보다 친밀하게 알 수 있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산 위에 올리사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결과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그를 보고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 귀는 당나귀 귀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기 위해 여러분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작은 신음 소리까지도 귀 기울여 듣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무엇인가 주님께 말씀드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야베스가 그토록 기도해서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야베스가 받은 복은 가문에서 가장 출세한 사람만이 아니라, 가문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훌륭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존경받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끝까지 존경받는 인물이 될 때 진정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출세하는 복을 받되 존경과 함께 받기를 원합니다.
존경 받는 일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늦었다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나이 제한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처럼 불행한 가운데 태어난 야베스도 그 불행한 인생을 극복하고 건강한 사람보다, 모든 것이 구비된 사람들보다 귀하게 살았는데, 여러분이야말로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기도하십시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 야베스처럼 “하나님 아버지, 나는 비록 고통 중에 태어난 사람이고,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아버지께서 나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으실 줄 압니다. 그 복을 내게 넉넉히 주사, 아버지의 일을 넉넉히 이루며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제가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며 살게 하옵소서.” 라고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여러분의 인생을 반드시 존귀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시므로 응답 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