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30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출애굽기 14장 10절-14절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출애굽 당시의 상황입니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위기의 순간이라면 어느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진퇴양난(進退兩難)
오늘 본문에서처럼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로 앞에는 검푸른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쪽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노도처럼 밀려오는 가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닷물 속에 뛰어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는 막다른 상황일 때, 사람들은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하였을 바로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절망의 때, 바로 그때에 출애굽 과정에서 가장 찬란한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애굽에서 가장 감격적이고 찬란했던 순간은 어느 때였습니까?
바로 홍해를 건너는 순간과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를 점령하던 순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홍해 앞에 갇혔고, 바로가 직접 이끄는 당대 세계 최고의 애굽의 정예 군사들이 전차 6백승을 타고 질풍노도같이 압박해 올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하였지만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자 이젠 모세를 향하여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11절과 12절 말씀입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는 이래저래 힘이 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렇게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보면 정작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15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라기보다는 10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에 대한 책망의 말씀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그 자리에서 즉시 하나님께 책망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외친 말이 나옵니다. 13절과 1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가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나자 곧 바로 그에 따른 행동지침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 15절과 16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밀었습니다. 그러자 이게 웬일입니까?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지고, 바다가 마른 땅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침내 바다 길은 터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바다 속에 난 육지로 뛰어들어 달음질쳤고,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는 여호와의 구름 기둥이 옮겨서 막아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사히 다 건너가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입니다.
이 사건의 클라이맥스는 어느 때입니까?
우리를 감동케 하는 장면은 바로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미는 장면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기적 중에서도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인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모세에게는 가능했을까?”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다가 홍해를 만난 것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시켜야 합니까?
여기서 홍해는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가장 어두운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뒤가 꽉 막혀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그런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도 어떤 사람들은 낙심치 않고 뚫고 나갑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그 순간에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맙니다. 왜 똑 같은 사람인데, 이처럼 정 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요?
사실 그들이 홍해 앞에 섰을 때 모세에게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요, 너무나 엄청난 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홍해의 힘과 맞서 영적으로 대결을 해야 했습니다. 이럴 때 요구되는 믿음은 강한 믿음입니다. 홍해를 이길 수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앞을 막는 악한 힘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생의 고난이 아니고, 사실 영적인 전투입니다.
내가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 그런 전투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힘을 꺾을 수 있는 영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힘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강한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행하실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강한 믿음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사람들은 모세가 기도해서 얻은 힘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모세가 그동안 경험했던 하나님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런 믿음이 처음 하나님을 믿은 사람에게선 나오지 않습니다. 초 신자들에게는 아직 그럴 믿음의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강한 믿음은 하나님을 그만큼 많이 경험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일으킬만한 강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하나님을 계속해서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힘이 홍해보다 더 클 때, 우리 앞에 놓인 홍해를 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홍해를 가르는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모세의 경우를 보면, 자기 내면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음성을 들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13절 말씀을 읽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를 다 멸하고, 자기 백성들을 건져내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믿음의 비전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만이 볼 수 있는 환상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분명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요.”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자는 절대 정명의 순간에도 바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어떤 확신을 가지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믿고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주시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16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더 구체적인 지침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모세에게 지팡이로 바다를 치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힘차게 내밀라고도 아니했습니다. 그렇다고 천지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힘이 들어갈 때라고는 한곳도 없을뿐더러 모세보고 대단한 일을 하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고만 하셨을 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내가 해야 하고, 반드시 내 힘이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작 우리 힘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우리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생각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 꼭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약속을 믿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제일 어려운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쉬운 것 같지만, 머리로 믿는 것과 가슴이 움직여서 손을 들어 바다 위로 내밀기까지가 가장 어려운 거리입니다. 찬양을 부를 때도 보면 박수치는데 몇 년, 박수 치다가 손을 높이 드는데 몇 년이 걸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여기서 번번이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의심이 들어가기가 가장 쉬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어떤 때는 그대로 순종하기가 꼭 바보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손을 내밀어서 홍해가 갈라질까? 홍해가 안 갈라지면 어떻게 하나? 아니 이 지팡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 거대한 물을 갈라낸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것이 고작 이런 하찮은 것이란 말인가?” 무수한 의심이 떠오를 수 있는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심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이럴 때 믿음과 행동의 사이는 짧을수록 좋습니다.
2002년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그때 우리들이 좋아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매 경기 때마다 주문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격과 수비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공격과 수비를 구분하지 않는 Total Soccer를 구사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미들 필드부터 압박 수비가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 4강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믿어졌을 때 머뭇거리지 말고, 즉각 행동으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의심이 마음의 하프라인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압박 수비를 펼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의심이 마음의 하프라인을 넘을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즉시 행동으로 옮기십시다. 의심의 들어가기 않도록 여유를 주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십시다.
그것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믿음은 곧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게 됩니까?
주님께서 누가복음 17장 6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어느 믿음 좋은 남편이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내가 그 곳에서 병이 나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장의사가 하는 말이 시신이 한국으로 가는 데는 천 만 원이고 이스라엘에 묻으면 백 만 원 이라고 하며 은혜로운 성지 이스라엘에 묻기를 적극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믿음 좋은 남편은 값이 비싸도 기어이 한국으로 시신을 옮기겠다고 하며 장의사에게 귀속 말로 그 이유를 이야기 합니다.
“이 곳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난 적이 있다던데요?”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정말 믿어야 할 것은 안 믿습니다. 그리고 정작 믿어야 할 것은 믿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에 대한 믿음은 빨리 버릴수록 좋습니다.
그렇다면 얼마큼 믿어야 합니까?
씨 중에 작다는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만 있어도 그것을 의지하고 행동으로 순종하면, 주님께서 뽕나무를 옮겨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때에 밀려드는 왜군들에 대하여 선조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이순신 장군은 선조에게 ‘尙有十二’ 즉 “아직 배가 열 두 척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12척의 배를 가지고 명랑 해전을 통해서 적선 133척을 침몰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순신 장군에게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력입니다. 실력한테는 누구도 꼼짝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실력이 있었으므로 남들 같으면 포기해야 할 때, 이순신 장군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려움은 다가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이길 힘만 있다면 어려움을 이미 어려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에게 진정한 실력, 힘은 무엇입니까?
바로 강한 믿음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천에게 진정한 실력이요 힘입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에게는 사탄과 어려움을 제어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강한 힘과 실력은 바로 강한 믿음입니다. 그리하면 어려움은 이미 어려움이 아닙니다. 그것을 이길 힘이 없을 때가 문제가 더 커지는 법입니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강한 믿음을 가지십시다.
우리 인생의 모든 주도권을 예수님께 온전히 맡기고 사십시다.
예수님께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내일을 더 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온전히 맡기십시다.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홍해와 같은 어려움도 맡기고 사십시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친히 싸우십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어려움을 이길 힘을 지니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므로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셨고, 부활로 우리에게 하늘의 굉장한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온전히 믿고 그 믿음 위에서 행동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삶의 곳곳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강한 믿음이란 내가 강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강하다는 말이고, 내가 그 능력을 온전히 믿고 산다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나 대신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후는 내가 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 대신 친히 내 일을 감당해 주십니다. 올해 남은 날들도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강한 믿음과 실력으로 “범사가 잘 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