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7 너희는 금식할 때에
마태복음 6장 16절-18절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금식기도를 해 보셨습니까?
어떤 사람은 금식의 유익을 말하기를 7일간의 금식 훈련에서 우리의 몸이 바뀌어 지고, 14일간의 금식 훈련에서 정신이 바뀌게 되며, 21일간의 금식 훈련에서 영혼이 바뀌게 된다고 하는 것을 보면 금식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정신적, 육적 유익이 크다는 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세계 기독교 역사상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성장을 보인 한국교회에서 이와 같은 금식기도의 긍정적인 비중을 과소평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성장 과정을 보면 100여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60,000여 교회가 세워졌는데, 이와 같이 엄청난 성장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새벽기도요, 그리고 또 하나 금식기도를 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교회들은 새벽기도와 금식기도 하면 한국 교회의 전유물이요, 상징으로 바라보고 있을 정도입니다. 결국 전국적으로 2만 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40일 금식기도에 성공했다는 자료를 볼 때, 세계교회가 한국교회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일부의 역효과만을 보고 금식기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금식에 대하여 나름대로 철저히 지켰습니다.
레위기 16장 31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년에 하루는 반드시 금식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바로 그날은 대 속죄일로써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대제사장이 대신 짊어지고 1년에 한 번씩 지성소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는 하나님께서 금식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금식기도는 무엇입니까?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한 자신의 어떤 영적인 목적 혹은 영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먹는 것, 마시는 것까지도 삼가면서 기도하는 것이 금식기도입니다.
사실 맘대로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과 이것을 절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과는 그 진지함과 간절함에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금식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귀담아 들으실 것이며, 내가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관심 갖고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에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렇게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믿음과 생각에 지지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금식하면서서라도 더 진지하게 부르짖고 거짓 없이 회개하고자 하는 것을 나쁘다고 기록한 구절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한 사람이 먹을 것 다 먹고, 즐길 것 다 즐기면서 뻔뻔하게 용서를 구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통회하고 자복하는 사람은 먹는 것, 마시는 것까지도 삼가면서 진지하게 눈물로 회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어찌 그 사람의 마음 중심을 인정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결코 금식기도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 즉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금식을 경건의 척도로 삼고 한 주일에 무려 이틀씩 즉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금식을 통해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의를 과시하고, 하나님께는 공로를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필이면 월요일과 목요일을 금식일로 삼았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당시의 장날이 월요일과 목요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주변의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몰려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기 위해 금식하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금식하여 힘들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얼굴에 횟가루를 발랐고, 얼굴 가득 슬픈 기색을 띠기를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치 “나는 이렇게 주님을 위해 굶고 있다. 나는 얼마나 경건하고 신령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금식’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그야말로 ‘외식하는 금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이없는 모습은 그때뿐만 아니었습니다.
바로 요즈음에도 금식을 마치 자랑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건네는 명함을 보면 “40일 금식기도 3회 실시”라고 어이없는 문구가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의 영력을 과시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본문 16절 하반부에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라고 하시면서 이러한 금식은 할 필요도 없고,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금식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7절입니다.
“너는 금식 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금식할 때 일부러 힘든 기색을 보이거나, 초췌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도리어 금식할 때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다른 때보다 겉모양은 물론이고 마음과 영혼을 더 단정하고 밝게 단장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금식하는 사람 자신만이 금식하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지극히 자연스럽게, 날마다의 생활을 계속하면서 금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드린 금식기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8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바르게 금식하여 은혜를 입은 경우들입니다.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동안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난 후 다시 밝은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조국을 괴롭히는 니느웨의 멸망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내게 되었습니다. 바로 니느웨가 큰 성읍이므로 삼일 길임에도 불구하고, 하룻길을 행하면서 건성으로, 대충대충 외치기로 한 것입니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러나 요나가 대충대충, 건성으로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니느웨의 왕과 백성은 물론 심지어 짐승까지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불과 40일 후에는 멸망당할 형편에서 하나님께 구원 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금식한 후 사탄과 대결하여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너무나 밝은 빛을 본 사울은 눈이 멀게 되어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를 했고, 아나니아를 보내 기도하게 하므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 충만하게 하여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공공의 적 1호에서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주님께 택함 받은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참된 금식, 하나님과 금식하는 사람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금식은 사탄의 간교한 시험을 이기게 하고, 역사적 중요한 사안을 놓고 바르게 결단 할 수 있도록 크게 도우시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를 구원의 은혜로 돌이키게 하는 놀라운 은혜의 보고(寶庫), 기적의 현장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변화시켜 땅 끝인 로마에 까지 주의 복음을 전하는 전무후무한 주의 일꾼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바르게 금식하기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상급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때에 금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먼저 민족과 국가적인 위기가 있을 때 금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더 4장을 보십시오.
‘모르드개’로부터 민족이 멸망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은 에스더는 자신이 할 일을 결심하고 ‘모르드개’에게 답변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처럼 민족의 절대 절명의 위기 앞에서 에스더와 온 유대민족의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한 금식은 온 유대민족을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금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4장 28절을 보면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 사십 주야를 머무르면서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여호와와 함께 거할 때 여호와께서 돌 판에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친히 써 주셨습니다. 모세는 말씀을 받을 때 사십 주야를 금식하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죄를 회개하고자 할 때 금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무엘 상 7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의 결과로 말미암아 빼앗긴 법궤를 되찾기 위하여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함으로 모든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께 붓고,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진심어린 회개를 들으신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패하시고 이스라엘이 승리케 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사명을 받을 때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이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한 결과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하고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하여 전 세계가 복음을 듣게 되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로 주님은 영적인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맞았을 때 금식하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금식해야할 시기를 가리켜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 18절 이하를 읽어 보십시오. 유대인들과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금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18절입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19절과 20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과 신랑이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신랑과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도둑들이 나타나서 동네는 물론 결혼식장을 쑥밭으로 만들고 몸값을 뜯어내기 위해 신랑마저 납치해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랑을 빼앗긴 신부가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식음을 전폐할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신랑을 빼앗긴 날 금식하여야 하리라”라고 하시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말씀하시면서 바로 영적인 절체절명의 위기를 가리킨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의 상황에 적용한다면 현실적으로 절박한 문제를 안고 밤낮없이 씨름하고 있을 때, 영적으로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낄 때, 더 큰 은혜를 사모하는 갈급함이 절실할 때를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금식은 결코 그 시기를 정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조항처럼 강제성을 띠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기는 것과 같은 절박하고 위급한 상황에 닥치면 가장 확실한 대처 방법이 금식기도이며, 바로 그때가 금식하며 기도할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몸보다 귀한 영혼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인색한 분은 없습니까?
겉 사람은 기름기가 반질한 반면, 속사람은 날로 쇠약해지고 초췌해져 가고 있는데 무감각한 분은 없습니까? 비만을 해결하려고 다이어트는 돈 들여서도 하는 반면, 영적인 다이어트는 철저하게 관심 밖이라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 3서 2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믿는 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난 후, 영혼의 잘됨과 비례해서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용납할 수 없는 범죄에 빠졌습니까?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유혹에 시달리십니까?
살길 막막하고 생활의 어려움이 너무 힘에 겹습니까?
그러면 그때가 바로 금식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나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도저히 이러면 안 되겠다는 고민이 있습니까?
성경을 봐도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아니면 예배를 드리는데 지루합니까?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마음에 기쁨이 없고, 도리어 날마다 짜증만 더해 가십니까?
주님은 이런 때가 바로 심각한 영적 위기의 상황 즉 “신랑을 빼앗긴 날”이라 하셨습니다.
바로 영혼을 돌아보고, 금식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바른 구제를 행하라고 하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바른 기도를 행하라고 하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절제하면서 기도하라 하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행할 때 반드시 은밀히 행하라고 하셨음은 더욱 잊지 마십시오. 영혼이 잘 되기 위한 노력과 행동은 모두가 은밀히 행하여야 합니다.
“금식 할 때에” “너는 금식할 때에”
주님은 금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므로, 영적으로 정직한 마음과 정결한 영혼으로 회복하기를 원하면서 먹는 것, 마시는 것을 삼가면서 기도해 보십시오. 분명히 마음껏 먹고 마시며 기도할 때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금식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더 큰 소리로 말씀해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예민해 져서 하나님의 소리를 크게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정직한 영과 정결한 마음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마침내 구원의 기쁨이 다시 회복될 것이며, 변치 않는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나를 이길 수 있는 능력 있고 경건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