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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보물을 하늘에 26-06-14 주일설교

작성자안홍기|작성시간26.06.14|조회수18 목록 댓글 0

26-06-14 보물을 하늘에

마태복음 6장 19절-24절

TV 방송에서 자신의 성공 여부를 미리 가름해 보려면 자신의 주변에 고액 연봉자 5명을 선정하여 그 5명의 연봉을 합산한 후, 그것을 다섯으로 나누어 나온 평균치와 자신의 연봉을 비교해서 자신의 연봉이 그 평균치보다 높으면 성공 가능성이 높으며, 반대로 그 평균치보다 낮으면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내용의 시사프로를 방영했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돈이 많고 적음으로 평가하는 세태를 대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이나 뉴스를 통해 알게 되는 끔찍한 사건에서 돈과 관련되지 않은 사건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돈이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좌우하고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자극함을 부인할 수 없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쟈크 엘룰(Jascque Ellul)은 “돈은 어느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삶과 신앙을 말하려면 돈 앞에 서야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돈에 관한한 어느 누구도 무관심하거나 모른 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의 됨됨이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돈 거래를 해보면 확실히 알게 된다 하듯이 돈은 그 사람의 삶과 인격과 신앙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드러내는 시금석이요, 시험대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자본주의 유물론과 공산주의 유물론으로 대표되는 물질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 화이트(John White)는 공산주의의 유물론은 돈만을 유일한 존재로 그리고 자본주의의 유물론은 돈만을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표현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 밑바닥에는 두 견해가 모두 물질만능주의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돈만이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는 수단이요, 힘을 나타내는 깃발이요, 안전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요, 더 나아가서는 생명과 건강을 보장해 줄 절대적인 존재라고 맹신하고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돈을 소유하고자 오늘 이 시간도 쉬지 않고, 먹지도 않고, 때에 따라서는 목숨을 걸고,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돈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가치관은 도리어 돈의 횡포에 당황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만든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폭군의 자리에 서게 되었고, 그 세력과 위세 앞에 국가도, 법도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교회와 신앙마저도 돈 앞에 쩔쩔매고 비굴해지는 비참한 지경까지 다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은 경제적인 가치나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부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돈이 호랑이나 사자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이며,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보다도 그 위력이 월등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돈은 우리의 이성, 정신, 가치관까지 좌지우지하며 나아가서는 우리의 삶과 인격, 도덕성, 그리고 신앙까지 순식간에 마비시키고 점령할 수 있는 가공할만한 존재로 우리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돈은 이미 신의 영역을 침범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인간들이 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경건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려면 바로 돈에 관한 참된 가치관과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여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맨 처음에 돈을 가리켜 보물이라고 말씀하시다가 나중에는 보물을 재물 곧 맘몬이라고 하는 돈 으로 바꾸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요즈음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에도 이미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돈이 보물을 넘어서, 신의 영역과 위치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돈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아시기에 주님께서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딱 꼬집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돈을 경배할 수 있는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시고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시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경건하게 살아가려면, 하나님과 돈 중 그 섬길 대상을 확실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다 듣고 나신 후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보물 즉 돈 중에서 확실하게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시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보물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마음을 다 기울이고,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한 보물이라면 “정말 안전한 곳에 쌓아 두라” 말씀하십니다. 19 말씀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옛날에는 재산을 동전, 옷감이나 의복, 곡식, 짐승 등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보관방법에 대해 다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시설을 갖춘 창고라 하더라도 동전에 녹이 스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아무리 월등한 시설을 구비한 옷장이라도 의복이나 옷감에 좀이 먹기 마련이고, 아무리 견고한 창고에 쌓아 둔 곡식이라 하더라도 도둑맞는 것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하게 여기는 재산, 의복, 곡식 등을 이 세상에 쌓아 놓는다면 결코 그 어떤 곳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어느 때까지 영원토록 보관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행이 안전합니까? 안전하게 원하는 만큼의 수익성을 보장해 주는 사업이 있습니까? 그리고 누구를 믿고 내 보물을 맡길 수 있습니까? 이렇듯 이 세상의 창고는 어떤 곳이든, 어떤 방법이든, 어떤 사람도 안심하고 맡기기에는 불안하고, 부족하고, 영원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느 곳에 쌓아 놓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씀하십니까?

우리들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20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이 세상 어느 곳도, 어느 방법도, 어느 사람에게 우리의 보물을 맡긴다고 하여도 불안하고 안전하지 않지만, 가장 안전하고, 완벽하며, 영원한 곳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바로 하늘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쌓아 두라,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계신 그곳은 동전이 녹 쓸지도 않고, 의복이나 옷감이 좀먹지도 않고, 곡식을 도둑맞을 염려도 없는 안전하고 영원한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해 하지 마십시오.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물에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늘에 쌓아야 할 이유는 “너희를 위하여”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고 하시는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있습니다. 21 말씀을 보십시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은 안전한 것은 물론이요, 바로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하늘에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안전해서 좋고, 마음도 하늘에 둘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보물이 어떤 것이든 결코 불안하고,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는 곳에 두지 마시고, 안전하고, 완벽하고, 믿고 보관할 수 있는 하늘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에 마음도 두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 주님께서 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돈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22절과 23 말씀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장애인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애인은 바로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분들에게는 온통 어두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눈이 마음과 몸의 등불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때로는 시각장애인으로 만드는 무서운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돈입니다. 돈은 얼마든지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옛날 말에 돈을 일컫기를 흑사심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돈은 마음어둡게 하고, 총명흐리게 하며, 양심을 부패하게 하고, 욕심눈이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전서 610에서 바울 사도는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이요 제자인 디모데에게 목회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을 말씀하였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

돈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서는 모든 악의 뿌리악이 생겨나게 하는 근본 원인이요, 이유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돈을 사랑하게 되면 결국 유혹을 받아서 나중에는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필경은 그것이 말할 수 없는 근심을 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돈 때문에 양심의 눈이 흐려지거나, 영혼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돈은 우리 신앙인들이 사랑하기보다 관리하고 지배해야 할 것입니다. 결코 돈의 노예로 전락하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선택입니다. 24 말씀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아무리 현명하고, 결단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불가능한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향해서는 온전한 충성이 가능하겠지만 두 사람을 향해서 동일한 충성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땀과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잠을 자지도 않고, 목숨과 인생까지 내 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될 뿐이며, 결국은 헛되다는 것을 인정하고 말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결코 중간 지대가 없고, 적당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사이비 하나님인 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고, 대신 죽기까지 하시고, 다시 오셔서 천국에 이르게 할 하나님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오직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부귀와 바꿀 수 없다”고 고백하시는 복 된 형제, 자매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주만 섬기겠노라 다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영원히 죽을 나 같은 죄인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을 일분, 일초도 한순간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외친 여호수아처럼 주만 바라보며, 주만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 놓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로 “헌금 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24년여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설교가 있습니다. 바로 헌금에 관한 설교입니다. 이런 제 이야기를 듣고 어떤 목사님은 저에게 직무유기를 범했다고 나무라셨습니다. 성도들에게 바르게 헌금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목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성도들이 제가 바르게 가르치지 않아서 바르게 헌금하지 못하여, 바르게 헌금하므로 하나님께 받아 누려야 할, 복을 받지 못했다면 분명히 제 직무 유기임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적어도 우리 글로벌 찬양의 교회 성도들이 미처 배우지 않아서, 바르게 헌금 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헌금 생활하는 것이며,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까?

헌금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재물 가운데에서 일부를 소중하게 구별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보물의 일부를 하나님께 다시 드립니다. 이 보물을 거룩하고 향기로운 재물로 받아 주시고, 복음을 위하여,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에,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살리는 일에, 그리고 교회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드리는 것이 올바른 헌금입니다. 헌금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헌금만큼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헌금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인지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 주고, 평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온전한 신앙을 가졌다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연약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많이 가졌다고 많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과 헌금은 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마태복음 19마가복음 10을 보면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렇게 질문하는 청년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이 분명히 영생 즉 구원에 대하여 관심이 많지만 그 구원보다도 더 관심이 있고,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바로 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돈 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21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이 말씀을 들은 부자 청년은 안타깝게도 슬픈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2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청년의 돌아가는 모습을 마가복음 1022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여 가니라.”

 

유격훈련을 받다가 보면 점프대가 있습니다. 바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훈련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로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10미터입니다. 만일 10미터의 높이에서 뛰어내릴 수 있다면 그다음 아무리 높은 곳이라 하더라도 느끼는 공포감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10미터 점프대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십일조는 성도들이 돈에 대해서 가장 공포를 느끼는 10점프대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할 수 있는 신앙이라면 그다음에는 어떤 헌금이라도 자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10m 점프대를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십일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헌금에 용감한 하나님의 용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늘에 쌓는 것을 비단 헌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선교하기 위해서, 가난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 사용되는 물질과 시간이 있다면 이 역시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넉넉히 나눌 수 있는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돈에 집착하고, 돈에 인생을 All In 한 사람들이 얼마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는지?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그것은 돈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추락할 때는 날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경건하게 살려면 돈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한다.” 한마디로 “돈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돈을 가장 잘 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선택하시고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우리의 영성은 심령만 거룩하고 경건해서도 안 됩니다. 소유한 돈과 보물마저도 거룩하고 경건해져야 합니다. 내 몸과 마음과 삶을 주님께 드렸다면 내가 가진 보물도 마땅히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시고, 하늘에 쌓아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 같지만 분명히 “너희를 위하여” 하신 말씀처럼 우리를 위한 사랑의 명령임을 삶에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보물들을 하늘에 쌓아 진정한 경건에 이르는 글로벌 찬양의 교회 형제. 자매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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