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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강동문학 원고

난간 아래 붙여둔 껌 ㅡ전해주 수필

작성자전해주|작성시간26.06.11|조회수23 목록 댓글 1

난간 아래 붙여둔 껌

 

                    전해주

 

한 남자의 눈물을 보았다.

스크린  <Last tango in Paris>에서.

  그 눈물은 흔히 보던 슬픔의 표출이 아니었다.

냉소적이리만치 강하고 마초적인 껍질을 두른

사내, 폴(말론 브란도)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의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터뜨리는 비명이었다.

 남자의 눈물을 낯설게만 여겼던 나는, 

그 생경하고도 압도적인 슬픔 앞에서 

함께 목놓아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의 눈물은 수천 마디의 대사보다 더 깊은

심연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이 영화는 성(性)을 매개로 삼고 있지만,

그 본질은 지독하게 외로운 사내의 파괴적인

고독을 다룬다.

 내게는 그 어떤 비극보다  시리디 시린 영화였다. 

  폴은 아내의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그녀가 다른 남자와 외도하고 있었다는

배신감 서린 진실과 마주한다.

아내가 죽은 방의 벽지는 여전히 화려한데,

 그 속에서 폴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누구였는지조차 희미해지는 공포를 느낀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과 나를 완벽히

속였다는 무력감이 더해질 때, 그는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스스로 ‘섬’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가 머무는 텅 빈 아파트.

 폴의 내면의 허무를 대변하는 거대한 상징이다. 

파리라는 화려한 도시 한복판, 센 강의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비르아켐 다리 옆에서 그는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는 고립된 섬으로 존재한다. 

그는 우연히 만난 젊은 여자 잔에게

이름조차 묻지 말라고 강요한다.

“우리는 이름이 없어. 여기엔 이름이 없어.

여기엔 그 어떤 것도 없어.”

그가 내뱉는 이 대사는 관계의 책임을 거부하는

자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서로를 알고 소통이 시작되는 순간,

 과거와 상처가 개입되고 그때부터 고통 역시

시작된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마저 삭제한 채 오직 육체적 자극만이

존재하는 익명의 공간 속으로 자신을 유폐시킨다.

오직 살을 맞대는 원초적인 감각만이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느다란 밧줄이 된다.

  문득 평생을 무뚝뚝한 침묵으로 일관하시던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평소 자식의 우수함을 

칭찬하는 법도 없던 완고한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아끼던 언니를 시집보낸 뒤, 매일같이 집안을

채우던 피아노 소리가 멎자 그 빈자리 앞에서

무너져 내리셨다. 텅 빈 피아노에 기대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던 아버지의 뒷모습.

그 생경하고도 처연했던 실루엣이 스크린 속

폴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사회가 정의하는 남자의 눈물은 

오랫동안 나약함의 징표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폴과 나의 아버지가 보여준 그 찰나의

눈물은 나약함이 아니라,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상실이 몸 밖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에 가까웠다.

 평생 강함을 강요받던 남자가 마주한 것은

거울 속의 초라한 진실이었다. 

그는 중년의 사내였으나, 그 내면에는 아내의

죽음과 배신 앞에 길을 잃고 울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다. 

남자의 외로움이 이토록 처절한 이유는,

고통을 밖으로 꺼내놓을 언어를 배우지 못한 채

오직 침묵과 강인함만을 강요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고독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내가 아는 고독은 당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거야.”

  그의 외침은 타인에게 결코 닿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상징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완벽하게 이해받고 싶다는 

불가능한 열망을 품고 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가까운 품 안에서도

철저히 혼자임을 깨닫는다. 

살을 맞대고 숨결을 나누어도 결코 건널 수 없는

 영혼의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에 갇혀 누군가 문을

두드려주길 기다리는 수인(囚人)들이다.

   영화의 마지막,

 폴이 텅 빈 거리에 쓰러지며 남긴 자국은

그 고독 끝에 마주한 인간의 가냘픈 본성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씹던 껌을 난간에 붙인다. 

이 사소한 행위마저도  이 세상에 내가 존재했음을

알리고 싶은 가장 처연한 흔적이었다.

  남자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를 때, 그는 세상이

강요한 강인함에서 해방되어 

한 명의 연약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떨쳐낼 수 없는

이 처절한 외로움이라니.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서로를 기어이

사랑해야만 하는 유일하고도 슬픈 이유인지도 모른다.

  닦아주지 못한 그의 눈물 자국 위로,

그리고 난간아래 붙여진 씹던 껌 조각 위로 

시린 겨울바람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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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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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미형 | 작성시간 26.06.12 전해주

    2005년 <<한국수필>> 등단

    강동문협, 숙명문학회 회원

    시문예 26클럽 회장. 송파유화창작회 대표

    (사)한국미술협회 교육원 비구상 지도교수

    한국예술 총연합회 명인선정 (현대회화)

    동서울대학교 현대회화 교수 역임

    수화집<< 강물을 그리다 l .ll>>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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