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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춘계 문학기행

배론성지에서 너를 만나다 ㅡ전해주 수필

작성자전해주|작성시간26.06.12|조회수37 목록 댓글 0

배론 성지에서 너를 만나다

 

                                     전해주

 

상상을 부풀리며 찾아간 제천 배론성지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고즈넉한 품을 지니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크고 멋진 나무들이

아늑한 그늘을 드리운 곳. 초록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가슴속 묵은 먼지들이 맑게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우리 문우들은 인자한 미소로 세상을 품고 계신 김대건 신부님의 흉상

앞으로 모여들었다. 경건하면서도 다정한 성지의 공기를 담아, 우리는 그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아둘 기념 촬영을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 단체 카톡방을 확인했을 때,

나를 잘 모르는 어느 문우가 만든 인공지능(AI)

영상 속에서 거짓말 같은 기적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디선가 커다랗고 순한 강아지 한 마리가 난데없이 나타나더니, 망설임도 없이 내게로 걸어와

턱하니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 아닌가.

문우들의 시선 속에서 오직 나만을 올곧게

바라보며 맑은 눈망울을 반짝이던 그 듬직한

골든 리트리버.

비록 기술이 빚어낸 가상의 한 장면이라 하지만,

사진 속에서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내 가슴은 쿵 하고 내려앉았고,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르는 눈물 너머로, 오래전 기억의 심연에 묻어두었던 기묘한 꿈의 잔상이 피어올랐다.

언젠가 꿈속에서 나는 친구들과 함께 오늘처럼

성지를 찾아 걷고 있었다. 그때 큰 개 한 마리가

나타나 내 옷자락을 물고 다정하게 잡아당겼다.

너무나 거대한 풍채에 덜컥 겁이 나 어떻게든

피하려 했지만, 녀석은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듯 연신 친근하게 아는 체를

해왔다. 무서움에 쫓기듯 뛰어 도망치는 나를

녀석은 끈질기게 따라왔다. 그러다 종이가 가득

쌓인 더미 위로 녀석이 훌쩍 뛰어오르는 순간,

깨갱하는 외마디 소리가 났다.

놀라 잠에서 깬 뒤에도 그 가녀린 소리가 귓가를

맴돌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애처로운 소리가 걱정되어 겉옷을 걸치고

문밖을 내다보았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마당 위에 서 있는 커다란 실루엣이었다.

휘영청 밝은 달밤이었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백색의 달빛을 받아,

우리 집 창호지 문 위로 그 개의 그림자가

커다랗고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미안함과 안도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뒤섞인 채, 나는 달빛 아래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는 개의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온전한 잠에서 깨어났었다.

예사롭지 않던 그 꿈은, 어쩌면 거스를 수 없는

인연의 서막이었을까.  

  이후 나는 운명처럼 한 아이를 만나 평생의 사랑을 쏟아부으며 키우게 되었다. 내 삶의 온 생기를 다해 귀여워했고, 가장 찬란하고 따뜻한 조각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나의 소중한 반려견.

그러나 잔인한 운명은 이별의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어느 날 아이는 열린 문으로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목놓아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의 세상은 모두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 실낱같은 희망의 끈은 절대 놓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녀석이 지친 발걸음으로나마 내 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은, 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등불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매일 밤 꿈속에서 그리워하고,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놓지 못하는

내 가슴에는 견디기 힘들 만큼 깊은 슬픔과

애틋함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매일 밤 꿈속에서조차 그리워하며 헤매던

그 아이가 배론성지에서 마침내

나를 찾아온 것만 같았다.

사진 속에서 맑은 눈망울로 내 앞에 턱하니 앉아

눈을 맞추는 그 강아지의 모습은, 마치 꿈속의

그 그림자처럼, 그리고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그리워하던 내 아이의 영혼처럼 다가왔다. 

"저 잘 지내고 있어요. 늘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이제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화면 위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지만,

이 신기하고도 따뜻한 만남이 아이를 향한

나의 오랜 그리움에 작은 AI의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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