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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역사 속으로

이승만 Japan Inside Out

작성자메신저|작성시간22.10.30|조회수6 목록 댓글 0

 

《Japan Inside Out》 -이승만 저-
일본, 그 가면의 실체를 전 세계에 알리다
  • 무적해병신문
  • 승인 2020.09.28 13:28
■ 특강을 마치며

지난 두 차례에 걸쳐 이승만 저서 《독립정신》과 《한국교회핍박》에 대한 내용과 역사성을 강의했다. 마지막 3회 차인 금번호에서는 1941년 미국에서 영문으로 펴낸 《Japan Inside Out (일본 깝데기 벗기다)》에 대한 특강을 하는 것이다.
이승만, 세 권의 저서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줬으며 그 메시지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현실에 매우 크게 메아리 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청년시절 이승만은 조선의 개화운동에 앞장서 투쟁하다가 한성감옥에 투옥되어 목에 칼을 쓴 채 《(1) 독립정신 집필(1904년)하여 우리민족에게 어떻게 하여야 나라를 지킬 수 있는가를 설파했다.

대한제국이 파산되려는 즈음에 책을 펴낸 그 타이밍 역시 매우 절묘했다.

청년 이승만이 미국으로 건너가 
1. 조지워싱턴대 - 
2. 하버드대 - 
3. 프린스턴대를 5년간 다니면서 

학·석·박사과정 마치고 한반도 5천년 역사상 최초의 박사학위 취득한 뒤 
조국에 돌아와 선교 활동을 하던 중 ‘기독교 105인 사건’ 연루자로 몰려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가 되자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 전개하기 시작.

그때(1913년) 그는 일본이 양의 가면을 쓰고 조선을 할퀴고 있는 잘못을 세계 기독교에 알리기 위해 《(2) 한국교회핍박을 저술했다. 
그 후 3·1독립만세 후 상해 임정 초대 대통령을 맡는 등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3) Japan Inside Out을 저술했다. 
본론에서 말하는바와 같이 이승만은 이 책을 통해 미국을 비롯 세계 정치사에 화려한 등장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이 책에 관한 프란체스카 여사의 이야기
“나는 이 박사가 필기해주는 영문 원고를 타자했으며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줄 때까지 세 번이나 타자하는 동안 손가락이 짓무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박사와 나는 한결같이 한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이 책이 반드시 출판되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졌다. 처음에는 이 책이 일반의 주의를 크게 끌지 못했었다. 1941년 12월 8일 미국이 진주만 기습을 당하자 이 책은 서점에서 매진되고, 재판 찍고, 영국에서도 출판이 되었다.

  일본을 몰랐고 경시하던 미국 정부가 군부 및 민간에서 이 책을 통해 일본 군국주의의 실상을 알아야 된다는 열기가 폭발하였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태평양전쟁을 예견한 이 박사의 선견지명을 알게 되었다. 미국 정부에서는 대일전에 한국인을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이 박사의 주장에 의해 미국, 중국에서 한국 청년들과 광복군에 대한 OSS(특수정보전략부대)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이 책은 일본군의 전략과 근성에 대한 교재가 되었으며, 미·영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기는데 크게 활용되었다.”

 《Japan inside out》 세계를 향해 영문으로 저술하다

이승만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인 1939년 겨울부터 1941년 봄까지 워싱턴에서 심혈을 기울여 영문으로 써서 1941년 7월 미국 플레밍 H. 레벨출판사(Fleming H. Revell Company)에서 출판했다. 그는 서문에서 “내가 이 책을 쓴 동기는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승만은 미국의 친구들에게 “자네는 미국이 일본과 전쟁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는 우리 민족이 수천 년 동안 평화를 사랑했다는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How do you do(어떠하십니까?)”, “Good bye(잘 가십시오)”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Are you peace(안녕하십니까?)”, “Go in peace(안녕히 가십시오)”, “Peace be with you(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한다고 매우 설득력 있는 문장력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또, 그는 전쟁에 관해서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불가항력적인 전쟁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움직이고 있고, 그 전쟁의 수레가 지나간 자국에는 문명과 인도주의의 파괴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또한 엄청난 파괴력을 내포한 채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라며, “만약 미국이 평화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에 빠져있는 한 도망할 곳은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평화와 전쟁에 관한 개념을 뚜렷이 적시했다.

 이승만 특유의 비유법, 설득력을 더하다
  이 책은 이승만이 일본과 국제 정치의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통찰력, 언론 활동을 통한 문장력, 탁월한 영어 구사력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다. 또 특유의 비유법은 그의 설득력에 더함을 주며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법들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산불 이야기를 비유법을 써 가며 “연기하는 것은 해결이 아니다. 산불은 저절로 꺼지지 않는다. 불은 하루하루 가까이 오고 있지만 마치 화성이나 행성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이제 불기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안락을 해칠 것만큼 너무너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고 평화의 꿈에만 젖어 있던 미국인들을 깨우고 있다. 이 책의 출판은 일본의 실상을 알리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이승만을 알리는데도 큰 도움과 그의 명망을 높이기도 했다. 이 책이 출판되고 다섯 달 뒤인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있자 이승만은 예언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일본이 항복하고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을 때(1956년) 일본 무역산업신문사에서는 이 책을 《나의 일본관(我の日本觀)》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판했다.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 서평
  대지(大地, The Good Earth, 1931)의 작가 펄 벅(Pearl S.Buck)은 아시아 매거진(The Asia Magazine) 1941년 9월호에서 “이것은 무서운 책이다. 나는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오직 너무 진실인 것이 두렵다. 나는 대부분의 미국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조미수호조약을 미국이 수치스럽게 파기하여 일본이 한국 약탈의 허용을 말해준 이 박사에게 고맙다. 이것이 큰 불이 시작되는 불씨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정말로 이 말에 두려움을 느낀다”라고 서평했다.

 이 책의 세 가지 관점
첫째, 일본인들의 전쟁 심리를 자세히 분석했다.
둘째, 미국의 반전주의자들을 신랄히 비판했다.
셋째, 일본의 기독교 박해를 들어 미국 언론과 교회에 호소했다.


  이 책은 총 15장으로 구성하여 제1장에서는 일본인들의 전쟁 심리의 기반인 극단적 국수주의내지 군국주의의 특성을 일본 건국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세히 분석했고, 그런 일본 군국주의 세계제패의 구체적 계획서가 바로 ‘다나카(田中) 메모리얼’이었다며 제2장에서 이 세기의 괴문서를 특별히 논평했다.

  그는 다나카 메모리얼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독일인들에게 갖는 의미와 같은 의미를 일본인들에게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승만이 인용한 마크 게인(Mark gayn)의 기사에는 이 극비문서를 복사해서 중국인에게 넘겨 준 사람이 한국인이었다고 되어 매우 흥미롭다. 다나카 메모리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적으로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박사는 국제연맹의 9개국 회의 및 해군 군축 회의 등에서 일본의 태도, 일본의 대미선전과 미국인들 반응의 문제점 등을 차례로 논급한 다음, 책의 13, 14장에서 미국의 반전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승만은 미국의 반전주의자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자신의 경험을 들어 실감 있게 설명하고 자기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나는 종교적인 신념이나 인도적인 원칙에서 같은 인간에 맞서서 무기를 들것을 거부하는 ‘양심적 전쟁 거부자’들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의 방위, 국가의 명예, 또는 국가의 독립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불문하고 모든 전쟁을 거부하는 투쟁적 반전론자들은 제5열처럼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반전론자들은 그 후자 쪽이라 했고 그는 또 기독교와 반전주의는 다르다고 강조하고 기독교의 중립주의를 비판했다. 이승만은 또 미국의 역사적 책임은 1882년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기 때문에 1905년에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드는 일에 방조한 결과라며 그 상황을 길게 설명한 다음,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하여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종교 면에서 일본은 천황 숭배를 최고의 국교로 확립시켰기 때문에 외국 선교사들이나 기독교에 대해서 십자군운동을 행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이 싸움을 방임하게 되면 그들의 지배에 있는 전 지역에서 이 같은 십자군전쟁이 행해질 것이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최상 종교, 천황 숭배만 있을 뿐이며, 한 국가 안에서 서로 마찰하고 있는 두 개의 종교가 있으면 평화를 교란시킬 것이다.” 이것으로 일본은 세계 정복욕이 태동하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미국에 경고하고 싶은 말은 선과 악의 대결전이 아마겟돈을 실행할 절대적이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길만이 일본의 무모한 정복욕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신문기자 다음으로 싫어하는 대상이 외국 선교사다. 선교사의 사명은 영혼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외국인들은 원하는 이익과 만족을 더 이상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하루 빨리 짐을 싸서 나가지만, 선교사들은 끝까지 남아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사명을 다하고 있다.

■ 일본인이 선교사의 일본 체류를 못마땅해 하는 이유

첫째, 선교사들을 대하는 주민들은 자신은 물론 일본인들보다 훌륭하다고 존경한다. 일본인 자신들은 한 사람만의 주인이 존재하며 그 ‘한 사람의 주인’은 곧 ‘일본인’이라 주장한다. 일본인들은 한일합방이후 선교사들이 떠나지 않으면 복종 하던가 그렇지 않으면 떠나라고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그들은 세계 문명국이라 칭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하지 못하고 겸손을 가장한 방법을 사용하면서 모욕과 차별, 개인 테러를 보이지 않게 하며 악랄하게 박해를 했다.

둘째, 선교사들은 중국 내륙 어느 곳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교 활동을 한다. 때문에 일본인들이 범하는 모든 행위를 직접 목격하는 증인이 된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저항 세력을 고문, 집단학살, 분형 등 잔인한 행위를 저지르는데 절대로 외국인에게 보여서는 안 되며 더더군다나 선교사들에게 보이면 그 사실을 본국에 알려 일본인들을 증오케 한다.

셋째, 서양 민주주의는 천황주의 사상에 해독을 끼치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올바른 삶을 선교하고 폭력으로 오랫동안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넷째, 선교사의 종교는 일본 민족 종교인 불교의 신도와는 대립적으로 반대된다. 그들의 교리는 일본 천황은 신의 직손이므로 전 인류의 천황인 신사에서 머리 숙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Japan inside out》 일본의 만행을 알리다
  가장 악랄했던 제암리 학살 사건은 가장 극악무도하고 비도덕적 학살 사건이다. 당시는 누가 어떻게 죽었는가 하고 물으면 친구나 친척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서로 모른다고만 했던 공포 분위기 때문에 이 사건의 기록은 거의 없었다. 1919년 4월 5일 수원에서 70km 거리인 제암리에서, 일본인들이 강연이 있다고 모든 성인 남자 기독교인들을 교회에 모이도록 했다. 주민 29명이 모였으며 그 교회를 일본군이 포위, 총을 발사하였으며 도망 나오는 청년들은 총검으로 죽였다.

  6구의 시체가 교회 밖에 있었고 남편을 구출하려던 2명의 부인은 잔인하게 살해했다. 19세의 젊은 청년과 40세 정도 남자는 총검에 찔려 무참히 살해됐다. 3·1만세사건 당시 어느 선교사 부인은 남편의 쓰라린 고통을 이렇게 전했다. 1919년 3월 4일 만세 소리를 듣고 길에 나갔다가 와서는 “주여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이까?”라며 전율했다. 그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소방용 쇠갈취와 곤봉으로 찢어 도륙 당했다고 한다. 이 같은 무참한 사건은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에게도 있었다.

 이승만의 혜안, “조선은 세계 앞에 우뚝 설 것이다” 예언으로 끝맺다
“한국의 운명은 당분간의 그 자유를 상실당하고 있다. 단언하건데 우리가 희구하는 것보다 더 빨리 세계 자유민주주의 세력들은 일본인들을 그들의 섬나라에 다시 잡아넣을 것이며 평화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에 우리 한국은 전 세계 자유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며, 또 다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로 세계 앞에 당당히 서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나올 때까지 이승만의 발자취

[1919.4.] 44세. 상해임시의정원이 이승만을 국무총리에 추대(이승만은 4월15일에 알게 됨), 서울에서 13도 대표들이 국민대회를 열고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이승만을 집정관총재로 추대(이승만은 이 사실을 5월말에 알게 됨). [1919.6.14.~27.] ‘대한공화국’ 대통령 이름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의 국가원수들과 파리 평화회의 의장 조르쥬 클레망소에게 한국의 독립선포를 알리는 공문 발송.

[1919.7.] 워싱턴DC에 ‘대한공화국’ 임시공사관 설치.
[1919.9.]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에서 ‘임시대통령’으로 선출.
[1920.12.] 45세. 상해 임시정부청사에서 초대대통령 취임식.
[1933.2.] 58세. 제네바의 호텔 드뤼시 식당에서 아내가 될 프란체스카 도너(Francesca Donner) 양을 만남
[1934.10.] 59세. 뉴욕 랙싱턴 가(街)의 호텔 몽클래어에서 프란체스카 도너와 결혼
[1941.6] 66세. 뉴욕에서 일본의 미국 침공을 경고하는 《Japan Inside Out》를 출간, 12월에 진주만 기습공격이 일어나자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됨.


- 《Japan Inside Out》 해제, 발행인 신동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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