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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주즈와 킬링필드의 진실

작성자낙산도령|작성시간12.03.26|조회수94 목록 댓글 0

 집단학살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악명높았던 유태인학살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있었다.유태집단학살의 경우는 규명할수 있는 최대한의 해결이 이루어졌고 그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지구끝까지 추적해서 체포하여 법정에 세우고 독일은 가해국이면서도 진실위원회를 국가의 영구 존속기관으로 설립해서 과거에 대한 철저한 연구로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게하려는 제도적 장치로써 운영해 오고 있다고 한다. 독일의 미래재단이 바로 우리의 경우는 약 5년간 운영해 왔던 국가진실화해위원회에 해당되는 기관인 것이다. 지금은 캄보디아의 필링킬드의 진실에 대하여 접근해본 자료가 있어서 기록해 보고자 한다. 얼마전 봉두총각이 옮겨온 자료중에는 5년전쯤 이었던가? 어깨동무란 닉으로 올렸던 글이 그래도 읽어볼만 했던 것인지? 이 카페로 옮겨졌으니 주인품으로 돌아온 것일까?

 

 나의 부족한 지식에서 판단하기보다 더 소중한것이 느낌 이란 것이며 단순하게 다가오는 그 느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여러차례 확인하게된 일이 있었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듣고 보게 되는일 중에는 전혀 사실과 다른 허구적인 내용이 많으며 진실로 받아드릴때 연관성 있는일에 잘못판달하게 될수 있기때문에 나의 느낌 이란것은 의심에서부터 비록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짤막한 지식과 경험을 남에게 전해주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 천만한 것인지를 타인들의 행위에서 늘상 경험해본 일이었기에. 그래서 접해본 정보가 절대적 의문이 있더라도 느낌 만으로 남에게 말하기를 가볍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남들은 모두가 공개된 정보들이 사실인양 떠들어도 쉽게 동의하지 않는것은 나의 습관이 되어버렸고,  최소한 집접 확인해 보거나 분명한 자료에서도 앞뒤의 정황이 꿰맞춰질때 까지 말이다. 

서론이 너무 긴건가? 

 

 민간인 학살진실규명의 문제는 대한민국 탄생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밝혀내야할 일이라는것에  단 한번도 의문을 가져본일이 없었다.우선은 법개정을 통한 미신고자 문제와 피해유족들에 대한 배.보상 문제는 반드시 우선되어야 할것이지만. 충분한 배.보상만으로 우리의 과거사 질실규명 문제는 매듭지어질수 없는 문제이며, 더 중요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하기에 민간인학살진실규명 문제에 대하여 관심의 시선을 돌려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해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실규명이 어디까지 라야 할것이라는 생각을 배본 사람은 그리 많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장의 차이 일까?

  

역사의 외곡은 우군을 적을 만륻기에 충분하며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은 그어떤 신식무기를 개발하는것보다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와 비슷하면서도 역시 외곡된체 알려진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 얽힌 진실을 새롭게 알아보는것도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올려본다

 우리가 듣고 알게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지군의 만행으로 약 2백만명의 캄보디아 사람들이 그들의 정치적 야욕으로 인한 만행으로 인해서 집단학살된 사건으로만 전해졌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1900년의 왕조역사를 지켜온 캄보디아는 15세기부터 약 400년동안 앙코르왕조 전성기에서는 주변국으로 부터 조공을 받아온 인도차이나의 강대국 이던 때도 있었다. 1863년 이후 프랑스의 보호국에서 1893년 병합된 라오스와 함께 식민국이 되었다,  폴포트 라는 프랑스의 캄보디아 유학생은 식민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유학시절부터 공산당활동에 참여하였고 1953년에 귀국하여 10년만에 크메르의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다. 그가 공산당서기장이 된뒤 미국의 인도차이나 지역에 대한 침공에 저항하기 위하여 크메르 공산당을 무장세력으로 양성했으며,  당시 소수의 무장세력에 불과했던 크메르 루지군은  농촌지역부터 무차별적인 공습이 시작되던 미국에 저항하면서 가족과 재산을 잃은 농민들이 크메르 루즈에 가담하였고, 론놀괴뢰정부에 의해 축출되었던 시아누크 국왕이 크메르루즈를 지원하면서 부터는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시아누크국왕은 국외망명생활 중 북한에서도  체류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의 공습은 당시 북베트남 으로부터 물자와 병력을 이동하던 캄보디아의 국경 일부지역에 포함되었던 호지명 루트를 파괴함이 목적이었으나 그러한 캄보디아에 대한 침공으로는 합당한 이유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폭탄투하 뿐만 아니라 에이젠트 오랜지도 살포했다.1960년 동쪽 국경지대에 집중투하된 에이젠트 오랜지 때문에 캄보디아의 고무생산공장과 전체 고무나무 재배량의 3분의1 이 파괴되었고 캄보디아 전체 농산물 생산의 12%에 달하는 금액으로 농가의 생존권이 발탈되는 문제였다. 미국의 공습은 크메르지역의 시설들을 파괴함으로써  경제적 지원을 받아들이게 하는것과 반정부 크메르루지등 대다수 반체제 캄보디아인들을 학살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약 8년 동안의 미공군 B52 폭격기가 퍼부은 폭탄의 량은 공식적으로 알려졌던 5배의 물량으로 약 276만톤이다.

미국정부의 공식문건을 인용한 학자들의 기록에서도총 230,516회의 출격으로 113,716개의 목표점을 폭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B52의 융단폭격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한포기 남지 않은 폐허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무차별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약100만명 이상이 되었고, 론놀의 괴뢰정부를 붕괴시키고 폴포트가 추대한 크메르 루즈의 키우삼판 정부에서는 프랑스의 식민지배시절부터 미국의 사주로 쿠테타에 성공한 론놀정부 시절까지  반민족 배신자들과 외세에 빌붙어 부정부패를 저질러온자들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한 교사들 지식인들과 악덕 자본가 등을 숙청하고 외세의 간섭을 불용하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도입하는 한편 자본주의의 흔적을 일소 하기위한 중국의 문화혁명과 같은 급진적 사회개조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희생이 강요되었으나 이점은 미국의 언론에서도 약 2000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도한 것에 비해, 정작 가장큰 피해를 준 장본인은 바로 자신들을 방어할수 있는 총한자루 없는 캄보디아에  8년간의 무차별 융단폭격을 퍼부은 결과로 농토는 황무지로 만들었으며 100만명이상 살상케한 미국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헐리우드의 영화나 속국들의 언론에서는 킬링필드의 주역이 크메르루즈 였다 라는 정치선전으로 삼은 일은 속국들의 유사한 입장으로 비취질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크메르주즈의 킬링필드에 관한한 국내에 제대로 소개해준 내용을 본적이 없어서 킬링필드나 한국에서의 민간인 집단학살과 전쟁의 주역에 대한 미국의 관련성에서  다시 거론이 된다해도 이해에 도움이 될것이라 생각하기에 요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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