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로 오는 사람은, 내가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그것은, 내가 내 뜻을 이루려고 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40. 또한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6:37-40)
37 Everyone whom my Father gives me will come to me. I will never turn away anyone who comes to me, 38 because I have come down from heaven to do not my own will but the will of him who sent me. 39 And it is the will of him who sent me that I should not lose any of all those he has given me, but that I should raise them all to life on the last day. 40 For what my Father wants is that all who see the Son and believe in him should have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them to life on the last day.”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로 오는 사람은, 내가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7 Everyone whom my Father gives me will come to me. I will never turn away anyone who comes to me,
불과 1,2년 전입니다.
우리는 집안에서 꼼짝도 못 했습니다.
방에 앉아서 TV를 통해 이 나라 저 나라 사람 죽어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 때 우리가 했던 일은 마스크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마스크 하나를 챙기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섰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썼다고 코로나를 피해간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버스를 탔다가 한 사람이 기침이라도 하면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그 때 어느 자리가 위험한지 방송해 주었습니다.
손잡이를 잡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방송해 주었습니다.
결국 저도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알통이 불거진 청년도 앰블란스에 실려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작은 것이 사람 죽고 사는 것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마스크 쓰는 일이었습니다.
내 존재는 태초에 그 분이 정하셨습니다.
그렇게 이 땅에 태어난 나는 또 하나님께서 너 이리 와라 하시면 끝입니다.
그리고 아실 것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그리고 종말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지금 우리를 결정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일거수일투족을 주장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마음을 움직이셔서 설교를 듣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새벽기도회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를 맡아 주시라는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미약하는 고백을 하러 새벽기도회를 가는 것입니다.
어디 갈지 어디서 올지 무슨 생각을 할지.......
성경은 특별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37 Everyone whom my Father gives me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
주님은 당시에 주님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을 두고 이런 표현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은 또 이 거창에서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말씀을 듣고 계시는 어르신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선생님이 요양원 차를 타고 집 앞에까지 왔고 그 차를 타고 온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70, 80년 세월 하나님 모르고 살아오신 어르신들을 이제는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고 여기에 앉혀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선생님들도 사용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여러분을 하나님 백성 삼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어제도 인터넷이 고장이 났습니다.
기술자라 와서 그것을 고쳤습니다.
이제는 텔레비전도 잘 보이고 인터넷도 잘 됩니다.
그 기계는 그 기술자들이 만든 것이다 보니 저는 그 기계에 대해 하나도 모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전화를 해서 그들을 부른 것입니다.
그들은 그 기계를 훤히 아시는 것입니다.
저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저를 아주 잘 아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우리를 예수님 앞에 앉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한 명까지 책임져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책임지신다는 것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일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38. 그것은, 내가 내 뜻을 이루려고 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이다.
38 because I have come down from heaven to do not my own will but the will of him who sent me.
다미안이라는 카톨릭 신부가 있었습니다.
당시 1865년 무렵이었습니다.
하와이 제도(諸島)의 상황은 몹시 심각했습니다.
10~15%가 나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나병에 걸린 환자들은 몰로카이섬의 북쪽 칼라우파파(Kalaupapa)라는 오지에 강제로 수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모인 그들은 음식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다미안은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33세의 나이로 그곳을 자원해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에게 성례를 베풀고 그들의 생활을 도왔습니다.
그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죽어 가는 이들을 위해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이렇게 나병 환자들과 함께 살다 보니 다미안 역시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병에 걸리고 그는 이런 설교를 했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 나도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할 때 나는 여러분들을 교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 말 대신 ‘우리 나환자’라고 말합니다.”
다미안이 복음을 전하면 나병 환자들은 당신은 건강하니까 운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도 결국 나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상황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에게 나병 안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병에 걸리는 것이 유익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환자들을 돌보다가 188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누가 다미안 보고 거기 나병 환자 촌에 가라고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거기 가기로 정한 사람은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정을 하게 된 유일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나병에 걸려서 죽고 말 그런 일을 생각도 않했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미안의 하와이 이야기하니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손양원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구성리 사람이었습니다.
그 분 역시 전라도의 애양원 나병 환자를 스스로 찾아가신 것입니다.
나중에는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하셨던 분입니다.
그 분이 그렇게 비참해 보이는 길만 가셨는지 세상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분은 세상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 실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미안 신부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모두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삶의 실례를 처음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신 것입니다.
즉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본래 예수님을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39 And it is the will of him who sent me that I should not lose any of all those he has given me, but that I should raise them all to life on the last day.
제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떤 판사인지 변호사 검사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법 고시를 봐야 하는 그 사람이 졸음을 몰아내기 위한 것입니다.
앞뒤로 못을 박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현재 그 고통을 당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시에 합격하는 그 순간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마지막 날을 염두에 두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 역시 고시 합격하는 그 미래의 날을 기억하면서 그 고생을 스스로 택했던 것입니다.
당장 편하기 위해 드러누워서 잠만 자는 사람에게는 그 미래의 영광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우리 삶이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날 하나님의 나라를 염두에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현재의 대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잠을 자지 않은 고생을 해야만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그 날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은 고시 패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패스를 위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어서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여러분은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생명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네비게이션을 켜지 않으면 서울 친척집에 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일일이 그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길을 일러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의 나라 가는 길을 모르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것입니다.
예수님께 온 사람 중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 나라로 인도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정말입니다.
그 사람은 전혀 염려하실 것이 없습니다.
저도 차를 몰고 서울을 갈 때 한두 번 길을 잘못 갈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네비게이션은 그것을 감안한 다음 다시 저에게 지시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갔더라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그 잘못된 자리에서 또다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예수님만 믿고 있으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길을 찾는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졸졸 따라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길입니다.
40. 또한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40 For what my Father wants is that all who see the Son and believe in him should have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them to life on the last day.”
우리는 제주도를 갈 때 비행장을 찾아갑니다.
제주도 가려는 사람 중 누구도 직접 제주도를 찾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제주도를 가는 비행기에 앉아 있으면 우리를 제주 공항에 내려주는 것입니다.
서울 갈 때는 기차에 타고 앉아있으면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만 주목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 분을 보면 그 분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종착점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보고 믿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입니다.
말씀을 듣다 보면 예수님을 틀림없이 보일 것입니다.
찬양하고 기도하다 보면 예수님이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그 분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마지막 날이 있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처음 보여 주신 일입니다.
죽으신 주님께서 삼 일 후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 일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죽음을 피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화장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땅에 그 사람을 묻어도 그 사람은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날에 새 시작을 보장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예수님께 미리 주신 사람들이었습니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37 Everyone whom my Father gives me will come to me.
어르신들은 바로 그 택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으로 인도하심을 받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