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내가 나 스스로를 두고 증언을 한다면, 나의 증언은 참되지 못하다.
32. 나를 위해 증언해 주시는 분은 따로 계신다. 나를 위해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나는 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에 요한은 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34.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사람의 증언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다만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면서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잠시 동안 그의 빛 가운데서 기뻐하려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성하라고 내려 주신 일들, 곧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바로 이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여 준다.
37.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신다.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은 일도 없고, 그의 모습을 본 일도 없다.
38. 또 그의 말씀이 너희 속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 그것은 너희가, 그분이 보내신 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나를 증언하고 있다.
40. 그런데 너희는 생명을 얻으러 나에게 오려고 하지 않는다.(요5:31-40)
31 “If I testify on my own behalf, what I say is not to be accepted as real proof. 32 But there is someone else who testifies on my behalf, and I know that what he says about me is true. 33 John is the one to whom you sent your messengers, and he spoke on behalf of the truth. 34 It is not that I must have a human witness; I say this only in order that you may be saved. 35 John was like a lamp, burning and shining, and you were willing for a while to enjoy his light. 36 But I have a witness on my behalf which is even greater than the witness that John gave: what I do, that is, the deeds my Father gave me to do, these speak on my behalf and show that the Father has sent me. 37 And the Father, who sent me, also testifies on my behalf. You have never heard his voice or seen his face, 38 and you do not keep his message in your hearts, for you do not believe in the one whom he sent. 39 You study the Scriptures, because you think that in them you will find eternal life. And these very Scriptures speak about me! 40 Yet you are not willing to come to me in order to have life.
* 종말의 현실
여러분도 TV를 통해 보셨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하늘에 드론이 날아다녔습니다.
사람들은 드론을 아이들 장난감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드론 밑에서 손을 싹싹 비비는 군인을 보았습니다.
살려달라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드론 밑에 수류탄과 카메라가 달려있습니다.
이 사람이 비는 것을 훤히 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도 손가락 까딱해버리면 그 사람은 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 군인에게도 가정이 있을 것입니다.
제 아내와 아들, 딸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그는 사랑받은 어머니의 자식일 것입니다.
그 드론을 조종하는 사람 말입니다.
뉴스에서 들으니 이 전쟁에서 게임 잘하는 아이의 도움을 받았다는 겁니다.
혹시 그 아이가 고등부 학생 아닌가?
혹은 중등부나 초등부?
그 군인도 능숙하게 다루어지는 드론을 피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손을 싹싹 빌던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게임하듯이 사람 죽이는 세상이 종말을 증거한다고 여깁니다.
* 종말의 징조
제자들이 주님께 성전을 자랑했을 때였습니다.
몇천 억대를 들여 지은 빌딩을 가르키며 저 번쩍이는 것을 보시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도 그것을 보시며 감탄하실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분노하셨고 그 때 종말을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돌 하나 위에 돌이 남지 않을 것이다.!
그 말씀에 놀라서 주님께 그 징조를 질문했던 것입니다.
4.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막13:4-5)
종말의 첫 번째 징조는 거짓 그리스도의 등장입니다.
물론 자신을 두고 그리스도라고 속이는 증언이 있을 것입니다.
종말에는 그 거짓 증언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 거짓 증언들
가. 헤롯의 거짓 증언
헤롯왕은 에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로마를 등에 업고 버젓이 유대의 왕 행세를 했습니다.
그의 정치적인 술수가 대단했던 것입니다.
또 국내적으로는 유대인들의 종교심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는 탁월한 건축가였습니다.
성전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어진 엄청난 규모의 성전은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정치 술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통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그 화려함에 정신을 잃은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께 자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막13:2)
예수님의 성전에 대한 말씀은 헤롯이 증축한 성전의 그 부분만 두고 이르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까지를 통틀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무너져버려야 했다는 것입니다.
헤롯의 정치적인 불순한 동기가 무너져야 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쉽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성전이 무너져야 할 이유는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전이 용도 폐기된 것입니다.
그 성전이 정치 술수로 엉뚱하게 사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진정한 성전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서 돌하나 위에 돌이 남지 않고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은 그대로 남아 끝까지 거짓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2,000년이 지난 한국 강남에도 남아 그것이 거짓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나. 제사장들과 장로
얼마 전에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내가 탔던 비행기의 조종사가 아프리카로 비행기를 몰고 갔다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는 아프리카에 내렸을 것입니다.
운전하는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당시 지도자들은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거짓말을 해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 거짓말이 애국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야 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의 귀에 그 말이 안들어가지........
그들은 예수님께서 진짜로 부활하셨다가는 나라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많이 모일 것이고, 로마의 그 말을 들을 것이고, 그러면 그들이 군대를 끌고 올 것이고.......
그들은 그런 행위를 하며 자신을 애국자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11. 여자들이 가는데, 경비병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성 안으로 들어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대제사장들에게 보고하였다.
12.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집어 주고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문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우리가 잘 말해서, 너희에게 아무 해가 미치지 않게 해주겠다."
15. 그들은 돈을 받고서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리고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마28:11-15)
거짓말 하지 말고 진짜로 하나님을 잘 믿지.......
그들은 예수님의 역사적 부활을 왜곡하고 있었습니다.
거짓말, 뇌물, 권력 남용.......
그들끼리 밀실에서 이런 거짓을 모의했던 것입니다.
그랬으니 이 거짓 증언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수두룩했던 것입니다.
순진한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하지만 이상한 일입니다.
밀실이 아니라 녹화물을 틀어주어도 바이든이라고 말을 들으면서도 그것이 날리면으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믿는 장로 제사장들이 이 거짓말을 주도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의 부활은 시체를 도둑질당한 사건으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 참 증언
이 거짓에 대응하는 참 증언이 있었습니다.
가. 예수님
예수님은 스스로를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생명길이 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로 증언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주님 자신께서 자신을 증언하시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자신을 스스로 증언하니 그것이 참되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13.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이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니, 그 증언은 참되지 못하오."
14.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비록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나의 증언은 참되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요8:13,14)
하지만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드이 예수님의 증언을 문제 삼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 오셔서 어디로 가시는지를 훤히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스스로에 대한 증언은 참이시기 때문입니다.
정말입니다.
그 분의 행위와 말씀은 그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그 분의 말씀 한 마디에 죽은 자가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달리다 쿰
36.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성하라고 내려 주신 일들, 곧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바로 이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여 준다.
36 what I do, that is, the deeds my Father gave me to do, these speak on my behalf and show that the Father has sent me.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what I do)들이 예수님을 충분히 증언했던 것입니다.
그 일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완성하라고 주신 일(the deeds my Father gave me to do)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폭우 위를 걸으셨습니다.
한 소년의 도시락으로 5,000명의 장정을 먹이셨습니다.
이 일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충분히 증언했던 것입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입니다.
이 예수님의 기적들의 일차적 의미입니다.
기적의 의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언함에 있습니다.
이 기적들이 우리들에게 세속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적들이 오직 믿는 사람들에게만 보장되는 세상 특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폭우 위도 걸어 다니고!
한 명의 도시락으로 식량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일 안 하고!
이런 기적들이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기적을 보더니 예수님 앞에 그리스도라고 무릎을 꿇었던가?
엄청난 일입니다.
두려워하기는커녕 이것을 보고 마귀 대장 바알세불의 역사라고 해석했습니다.
22. 그 때에 사람들이, 귀신이 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못 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고쳐 주시니, 그가 말을 하고, 보게 되었다.
23. 그래서 무리가 모두 당황하여 "이 사람은 다윗의 자손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4.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이 사람이 귀신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귀신을 내쫓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마12:22-24)
예수님을 악의적으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물론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모습은 여러분이 성화에서 보는 그런 모습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머리 뒤로 빛나는 후광을 두르시고.......
여기저기 기운 옷은 땀 냄새에 찌들어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일류대의 스펙을 가지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웃집 목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30세의 새파란 청년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두고 자신을 증거하실 때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그 말을 했던 것입니다.
13.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이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니, 그 증언은 참되지 못하오."(요8:13)
그래서 바리새인의 요구대로 두세 사람의 증언자를 부르실 것입니다.
결국 그 증언을 통해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게 하려는 뜻에서입니다.
34.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사람의 증언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다만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다.
34 It is not that I must have a human witness; I say this only in order that you may be saved.
그래서 요한을 증언자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증언이 더 큰 것입니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36 But I have a witness on my behalf which is even greater than the witness that John gave:
이곳에는 이 증언에 대한 사람의 수용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31. 나의 증언은 참되지 못하다.
31 what I say is not to be accepted as real proof.
예수님의 증언이 참되지(진리) 못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증언은(what I say) 참되었음에도 그 말씀이 사람들에게 참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what I say is not to be accepted as real proof.) 뜻입니다.
증언이 문제가 아니라 그 증언을 듣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나.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서 친히 주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셨습니다.
37.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신다.
37 And the Father, who sent me, also testifies on my behalf.
요한이 예수님을 두고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31. 나도 이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32. 요한이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은 이분 위에 머물렀습니다.
33. 나도 이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어떤 사람 위에 내려와서 머무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알아라' 하셨습니다.
34.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요1:31-34)
성부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 소년의 도시락을 들더니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대로 역사하셨습니다.
5,000명의 장정들이 부족함 없이 음식을 먹었습니다.
폭우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뒤로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나요?
32. 나를 위해 증언해 주시는 분은 따로 계신다. 나를 위해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나는 안다.
32 But there is someone else who testifies on my behalf, and I know that what he says about me is true.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언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때로 설교하면서 귀신을 향해 나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튀어 나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일이 제 힘으로 될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로 증언해 주신 것입니다.
저야 가뭄에 콩 나듯이 그런 일이 있지만 주님께서는 나병 고치시지, 앉은뱅이는 일으키시지,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두 하나님의 현재가 드러나는 사건습니다.
다. 요한
같은 말이라도 그 말의 뉘앙스가 사람마다 다른 것입니다.
나는 깡패가 말하는 의리라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겠습니다.
군대를 불러서 총개머리 판으로 국회 유리창을 깨고 쳐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국회의원을 잡아내라고 했습니다.
그 계몽에 감동했다고 눈물 흘리며 변호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사정을 찾아보고 곰곰이 생각해도 그 사람이 쓰는 계몽이라는 단어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단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타오르는 빛을 내는 등불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언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 요한!
35. 요한은 타오르면서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잠시 동안 그의 빛 가운데서 기뻐하려 하였다.
35 John was like a lamp, burning and shining, and you were willing for a while to enjoy his light.
요한은 절대왕의 잘못을 여지없이 지적했습니다.
당시에 독재자에게 그 말을 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입도 뻥끗 못했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에 벌벌 떨었지만 요한은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불의를 보고 넘어가는 것을 하나님이 보실까 더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터이니!
결국 정의의 편에 서는 비참한 죽임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타오르는 등불이었습니다.
요한의 단어의 정의가 예수님과 같았다는 말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신과 비교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30.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요3:30)
나는 예수님에 비교도 안 된다.
아주 열등하다.
요한 그는 자신을 쇠해야 할 존재로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오직 흥하셔야 함을 전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함께 흥하려 하는 자들이 교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만 드러나야 할 일입니다.
그는 그런 겸손을 실제의 삶에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을 최고로 알고 그를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 스승 요한이 제자들 앞에서 자신 말고 최고는 따로 있다고 증언했던 것입니다.
35. 다음날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
36.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서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요1:35-37)
요한의 이 증언을 듣고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을 등지고 예수님을 새 스승으로 모셨던 것입니다.
요한은 기꺼이 그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요한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한을 당시 최고의 선생으로 여겼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신지를 묻기 위해 사람들이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을 것입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에 요한은 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33 John is the one to whom you sent your messengers, and he spoke on behalf of the truth.
그 때 요한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언했던 것입니다.
라. 성경 말씀
성경을 읽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어제도 아내가 TV를 통해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입을 크게 벌렸더니 3만 평인가 땅을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입 벌리라는 소리를 반복해서 했습니다.
그 설교를 도저히 더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계속 듣길래 꺼버리라고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할 뿐입니다.
39. 너희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나를 증언하고 있다.
39 You study the Scriptures, because you think that in them you will find eternal life. And these very Scriptures speak about me!
생명을 얻으려고 성경을 읽는 사람이 성경 안에서 반드시 만나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의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간증도 아닙니다.
두 손을 들고 눈을 감고 드럼을 쳐대고 방언하고 거기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증언을 듣자는 것이 아닙니다.
간증, 예언, 방언, 엑스타시....... 가 아닙니다.
성경의 예수님에 대한 그리스도 증언을 들으시라는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이 말씀을 성경만이 척도(canon)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 사도
주님은 사도들에게 바로 이 예수님을 땅끝까지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사도들의 증언이 성경 말씀과 일치되어야 제대로 된 증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 고백의 의미
37.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은 일도 없고, 그의 모습을 본 일도 없다.
37 You have never heard his voice or seen his face,
38. 또 그의 말씀이 너희 속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 그것은 너희가, 그분이 보내신 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38 and you do not keep his message in your hearts, for you do not believe in the one whom he sent.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셋째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머물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거짓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본 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머물렀던 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보았다느니, 들었다느니, 머물렀다느니 모두 착각입니다.
*수용
하지만 그런 증언 앞에서도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수용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제대로 된 증언을 들었습니다.
첫째로 증인 즉 성경을 통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들은 것입니다.
또 스데반에게입니다.
그는 성령 충만해서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증언했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라고 감격하며 간증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스데반의 증언에 감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 믿는 사람을 죽이러 다녔습니다.
1. 사울은 여전히 주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행9:1,2)
성령 충만한 스데반의 그리스도 증거가 그에게 적대감을 만들어낼 줄이야!
그런데 적의를 가지고 다메섹을 오르는 이 바울을 예수님께서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그는 그를 막아선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시냐는 질문부터 했습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행9:5)
긴 대화가 있던 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그대로 꼬꾸라졌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손에도 핍박을 당하시는 나약한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더니 핍박하던 자가 핍박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 적대의 장소, 적대의 시간에.......
언제 사람이 변할지 사람은 모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6교시 끝나면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렇게 함께 배도 탔습니다.
그 같은 배에서 폭우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폭우를 향해 잔잔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폭우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잔잔해졌습니다.
그 때 그것을 보고 제자들은 저 분이 누구시냐고 질문했습니다.
26.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하고 말씀하시고 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
27. 사람들은 놀라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이분에게 복종하는가?"(마8:26,37)
예수님을 두고 이 분이 누구시냐는 그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해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했던 요한조차 그랬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혀있다 보니 예수님의 정체에 의심이 갔던 모양입니다.
그는 제자를 보내서 예수님의 정체를 물은 것입니다.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듣고,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시켜서,
3. 예수께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마11:2,3)
주님은 요한에게 주님을 통해 일어나는 일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마11:4-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칠판 위에 “예수님=그리스도” 라고 쓰시고 암기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3년 그들과 삶을 공유하신 후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마16:15)
전도의 의사가 있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은 개차반으로 살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암기 시키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 삶은 저기 가져다 두고.......
목사들이 그런 일을 하니 먹사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 부인
40. 그런데 너희는 생명을 얻으러 나에게 오려고 하지 않는다.
40 Yet you are not willing to come to me in order to have life.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에 의해서 부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낫습니다.
나. 예수님 앞의 베드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최상의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의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자리에서 사탄으로 불린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주님의 고난을 예고하신 후였습니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꼭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면서, 예수께 항의하였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셨다.(마16:22,23)
정말로 성경의 본문 중에 가장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이 이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이 설명이 안 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역사가 주석해 주었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내세우면서 유대인을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범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계 대전의 중심에 자신의 희생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는 예수님의 내용을 부인하고 예수의 이름이라는 껍데기만 드러내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그리스도는 완전한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양으로 오신 것을 몰랐던 것(知的 문제)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속죄하시기 위해 속죄 양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시더니 말씀대로 주님은 비참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속죄하셨던 것입니다.
다. 하녀 앞에서의 베드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님이 죽음으로 한 발짝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 현장에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그는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 때 하녀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 하녀는 베드로를 아는 척했습니다.
하녀의 말에 어떤 구속력이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69. 그 하녀가 그를 보고서, 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예수와 한패입니다" 하였다.
70. 그러나 그는 다시 부인하였다.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갈릴리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일 거요."
71. 그러나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말하기를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72.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다.(막14:69-72)
그러자 자신의 입이 줄줄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을 수용할 의지(意志的 문제)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당하시는 주변에 접근조차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두고 닭이 울자 함께 울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지의 결핍은 지적 결핍에 비교해서 나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하고 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한 자들의 신앙적 열심은 600만 명을 죽이고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것입니다.
아직도 힛틀러의 열심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내용은 부인하며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보다 무서운 사람이 없습니다.
사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