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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생명의 길

작성자거창학사|작성시간26.06.21|조회수42 목록 댓글 0

1.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 제사장을 예레미야에게 보냈을 때에, 주께서 그들에게 전할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주셨다.

2. 그 때에 그들이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제발 우리가 멸망하지 않도록 주께 간절히 기도하여 주십시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행여 주께서, 예전에 많은 기적을 베푸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시면, 느부갓네살이 우리에게서 물러갈 것입니다."

3.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시드기야 왕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시오.

4.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는, 지금 성벽을 에워싸고 공격하는 바빌로니아 왕과 갈대아 군대에게 맞서서 싸우려고 무장을 하고 있으나, 내가, 너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전쟁무기를 회수하여, 이 도성 한가운데 모아 놓겠다.

5. 내가 직접 너희를 공격하겠다. 이 분노, 이 노여움, 이 울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내가 팔을 들고, 나의 손과 강한 팔로 너희를 치고,

6. 사람이나 짐승을 가리지 않고, 이 도성에 사는 모든 것을 칠 것이니, 그들이 무서운 염병에 걸려 몰살할 것이다.

7. 나 주의 말이다. 그런 다음에, 염병과 전쟁과 기근에서 살아 남은 이 도성의 사람들, 곧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을,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들의 원수들의 손과,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의 손에, 포로로 넘겨 주겠다. 느부갓네살은 포로를 조금도 가련하게 여기지 않고, 조금도 아끼지 않고, 무자비하게 칼로 쳐죽일 것이다.'"

8. "너는 이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둔다.

9. 이 도성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전쟁이나 기근이나 염병으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를 에워싸고 있는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나아가서 항복하는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목숨만은 건질 것이다.

10. 나는 복을 내리려고 해서가 아니라, 재앙을 내리려고 이 도성을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도성은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들어갈 것이고, 그는 이 도성을 불질러 버릴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렘21:1-10)

1 King Zedekiah of Judah sent to me Pashhur son of Malchiah and the priest Zephaniah son of Maaseiah with this request: 2 “Please speak to the Lord for us, because King Nebuchadnezzar of Babylonia and his army are besieging the city. Maybe the Lord will perform one of his miracles for us and force Nebuchadnezzar to retreat.”

3 Then the Lord spoke to me, and I told those who had been sent to me 4 to tell Zedekiah that the Lord, the God of Israel, had said, “Zedekiah, I am going to defeat your army that is fighting against the king of Babylonia and his army. I will pile up your soldiers' weapons in the center of the city. 5 I will fight against you with all my might, my anger, my wrath, and my fury. 6 I will kill everyone living in this city; people and animals alike will die of a terrible disease. 7 But as for you, your officials, and the people who survive the war, the famine, and the disease—I will let all of you be captured by King Nebuchadnezzar and by your enemies, who want to kill you. Nebuchadnezzar will put you to death. He will not spare any of you or show mercy or pity to any of you. I, the Lord, have spoken.”

8 Then the Lord told me to say to the people, “Listen! I, the Lord, am giving you a choice between the way that leads to life and the way that leads to death. 9 Anyone who stays in the city will be killed in war or by starvation or disease. But those who go out and surrender to the Babylonians, who are now attacking the city, will not be killed; they will at least escape with their life. 10 I have made up my mind not to spare this city, but to destroy it. It will be given over to the king of Babylonia, and he will burn it to the ground. I, the Lord, have spoken.”

 

1.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 제사장을 예레미야에게 보냈을 때에, 주께서 그들에게 전할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주셨다.

1 King Zedekiah of Judah sent to me Pashhur son of Malchiah and the priest Zephaniah son of Maaseiah with this request:

 

* 왕의 기도회

 

큰일을 당하시면 여러분은 무슨 일부터 하십니까?

저의 청년 시절이었습니다.

써클의 한 친구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 녀의 부모님이 영등포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했답니다.

그만 그 공장이 불타버린 것입니다.

그 때 아버지 장로님은 식구들을 전부 그 재 위로 부르셨답니다.

거기에서 찬양을 부르며 가족 예배를 드렸답니다.

어쩌면 이 예레미야의 주제와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 재난까지 하나님의 섭리로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정신 없이 은행에 대출받으러 갈 것입니다.

전화통으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당시 유대 도성이 바벨론에게 포위되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적군을 무찌르기 위해 동맹을 구하러 강대국에 사신을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일을 했습니다.

각료 회의를 한 다음 고위 관리를 예레미야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2. 그 때에 그들이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제발 우리가 멸망하지 않도록 주께 간절히 기도하여 주십시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행여 주께서, 예전에 많은 기적을 베푸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시면, 느부갓네살이 우리에게서 물러갈 것입니다."

2 “Please speak to the Lord for us, because King Nebuchadnezzar of Babylonia and his army are besieging the city. Maybe the Lord will perform one of his miracles for us and force Nebuchadnezzar to retreat.”

 

*신앙 고백서

 

그 관리의 손에는 예레미야에게 가는 왕의 공문서가 들려있었습니다.

그 내용입니다.

첫째 예레미야에게 나라와 백성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왕의 진심 아니었겠습니까?

“제발 우리가 멸망하지 않도록 주께 간절히 기도하여 주십시오.”

둘째 중보 기도 요청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던 것입니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러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도우실 것이라는 감동적인 신앙 고백으로 마무리했습니다.

“행여 주께서, 예전에 많은 기적을 베푸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시면, 느부갓네살이 우리에게서 물러갈 것입니다.”

그 공문서는 간결하고 감동적입니다.

이 글을 쓰고 수정했던 그 1급 공무원은 문서 작성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법 행정 두 고시를 거뜬히 패스 했고.......

믿음 좋고.......

그들이 이런 공문서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보낸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탁월한 선왕의 길을 따라 믿음의 길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선왕 히스기야도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그 도성이 적군 앗수르에 의해 포위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게 포위당한 바로 그 성입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했더니 다음 날 아침 18만 5천 명의 앗수르 군인들이 죽어있었습니다.

그 길이 자신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그 공문서를 들고 당시 기도빨이 가장 세다는 예레미야를 찾게 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사람들에게 어떤 답을 했을까요?

 

3.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시드기야 왕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시오.

3 Then the Lord spoke to me, and I told those who had been sent to me

4.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는, 지금 성벽을 에워싸고 공격하는 바빌로니아 왕과 갈대아 군대에게 맞서서 싸우려고 무장을 하고 있으나, 내가, 너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전쟁무기를 회수하여, 이 도성 한가운데 모아 놓겠다.

4 to tell Zedekiah that the Lord, the God of Israel, had said, “Zedekiah, I am going to defeat your army that is fighting against the king of Babylonia and his army. I will pile up your soldiers' weapons in the center of the city.

 

*실천 행위

 

그들의 기대는 돌 하나 위에 돌 하나까지 무너졌습니다.

예레미야의 답에 귀를 의심했습니다.

물론 예레미야는 믿을 수 없는 소리를 해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눈앞에 이 현실을 보고도 그 소리를 할 줄이야!

조금 딴소리 같지만 예레미야의 처지를 생각해 봅시다.

예레미야 역시 “믿쉽니다. 할렐루야” 자신이 기도를 마치자마자 바벨론 군인이 18만 5천 명이 팩 꼬꾸라져 죽어 있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 편 군인 18만 5천 명이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다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났을 것입니다.

왜 꼭 예레미야가 그 말씀을 대언해야 했나?

그 수모를 모두 다 당하면서.......

그 일이라면 하나님이 직접 하시지......

예레미야가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텐데.......

하나님 나라 입장권은 방언하고 예언하고 입신하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초역사적인 기적들의 나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천국의 입구에서 거절당한 내용들이었습니다.(마7:21-23)

신앙이란 길 가다 보면 쓰러져 있는 홈레스에 대한 실천 행위였습니다.

역사적인 것입니다.

 

40.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25:40)

 

그래서 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부른 사람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

십자가의 예수님을 부러워하던 그 사람이

왜놈들의 주사를 맞고 옥에서 죽어가며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 무장 해제

 

그런데 예레미야가 대언한 말씀은 서론이고 본론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을 공격하는 자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지없이 하나님의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적의 손에서 구하실 줄 여겼습니다.

아주 단순하고 순박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들려준 하나님 말씀은 그들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을 둘러싸더니 그것을 불 질러 버리는 바벨론을 편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을 맞서 싸우는 자를 맞상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싸우다가 하나님의 공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의 백성들을 무장 해제시키실 것입니다.

 

5. 내가 직접 너희를 공격하겠다. 이 분노, 이 노여움, 이 울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내가 팔을 들고, 나의 손과 강한 팔로 너희를 치고,

5 I will fight against you with all my might, my anger, my wrath, and my fury.

 

*인격

 

네비게이션을 차에 처음 달았을 때였습니다.

나만 그랬나?

그것이 나에게 말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엉뚱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실은 그 때마다 움찔했습니다.

그 기계가 나에게 욕지거리라도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존댓말을 꼬박꼬박 쓰면서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더 찜찜했습니다.

저것이 앙심을 품고 있나?

최근에 또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AI 때문입니다.

영어로 고쳐라

한글로 다시 고치라

늦게 말해라

다시 말해라.

처음에는 눈치 보며 그 일을 AI에게 슬금슬금 시켰습니다.

저는 모니터에서 주먹이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네비게이션이나 AI로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무시하다가 필요하면 스위치를 올리는.......

신앙이란 하나님이라는 인격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차원에서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염두에 두지도 않는 하나님 나라 차원의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수없는 헛발질을 목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은 숨통이 막히실 것입니다.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를 아실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이것도 잘했고 저것도 잘했습니다.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입니다.

세리는 잘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 이 두 사람은 똑같이 똥밭을 뒹구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그래서 번지수를 제대로 찾은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그는 교회 뒷문 헌금함 앞에 서서 교회 장의자에 앉지도 못했습니다.

그럴 자격이 도무지 없다면서 자비를 구한 것입니다.

신앙은 다른 차원의 하나님 인격을 전제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듣는 시늉도 안 했습니다.

그들의 귀에 하나님의 진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로 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벨론에게 성을 포위 당한 것입니다.

그러자 깔끔한 신앙 고백서를 들고 예례미야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경건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가만 있었더라면 50대 맞을 것을 기도 요청을 했다가 하나님의 부아를 지른 것입니다.

100대 맞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AI나 네비게이션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세리처럼 장의자에 앉지도 못하겠다고 고백을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당당히 신앙 고백서를 들고 간 것입니다.

뻔뻔하게.......

 

6. 사람이나 짐승을 가리지 않고, 이 도성에 사는 모든 것을 칠 것이니, 그들이 무서운 염병에 걸려 몰살할 것이다.

6 I will kill everyone living in this city; people and animals alike will die of a terrible disease.

 

*진노

 

하나님 인격의 전제가 없는 신앙!

필요할 때 하나님을 가져다가 쓰고 다시 걸어두는 신앙!

뻰찌 신앙

드라이버 신앙

하나님은 그들을 보면서 그 진노를 진정시키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죄로 인해 뜬금없이 짐승까지 몰살시키신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결혼 초기에 그랬습니다.

멋도 모르고 내 소리만 했다가 수시로 낭패를 당했습니다.

40년을 살다 보니 아내 눈치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했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의 거친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 소리만 들고 갔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입니다.

 

7. 나 주의 말이다. 그런 다음에, 염병과 전쟁과 기근에서 살아 남은 이 도성의 사람들, 곧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을,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들의 원수들의 손과,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의 손에, 포로로 넘겨 주겠다. 느부갓네살은 포로를 조금도 가련하게 여기지 않고, 조금도 아끼지 않고, 무자비하게 칼로 쳐죽일 것이다.'"

7 But as for you, your officials, and the people who survive the war, the famine, and the disease—I will let all of you be captured by King Nebuchadnezzar and by your enemies, who want to kill you. Nebuchadnezzar will put you to death. He will not spare any of you or show mercy or pity to any of you. I, the Lord, have spoken.”

 

*너희가 내 안에

 

혹시 그 전쟁과 코로나와 기근에서 살아남은 도성 사람이 있을까?

그것을 보신 하나님이 내가 너무 심했나 이쯤이면 대충 눈감아 줄까 생각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제 듣기 싫으면 귀 막고 있다가 재앙을 피할 요량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중입니다.

부흥회의 공식대로 주여 삼창한 다음에 앞뒤로 몸을 흔드는 중입니다.

밤을 새우면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에 용한 사람 예레미야가 기도하면 바벨론이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고 구하면 다 된다는 것입니다.

 

7.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15:7)

 

그런데 정말로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 기도에는 그 전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나의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요15:7)

 

하나님은 내 안에 머물러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빨 있는 사람이 기도하느냐가 아닙니다.

더 큰 소리의 방언으로 하는 기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런 사람을 심판 대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6.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요15:6)

 

기도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냐는 여부입니다.

말씀을 벗어난 자에게 바벨론의 재앙이 기다릴 것입니다.

자질이 없는 그 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했다가는 바벨론이 칼 들고 등장할 것입니다.

 

*일관성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일관성입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그 예언대로 바벨론이 쳐들어온 것입니다.

그러자 돌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는 어떤 태도가 요구되는 것인가?

물론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놈들을 보면서 진노하는 것이 있습니다.

죄를 지은 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그 일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시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멋진 기도문을 들고 가는 것은 가장 가증한 죄의 부인의 방식입니다.

신앙이 아닙니다.

하던대로 하지.......

동맹을 구해서 살길을 찾았던 히스기야 때는 동맹을 부인하고 교회 강대상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을 죽는 길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사야가 그짓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1.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들은 군마를 의지하고, 많은 병거를 믿고 기마병의 막강한 힘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바라보지도 않고, 주께 구하지도 않는다.(사39:1)

 

그 기도를 순종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앗수르군 18만 5천을 무찔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순종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순종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생체 실험을 했습니다.

처녀를 잡아다가 위안부를 삼았습니다.

내가 계엄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재앙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랬습니다.

잘못했으면 종아리 걷고 서 있는 순종입니다.

 

8. "너는 이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둔다.

8 Then the Lord told me to say to the people, “Listen! I, the Lord, am giving you a choice between the way that leads to life and the way that leads to death.

 

* 선택

 

요즈음 뉴스를 보면 매를 들고 있는 아버지를 덤벼버리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충고하는 선생님에게 주먹질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재앙을 유심히 살펴보시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식당에서든 칼과 강도가 든 칼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 눈에 바벨론의 재앙을 온통 죽음으로 보였다면 착각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생명 길을 두셨던 것입니다.

세상 재앙이야 아주 일방통행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거기에서 생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벨론의 그 재앙에 생명과 죽음의 두 길을 두셨던 것입니다.

 

* 생명과 소유

 

저는 마술이라고 해서 모자 속에서 손수건이 비둘기로 바뀌는 줄 안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른손을 보게 하더니 왼손으로 바꿔치기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의 전공입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중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생명을 세상 썩을 것으로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썩을 것을 두고 더 많이 가지느냐 더 적게 가지느냐로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신앙은 GNP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문제일 뿐입니다.

또 하나님은 이 선택에서 일절 강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사람들에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9. 이 도성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전쟁이나 기근이나 염병으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를 에워싸고 있는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나아가서 항복하는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목숨만은 건질 것이다.

9 Anyone who stays in the city will be killed in war or by starvation or disease. But those who go out and surrender to the Babylonians, who are now attacking the city, will not be killed; they will at least escape with their life.

 

* 생명의 길

 

유대의 그 도성 안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대놓고 바벨론을 적대하는 세력입니다.

두 번째 사람을 이편도 저편도 아닌 미적미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헷갈리는 사람입니다.

칼 들고 바벨론을 저항도 못 하고 애급으로 도망도 못 하고.......

그 도시에 그대로 남아 있던 사람들(Anyone who stays in the city)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들입니다.

적이 성을 포위하자 바벨론 군인에게 가서 항복하는 사람(those who go out and surrender to the Babylonians)들이었습니다.

그 배신자들만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길이 하나님께서 재앙 안에 두셨던 생명의 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말씀에 대한 순종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입니다.

그 무서운 폭력에 자신을 맡기겠습니까?

왜냐하면 이 선택은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역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의 길은 꼭 죽을 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의 이성이 그 선택을 역행했을 것입니다.

매국을 택해야 하나?

그런데 거기에 생명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당장 그 장소에서는 설명이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전에 해왔던 일들이랑 함께 따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능을 따를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므로 따를 것이냐?

당장 이성이냐?

시드기야의 길은 나를 죽이려는 바벨론 앞에서 무장 해제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알려준 길입니다.

그들은 그 암흑으로 보이는 길을 빛의 길로 알고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신뢰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제트기 조종사들이 그런 훈련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하늘 위에서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곡예를 하다 보면 바다가 하늘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때 자신의 본능을 따라 하늘로 방향을 잡으면 바다에 빠져 죽는 것입니다.

살려고 했던 선택이 죽음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그 때 자신의 본능을 역행해서 계기를 따르는 훈련을 한다는 것입니다.

계기가 가르치는 대로 죽음의 바다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 선택을 한 사람만 살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상

 

그러면 말씀을 따라 그 어려운 선택을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푸짐한 상을 주시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 탁월한 선택을 한 사람은 간신히 생명이나 구하게 될 것(they will at least escape with their life.)입니다.

왕의 무덤을 보니 황금이 찬란했습니다.

그 옆에 해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찬란한 황금을 보장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생명이 얼마나 귀한가!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갸날픈 숨이라도.......

독재자들은 항상 그랬습니다.

황금을 보장한다면서 생명을 가볍게 죽였던 것입니다.

 

10. 나는 복을 내리려고 해서가 아니라, 재앙을 내리려고 이 도성을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도성은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들어갈 것이고, 그는 이 도성을 불질러 버릴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10 I have made up my mind not to spare this city, but to destroy it. It will be given over to the king of Babylonia, and he will burn it to the ground. I, the Lord, have spoken.”

 

* 오판

 

그들은 생명의 길을 죽음의 길로 잘못 읽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못 읽고 있었습니다.

시드기야는 복을 받으려고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 결정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결정을 바꾸어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이미 결정지어진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왕을 부르셔서 그의 도성을 불 질러 버리기로 이미 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했을 때 하나님은 그 일을 걸정하셨던 것입니다.

차는 이미 떠나버렸습니다.

격식을 차리고 부흥회를 한다고 그 결정이 뒤집어질 일이 아니었습니다.

 

* 용광로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이 종살이했던 애급은 그들을 정화하는 용광로였습니다.

 

4. 이 언약은, 쇠를 녹이는 용광로와 같은 이집트 땅에서 너희 조상을 데리고 나올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지키라고 명한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나에게 순종하고, 내가 명하는 모든 것을 실천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서,

5.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맹세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나는 "주님, 참으로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렘11:4,5)

 

그 용광로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벨론의 포로살이를 통해 또다시 사람을 정화하실 것입니다.

바벨론 역시 용광로입니다.

“바벨론이 용광로가 아니냐?

주님,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을 질러 생명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들은 일관된 순종을 보여야 합니다.

이제 요구되는 순종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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