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무상설
개체를 연속적 존재로 보는 사상은 이른바 무상설로서 전개된다.
인간 존재는 순간마다 달라지는 불꽃으로 비유되고 있다.
그것이 객관적인 면에 투영되면 일체의 사물이 무상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들 모든 것은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그 본성이 변하여 멸하는 것이다."
무상설은 반드시 불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파니샤드'나 '바가바드 기타'에도 설해져 있다. 단지 바라문교의 철인은 세상의 것은 모두 무상하지만, 브라만 혹은 최고의 신과 모든 영혼은 상주·불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교는 이러한 설까지도 부인하였다.
"모든 만들어진 것은 무상한 것이다. 생겨나서는 멸하는 성질의 것이며, 생겨서는 멸한다. 그러한 것들이 가라앉은 것이 안락이다.(Mahapaparinibbana Ⅳ,10; Therag.1159; SN.Ⅰ,p.5,158; vol.Ⅱ.p.193 etc.)
그리고 수행자는 모든 사물의 생멸의 이치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만들어진 것은 무상한 것이다." 즉 '제행무상' 이라고 하는 것은 특히 불교적인 표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 세상 것은 변전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이 무상의 이치를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번민도 있고 비탄도 있는 것이지만, 만약 무상이라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깨닫게 되면 번민도 사라져 버린다.
"세간 사람들은 늙음과 죽음으로 인하여 무너져 간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세상 되어가는 모양을 알고 슬퍼하지 않는다." (Sn.581)
특히 근친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하염없는 비탄에 잠기게 되는데, 한탄하고 슬퍼하지 말라. 그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이다라고 말한다. "미망에 사로잡혀 자기를 해치고 있는 사람이, 만약 울고 슬퍼함으로써 무엇인가 이득을 보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현명한 자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울고 슬퍼하는 것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 단지 더욱더 괴로움이 생겨, 신체가 마를 뿐이다. 스스로 자기를 해치면서 신체는 야위고 추하게 된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어찌 되는 것이 아니다. 울고 슬퍼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근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더욱더 고뇌를 느끼게 된다. 죽은 사람의 일을 슬퍼하면 우수에 사로잡힐 뿐이다." (Sn.583-586) 이러한 깨달음 가운데 구원이 있다.
"그러므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의 말씀을 듣고, 돌아간 사자를 보고는 '그들에게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라고 깨달아 슬픔과 한탄을 버려라. 마치 집에 불이 붙은 것을 물이 꺼버리는 것과 같이, 지혜 있는 착한 사람은 이 근심을 재빨리 멸해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을 재빨리 휩쓸어 버리는 것처럼." (Sn.590,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