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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순례 기념사진

6월 성지순례 - 울진 천축산 불영사 의상전

작성자해심|작성시간26.06.18|조회수18 목록 댓글 1

의상전(義湘展)

2010년 의상전을 수리하던 중 발견된 상량문을 해독한 결과 그동안 의상전으로 알려져 온 건축물이 ‘인현왕후 원당(願堂)’으로 확인됐다. 인경왕후가 죽자 다음 왕비로 간택된 인현왕후가 숙종이 총애하는 장희빈에 의해 폐출되어 자결하려고 하였으나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소승은 불영사 스님입니다. 내일 상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과연 다음날 장희빈이 축출되고 인현왕후 환궁하게 된다. 후에 불영사에 사방 10리 정도의 산을 하사하고 네곳에 표지하여 부처님의 은덕에 사례하였다고 불영사 사적비에 기록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四方十里나 四標라는 글자가 있는 사적비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의상전이 인현왕후 원당으로 밝혀졌는데 왜 인현왕후(1667~1701)가 죽은 지 166년이 지난 시점(1867년 고종 4)에서 원당이 지어졌을까? 이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성은에 보답하는 의미라는 이야기가 맞지 않는 것이다. 당시 불영사 스님이셨던 양성 법사와의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 166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만들었다는 게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불영사의 기도와 인현왕후.

 

조선 숙종의 왕후인 인현왕후 민씨는 인경왕후의 다음 왕비로서 대비전이 친히 중전으로 간택한 왕후이며, 가례를 지낸 지 6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어 장희빈이가 들어와 애를 낳게 된다. 장희빈의 모함으로 폐출당했다. 인현왕후는 안국동의 감교당에서 죄인을 자처하여 스스로 잡곡밥을 들고, 색옷을 입지 않았다. 이렇게 5년이란 세월을 눈물로 보내다가 마침내 자결을 결심하고, 독약을 앞에 놓고 하염없이 울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한 백발 노승이 나타나 말하기를 "천축산 불영사에 있는 중이온 데 괴로우시더라도 3일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옵니다." 하고 홀연히 사라지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인지라,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3일을 더 기다렸더니 과연 노승의 말과 같이 왕께서 복위시킨다는 전갈이 왔고, 다시 왕후에 오르게 되었다.

그 후 인현왕후는 꿈이 너무도 신기하여 왕께 아뢰어 불영사에 사람을 보내어 꿈에 나타난 백발 노승의 화상을 그려 올리라는 명을 내렸는데 사자가 불영사에 와서 찾아보았으나 노승은 간곳이 없고, 돌아가신 양성법사의 화상이 비슷해 복사하여 인경왕후께 드리니 보시고, 현몽한 노승이 틀림이 없으므로 임금께 이 사실을 아뢰었더니 숙종께서 감복하시고 부처님의 은공을 갚기 위해 불영사를 중심으로 사방 10리 안에 있는 산과 전답을 불영사에 시주하였다. 현재의 불영사의 재산은 그때의 것이다.

양성법사는 원남면 금매리에서 태어나 11세에 출가하여 불도를 닦았으며 속성은 남씨요, 이름은 혜능이고, 자는 중열인데 스님 생활 64년 만에 도를 깨닫고, 75세로 일생을 마치니 불법에 따라 화장을 하였는데 사리가 나와 불영사의 남쪽 산 옆에 부도를 세우고, 그 안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그 부도와 비석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부도는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불영사는 의상전과 대웅보전에 대한 이야기에 중점을 맞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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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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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보명 | 작성시간 26.06.19 삼국시대의 원효대사와 의상조사.
    조선시대의 임진왜란의 1592년도 이후의 서산대사 사명대사
    조선 시대의 근세 양성조사와 봉인선사의 영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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