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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순례 기념사진

6월 성지순례 - 양성 스님 부도와 산신각

작성자해심|작성시간26.06.18|조회수22 목록 댓글 0

노인과 8동자.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화엄법회를 열고 교화에 힘쓸 때였다. 어느 날 노인 한 사람이 8명의 동자를 데리고 의상대사를 찾아왔다.

“대사시여! 우리는 동해안을 수호하는 호법 신장이옵니다. 이제 인연이 다하여 이곳을 떠나면서 스님께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불법을 수호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소승에게 부탁할 일이 무엇인지 어서 말씀해 보시지요.”

 

“그 동안 저희들은 이곳에 부처님을 모시고자 원을 세웠으나 인연 닿는 스님이 없어 원력을 성취 못했습니다. 떠나기 직전에 스님께서 오시어 친견케 됨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화엄법계로 장엄하려는 스님의 뜻을 저희가 살아온 도량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시면 더없이 감사하겠습니다.”

 

“소승에게 불사의 인연을 맺도록 해주셨으니, 여한을 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상대사의 대답을 들은 호법 신장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며칠 후 의상대사는 동해안의 불사 인연지를 찾아 나섰다. 포항에 도착하여 동해안을 거슬러 오르는데 어디선가 한 마리의 용이 나타났다. 용은 의상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더니 앞장서서 길을 인도했다. 스님이 울진포 앞바다에 다다르자 용은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때 울진포 앞바다에는 오색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님을 사모하다 용이 된 선묘룡이 스님을 반갑게 맞았다.

 

“스님! 어서 오세요. 지금부터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지금의 천축산 입구에서 선묘룡은 문득 멈추고는 말했다.

“이제부터는 어려우시더라도 손수 인연지를 찾으셔야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선묘룡은 훌쩍 사라졌다.

 

8일간 천축산을 돌아보며 절터를 찾던 의상 스님은 피로에 지쳐 어느 연못가에 쉬고 있었다.문득 못 쪽을 바라보던 스님은 그만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연못의 물 위에 부처님의 형상이 비치고 있지 않은가? 감격한 의상 스님은 그 자리에서 수없이 절을 했다. 그리고는 부처님 영상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주위를 살펴보니 마치 부처님 형상과 꼭 같은 바위가 하나 서 있었다. 그때 의상은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아! 이곳이 바로 호법신장들이 기거하며 불법을 수호하던 못이로구나.

이곳에서 화엄대법회를 열고 가람을 세워야지.”

 

의상 스님은 우선 노인과 8명의 동자 호법신장들을 위해 화엄경을 독송하고 그 뜻을 설하기 시작했다. 그때 노인과 8명의 동자가 못 속에서 올라와 열심히 설법을 들었다.

 

“이 산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천축산에 계실 당시의 형상과 똑같으며 연못에 비친 부처님 영상은 천축산에서 설법하시던 부처님 모습입니다. 주위 환경은 영산회상이 응화된 것이지요.”

 

설법을 다 들은 노인은 의상 스님에게 그곳에 대해 설명을 하고는 동자들과 함께 용으로 변하여 승천했다. 의상대사가 주위를 살펴보니 산세가 노인의 말 그대로였다. 북으로는 연꽃처럼 생긴 봉우리가 있고 부처님의 형상과 비슷한 바위와 탑들이 마치 설산 당시의 부처님 회상 같았다. 스님은 용들이 살던 연못을 메워 금당을 짓고 부처님 영상이 나타난 곳이라 하여 불영사라 이름 했다. 부처님 영상이 나타난 곳에는 무영탑을 조성했다. 지금도 무영탑이라 불리는 3층 석탑이 남아 있는데 상대중석(上臺中石) 네 쪽 중 두 쪽은 없는 상태다.

 

연못에 비친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는 불영암 또는 부처 바위라 불리고 탑 모양의 바위는 탑바위, 연꽃 형상의 봉우리는 연화봉이라 명했으며 산 이름은 천축산이라 지었다. 또 불영사 계곡을 흐르는 광천 계곡은 일명 구룡계곡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유래를 지닌 불영사에는 두 차례의 이적을 보여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한 연유로 불영사는 화엄도량으로 지금도 의상대사의 혼과 노인과 팔부신중의 8부 용왕의 상주처가 되신 곳이라고 일컫는다.

 

독룡 이야기

 

의상 대사가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해안을 따라 단하동(丹霞洞) 해운봉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서역의 천축산을 옮겨온 듯한 지세가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맑은 물 위에 부처님 다섯 분의 형상이 떠올라 인연 깊은 곳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부근 폭포에 독룡(毒龍)이 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사는 처음 독룡에게 설법하고 이 땅을 보시할 것을 청했으나

용이 따르지 않자 법력으로 쫓아내었다. 용은 흥분하여 산을 뚫고 돌을 부수며 떠났는데 대사가 못을 메워 사찰을 창건하였다. 의상 대사는 이어서 남쪽에 청련전(靑蓮殿)을 짓고 무영탑(無影塔)을 세워 비보(裨補)한 뒤 산 이름을 천축산, 절 이름을 불영사라 하였다.

처음 연못에 비친 부처님 모습의 바위는 불영암(佛影巖), 용이 산을 뚫었다는 자리는 용혈(龍穴), 용이 도사리고 있던 곳을 오룡소(五龍沼)라고 하며, 불영사를 휘감아 도는 광천(光川) 계곡은 구룡(九龍) 계곡으로도 불린다. 지금 사찰 경내에 있는 연못이 바로 의상 대사가 부처님 그림자를 보았다는 불영지(佛影池)이다.

 

그런데 불영사를 창건한 의상 대사는 그 뒤 오랫동안 천하를 두루 다니다가 오랜만에 다시 불영사로 돌아왔다. 그때 절 입구의 선사촌에 이르러 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는 몹시 기뻐하며 말하기를 “우리 부처님이 드디어 돌아오셨군요!”하였다. 마을 사람들도 이를 보았는데, 그 이후로 불영사를 불귀사(佛歸寺)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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