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전기
1408년(태종 8) 이문명이 지은 「환생전기(還生傳記)」에 의하면 이조 중종(中宗:1488~1544) 때 가난한 선비였던 백극재(白克齋)가 아내의 지극 갖은 헌신적인 고생 덕에 과거에 급제하여 울진 현령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부임한 지 사흘 만에 급병을 얻어 횡사하니 그 부인이 비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비탄에 빠진 것을 본 고을의 이방이 불영사란 절이 영험하니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혹시 회생할지도 모른다고 위로하자 아내는 장례를 미루고 불영사를 찾아와 주지의 양해를 얻어 남편의 관을 불영사로 옮겨와 무영탑전에 옮겨 놓고 사흘 동안을 밤낮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남편의 회생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3일이 지나는 날에 남편의 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관의 끈을 풀자, 남편이 되살아나 관을 열고 나왔다고 한다. 왕생(往生)이 아니라 환생(還生)한 것이다. 이 기쁨을 감추지 못한 현령의 아내는 불은(佛恩)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법화경』 7권을 금자로 사경하여 불은(佛恩)에 보답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궁중에 전달되어 중종이 불영사의 탑료(塔寮)를 환희료(歡喜寮), 불전(佛殿)을 환생전(還生殿)이라는 사액(賜額)을 내렸다고 한다, 환희료는 무영탑 앞에 있는 요사채를 말하며, 지금의 삼층 석탑이며, 환생전은 옛적 청련전으로 지금의 대웅보전을 말하는 것이다.
대웅보전.
건립 시기는 대웅보전 내부에 걸린 탱화의 묵서명에 '옹정3년 을사(雍正三年 乙巳)'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725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단 위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는데 봉안된 세 불상은 2002년에 조성한 것이다. 높이 1m 정도의 이 불상들은 경내에 있던 6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태풍으로 부러진 것을 활용했다고 한다. 그 나무 둥치를 4년간 물에 담그고 말리기를 반복한 후에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법당 내부는 이와 함께 기둥과 도리 사이에 조각한 용두 4점, 반야용선, 비천상, 단정학(두루미. 신선이 타고다녔다고 함), 극락조, 백호 등 수준 높은 그림과 조각, 건축 부재 등으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법당의 불상 뒤 벽에는 1725년에 조성된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보물) 가 걸려 있다. 여섯 명의 스님이 그렸다고 하며, 비교적 양호한 보존 상태인 이 탱화는 18세기 초 조선 불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산회상도 (보물)
불영사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가 인도의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중앙에 석가여래를 모시고 하단 좌우에 문수ㆍ보현보살과 제석천ㆍ범천을 표현하고 그 위로 좌우 4위씩 8대 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보살상 상단에 10대 제자와 권속을 표현하고 최상단에 분신불이 표현되어 있다. 특히 석가모니불의 법의가 붉은 가사(홍가사) 를 취했고 광배도 붉은태를 이중 광배를 나타내고 있는 것 등은 영ㆍ정조 때 많이 제작된 조선 후기 불화의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불화는 중심인물은 크게 표현하고 그 비중에 따라 하단에서 상단으로 좌우 대칭적인 구도를 취한 것이 특징이다.
기단 밑 좌우에 돌거북(석구)을 놓아 건물을 받들게 한 것은 특이한 구상으로 이는 불영사의 자리가 화기를 많이 품고 있는 곳으로 불기운을 눌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돌거북을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불연(佛輦 보물)
울진 불영사(佛影寺) 불연(佛輦)은 2채의 불연(佛輦)이 있는데, 매년 석가탄신일 때 아기 부처를 모시고 경내를 도는 시련의식(侍輦儀式)을 행하고 있으며, 이때 이 불연(佛輦)을 사용하고 있다. 불연(佛輦)은 가마의 일종으로 불가(佛家)의 불보살상(佛菩薩像), 사리(舍利), 경전, 불패(佛牌, 불보살의 존호나 발원 내용을 적은 나무패), 영가(靈駕, 불가에서 망자를 뜻하는 말) 등 예배의 대상을 가마에 싣고 의식이 거행되는 장소로 모셔 오는 시련의식(侍輦儀式)에서 쓰이는 매우 중요한 의식 법구다. 시련(侍輦)은 가마를 문밖까지 메고 나가 신앙의 대상인 불·보살이나 재(齋)를 받을 대상인 영가 등을 가마에 모시고 여러 가지 위의(威儀 격식을 갖춘 태도나 차림새)를 갖추어 법회 장소(도량)까지 행렬을 지어 오는 불교 의식으로 이때 불연이 사용된다.
대웅보전을 복원할 때는 처사 한 사람이 열성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절 식구들이 모두 감동할 정도였다. 그 소식을 듣고 조계총림 방장인 보성 큰스님이 축봉(竺峰)이란 법명을 내려주셨다. 보성 큰스님은 불영사 불사에 관심이 크셨다. 그런데 대웅보전을 해체하면서 나온 상량문을 살펴보니 중창을 주도했던 스님 중에 축봉 스님이 있었다. 300년의 시차를 두고 똑같은 ‘축봉’이 불사를 주도한 셈이었다. 대웅보전을 복원하고 나니 시주자들이 잇달아 나타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