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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순례 기념사진

6월 성지순례 - 대웅보전2

작성자해심|작성시간26.06.18|조회수16 목록 댓글 0

천축산불영사기(天竺山佛影寺記)

 

“신라 옛 비석에 의하면,

당나라 영휘 2년(651)에 의상법사가

동경[현 경주]에서 해변을 따라 단하동 [현재 불영사가 있는 곳] 에 들어와

해운봉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고 감탄하기를

‘서역 천축산을, 바다를 건너 만들어 놓은 듯하며, 또한 산골짜기의 물 위에는

다섯 부처님의 영상이 비치니 더욱 기이하구나.’라고 하였다.

하류로 내려와 금탑봉에 올라서 보니 그 아래에 독룡이 있는 못이 있는데

의상법사가 용에게 설법하여 사찰 지을 땅 베풀기를 청하였으나

용이 따르지 아니하므로 의상법사가 신통력 있는 주술을 강하게 부리자,

용이 갑자기 분을 발하여 산에 구멍을 내고 돌을 깨뜨리며 사라졌다.

의상법사는 즉시 사찰 건립을 위해 못을 메우고,

동편에 청련전 3칸과 무영탑 하나를 건립하였으며,

땅을 비보하는 뜻으로 ‘천축산 불영사(天竺山 佛影寺)’라 편액하였다.

의상법사가 의봉(儀鳳)[676~678] 초에 서산에 들어가

부석사, 각화사 등의 사찰을 창건하고 15년간 천하를 돌다가

어느 날 불영사로 돌아오는데 선사촌[현 울진군]에 이르자 한 노인이

‘우리 부처님이 돌아온다[佛歸]’라고 기뻐하였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불영사가 백암산 자락에 있으므로

‘백암산 불귀사’라 속칭하게 되었다.

동편 삼각봉 아래 좌망대가 있고,

오룡대 남편에 향로봉·청라봉·종암봉이 있고,

서편에는 부용성,학소대,

북쪽에는 금탑봉·의상대·원효굴, 용혈사 등이 있었는데 모두 승경이었다.

의상법사가 9년을 머물렀으며, 원효법사 역시 유람하다가

두 법사 모두 ‘낙산의 참대비상(叅大悲像)을 인하여

금강산 마하연에 자리 잡았다’고 이른 곳이 바로 천축산 불영사이다.

의상법사는 처음으로 천축의 옛 이름으로 명칭 하였으나,

<백암산 불귀사(佛歸寺)>라 한 것은 후인이 의상법사를 추모하여

부르는 새로운 이름이다. 고로 산과 절이 함께 두 가지 이름이 있으니

지금 사람 대부분이 옛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따르는 것은

성스러운 뜻을 거스름이 심한 것이다. 화엄론에서는 의상법사가

과거 금산 보개여래의 후신이라 하였고, 원효법사는

현재 화엄의 대권보살의 지위에 있다. 이 두 성인이 거처하였으므로,

승려들에게 이름 그대로 귀하고 중하므로 지금의 사람들은

불가불 살펴보아야 하겠다. 홍무 3년(1370) 경술 8월 한림학사 유백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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