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명의 병오년 정초기도 3.
반야심경 해설 제1편 49일째.
49. 제6의식(第六意識)-1.
유식에서 말하는 제6의식은
십팔계의 의식으로서,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모두를 포함한 일체 유형무형의 모든 대상, 즉 법경(法境)을 분별하는 마음입니다.
이 6의식은 앞에서 말한
5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선 전오식은 의지처가 눈, 귀, 코, 혀, 몸 등 모두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6의식은 순수한 정신적인 기관이 그 의지처입니다.
대상 또한 객관적인 물질계 뿐만 아니라 정신적, 물질적인 모든 경계를 그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면, 의식(意識)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마음작용을 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 유식에서 바라보는 의식의 작용을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전오식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성품만을 분별하는 자성분별을 한다고 하였는데, 이 6의식은 물론 자성분별(自性分別)도 하지만, 그 외에도 수념분별(隨念分別)과 계탁분별(計度分別)등의 좀 더 복잡한 분별작용을 합니다.
수념분별이란, 과거를 회상한다거나, 미래를 생각하는 등의 분별작용을 말하는 것이며, 계탁분별이란
착각을 하여 대상을 인식하는 데 오류를 일으키는 분별작용을 말합니다.
또한, 앞에서 전오식은
현재 나타난 사물에 대해 기본적인 사유를 일으켜 헤아리는 작용인 ‘현량(現量)’을 일으킨다고 하였는데,
이 6의식은 여러 가지를 비교하고 분석하여 판단하는 작용인 ‘비량(比量)’을 일으키기도 하며, 대상을 판단할 때 오류를 일으켜 잘못 헤아리는 ‘비량(非量)’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면, 6의식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6의식은 다른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구의식, 몽중의식, 독산의식, 정중의식, 광연의식 등이 그 이름들입니다.
이 이름들은 6의식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작용과 역할을 나누어 따로 이름 붙인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 하나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오구의식.
우선, 오구의식(五俱意識)이란, 우리 주위의 모든 대상을 관찰할 때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과 함께 작용하여
그 대상을 분별하고 의식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안식과 함께 일어나는 의식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대상을 볼 때,
단순히 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온갖 분별심을 일으킵니다.
거리를 지나가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예쁜 아가씨를 보았다고 칩시다.
그저 보고 스치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잘 빠졌다든가 (現量, 自性分別),
미니스커트가 너무 짧다
(自性分別),
한 번 데이트 해 보고 싶다,
내 여자친구보다 더 예쁘거나 혹은 못하다(比量),
저런 겉멋이 든 여자는 집안일에는 신경도 안 쓸 거야(非量, 計度分別) 하는 등의 상상을 하게 되고,
심지어는 저런 여인과 결혼을 해서 미래에 아이도 낳고, 오손도손 살면 얼마나 좋을까? (隨念分別),
과거의 내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참 많이 닮았다 (隨念分別)든가
하는 등 온갖 분별심을 머리 속에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복잡한 마음의 작용은 안근(眼根) 단독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작용입니다.
이렇게 분별, 헤아림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제6의식의 분별작용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귀로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나,
코로 냄새를 맡았을 때,
혀로 맛을 볼 때, 몸으로 어떤 대상을 감촉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각종의 분별작용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이렇듯 제6의식은 전오식과 함께 작용하여 각종의 분별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이 의식을 오구의식(五俱意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② 몽중의식.
두 번째, 몽중의식 (夢中意識)이 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꿈 가운데 나타나는 의식을 말합니다. 누구나 꿈을 꾸게 마련이며, 꿈은 천태만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꿈도 제6의식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전생, 또는 이전에 내가 지은 행위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제8 아뢰야식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꿈을 꿀 때 제6의식을 통하여 다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때에는 식이 맑지 못하고, 복잡하고 번잡하여 아뢰야식이라는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다가, 꿈을 꾸게 되면 복잡한 식이 가라앉고,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식들 중에 영향력이 강한 것들이 둘쑥날쑥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몽중의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꿈이라고 해서 모두가 진실인 것만은 아닙니다. 즉, 본인의 현실이나 이전의 업과 다른 꿈을 꿀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이전의 행위들이
체계적으로 아뢰야식 속에 정리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전혀 다른 행위들이 서로 얽히게 되어, 하나의 불완전한 행위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의식에는 언젠가 남에게서나, 책에서라도 한 번쯤 경험했던 것들이 드러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꿈이란 것은 보통 대부분은 실답고, 순수하지 못한 작용이기에 공허한 의식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식세계가 건전하면 꿈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꿈이 없는 의식은 정신이 건강한 것이라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지요. 텅 비어 있는 의식세계에 꿈은 없기 때문입니다.
놓는 공부, 비우는 공부, 방하착 공부를 하는 이유도, 복잡하고 번쇠한 의식을 텅 비게 하여 맑게 하기 위한 수행입니다. 망식(妄識)인 우리의 의식을 정화하는 수행인 것입니다.
불기 2570년 4월 18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