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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경 기도

65. 불교는 자력인가?

작성자보명|작성시간26.06.22|조회수1 목록 댓글 0
  불교는 자력인가 ? 
    불교는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음을 이루는 종교이므로 자력의 종교라고 알고 있습니다마는 한편으로는 불보살님을 믿어서 그 위신력으로 고난을 이기고 장애에서 벗어나는 면도 있어 이점은 타력을 믿는 신앙으로 생각이 듭니다.
  불교가 자력의 종교라 할지, 타력의 종교라 할지 어떻게 알고 있어야 할지 궁금합니다. 
   불교가 번뇌를 쉬고 마음을 바꾸며 바른 행을 통하여 힘써 수행하는 측면이 강한 것이 특색입니다. 힘들여 수행하는 것을 강조하고 수행의 결과로 깨달음의 영광을 얻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번뇌를 없애어 자성광명을 빛내는 것을 수행이라 하고 있으므로 철저한 자력주의 종교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불교를 자력종교냐 아니냐의 문제를 생각하는 데는 편의상 우리 스스로가 노력하는 측면과 노력하여 성취하는 측면을 일단 나누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행하고 노력하는 나는 번뇌의 마음이 가득한 번뇌의 몸입니다. 번뇌 속에서 판단하고 번뇌 몸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번뇌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차원에서 얻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번뇌뿐일 것입니다. 먹을 갈면 검은 먹물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논리에서 보면 수행하는 몸과 마음이 깨달음의 광명을 이룬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자력으로 수행은 하지만 「깨달음」은 자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비유를 들면 태양을 가린 구름이 범부요 번뇌라면 아무리 하더라도 검은 구름이 태양이 될 수가 없습니다. 노력하여 구름을 흩트려 버리든지 구름 밖으로 뛰어나오든지 또는 구름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태양을 만납니다.
   거듭 말해서 우리가 밝아지고 막힘없이 자유스러워지고 허공처럼 일체를 갈무리는 무한 자율성은 번뇌인 구름으로 어찌했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본래부터 있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건만 번뇌의 구름에 싸여있는 자가 깨닫지 못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번뇌를 없이하는 노력이요, 밝아지는 결과라 하겠습니다. 본래 밝은 자성은 나의 힘으로 밝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의 노력으로 더욱 밝아질 것도 없습니다. 원래부터 밝은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밝음을 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자력으로 이루는 수행이란 번뇌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 것이고 우리가 밝아지는 것은 청정자성의 본래 공덕의 결과입니다.
   이렇게 살펴볼 때 수행은 우리의 노력으로 하는 것이지만 노력의 결과로 밝음을 이루는 것은 부처님 공덕이라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부처님 공덕은 번뇌가 본래 없는, 자타가 없는 차원에서 오는 광명입니다. 법성진여 자성광명의 존재성이 원래로 자타 분별을 여읜 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밝아지고 성취하고 기뻐할 온갖 공덕은 부처님에게서 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자타를 초월한 경지에 계시므로 자력이다, 타력이다 하는 분별심이 있는 상태에서는 부처님은 끝까지 저 언덕에 계시고 우러러 볼 상대입니다.
   자타분별이 끊어지고 번뇌가 말끔히 쉬었을 때, 비로소 저 언덕, 이 언덕이 없고 부처와 중생이 따로 없는 법성생명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자력이자 불력이요, 불력이자 자력이라 할 것입니다. 자력이란 자기의 불성으로 승화된 경지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것을 원만 성취시키는 숭고한 공덕은 어차피 말하자면 부처님의 것이며 부처님에게서 온 것이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말씀드린 바를 정리해 보면 불교는 스스로의 수행에 의하여 부처님을 이루는 종교입니다.
거듭 말씀드려서 일체를 성취시키는 거룩한 공덕은 모두가 부처님의 위덕이요, 부처님의 공덕이며 우리를 완성시키는 지혜도 자비도 깨달음의 위력도 부처님의 위신력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깨달음의 공덕을 성취시키는 힘은 불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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