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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도량

노재학의 한국산사 목조각 걸작. 13. 고색창연한 색채·문양으로 완성한 지장시왕

작성자보명|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노재학의 한국산사 목조각 걸작. 13. 고색창연한 색채·문양으로 완성한 지장시왕

 

13.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1667년 운혜 스님 주도로 제작
해남, 순천 등 지장보살 기년작
170cm에 이르는 쾌적한 조형미
차분하고 고색창연 중간색 색조

 

전국 10여 곳의 지장삼존 시왕상

 

어둠은 빛의 부재이고, 밝음은 어둠의 부재다. 지옥이라 부르는 어둠의 세계가 있다. ‘지옥’은 말 그대로 ‘땅 속 감옥’이다. 어둠 속에도 욕망과 물질이 남아있는 한 삶의 원리는 작동한다. 어둠의 세계를 다스리는 관청이 있고, 빛을 던지려는 자비의 힘도 동시에 상주한다. 어두운 세계의 관청이 ‘명부(冥府)’이다. ‘명’은 어둠이고, ‘부’는 관청이다. 명부에 중생 저마다의 죄업에 상응하는 10명의 대왕이 상주한다. 심판대에 세우고 죄업을 판가름하는 판관과 사자 등의 관료 체제도 갖춘다. 그 곳 지옥에서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중생구제를 하겠다는 갸륵한 대원을 세운 지장보살께서 어김없이 드나드신다. 한 손에 든 청정한 보주로 어리석은 어둠의 세계에 빛을 던지신다. 명부의 세계에 중생이 저지른 낱낱의 죄업을 벌하는 열 분의 대왕 ‘시왕(十王)’이 있고, 어둠에 광명을 놓는 ‘지장보살’도 발자국을 남기신다. 명부전에 지장전과 시왕전이 공존하고, 때론 혼재한다. 명부전의 풍경은 필연적으로 그로테스크하다. 삶 너머 어둠의 세계를 펼쳐 놓았다. 현실의 누구도 가지 않았지만 미래의 누구도 가야하는 세계다. 명부전엔 지옥 명부계를 주관하는 중심역량의 면면들이 결집해 있다. 평면미술이 아닌 입체조각의 집합으로 펼쳐진다. 입체의 집합성이 주는 감각은 직관만큼이나 뚜렷하고 직접적이다. 공간엔 종교적 엄숙성, 내밀함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마저 자아낸다. 조각에도 명부계의 집합성이 주는 묵직함과 엄숙함의 분위기가 배어있다. ‘명부전’은 지상에 구현한 명부세계의 불교건축이다. 지장전, 시왕전, 업경전 등 또 다른 이름의 편액을 달기도 한다. 거의 모든 전통사찰에서 빠짐없이 볼 수 있다. 명부전은 통상 중심 법당의 향우측에 배치한다. 명부전에 배치한 조각상 군상을 일러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로 통칭해서 부른다. 명부계의 조각상은 나무로도, 흙으로도, 돌로도 만든다.

 

보물로 지정한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의 사례는 전국에 걸쳐 10여 곳에 이른다. △목포 달성사 명부전(1565년, 19구, 수조각승 향엄스님) △여수 흥국사 무사전(1648년, 21구, 수화승 인균스님) △진주 청곡사 업경전(1657년, 21구, 수조각승 인영스님) △화순 쌍봉사 지장전(1667년, 21구, 수조각승 운혜스님) △강화 전등사 명부전(1636년, 31구, 수조각승 수연스님) △서울 화계사 명부전(1649년, 25구, 수조각승 영철) △남원 선원사 명부전(1610년과 1646년, 25구, 수조각승 원오와 인관스님) △고창 문수사 명부전(1654년, 11구, 수조각승 상유스님)) △광주 덕림사 명부전(1680년, 26구, 수조각승 색난스님) △김해 은하사 명부전(1687년, 21구, 수조각승 색난스님) △창녕 관룡사 명부전(1652년, 17구, 수조각승 응혜스님) 등이다. 이 중 남원 선원사 명부전의 경우 지장삼존상은 나무로 만든 목조이고, 시왕상은 흙으로 빚은 소조상이다. 제작 시기도 1610년과 1646년 두 차례에 걸쳐 제작하여 인상적이다.

명부전 존상 구성은 하나의 규범처럼 정례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장보살삼존상(3)과 십대왕(10), 귀왕(2), 판관(2), 사자(2), 인왕(2), 동자 등으로 한결같은 보편성을 보여준다. 인물구성과 조형 개체수가 통일적이다. 동자상을 빼면 명부전 조형구성은 21명으로 표준화된 경향이 뚜렷하다. 동자상의 제작 수에 따라 전체 조형 개체수가 들쑥날쑥하는 차이를 가진다. 조각의 구성과 조형원리는 대동소이하다. 그 중에서도 화순 쌍봉사 조각상들이 특별한 시선을 끈다. 무엇보다 시왕상 등의 옷에 베푼 문양과 채색에서 수준 높은 예술역량이 돋보인다.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170cm를 오르내리는 등신불 크기의 조각도 시원하다. 시왕상 조형에 베푼 풍부한 장식성, 섬세한 평면회화의 문양장식, 고색창연한 고전의 색채 등 두루 수작의 면모를 지녔다.

화순 쌍봉사 지장전 시왕상 일괄. 향좌측부터 제10, 제8, 제6, 제4, 제2. 제1, 제3, 제5, 제7, 제9대왕.

쌍봉사 지장전 지장보살 삼존상. 향좌측부터 무독귀왕-지장보살-도명존자.

향좌측부터 인왕(1)-귀왕(2)-판관(2)-사자(1)-인왕(1).

 

수조각승 운혜 등 11명 화원 참여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은 지장전에 봉안돼 있다. 지장전은 사역의 동쪽에 뚝 떨어져 있던 오백전 건물을 1978년 현재의 자리에 옮겨 중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장전에는 현재 20구의 조각상이 배치돼 있다. 지장삼존상과 시왕상의 배면에는 복장유물 납입의 흔적이 뚜렷하지만 남아있는 내부 복장물은 거의 없다. 1996년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지장전 존상들에 대한 복장조사를 했다. 대부분의 존상들이 이미 도난당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지장보살상에서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었고, 제3 송제대왕상 등 몇몇 시왕상에서도 후령통 등 복장유물 일부가 수습되었다. 발원문에 의하면 지장전 존상 조각 불사에는 수조각승 운혜스님을 비롯하여 인성, 도일, 경림 등 11명의 화원이 참여했다. 쇠못 등 목조각 이음새에 필요한 쇠 소모품을 공급하는 야장(冶匠)은 송인철부부가 맡았다. 운혜 스님은 17세기 중반 약 40여 년간 해남, 강진, 순천 등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불사에 참여한 조각승으로 알려진다. 조각승 운혜는 17세기 전반에 조각활동이 두드러졌던 수연 스님의 계보에 속한다. 수연-영철-운혜-경림으로 이어지는 계보의 중심에 위치한다. 조형이 크고 시원하며 중량감을 갖게 하는 조형 특성을 가진다. 쌍봉사 지장삼존 시왕상에서도 그러한 조각 특성이 드러난다. 장방형 한지에 기록한 발원문에는 아쉽게도 명부전 존상 조성연대를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쌍봉사 사적기〉에 1667년(현종 8년, 정미년)에 지장시왕상을 제작했다는 확실한 제작연대 기록이 남아있다. 〈쌍봉사 사적기〉에는 1667년 주지 선익화상이 명부전 지장시왕상을 조성하면서 시왕상 조성 목재는 인도에서, 채색 안료는 중국에서 수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이전 1637년에는 주지 수인 스님이 명부전을 세우고 지장시왕도를 제작, 봉안하였는데, 시왕상 존상은 그 후속 불사로 추정한다. 1667년이라는 제작연대를 확인함으로써 인근에 있는 유사한 지장보살상, 이를테면 해남 대흥사와 미황사, 강진 백련사, 순천 동화사와 정혜사 등의 지장보살상 조각의 편년 등을 추정할 수 있는 기년작으로서 위치하게 됐다.

 

지장보살삼존, 시왕상 등 23구 조성

 

지장보살상에서 수습한 발원문에 의하면 명부전에 조성한 존상은 모두 23구다. 발원문은 〈쌍봉사 신조성 지장보살 좌보처도명존자 우보처무독왕 시왕조성 안우복원(雙峯寺新造成地藏菩薩左補處道明尊者右補處無毒王十王造成安于伏願)〉의 긴 이름으로 시작한다. 발원문 속에 23구의 존상을 일일이 열거하고 시주자를 밝혀뒀다. 발원문에 기록한 존상 존명은 다음과 같다.

1)지장보살 삼존(3): 무독귀왕-지장보살-도명존자

 

2)시왕(10): 제1 진광대왕, 제2 초강대왕, 제3 송제대왕, 제4 오관대왕, 제5 염라대왕, 제6 변성대왕, 제7 태산대왕, 제8 평등대왕, 제9 도시대왕, 제10 오도전륜대왕

3)권속(8): 판관(2), 귀왕(2), 사자(2), 동자(2)

4)인왕(2): 아금강역사와 훔금강역사 (발원문에선 ‘좌우장군左右將軍’으로 표기)

권속의 사자, 동자도 다른 권속과 마찬가지로 2구씩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지장전에는 20구만 볼 수 있다. 사자 1구와 동자상 2구는 없다. 최근까지 한 구가 있던 동자상마저 행방이 묘연하다. 존상의 크기는 지장보살좌상 106cm, 도명존자 입상 140cm, 무독귀왕 입상 145cm, 시왕 평균 170cm, 판관 94cm, 111cm, 귀왕 119cm, 동자 68cm, 인왕 203cm 크기다. 다른 사찰 명부전 존상들의 아담한 크기에 비해 시왕과 인왕의 조각상을 두드러지게 크게 조각하여 무게감을 갖췄다.

지장전의 존상들은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장보살상은 좌상이고 시왕들은 용과 봉황으로 장식한 의자에 앉아 있는 의좌상(倚坐像), 나머지 존상들은 모두 서있는 입상이다. 지장보살은 녹색 민머리다. 지옥중생을 모두 구제하려는 결연한 서원의 뜻이 느껴진다. 신체는 당당하고 힘이 있으며 표정에서 결연한 의지가 묻어난다. 육환장이나 보주의 통상적인 지물 대신 아미타불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 수인은 엄지와 중지를 이은 하품중생인이고, 손바닥에는 조각승 고유의 낙관처럼 井자형 손금을 새겼다.

지장보살의 양 옆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시립해 있다. 두 손을 합장한 모습으로 좌협시로 시립한 도명존자는 분조가사를 입었다. 분조가사는 천 조각을 깁은 옷이다. 머리도 녹색 민머리다. 영락없는 지장보살의 차림 그대로다. 우협시 무독귀왕은 왕의 관을 쓰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가리개로 덮은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쌍봉사 지장전 조형에서 돋보이는 수작은 왕관을 쓴 열 분의 시왕 조각이다. 시왕들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홀수 1,3,5,7,9번 대왕들은 향우측인 동쪽에, 짝수 2,4,6,8,10번 대왕들은 향좌측인 서쪽에 배치했다. 현재는 10번 대왕을 공간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향우측 9번 대왕 곁에 배열하였지만 큰 틀의 배치원리는 유지했다. 다른 명부전 시왕상에 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성이 단연 뛰어나다. 첫째, 평균 170cm에 이르는 쾌적한 조형미. 둘째, 차분한 중간색 색조의 고색창연함. 셋째, 의자, 의상, 지물 등에 부착하거나 새긴 다채로운 장엄의 장식미. 넷째, 옷자락에 베푼 섬세한 문양의 아름다움 등이다. 특히 어깨와 무릎 부위, 요대, 길게 발목까지 늘어트린 옷고름 등에 새긴 새싹 넝쿨문과 같은 다채로운 길상과 용, 봉황, 사자 등 서수의 문양들이 눈길을 끈다. 신비로운 길상의 문양들은 대왕의 조형에 위신력과 권위, 거룩함을 부여한다. 문양마다 지극정성이 배어있다. 여러 부분을 따로 조각하여 쇠못, 거멀쇠 등으로 연결해서 완성한 접목조기법의 조형은 표면 장엄작업이 대단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어느 한 곳 빠트리지 않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정성껏 문양을 새기고 채색했다. 조각과 색채, 문양의 조화로움으로 완성한 명부전 시왕의 고풍스런 걸작으로 손색이 없다. 걸작의 위상에서 다른 사찰들의 시왕상 제작에 모본 역할을 하는 당위가 나온다.

 

▶ 한줄 요약
명부전에 배치한 조각상 군상을 일러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로 통칭해서 부른다. 명부계의 조각상은 나무로도, 흙으로도, 돌로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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