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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학의 한국산사 목조각 걸작 15. 업을 비추고, 업의 무게를 재다

작성자보명|작성시간26.06.22|조회수2 목록 댓글 0

 

노재학의 한국산사 목조각 걸작 15. 업을 비추고, 업의 무게를 재다

15. 합천 해인사 업경대와 업칭대

업경대, 지은 업 비추는 거울
업칭대, 업의 무게 재는 저울
현존하는 업경대 실물 60여 점
해인사엔 업경대, 업칭대 실물

업경대는 거울, 업칭대는 저울
중생은 무명의 무지로부터 온갖 갈애를 일으킨다. 몸과 입과 뜻으로 업을 짓고 쌓는다. 업은 범어로 ‘카르마(Karma)’라고 하고, 한자로는 ‘갈마(哲磨)’라 한다. 행하다, 짓는다는 뜻이다. 몸과 입, 마음으로 행한 모든 것이 업의 종자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업의 종자는 성장하고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한 과보가 뒤따른다. 선한 행은 선업으로, 악한 행은 악업으로 작동하여 업의 차별에 따라 지옥, 인간, 천(天) 등의 삼계육도를 윤회한다. 불교의 업에는 자신이 짓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자업자득, 혹은 윤회라는 엄정한 인과율의 원리가 내재해 있다.

이승은 지금 여기 삶의 수레바퀴이고, 저승은 저 너머 삶의 수레바퀴다. 저 너머 미지의 세계를 ‘명부(冥府)’라 부른다. 명부의 ‘명(冥)’은 ‘어둠’을 의미한다. 때론 아득한 어둠의 세계라는 의미로 ‘유명(幽冥)’이라 부르기도 한다. 망각의 강 ‘레테의 강’을 건너면 명부의 세계다. 명부에는 지옥세계를 관장하는 열 분의 대왕이 있다. 그 열 분이 명부전이나 지장전에 봉안한 시왕(十王)이다. 명부에 들면 거울과 저울 앞에 선다. 생전에 지은 죄를 낱낱이 비추이는 명부의 거울 시설을 ‘업경대(業鏡臺)’라 부른다. ‘업칭대(業秤臺)’는 죄의 무게를 재는 저울 시설이다. 칭(秤)은 ‘저울’의 의미다. 업경대는 죄업을 비추는 거울, 업칭대는 죄업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다. 업경대와 업칭대는 저승 명부에 있는 ‘거울과 저울’이다. 두 지물은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 등의 명부신앙 소의경전을 토대로 제작된 것으로 본다. <예수시왕생칠경>에 그 대목이 나온다. “다섯 번째 칠일에는 염라대왕 앞에 선다. 머리카락을 잡혀 머리 들어 업경을 보게 된다. 비로소 살아생전에 지은 죄를 분명히 안다(第五七日過閻羅王…策髮仰頭看業鏡 始知先世事分明).” 스스로 지은 업을 낱낱이 보게 되고, 엄정히 측정한 죄업의 무게에 따라 과보를 받게 됨을 일깨우고 있다. 업경대와 업칭대는 인과응보의 원리를 증거하는 시각적 조형물에 다름없다.

좌로부터 해인사 성보박물관의 업경대와 업칭대, 고운사 동자가 쥔 업칭대.

수다사 명부전 시왕도의 제5염라대왕도 업경대와 제1진광대왕도 업칭대 부분.

왼쪽부터 동화사 업경대, 표충사 명부전 업경대, 고운사 불영패, 직지사 대웅전 명경대.

 

유일한 실물, 해인사 업경대
업경대와 업칭대는 명부전의 시왕도 불화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열 분의 시왕 세계를 그린 시왕도 중에서 제5 염라대왕도와 제9 도시대왕도에 실감나게 표현돼 있다. 통상 업경대는 제5 염라대왕도에, 업칭대는 제9 도시대왕도에서 볼 수 있다. 구미 수다사 명부전의 경우처럼 제1 진광대왕도에 업칭대를 그려두는 특별한 사례도 있다. 업경대는 실물로 60여 점 현존한다. 그에 비해 현존하는 업칭대는 극히 드물다. 해인사와 고운사에 각 한 점씩, 두 점이 전한다. 그마저 고운사 업칭대는 명부전의 동자가 손에 든 간단한 저울 형식이다. 고유한 업칭대는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전시 중인 업칭대가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해인사 성보박물관에는 목조 업경대와 업칭대가 동시에 진열돼 있다. 두 실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경우다. 현재 업경대와 업칭대는 ‘합천 해인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로 묶어 도유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 명부전의 온전한 모습을 구현한 총 33구 목조각의 구성으로 평가한 것이다. 해인사 시왕상 일괄은 1673년 조각승 자수(自修)가 제작한 것으로 확인되지만 업경대와 업칭대가 그 때에 제작한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해인사 업경대와 업칭대는 두 성보유물의 실물 유일성,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의 온전한 집합 속에 조명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시왕상 일괄에 업경대와 업칭대가 포함된 경우는 전례가 없다. 해인사 업경대의 크기는 높이 100.4cm, 길이 66cm이고, 업칭대의 크기는 높이 159cm, 길이 81.4cm이다.

업경대의 전형은 삼단 형식이다. 받침대, 간주목, 화염문 속의 거울 등의 삼단 구성으로 조형이 비교적 간단하고 장식도 단순하다. 기단 형식이나 거울 장식 등에서 저마다 개성을 가진다. 시왕도의 제5 염라대왕도 속의 업경대와 실물 목조각 업경대를 두루 살펴보면 네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사자좌 받침의 업경대: 전등사, 불갑사, 동화사, 청곡사, 해인사 등 목조 업경대에서 두루 나타나는 보편 양식이다. 거울 둘레는 붉은 화염문으로 장식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밀양 표충사 명부전의 업경대에선 연화좌 위의 두 황룡과 청룡이 받침대와 간주목(竿柱木) 역할을 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제작했다. △둘째, 단순한 2단 기단에 간주목을 세운 업경대: 시왕도 불화에서 보편적으로 묘사하는 형식이다. 기림사, 옥천사, 청곡사, 수다사, 산청 대원사 시왕도 등에서 두루 볼 수 있다. 특히 수다사 시왕도 속의 업경대에는 선악 그대로를 비춰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는 ‘선악소현업경대(善惡昭現業鏡臺)’라는 방제를 적어 눈길을 끈다. 실물로는 김천 직지사 대웅전 불단 위에 안치한 업경대가 대표적이다. △셋째, 수미산이나 연화좌 형식의 받침에 광배를 갖춘 업경대: 직지사, 월정사, 고운사, 예천 용문사 등의 업경대. △넷째, 타원형 틀에 직사각형 거울을 끼운 업경대: 19세기말~20세기에 조성한 근현대 서울·경기지역 시왕도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업경대 형식이다.

명경대, 관상 통한 청정수행 법구
업경대를 두루 살펴볼 때 시왕도 속의 업경대와 실물 목조각의 업경대는 사뭇 다른 경향을 띤다. 시왕도 속의 업경대는 2단의 기단 위에 세로로 긴 수미좌 형식의 간주목 연화좌를 올리고 둥근 거울을 결합한 형태가 보편적 전형으로 나타난다. 목조 업경대와는 달리 시왕도 속에선 대부분 거울 둘레에 화염문을 장식하지 않는 경향을 가진다. 또한 업경대의 거울 표면엔 빠짐없이 소를 도살하는 장면을 그려둔다. 그에 비해 실물로 전해지는 목조 업경대는 장식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대체로 거울 둘레에 빠짐없이 화염문을 장식하고, 받침대 조형에서도 사자, 용, 용머리 가진 거북, 수미산 형상 등 다양한 변주를 보인다. 특히 위에서 소개한 셋째 형식의 목조 업경대는 특별히 눈길을 끈다.

업경대는 표충사 명부전, 남양주 흥국사 시왕전에서의 배치처럼 통상 명부전의 불전 장엄물로 간주한다. 그런데 몇몇 업경대의 경우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부산 범어사 대웅전,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김천 직지사 대웅전에서처럼 법당장엄 목조각 형식으로 중심 불전에 배치하기도 한다. 왜 명부전이 아닌 법당에 업경대가 있을까? 이들은 업경대 조형이 죄업을 비추는 기능뿐만 아니라 다른 용도로도 제작하였음을 추정하게 한다. 앞서 세 번째 형태로 분류한 용문사, 고운사, 월정사, 직지사 등 일련의 업경은 청정한 마음, 혹은 불성을 비추이는 거울로 제작한 또 다른 형식으로 이해된다. 이들 업경대는 통상의 업경대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수미산, 혹은 연화좌 받침 위에 거울을 올리고 거울 둘레에는 불상의 거신형 광배를 장식하는 파격을 보인다. 표충사, 고운사 업경대 등의 바닥면 명문에서는 ‘명경대(明鏡臺)’, 혹은 ‘불영패(佛影牌)’라 명명하고, 동국대 중앙도서관 소장 <준제정업>의 ‘불모준제상’ 도판 그림 속 업경대에는 ‘경단(鏡壇)’이라고 표현하고 있어 주목된다. ‘명경’과 ‘불영’, ‘준제보살’은 공통적인 의미로 상통한다. 그것은 ‘청정(淸淨)’이다. ‘준제’도 청정을 뜻하는 범어의 한자음이다. 청정심과 밝은 마음(明心)이 모든 부처님을 낳은 어머니다. 청정심을 닦아야 거울에 부처님이 비추인다. 명경대는 업경대와 형태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지만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 명경대는 관상을 통한 수행 법구로 봐야 한다. 진언과 결합한 밀교적 성격이 강하다. 부처님이 나투시는 명경이므로 거울에 광배를 장엄하는 것은 당연하다. 업경대를 대웅전 같은 중심 불전에 봉안해 둔 이유이기도 하다.

업칭대의 눈금은 법의 엄정한 잣대
국내 유일의 업칭대인 해인사 업칭대는 청색 사자가 등에 지고 있는 형태다. 사자 등에 연잎을 말안장처럼 얹고, 그 위에 저울의 무게중심을 지탱하는 수직축을 세웠다. 수직축은 홍살문의 창살처럼 생겼다. 수직축 상단에 막대 추 저울 모양으로 수평 막대를 끼워 넣었다. 수평 막대 양 끝엔 원래 저울추와 무게를 잴 개체를 얹는 청동접시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는 접시 매단 끈과 수평막대만 남아 있다. 업칭대 고유의 형상은 여러 시왕도의 제9 도시대왕도에 잘 묘사돼 있다. 앞서 밝혔듯이 수다사 시왕도에선 특이하게도 제1 진광대왕도에 업칭대를 그려뒀다. 업칭대 상단의 붉은 방제란에 ‘권평두칭(權平斗秤)’을 새겼다. 엄정하게 재는 저울이라는 의미다. 수평 저울막대엔 눈금이 선명하다. 기림사나 옥천사, 서울 흥천사, 온양 민속박물관 등의 시왕도 속 업칭대에도 막대눈금이 선명하다. 선연한 눈금은 법의 엄격한 잣대를 의미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물리적 질량 측정의 엄격함과 신중함을 대변한다. 시왕도 속 업의 무게를 재는 장면에는 대개 4~5명의 구성원이 등장한다. 판관 2~3명, 보조동자 2명 등이다. 옥천사 시왕도 속 업칭도에선 긴장감마저 흐른다. 3명의 판관이 살피는 눈길과 손길이 예리하다. 업과 운명을 심판하는 엄정성이 불화 내면에 미묘하게 흐른다.

해인사 업경대와 업칭대 조형의 본질은 권선징악의 일깨움에 있다. 업경대와 업칭대 조형은 과거 일곱 부처님께서 한 결 같이 가르치신 ‘칠불통계(七佛通戒)’를 환기시켜 준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의 가르침이다. 어떤 악도 행하지 마라. 두루 선을 받들어 행하라. 그리고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라. 법의 눈금은 만고에 흔들림이 없다.

▶ 한줄 요약
생전에 지은 죄를 낱낱이 비추이는 명부의 거울 시설을 ‘업경대(業鏡臺)’라 부른다. ‘업칭대(業秤臺)’는 죄의 무게를 재는 저울 시설이다. 업경대와 업칭대는 저승 명부에 있는 ‘거울과 저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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