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조선시대 불상 - <18> 예산 수덕사 삼세불상
조각승 수연스님이 제작한 마지막 불상
17세기 전반 대표하는 불교 조각
물결 주름 등 수연파 양식 보여줘
풍국사에서 귀정사, 다시 수덕사로
만공스님 중창 불사와 인연 깊어
▲예산 수덕사 삼세불상과 복장물. 아래사진은 만공스님 진영과 탑.
수덕사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절로 조계종 제7교구본사이다. 언제 창건되었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백제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숭산(德崇山) 수덕사(修德寺)는 산과 절 이름이 ‘덕(德)’과 관련되어 있는데, 덕숭산은 ‘덕을 숭상하는 산’이며 수덕사는 ‘덕을 닦는 절’이다. 마을 이름도 덕산(德山)이니 온통 덕과 인연이 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국내외 옛 자료가 전하고 있는 백제의 절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절은 수덕사 뿐이다. 수덕사에 관한 옛 글은 백제 혜현스님이 머물면서 <법화경>을 외우고 <삼론>을 강의했다고 전한다. 멀리 사방에서 그의 학풍을 흠모해 강당문 밖에 신 벗을 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으로 가득찼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듯 현재 수덕사의 중심 불전은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모신 대웅전이다. 조선시대 수덕사에 관한 자료는 중종 25년(1530년)에 증보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佛宇條)’에 ‘수덕사는 덕숭산에 있으며 절에는 취적루와 불운루 두 누각이 있다’고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근세 들어 수덕사에서는 두 명의 고승을 배출했다. 한 분은 경허스님이고 또 한분은 만공월면스님(1871~1946)이다. 수덕사가 오랜 세월 간직해왔던 덕숭도량의 덕성이 다시 피어나게 된 것은 만공스님 덕분이다. 그는 14세 때 천장암에서 경허스님에게 사미계를 받은 후 1905년 봄에 금선대를 지어 덕숭산에 머물면서 많은 후학을 지도하였고, 수덕사와 정혜사 그리고 견성암을 중창해 덕숭산문의 도량을 새롭게 하였다.
수덕사의 주불전인 대웅전은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전면적으로 해체하여 수리되었다. 이때 고려 후기인 1308년에 건축되었다는 확실한 건축연대를 알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임이 밝혀졌다. 대웅전 건물은 고려시대에 지어졌지만 그 안의 삼세불상은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금선대에는 만공스님 초상화인 진영을 모신 진영각이 있고 정혜사 근처에는 만공스님의 사리탑인 ‘만공탑’이 있다. 이 탑은 1946년에 입적한 만공스님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1947년에 세운 것으로 전통 방식의 승탑과는 전혀 다른 근대적인 기념탑이다. 육각의 지대석 위에 원형의 둥근 구슬을 올렸는데, 일제강점기 왜색불교를 타파하고 한국불교의 자주성과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한 만공스님의 사상과 불교 교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탑이다.
수덕사 대웅전 삼세불상은 1639년(인조 17)에 남원 풍국사에서 조성한 것으로 석가여래·약사여래·아미타여래로 구성되었다. 남원 만행산 풍국사의 대웅전과 보광전의 불상으로 조성했는데 어느 땐가 귀정사로 이운되었지만 그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다. 1938년 11월14일자 ‘조선총독부관보’에 남원 귀정사 주지인 배정순 스님이 수덕사에 삼세불상을 양도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덕사 대웅전의 해체 수리 작업이 끝나면서 남원 귀정사에서 수덕사로 옮겨진 것을 알 수 있다. 수덕사에 주석하고 있던 만공스님에 의해 폐사 상태의 귀정사의 불상이 수덕사로 이운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 삼세불상에서는 2003년 개금할 때 많은 양의 복장품이 확인되었다. 불상의 복장유물로는 조성발원문을 비롯한 <법화경> 등 전적류와 후령통, 오색실, 복식 등이 있다. 세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은 불상의 조성 배경과 조각승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불상조성기에는 먼저 봉안 장소와 불상의 명칭이 보인다. 이에 따르면 석가여래상과 약사여래상은 풍국사 대웅전에, 아미타여래상은 풍국사 보광전에 모셔졌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세 불상이 한 세트로 조성되었다는 것은 약사여래상과 아미타여래상의 크기가 같고, 좌우대칭을 이루는 수인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불상의 원 봉안 사찰이었던 ‘만행산 풍국사’와 수덕사로 옮겨지기 전 봉안처였던 ‘만행산 귀정사’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풍국사는 아마도 ‘풍곡사(風谷寺)’였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남원의 읍지인 <용성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용성지>에는 풍곡사는 만행산에 있으며 법당, 정루, 선당, 승당, 관음전, 상실, 부도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1752년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여겨지는 <용성지>의 기록으로 보아 풍국사에서 귀정사로 불상이 옮겨진 것은 18세기 이후로 여겨진다.
석가여래상의 발원문에는 불상 조성의 목적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있다. “어려서 출가하여 삼교(三敎)에 통달하고 청정한 수행으로 항상 정법을 설해 사람들로 하여금 듣게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마음 전하기를 가섭존자와 같이 하고, 부처님 말씀 전하기를 아난존자와 같이하며, 대자대비는 관세음보살처럼 하며, 큰 서원과 원력은 지장보살과 같이 지녀, 삼악도를 모두 없애고자 합니다. 모두 정토에 왕생해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함께 깨달음을 얻어 세상이 다할 때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수덕사 대웅전 삼세불상 조성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시주물의 종류이다. 이 가운데 대좌 시주자를 통해서는 불상 조성 때 대좌까지 함께 조성되었던 사실을, 세 불상의 백호 시주자를 통해서는 보석으로 백호를 별도로 삽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특히 부처님의 얼굴을 개금하는데 시주한 면금(面金) 시주자가 있다.
세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은 수연스님, 영철스님, 성민스님, 사인스님, 신관스님, 명혜스님, 인종스님 등 모두 7명이다. 수조각승 수연스님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유파의 수장으로 수연파 양식의 계승자인 영철스님을 거쳐 17세기 후반에는 운혜스님에 이르러 수연파 불상 양식은 꽃을 피운다. 그는 1615년 김제 금산사의 칠성각 독성상 조성에 보조 조각승으로 참여한 이후 1618년 서천 봉서사 아미타삼존상 조성부터 1639년 수덕사 삼세불상까지 수조각승로서 자신의 유파를 이끌었다.
수연스님은 전북·충남·경기도의 서쪽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그가 수조각승으로 참여한 작품은 서천 봉서사 아미타삼존상(1618년), 강화 전등사 대웅전 삼세불상(1623년), 나주 다보사 석가삼존상 및 16나한상(1625년), 익산 숭림사 영원전 지장보살삼존상과 명부 권속(1634년), 강화 전등사 지장보살삼존상과 명부 권속(1636년), 예산 수덕사 대웅전 삼세불상(1639년) 등이다.
수덕사 삼세불상은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등을 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머리와 상반신을 앞으로 숙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시대 부처님이 이처럼 등을 굽히고 있는 것은 억불숭유 정책에서 핍박받는 불교계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는 조선 후기 2층 불전과 높은 불단에 부처님을 봉안하면서 예배자는 아래에서 위로 부처님을 올려봐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구도의 불상을 조성한 것이다.
수연스님이 조성한 불상의 특징은 먼저 상호에 잘 나타나 있다. 눈썹에서 위로 한참 올라간 머리칼 표현은 이마를 더욱 넓게 보이게 한다. 두 귀가 턱 밑까지 내려와 다소 긴 목을 효과적으로 보이게 하는 등 전체적으로 차분한 인상을 준다. 머리와 육계를 구분하지 않고 중앙에는 타원형의 중앙계주를, 정상에는 삼각형의 정상계주를 표현하고 있다.
1635년에 무염스님이 조성한 영광 불갑사 삼세불상과 1639년에 청헌스님이 조성한 하동 쌍계사 석가불상과 비교해 상체가 다소 세장한 느낌을 준다. 또한 무릎 아래 파도처럼 물결치는 끝단의 옷 주름 표현은 수연파의 큰 특징이다. 중앙의 석가여래는 오른쪽 어깨를 살짝 가린 변형 우견편단을 하고 좌우 두 불상이 통견을 취한 것은 이 시대 다른 불상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수덕사 대웅전 삼세불상은 17세기 전반기 대표적인 불교조각이면서 조각승 수연스님의 기년명 마지막 작품으로 수연파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1639년에 남원 만행산 풍국사에서 조성되어 인근에 있던 귀정사로 이안되었으며, 1938년에 수덕사 대웅전으로 옮겨진 사실을 통해 불상의 이동을 고찰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불상의 이동이 근대의 고승 만공스님에 의한 수덕사 중창 불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