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한 주 썩은 물을 먹고 고생했습니다. 지난 주 저희 집에 전기에 문제가 생겼고, 문제가 생기는 고치는 과정에서 시간이 좀 소요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냉장고에 컵으로 된 생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집에 퇴근한 저는 목이 말라 그것을 빨댈 꽂아서 입으로 한 모금 쭉 들이켰는데 무엇인가 걸죽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미 물은 거의 넘어가고, 걸죽하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입안에서 찾아보았지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썩은 물은 제 뱃속에서 생명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썩은 생명력......, 그 생명력으로 내 몸을 서서히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이 수요일 오후였습니다.
썩은 물 한 모금이 저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썩은 물에 고생한 내 몸은 밤새도록 깨끗한 생수를 원했고, 그렇게 제 몸은 정결의 과정을 겪으며 오늘 이정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썩은 빵 한 덩이의 능력......,
썩은 주스 한모금의 폭발력......,
썩은 물 한 모금의 위력은 참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한 피해는 막대한 것이었습니다. 수요일은 겨우 버티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 날 하루는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지 못했고, 그 날은 제 집에서 다닌 곳이라고 화장실만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 다음날 하루는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화장실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한국을 갔다 왔을 것입니다. 제가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데, 그 이튼 날은 얼마나 생수를 마시고 싶던지요?
진짜 죄송합니다. 우리 오늘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해보죠? 나는 썩은 존재가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손대는 순간 누군가 다치는 그런 존재, 누군가를 폭발하게 그런 사람은 아닌지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설교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30절). “죽음에서 살리셨다.”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썩음을 당하게 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고, 그 이름을 힘입어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썩을 본재인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 분은 생수셨고, 우리에게는 생명의 떡이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먹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같이 나누어 보겠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셨습니다.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으키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신 것입니다. 그렇게 살리신 것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신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이 땅에 보내신 다는 것에 대한 약속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33절을 다시 한번 같이 볼까요?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33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심으로 그 분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세상에 알리신 것이지요.
우리가 읽는 것은 한 문장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살리시기 위하여 죽으셔야 했습니다. 생사람이 죽기 위하여서는 엄청난 고생이 뒤따랐습니다. 희생입니다. 그 고난을 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써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 낮아짐의 섬김입니다.
이 과정을 겪은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의 과정을 통하여 되어지는 것이지요.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예수 그리스도, 이제 그 분은 영원히 썩음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성경을 계속해서 볼까요? 먼저 34절입니다.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이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35절을 볼까요?
[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35절)라고 말씀합니다.
36절을 보겠습니다.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은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은 아무리 중요한 사람이도, 유능한 사람이라도, 인정받는 사람이라도, 믿음이 사람이라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사람은 죽은 다는 것이지요. 썩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7절에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으니”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은 썩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누워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썩음을 당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썩는 다는 것은 생명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것입니다. 죽으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썩음을 당하는 것은 죽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썩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썩는 순간 더 이상 그 존재는 남아 있는 않습니다. 썩으면 그저 먼지가 되는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썩음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살아 계셨다는 것입니다.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죽은 분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분입니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게 되었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희망과 소망 되신 것입니다.
죄의 문제
사도 바울의 설교를 끝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38절입니다. 같이 볼까요?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38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전재 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죄로 우리는 썩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썩었습니다. 정신이 썩었습니다. 생각이 썩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에 대하여 어려서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하므로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겉은 그럴듯합니다. 타고 다니는 차도 그럴듯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속, 내 마음, 내 생각, 내 중심,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썩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우리를 잘 못 건드리면 뒤집어 져야 합니다. 우라의 입에서 나오는 악한 말을 뒤집어 서야 합니다. 한 대 때리면 두 대 얻어 맞아야 하는 위험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의 썩은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습니다.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사람을 병신 만들고, 나쁜 사람 만들고, 그래서 한 주일만 지나서 만나면 달라지는 사람들의 눈빛, 치사합니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야기 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합니다. 달라지는 사람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랑 아무 관게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달라지는 눈빛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중심이 썩어서 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판단 활 수 없는 것이지요.
내 속이 썩어 가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더 많은 것으로 나를 치장합니다. 더 화려하고 비싼 옷을 입고, 더 비싼 차를 타고, 더 멋있는 척, 더 고상한 척, 더 위대한 척 합니다. 더 부드러운 척, 그런 것을 보여 줌으로 내 속의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내 옆의 사람이나 나는, 다 똑같습니다. 그 마음의 시작은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죄가 있기 때문에, 내가 이기지 못하는 죄가 있기 때문에 우리 모든 인간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잘 보이려고 무리하지 마십시오. 저에게 잘 보이려 하지 마십시오. 무리하시다가 다칩니다.
이 사람을 힘입어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이 생겼습니다. 우리의 썩어질 성품이 은헤를 받은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은 것이지요.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바로 하나님의 아들, 썩음을 당하지 않으신 그 분, 그 분으로 힘입어 죄사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분을 힘입으면 우리 속에서 죄의 역사들이 멈추어 지게 됩니다.
그래서 39절에게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썩을 인간에서,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챤 이라는 이름의 명품의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챤" , "기독교인"이것은 명품 중에 명품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게서 내 인생을 멸품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 거룩한 사람으로 의로운 인간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구원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내 아들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명품으로 이름을, 가문의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삶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셔서, 그 고생을 하게하셨습니다. 모질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 아픔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 모욕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의롭게 되었다면 그렇다면 우리 속에 이제는 우리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고생하셔서 우리응 명품 삼아 주셨는데 짝퉁처럼 행세하면 되겠습니까? 사이빛럼 행세하면 되겠습니까?
에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회복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으로 인해서 회복되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한 분 때문에 새롭게 조명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형제 복지원, 그리고 원장이신 어떤 분, 500명이상 암매장한 무서운 곳, 그런데 말이죠. 그 분이 교회의 장로님입니다. 얼마나 거룩했겠습니까? 자신의 치부를 가르기 위하여 얼마나 헌금을 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죄된 생각을 멈추고, 죄된 행동을 멈추고, 그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서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은 바로 예수님을 힘입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게 어떤 근원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내게 어떤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서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서 겨우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잘 난 것 없이, 다 그저 그렇게 하나님께서 봐 주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겠습니까? 그저 봐주시니까 되는 사람끼리 서로 봐주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죄 사함을 받으며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다는 것, 명품의 이름을 받은 것이죠.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과정을 겪은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아들로 인증 받는 것, 그것은 이런 고난을 통과하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성품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통과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명목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순간,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을 내려놓는 순간, 고난의 길이지만 회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묵묵히 가는 순간, 비로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소의 삶이란 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고 인증될 때에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명품이란 이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결같은 품격과 질이 따를 때에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소의 삶은 명품 중에 명품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명품의 가치를 보여 주십시오. 품격의 다름을 보여 주시고, 삶의 질이 다름을 보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