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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광양에서는(민수기 2:1-2, 9:15-23) 반둥아름다운 교회/ 박성훈 목사

작성자박성훈 목사|작성시간17.08.06|조회수61 목록 댓글 0

지는 주 25일이 제가 이곳에 온지 1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5, 5년 단위로 뚝 끊으면 15년이라는 시간이 의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능력의 종 박성훈 담임 목사 성역 15년 축하 감사 예배

 

이런 것들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깐, 15년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제가 한 일이 없어요. 제가 열정적으로 전도한 것도 아니고, 제가 심방에 목숨 걸은 것도 아니고......, 물론 이런 것들은 제 목회관으로 인한 것인데요. 그렇습니다. 제가 한 것이 없는데......, 그래서 성역 감사 예배는 제가 포기 했습니다.

 

이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자축하기로 말입니다. 카페에 가서 저 혼자 맛있는 것을 시켜서 먹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가 있었다면 두명이 같이 했겠지만......,

 

쓸쓸해 보이십니까? 청승 맞이 보이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하, 가장 화려한 축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축입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본인입니다.

 

스스로 조용히 인도네시아 15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25월에 35일로 이곳에 다니러 오는 것을 비롯해서, 15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의 15, 그 동안 함께 해 주셨던 여러분들, 떠난 분들의 얼굴도 생각이 나고......, 나와 아내, 은영이와 민영......, 지금의 모습, 오늘의 내 모습과 교회,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스스로를 격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네시아에서 내게 주신 목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 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지난 15,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저에게는 평탄한 길만은 아니었습니다. 광야 길도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셨고,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가 있습니다.

 

가끔 저는 생각해 봅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주시고, 광야 길을 주셨을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왜 광야 길을 걸어야 했을까요? 교육의 목적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이 길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무엇을 교육하시기 원하셨을까요?

 

우리가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도 동일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광야 길에 있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같이 나누어 보겠습니다.

자기 조상의 기호 곁에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내는 동안 천막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천막을 치는 원리가 있었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그들은 이곳에 진을 쳐야 했습니다. “자기 진영의 군기와 자기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치고 싶은 곳에 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진영, 자기 가문의 깃발 아래 진을 쳐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의 진영이고, 내 가문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을 칠 때에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방으로 치라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고 말씀합니다.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면, 회막을 중심으로 동, , , 북에 진을 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작게는 가문의 깃발입니다. 좀 더 넓게는 지파의 깃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모두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그 하나님을 핵으로, 그 하나님 주변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좁게는 지파 내에서, 가문 내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넓게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 속에서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공동체 속에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모세가 중심이 아닙니다. 아론도 중심이 아닙니다. 목사가 중심이 아닙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그 중심에 있고, 모든 사람들은 그 분을 바라보며 그렇게 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체들의 손을 서로 잡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그 진을 치는 원리는 이렇습니다. 2절을 다시 한 번 볼까요?

 

[2]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진을 회막을 향하여 치는 것입니다.

 

진을 필요한대로, 편리한대로 치면 되는데,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도록 하셨을까요? 진을 회막을 향하여 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우리 출애굽기 4038절을 보겠습니다.

 

(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진을 회막을 향하여 치면 아침에 일어나서 진 밖으로 나섭니다. 이때에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늘을 보게 되고, 멀리 보게 됩니다. 그러면 성막 위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는 것을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하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할 수밖에 없는 일은 하나님과의 눈맞춤 하는 것입니다.

 

나가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면, 눈을 멀리 향하면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확인

그렇습니다. 그들은 일어나면서 바로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제도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란 바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인하고, 그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데 하루의 시작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 하나님 앞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꼭 해야 하는 시간 아닐까요?

 

이런 만남 없이,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확인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 그 삶이 어떠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침을 적당히 시작하지 마십시다. 아침이 너무 바쁘지요, 아이들 학교에 보내야 하고, 식사 준비해야 하고, 물론 그 일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인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시작해야 그날 하루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살지 않겠습니까?

 

매 일의 아침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는 인생하고, 바쁘게 일어나서 바쁘게 식사 준비하고, 바쁘게 출근하고......, 그렇게 사는 가운데 어찌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할 수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은

그들이 바로 보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우리 민수기 918절의 말씀을 같이 볼가요?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그들이 하나님을 띠라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왔습니다. 하나님이 가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오늘,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땅은, 하나님께서 있게 하신 땅입니다. 그들이 지금 진을 치고 있는 그곳에 있는 이유와 원인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보고 있는 이 순간이,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를 하나님 없이는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있는 그들을 찾아 오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고, 이곳에 오기까지 인도하셨는데, 지금 그 삶의 위치는 하나님이 주셨는데 어찌 하나님 없이 그 삶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요셉의 삶을 보면, 하나님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의 삶도 하나님이 하시 것입니다. 다윗도 그렇습니다.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의 위치는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면서 감사하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삶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내 삶의 위치에서, 내 삶을 만드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과 함께 또 다른 위치로 이동해 주실 것을 바라고 소망하며, 그 일에 대하여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길을 가기 위하여 다양한 것을 고려합니다. 많은 길 중에서 적당한 길을 선택합니다. 밀리지 않는 길, 험하지 않는 길, 이왕이면 풍경이 좋은 길, 적당한 먹거리와 쉴수 있느 ......,

 

날씨를 고려야 합니다. 좋은 날씨에 가야 합니다. 구질구질 한 날씨면 다니기 힘듭니다.

 

우리의 건강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충분히 다닐만한 건간이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자신의 좋은 생각과 합리적으로 생각되는 모든 자기의 주관과 의견과 생각을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앞에서 버리는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내 생각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 관념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가장 좋은 길을 버리는 것입니다. 가장 편한 길을 버리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좋은 길을 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지요. 아무리 좋은 내 생각이라고 하나님 말슴 앞에서 버리는 훈련을 하는 곳입니다.

 

좋은 길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참 좋겠지요. 그러나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는 길을 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아침 마다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시며 살아가십시오. 오늘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 이 순간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며 살아가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가야할 길은 좋은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아름다운 교회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서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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