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 고인이 되신 노무현 대통령이 꿈꿨던 세상입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고 첫 대정부 질문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먹고, 입고, 잠자는 것을 똑같이 누릴 수 있는 세상, 이것이 힘들면 적어도 억울하고 원통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없는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분의 공과를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 평가는 다 각자의 못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평가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가 시작한 사람 사는 세상은 잘 살고 못사는 것을 떠나서 우리 나라가 꼭 이루어야할 것들이지요. 질은 다르다고 하여도, 누구나 대한민국에 태어나면 돈이 없어서 교육을 못 받는 그런 일이 없고, 먹고 입는 질은 다를 수있지만 적어도 이것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이 없는 세상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세상이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세상도 바로 그런 세상입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것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편적인을 다 모든 사람들이 다 누리고 사는 세상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저도“사람 사는 세상”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꿈꾸는 세상을 매 주일 여러분과 함게 꿈꾸며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 사는 세상만을 꿈꾸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사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보다 더욱 제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강한 열정과 꿈은 “성도 사는 세상”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위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 성도가 살아야 할 삶의 본질을 가진 교회로써의 꿈을 가지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정점은 아니라고 해도 근사 값이라도 이루고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양도 생가하지만 보다 더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질입니다. 질로 가고 싶습니다.
비록 그것이 죄 있는 인간들이기에 이룰 수없는 것이라고 해도, 이런 소망을 향한 끝임 없이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동일한 목적을 가진 교회를 순다족을 위하여 세우고 싶습니다. 누구나 만족하는 그런 교회 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머리 끄덕여 동의 할 수 있는 그런 교회이기를 소원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교회가 있다면 그교가 바로 아름다운 교회, 우리교회 이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셨던 바로 그 교회가, 이 땅에 출현했다면 우리 아름다운 교회가 바로 그 교회이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가 바로 아름다운교회이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욕심일까요? 여러분! 욕심이면 어떻습니까? 커도 좋고 작아도 좋지만, 크고 작고는 문제가 않되지만 좋은 교회의 모습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를 희생하면서라도 이루고 싶은 그런 것입니다.
지난번에 보았던 구절이지만 우리 근사 값을 한번 찾아보고 그것을 우리의 목표로 삶고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같이 누리고자 합니다.
가르침과 기도와 기사 및 표적
오늘 본문은 세상의 많은 교회들이 꿈꾸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일명 "사도행전적인 교회"라고 하지요. 우리도 여기서 지난 번 교회생활이라는 것은 삶이라는 것이라고 말씀렸지요. 기억나십니가? 구호가 아니라, 표어가 나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나라 삶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의 삶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는 우리는 세상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삶의 기준은 무엇일가요?
(42)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그 기준은 이런 것들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것", "기도하는 것",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것"이런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성도들이 사는 세상에 있는 것들이고, 이런 성도들이 사는 세상을 우리는 교회라고 합니다.
기도 없는 교회, 가르침이 없는 교회, 기적과 표적을 가지고 있지는 목하는 교회, 과연 그것이 교회일까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도우심을 손길을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는 삶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기적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말슴을 붙잡고, 그 말씀 위에서 살아갈 때에 말슴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을 사랑하는 교회가, 그 말씀을 신회하고 그 말씀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어야하겠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과 살아계심을 경험한다면 우리의 입에서 저절로 찬양이 흘러나오지 않겠습니까?
이런 영적인 것이 없는 교회는 마른 뼈다귀 같은 교회요, 그런 교회에서 무슨 은혜가 있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경험이 있기에 그 다음의 일들도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다 함께 있어
교회는 “다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44절을 볼가요?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46절을 볼까요?
(46)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모이기를 힘쓰고”(46절)라고 말함으로 이것을 더욱 뒷받침합니다. 교회라는 것은 “사람의 모임”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한 사람들의 모입니다. 모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모여야 기도도하고, 모여야 공부도하지요,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하여 모여야 하는데 모이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모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이는 것이 쉼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힘쓰다”(46절)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지요. 저는 “힘쓰다”라는 단어를 “노력하다”라고 뜻으로 또한 “우선하다”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모였을 때에 교제를 할 수 있는 것이요, 모였을 때에 기도할 수 있는 것이요, 모였을 때에 나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간이 나면 모이는 것이 아니라 힘써서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포기하고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임이 교회의 핵심입니다. 물론 우리가 흩어져서 하는 일도 있지만 우리는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임에 힘쓰십시다. 모이지 않아서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통용과 나눔
우리가 모여서 무엇을 합니까? 모였을 떼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단 하나 입니다. 45절의 말슴을 볼까요?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45절)라고 말씀합니다. 4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라고 말씀합니다. 통용하는 것은 내것을 내어 놓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5절에서 말슴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였을 때에 생각하는 것은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받을 것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나눠 줄 것만 생각하고 나눠주면 그 다음은 나도 저절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누구에게 나눠 줍니까? 나누어만 주면 내 앞에도 내게 떨어지는 것이 있는 것이지요.
나눠주면 내 삶이 행복해 집니다. 나눠 주면 기쁨이 생깁니다. 나눠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밝아 집니다. 나눠주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매주일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오시면 어덯겠습니까? 감사 주십니다.
지난번에 이웃을 향한 나눔을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주지 않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약점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못하는 것만 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줄 것만 생각하고 나누십시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46절을 보겠습니다.
(46)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기븜이 되어야 합니다. 기븜이 되지 않으면 하지 마십시오. 어던 일을 기쁨으로 하십시오. 그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순전한 마음이란 어던 마음입니까? 순전하다는 것은 단순하게 하나의 마음만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복선을 깔지 아노는 것입니다. 또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는 모습 그래도, 행하는 모습 그대로, 단순하게 생각하십시다. 단순하게 접근하십시다.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고, 속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기쁨과 깨끗한마음,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성도 사는 세상
“성도 사는 세상”이런 세상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가지고 교회는 바로 이런 교회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런 교회를 위하여 목회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서로 만나면 기쁨이 되는 세상을 만드십시다. 만나면 위로가 되는 세상을 만드십시다. 만나면 무엇을 나눠줄까 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을 삽시다. 사람 사는 세상이 살만하고 가치 있는 세상이라면 성도 사는 세상은 더욱 가치 있고 희망이 되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