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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전에 행하던 대로(다니엘 6:7-16)/ 반둥아름다운 교회 / 박성훈 목사

작성자박성훈 목사|작성시간19.09.19|조회수209 목록 댓글 0

은밀한 모임을 해 보셨습니까? 무엇인가를 바꾸고, 개혁하고, 뒤집어 엎기 위한 모의에 참여해 보셨습니까? 혹시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싸움에 참여해 보셨습니까?

 

1987년 후반년도 저는 매 주일 아침 은밀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아침 7시에, 빵집에서 만나 몇 명이 오늘 교회에서 있을 일들을 작전을 짰습니다. 교회가 싸움이 있었고, 저는 싸움의 중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날의 모든 작전을 짜는 핵심중의 핵심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싸우는 중에 어린 저로써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익이 상충하는 것도 아닌데......, 같이 공유하면 되는데......, 왜 내가 이래야 하는가? 어떻든지 간에 싸움은 이겨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입장에서 보면 교회를 지켰고, 교회가 안정을 되찾은 다음에 신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했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온 나라가 올림픽으로 흥분하고 있을 때에 저는 국립 도서관에서 철학과 영어를 공부하며 신학대학원 입학을 준비했습니다. 참 좋은 교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매 주일 감격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천국에서 누리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가 제가 담임하는 교회이고 싶었습니다. 제 나이 60이지만 아직도 저는 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이제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루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은밀한 모임을 아십니까? 왕의 눈을 피하고, 다니엘을 눈을 피하여 계속해서 작전을 짜며 모의에 모의를 거듭하는 사람들......, 몰래 한 나라의 모든 서류를 가져다가 다 뒤지며 그 서류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숨은 그림을 찾아서 다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날짜는 가고......, 그러는 가운데 누군가가 좋은 의견을 내 놓습니다. 그것은 이런 것입니다.

 

(6:5)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 속에서 다니엘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같이 나누어 보겠습니다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다니엘을 고발하려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율법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올무를 가지고 왕에게 나아갑니다. 그들이 만든 올무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7절입니다.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이제부터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어핏 보면 왕의 권위와 왕의 위대함, 더 나아가서 왕을 신으로 높이는 것 같습니다. 30일 동안 제국 안에 왕의 천하를 만들자는 것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의 의미를 잘 들어야 하는데, 하나만 듣고는 바로 대답해 버리면 올무에 걸리는 것입니다. 위반하는 경우에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여러분들이야 저에게 그렇게 질문하지 않는데, 어떤 분들은 저에게 대뜸 언제 시간이 되느냐고 묻습니다. 참 난처합니다. 먼저 본인이 그 이유를 설명하면 더 좋겠는데, 그렇지 않고 먼저 시간을 물으니깐 참 곤란합니다. 그래서 조는 요즘, 그냥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맙니다.

 

그들이 이런 올무를 만들었다는 것은 다니엘이라면 틀림없이 이런 올무에 걸리리라고 확신 했던 것이겠지요. 어떤 상황이라도, 사자굴에 들어 간다고 해도 그는 관계없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다니엘의 신앙을 그의 대적자들이 더 인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의 믿음에 대하여 나와 친한 분들은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대적인 사람들이 나를 잡기 위하여 행한 이런 행동들......, 그들의 이런 행동들이 다니엘의 신앙과 그의 믿음과, 그의 진실하심을 인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자굴에 들어간다 해도 반드시 한다......,

 

내 믿음은 내가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보아 온 주변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말하고 이렇게 증명하는 것이지요.

 

다니엘이 알고도

다니엘을 잡고자 하는 사람들의 올무는 완성이 되었습니다. 9절입니다. 같이 볼까요?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왕의 도장이 찍혀서 전국에 내려졌습니다.

 

성경을 다니엘이 이 조서를 내린 다음의 자세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같이 봅니다.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도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 나라 세 명의 총리 중에 한 명입니다. 그 다니엘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잡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니엘은 알았습니다.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해하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즉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움직이면 되는 것이지요.

 

지금 왕의 신임이 두터운 상태입니다. 한 명의 총리로 임명되기 바로 전입니다. 그의 미래는 보장된 것입니다. 나중에 왕을 이어서 버금의 위치에서, 그런 제국의 위대한 자리에서 그런 위치에서 하나님을 위한 일과 자기 백성을 위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이 위기만 잘 넘기면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죽음을 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할 지도 모릅니다. 더 큰 세상을 위하여,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작은 일들은 무시해야 합니다. 넘어가야 합니다. 몰랐다면 얼절 수 없는 것이겠지요. 몰랐다면 모르지만 알았다면 무엇인가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에 행하던 대로

성경은 다니엘의 다음 행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 10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볼까요?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전에 행하던 대로”(10)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행합니다. 그는 윗방에 올라갑니다. 그 방은 기도햇던 방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창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성경은 다니엘의 기도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자신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 상황 그 속에서 기도하면서 감사했다는 것이 마음에 충격으로 와닿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무조건 감사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무모하지 않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잘 모르지만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일들, 내 앞에 있는 일들, 지금 나의 삶......, 이 모든 것이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다 감사할 일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일들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우리의 삶이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니엘은 고발자들이 기대 했던 대로 움직입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의 신앙을 보여 줍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박수를 쳤습니다. 환호했습니다. 동지들끼리 껴안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진정으로 환호하신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환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박수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보면서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셨습니다. 덩실덩실 춤을 추셨습니다.

 

신앙이란

다니엘은 살길을 찾아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문을 닫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30일 동안 기도의 방법을 바꾸어도 됩니다. 아무도 모르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면 30일 동안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특별히 큰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 자신의 신앙의 자세를 바꾸지 않습니다. 살기 위하여 다른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살기 위하여 편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신앙의 행위들을 포기 햇습니까? 살기 위하여......, 살기 위하여......,

 

신앙은 핑계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묵묵히 그 길을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 인생의 길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를 향한 상대의 계락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가로 막는 사람들, 장난하는 사람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결국 사자 굴에 들어갑니다.

결국 다니엘의 행동은 무리들에게 발견되어 고발됩니다.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결국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갑니다. 16절입니다. 같이 봅니다.

 

[16]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그는 치사하지 않았습니다.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의 인생이 끝이 납니다. 구걸하며 사느니 아름답게 죽는 것을 택했습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는 기도하다가 죽을 수는 있어도 기도 안 하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기도의 가치는 자신의 생명의 가치 이상이었습니다.

 

내가 기도하지 않으니깐 내 감정이 튀어 나오고, 내가 기도하지 않으니깐 내 이익에 목매고, 내가 기도하지 않으니깐 하고 싶은 말 다하고 그런 것 아닐까요?

 

우리 믿음의 사람은 살기 위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길을 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생명의 길은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니라 말씀을 길입니다. 진정한 생명의 길은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니라 말씀을 길입니다.

 

그렇게 다니엘은 죽음을 길을 갔습니다. 사자굴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리오 왕의 고백대로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는 모습을 자신이 경솔했다는 것을 다리오 왕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끝이 난 상황이었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는 다니엘을 다리오 왕이 이렇게 격려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나의 삶을 보면서 내 옆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내가 진리의 길을 가고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을 보면서 그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진실한 사람을 구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진정 믿음의 삶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22절입니다.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더라

 

나의 하나님이 이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주에 어떤 일들이 있습니다. 머리 굴리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십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게서 이미 우리의 어려움들을 돌아 보시고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둘에 들어 가던 날 리뷰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 갔습니다. 올무는 놓는 자들이 성공했습니다. 그들이 원하던 대로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있는 순간, 왕은 금심하며 몸 둘바를 몰랐습니다. 적들은 쾌재를 부르고, 승리의 건배를 들었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죽은 사람은 다니엘이 아니라 다니엘의 적들 뿐 아니라 그 가족이었습니다.

 

신앙이 없던 다리오 왕도 이렇게 고백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도 당연히 그런 믿음과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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