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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일어나 가서 보니(행8:26-40)

작성자꿈쟁이|작성시간11.03.20|조회수195 목록 댓글 0

일본의 지진은 우리의 마음을 참 아프게 합니다. 지진과 연관된 사진을 보면 마음이 찡해 옵니다. 저는 조용기 목사님의 이야기를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분의 삶을 저의 얄팍하고, 짧은 삶을 가지고 어찌 그 분의 삶을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차인표씨의 글을 보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동안 일본을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일본의 아픔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가집니다.

 

일본의 지진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탈출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더욱 그런 것같습니다. 한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거의 두가지 일 것입니다. 하나는 그 곳이 살기 힘든 지역이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 의하여 어쩔수 없는 경우 겠지요. 소련이 공산화가 되고 한국 사람들이 중앙 아시아 쪽으로 이주 한 것은 이런 힘에 의해서겠지요.

 

오늘 본문을 보면 빌립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광야로 나아가게 됩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지능의 절대 최고점을 100으로 했을 때에 100이신 분이라면,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어찌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그 지혜라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의 1%에도 부족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렇게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주의 사자가

지금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전도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빌립에게 주의 사자가 어느 날 찾아옵니다. 26절입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일러 가라사대”여러분! 주님 만나고 싶으시죠? 그런데 여러분! 만나서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는 그길은 광야라”

 

무엇인가 잘 안될 때에 우리는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잘 될 때에 잘 되는 그것 붙잡고 싶어 집니다. 떠나고 싶어 지지 않습니다. 빌립을 보십시오. 지금 막 열매가 맺히고, 신하고, 재미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빌립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을 광야라

그런데 여러분! 주의 사자가 가라는 곳을 보면 더욱 어이가 없어집니다. 26절입니다.

 

[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그것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할 것 같아서 그 길을 설명합니다. 그길이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 “광야”라고 합니다. 그 길은 “광야”였습니다.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그 길이고, 더 나아가서 그 길이 광야라면 그곳에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있다고 한들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을 보내어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과연 이 부름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요?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하나님의 이 명령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는 지금 이미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당연히 가야지요.”라고 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쉽게 대답하면 결론을 알고 있는 자의 교만입니다. 결론을 생각하지 말고 빌립의 자리에 여러분들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잘 나가고 있습니다. 너무너무 잘 되어 나갑니다. 자신의 복음을 받아 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이 환상적입니다. 성공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자신을 불러 사람이 없는 광야로 가라고 하실 때에 그 명령을 어떻게 이해하시겠냐는 것입니다.

 

갈만한 곳을 가라고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원리를 본다면 이것은 좌천입니다.

 

일어나 가서

더 큰 것은 바로 이런 문제입니다. 하나님게서는 가라고만 하셨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 분명한 것을 말씀해 주셨다면, 그것을 보고 확신 있게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해 주시기 않고 무조건 가라고 말씀합니다. 더 이상 설명이 없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을 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자 이제 여러분은 어덯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좀 듣기 불편한 일들이 있으면 못 들은 것 처럼 행동합니다. 아니면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하기도 합니다. 잘 나가던 그것을, 손 놓을 수 있겠습니까?

 

빌립이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했을까요? 27절을 볼까요?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빌립의 행동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어나 가서”(27절)라고 말씀합니다. 빌립은 다른 생각하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고민하지 않습니다. 말슴이 떨어지자 그는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 갔습니다. 그대로 순종합니다

.

사마리아에서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갔습니다.

성공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자리로 갔습니다.

영광의 자리에서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로 갔습니다.

사람들의 둘써 쌓여 찬사를 받던 곳을 떠나 외로운 곳으로 갔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고민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누려 온 것을 버리지 못함이 아닙니까? 포기하지 못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지혜롭다고 교만 떠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잘남을 허세부리는 것 아닐까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음은 아직도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나의 주인으로 모시지 못함이 아닐까요?

 

우리 사람이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할까요? 사람이 알면 얼마나 알 수있을가요? 광야를 말슴하실 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상황을 토대로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냥 가십시다.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십니다. 담백하게 살아가십시다. 단순하게 살아가십시다.

 

그곳이 찬사 있고, 영광이 있고, 성공이 있으면 무엇하겟습니까? 그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잇겠습니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내 인생에 가장 유익된 순간은 하나님의 말슴이 내 삶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아십니까?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하나님의 말슴이 내 삶을 통하여 순종되어지는 순간입니다.

 

가서 보니

빌립도 출발하면서 무슨 일이 있는 지 몰랐습니다. 가라고 하시니까 일어나 갔습니다. 27절을 다시 한번 볼까요?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가서 보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가서 보니까 그곳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 있는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 볼가요? 28절입니다.

 

[28]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그는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이사야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안타까운 하나의 현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안타까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31절입니다.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빌립이 읽고 있는 구절의 뜻을 알 수 있느냐고 물었을 대에 나오는 반응입니다. 이런 의미겠지요. 너는 가르쳐 주지 않는데 알 수 있느냐? 알수 없는데도 그는 읽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읽고는 있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모르는데도 읽어야 하는 마음,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가 얼마나 사모하는 지는 빌립이 다가가자 자기의 수례 올라앉아서 자신을 가르치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이 말슴은, 말슴대로 갔었을 대에 “ 아~, 그렇구나”라고 느기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내가 가마귀를 통하여 너의 먹을 것을 공급하리라는 말슴을 믿고 사람이 없는 그릿 시낵가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실로암에 가서 ㅁ눈을 씻으라는 말슴을 듣고 행한 한 소경은 그의 눈이 치유되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레에 스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갇다 주라는 말슴대로 순종한 하인들은 그 말씀이 이루어 지는 축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었을 때에는 그 의미를 잘 모릅니다. 지식이 모자란 인간이 다른 차원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 말씀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안다는 것 자체가 도리어 이상 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 말씀대로 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순종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이 가서 보니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 보십시다. 이해되지 않지만 순종하면 알 수 있습니다. 순종하십시다. 순종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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