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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설교

[스크랩] 적진 속의 그리스도인/요한계시록 13:1-18

작성자genisim|작성시간14.05.01|조회수191 목록 댓글 0
적진 속의 그리스도인
* 요한계시록 13:1-18 *

(계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계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계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계 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계 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계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계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 13: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계 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계 13:11) ○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계 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계 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계 13: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계 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 13: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계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 적진 속의 그리스도인 》
전병욱
오늘은 요한계시록 스물여덟 번째 강해입니다.
「적진 속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 마지막 때의 사탄의 모습

각 나라마다 숫자에 대한 개념이 다 다릅니다.
한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은 4자를 싫어합니다. 왜 4자를 싫어하느냐, 우리도 죽을 사(死)자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도 4자가 죽음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대요. 중국사람도 4자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중국이나 한국이나 4자 없습니다. 우리도 4층이 없지요. F층이라고 하든지 3층 다음에 바로 5층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문화권에서 싫어하는 숫자는 13입니다. 13은 가룟유다의 숫자라고 합니다. 13일과 금요일이 겹치면 ‘13일의 금요일’이라고 해서 괜히 기분 나쁘지요. 여행도 꺼리고 비행기 예약률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3장이 마귀의 장입니다. 사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 13장을 딱 보면 됩니다.
12장9절에 보니까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마귀가 쫓겨났습니다. 13장에 보니까 1절과 11절 이하에 두 짐승이 나옵니다. 1절에는 바다에서 나온 한 짐승 11절에는 땅에서 나온 한 짐승, 둘 다 마귀인데 마지막 때에 땅으로 쫓긴 마귀가 어떻게 미혹하는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째 짐승은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좌지우지합니다. 둘째 짐승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미혹된 말들을 막 전합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새* 양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을 들어보면 마귀입니다. 예수님 비슷하게 보이는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이적도 막 행하는 무서운 놈입니다. 마귀는 교회와 성도를 핍박할 때 두 종류의 힘을 가지고서 합니다.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외적인 핍박을 합니다. 내적으로는 거짓 선지자를 통해서 가짜 진리에 미혹 당하게 만듭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정치적인 권력으로 예수 믿는 것을 핍박하는 나라가 있고 믿음의 자유가 있다 하는 곳은 가짜 선지자들 나와 가지고 엉터리같이 우리를 속이고 있지 않습니까? 무서운 일이지요.
제가 이번에 미국에 갈 때 처음으로 지문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기분 나쁘더라고요. 예쁘게 찍으려고 V자 하면서 웃었더니 V자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다시 찍었습니다.
(성도들 웃음)
우리나라도 브라질 같이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나라에 들어갈 때 그 나라의 주권으로 지문을 찍으라면 지문을 찍고 사진을 찍으라면 사진을 찍습니다. 이런 것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러시아 모스크바 들어갈 때는 입국심사가 2시간 정도 걸립니다. 거기에는 체첸반군들이 있고 테러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항에서 모두들 군복 입은 군인들이 일합니다. 그래도 누가 불평을 안 합니다.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지요. 이스라엘은 그보다 더하다고 합니다. 입국심사할 때 아예 철창 같은 데에 다 집어넣는다고 합니다. 그리고서 옷에 폭탄이 있나 없나 하나하나 확인하고서 꺼낸다고 합니다. 그래도 관광객만 늘어납니다. 그 나라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도 폭탄테러가 많으니까 엄하게 하더라도 납득합니다. 이처럼 미국이 지문을 찍든 뭘 하든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분 되게 나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왜 유럽과 일본 국민에게는 그런 입국심사를 안 하면서 나머지에게는 하느냐는 것입니다. 외교의 기본은 호혜주의(互惠主義)입니다. 호혜주의이니까 우리 국민을 이렇게 대우한다면 우리도 그 나라 사람을 똑같이 대우해야 합니다. 盧武鉉대통령도 만날 자주외교를 말하는데 그럴 때나 자주외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호주의이니까요. 그런데 그것도 안 하면서 만날 자주외교입니까! 제가 입국심사 받다가 열 받아서 두 명 욕했습니다. 부시를 욕하고 盧武鉉 대통령을 욕하고……
저는 지문을 찍는다는 것이 지장을 찍어서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스크린 같은 데에 손을 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진짜 마지막 때가 되면 모든 사람들을 완전 통제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눈동자 같은 것만 보아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기술은 다 되어 있습니다. 몸에 칩을 집어넣고 모든 사람의 정보가 완전 장악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정부가 모든 사람을 그런 식으로 장악하고 난 다음에 예수 믿으면 예배도 못 하고 장사도 못 하게 한다면, 그 정권이 마귀의 손에 들어간다면 모두 다 꼼짝 못 하고 굶어죽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13장17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저는 이런 마지막 때의 이야기들이 기술적인 발전에 의해서 점점 맞아가는 같습니다. 옛날에는 바코드가 666이라고 했거든요. 요즘은 바코드도 필요 없어요. 그냥 생체정보를 가지고 다 파악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어떤 사람을 키워야 되겠습니까? 순교자를 키워야 합니다. 마지막 때, 우리가 살았을 때가 될지 죽었을 때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인생에는 평탄할 때만 있을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직장에서 쫓겨나고 아무 것도 못 하고 굶어죽게 될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때 마지막 남아있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준비해야 합니다.
미국 입국심사를 받으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쳐주는 방법이구나. 마지막 시대에 컴퓨터가 어떻게 쓰일지 모르지만 마귀도 컴퓨터를 사용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마지막 때가 되면 될수록 복음증거를 하여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8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 마귀에게 경배하게 된답니다. 누가요?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계속해서 강조해야 될 것은 어린양의 피로 생명책에 녹명된 사람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야 되겠습니까? 방법은 복음밖에 없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얼마나 많이 모이느냐, 얼마나 부흥하느냐는 언젠가 다 지나갈 일입니다. 건물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진짜 준비해야 될 것은 열심히 말씀 증거해서 끝까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진짜 그리스도인을 세우는 것입니다.
낮 예배에도 이런 얘기를 했지요. 안식일이 왜 중요하냐하면 그것이 죽는 법을 훈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갈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하는 것입니다. (1월25일 주일예배 “자신의 리듬보다 더 우월한 리듬에 순종하라”참조)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만드는 것, 죽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 죽을 때까지 그런 일(-마지막 때의 일)이 없으면 그냥 편하게 죽으면 될 일이구요. 항상 우리 생활 속에 그런 일이 있어야 합니다.

* 우리의 할 일 - 생명책에 녹명(錄名)

그러면 생명책에 녹명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증거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었던 이유는 오직 십자가의 능력만이 우리에게 구원의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 여러분들은 이런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복음으로 무장된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무장된 사람은 바람이 불어도 남습니다. 한참 지내고 보면 다른 것들은 다 사라져 버리고 복음 안에 있는 사람만 남습니다.
지난번에 캐나다에 다녀와서 그런 얘기를 했지요. 너무 땅이 비옥하니까 나무는 수십 미터 쭉쭉 올라가 있는데 뿌리가 없습니다. 바람이 불면 뿌리째 뽑힙니다. 반면 사이판 어느 산 꼭대기에 있는 나무의 높이는 2미터도 안 되는데 천 년 묵은 나무라고 합니다. 그 아래 뿌리가 20미터 내려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뽑히지 않지요. 나무 높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겉에 보이는 것보다 뿌리를 기르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애굽에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장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가정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가정입니다. 두려워 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어린양의 피를 믿고 문설주에 피를 바른 가정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한 사람은 넘어지지 않고 승리합니다. 두려워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원래 핍박받는 성도들에게 쓰여진 것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요한계시록 13장을 읽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 한 사람들입니다. 요한게시록 13장을 읽고 난 다음에 예수를 믿는 사람, 내가 어린양의 책에 기록된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고 내가 구원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니까요. 빨리 그 확신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중국을 보십시오. 중국에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그런데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예수 못 믿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1966년부터 있었던 문화대혁명 같은 때에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라졌습니까? 개방하고 난 다음에 보니까 그 이전 기독교인의 100배로 늘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지요? 아무리 핍박의 바람이 분다 하더라도 복음의 뿌리가 있으면 남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바람 한번 싹 불면 하나도 남지 아니하는 그런 교회를 키워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번에 우리가 숙대강당에서 예배를 못 드릴 상황에 처했을 때 저는 진짜 선린중학교 운동장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거든요. 그때 혼자 좋아서 웃었어요. ‘이런 찬바람이 한번 불면 진짜와 가짜가 갈라지겠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것을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핍박이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핍박이 오는 것을 왜 두려워합니까? 그것을 통해 진짜와 가짜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나도 모르잖아요. 그러나 승리하고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핍박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면 되는 것 아닙니까? 어려움을 왜 두려워합니까? 어려움 때문에 내 믿음이 증명됩니다.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가 무슨 기업체입니까? 숫자 많고 헌금 많은 것이 자랑입니까? 그런 것들은 복음 증거하는 데에 활용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잖아요.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교회는 원래 그런 곳입니다. 그런 믿음 안에서 무장되는 하나님의 귀중한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만이 살 길입니다.
저는 복음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지난 주에 제가 LA의 빛과소금교회에서 에베소서를 강해했거든요. 지난번 일본선교 갔을 때 했던 내용에 살을 훨씬 많이 붙여가지고 그 상황에 맞게 했습니다. 거기는 이민교회인데 청년들이 거의 없습니다. 40살 이상 되신 분들, 이민간 지 10~20년 된 분들이 주로 계신 교회입니다. 한국말도 10~20년 전 용어를 훨씬 더 잘 압니다. 복음성가도 추억의 복음성가를 너무 뜨겁게 부르시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에 불렀던 찬양들…… 그래서 저도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데 첫째 날, 둘째 날 남자 분들이 울기 시작하고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면서 눈물 흘리고 자복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일들을 듣고 난 다음에 감격에 빠졌습니다. 저는 확신했습니다. 복음에 능력이 있구나! 내가 바로 이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구나! 이번에는 농담도 없었고 다른 얘기들도 없었습니다. 어른들이라 너무 진지해서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복음만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 복음만이 사람을 살립니다. 낙심하고 좌절했던 영혼들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시간에 하나님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무장하여 온전하게 설 줄 아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 우리가 할 일 - 인내와 믿음

그러면 이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와 믿음입니다.
10절 하반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구원 받은 후, 이제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치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인내만큼 필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음은 인내입니다. 믿음은 고난이 와도 참고 참고 또 참고 참으면서 주님의 뜻대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옳은 것을 몇 가지 붙들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보인 인내와 믿음을 보십시오. 감옥 속에서도 계속하잖아요. 디모데전서 2장9절을 보니까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계속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제 많이 부흥했잖아요. 저는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을 할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복음이 옳으면 계속 이대로 가면 됩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거기에서 생명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떠난 부분이 있다면 돌이키고 돌아와야겠지요. 옳으면 계속해야지요. 반복이 얼마나 능력 있는 줄 아십니까? 승리하는 것은 대개 반복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의 관현악곡 볼레로(Bolero)입니다. 이 음악은 16분 동안 같은 선율이 계속 반복됩니다. 총 169번 반복, 반복, 반복됩니다. 처음에는 작은 북, 그다음에 플룻, 북치고 플릇, 비올라가 나오고 그다음에 현악기 금관악기 목관악기 뭔지 모르는 잡다한 악기들 하다가 큰북! 팀파니! 드럼! 막 고막이 터질 정도로 연주하다가 탁 끝나 버립니다. 지루해요? 지루해요? 안 지루해요! 새로운 리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 지루해요. 음악의 음(音)자도 모르는 사람도 볼레로의 선율은 알아요. 계속 반복되니까요. (찬양팀 쪽을 바라보며) 한번 쳐 보세요. 볼레로 한번 쳐 보세요
( 찬양팀 : 음악 연주 )
됐습니다.
연주능력이 떨어지네요.
( 성도들 웃음 )
저런 선율이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조용히 나가야 됩니다. 들릴 듯 안 들릴 듯…… 아마도 작은 북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조용히 플룻이 나오고 플룻이 나오다가 비올라가 나옵니다. 참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선율만 16분 동안 강조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저 음악에 빠져버립니다. 똑같은 반복이고 똑같은 반복입니다. 볼레로를 보면서 복음도 볼레로를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소리로 시작했다가 그것이 강조되고 또 강조되고 강조되고 나중에는 모든 악기를 다 동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외치는 것, 그것이 능력이지요. -여러분들 복음 안에서 변화되었다고 하면서 왜 이런 것을 작곡안합니까?- 이렇게 똑같이 반복하는 것을 오스티나토(ostinato)라고 한다고 하는데 대개 명작들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대합창 거기도 보면 똑같은 선율이 반복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잖아요.
성도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이 기법입니다. 올바른 내용을 가지고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는 것입니다. 인내와 믿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현장에서 두려워하지 마시고 어느 곳을 가든지…… 똑같은 멜로디이지만 조용히 연주할 때는 조용히 연주하고 크게 연주할 때는 크게 연주하고 지금처럼 모든 성도가 다 함께 있을 때는 가장 크게 연주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어떤 사람이 드와이트 무디(Moody, Dwight Lyman, 1837~1899)에게 와서 물었답니다. “무디 목사님 순교할 자신 있습니까?” 그랬더니 “나는 순교할 믿음이 없습니다.” 그랬답니다. 의외였지요. 이렇게 훌륭한 목사님에게 순교할 믿음이 없다니! “훌륭한 말씀 증거 사역자가 어떻게 순교할 믿음이 없다고 그러십니까?” 그러자 그 분이 얘기하기를 “지금은 순교할 때가 아니라 전도할 때입니다. 순교할 때가 되면 순교할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전도할 때이기 때문에 전도할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저는 그 말이 정확히 맞다고 생각합니다. 찬송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찬송할 믿음을 주시고 인내할 때가 되면 인내할 믿음을 주시고 순교할 때에는 순교할 믿음을 주십니다. 그때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구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귀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악한 마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어떤 때는 정치적인 힘으로 문화적인 힘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지만 전면적으로 다 싸우려 하지 말고 있는 그 자리에서 빛만 되면 됩니다. 계속하면 됩니다.
제가 삼일교회에 온지 10년 되었습니다. 하여튼 주변에 비난이 있든 뭐가 있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속했잖아요. 누가 뭐라 그러든 제주선교 계속했잖아요. 대만선교 계속 했잖아요. 그러니까 되지 않아요?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습니까? 성도들이 듣든 안 듣든 계속 설교하고 계속 새벽기도 하니까 초창기에 10명 정도 나오던 새벽예배, 이제는 2700명씩 나오잖아요. 옳으면 볼레로같이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잘 쓰임받는 거룩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어차피 졸려서 많이 못하겠습니다.
(성도들 웃음)
저도 아무리 생각해도 체력이 대단하지요?
제가 눈을 못 뜨겠습니다. 크게…… 눈이 왜 작아졌는지 주님은 아실 것입니다. 순교의 믿음입니다.
(성도들 크게 웃음)
십자가의 믿음 붙들고…… 섭시다!
정말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주께서 죽으라고 하면 죽으러 갑시다! 치사하게 구걸하지 말고…… 모두 다 한 번 죽잖아요. 밤에 깨끗하게 자는 사람은 중간에 잘 가는 사람이라고 했지요? 그때가 언제인지는 몰라요. 그러나 반드시 주님께서 한 번 부르십니다. 우리는 복음 증거하다가 깨끗하게 죽어야지요. 아쉬워하면서 ‘하나님, 한 번만 봐 주면 안 될까요?’ 마귀와 타협하고 ‘다음에 죽으면 안 돼요?’ 그러지 말고 멋지게 죽자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누가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내 죄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고 확신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들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반복하면서 어떤 때는 작은 음으로, 어떤 때는 큰 음으로, 어떤 때는 더 큰 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생을 다 마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스데반을 환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환영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여러분들,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다 천국에서 봅시다.

기도하겠습니다.
다같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겠습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받은 백성이 되도록 우리를 확고히 붙들어 주시고 혹시라도 이 자리에 예배드리는 성도 가운데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함으로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짐승에게 경배하는 배교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하시고 이 땅에서 믿음 가지고 승리토록 해 달라고 이 시간에 다같이 하나님께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다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찬양하겠습니다.


♪♬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향한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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