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없는 새벽 없다 (2026.06.23) 녹색소비자연대 녹담소담 제30호, 역사의식 역사공부 역사인식 윤동주 서시 별 셰익스피어
작성자이동용작성시간26.06.23조회수18 목록 댓글 0어둠 없는 새벽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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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丹旦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독일의 한여름 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유학시절, 공부가 업이었던 시절, 밤샘공부가 일상이었던 시절, 어둠은 단 두세 시간뿐이었습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어둠다운 어둠이 깔렸고, 새벽 3시쯤 되면 어느새 다시 어둠이 밀려나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한 페이지를 읽고 났더니 날이 밝았다고, 여름에는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밤에만 공부하는데 밤이 너무 짧다고. 하지만 농담만은 아니었습니다. 집중했습니다. 날이 밝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압축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늘 하지夏至만 되면 추억이 떠오릅니다. 연극학을 공부할 때,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나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를 공연했습니다. 둘 다 하지의 짧은 밤을 소재로 삼은 작품입니다.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도 빛의 출현과 함께 순식간에 풀렸습니다.
언제부턴가 밤을 지새우다 윤동주를 만났습니다. 그의 언어를 품고 살았습니다. 《아침놀》을 번역할 때는 〈새벽이 올 때까지〉를 묵상했습니다. 그 마지막 구절은 종소리처럼 나의 정신을 끌고 갔습니다. 뼛속까지 울림이 전해올 때, 나는 마침내 정신을 자유에 맡겼습니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 울 게외다.
한계에 부딪혔다는 생각보다는 무한에 부딪혀 좌초당한 배처럼 몰락했지만, 심연은 나의 침대가 되었습니다. 하늘조차 내 몸을 떠받들었고, 폭풍조차 높이 솟아오르게 했습니다. 한평생, 정신을 이끌어준 시가 있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시작하는 그 가녀린 나팔소리처럼, 영혼을 띄운 수면처럼 빛나는 시가 있습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부끄러움의 미학, 이것이 윤동주의 별빛처럼 아름다운 언어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이념입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죽겠는데, 오늘 밤에는 별까지 바람에 스치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것이 나라를 잃은 청년의 삶입니다. 늘 양심의 가책 속에서 살았습니다.
한글이 부정당한 시대에 한글로 시를 쓴다는 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습니다. 용기 없이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거인의 행위였습니다. 불법을 알면서도 외면 않고 도전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길〉에서 ‘길’을 잃은 청년은 살기 위해 그것을 찾았습니다. 시대정신을 담아낸 고백,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윤동주는 내 안에 들어와 아직도 찾고 있습니다. 정신에서 정신으로 이어져 도래한 그의 정신은 나의 정신 속에서 되살아나, 여전히 길을 찾고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습니다. 희망이 길을 밝힐 것입니다. 영원한 나의 희망입니다.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고 있던 정신에게 회초리를 들고 다가와 사정없이 때려준 것은 윤동주의 시들입니다. 〈별을 헤는 밤〉을 읽으면서 보낸 밤의 시간들이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것은 강요당한, 한없이 부끄러운 이름이었지만, 그것도 자신의 것이라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름을 죽인 살인자의 슬픈 마음입니다.
차라투스트라가 거울 속에서 악마를 발견하고 그를 죽이고 나서 외친 말이 떠오릅니다. “신은 죽었다”고. 내가 싫어서 나를 죽였지만, 나는 죽은 내가 신이었음을 인정합니다. 이름을 흙으로 덮어 버렸지만, 새봄이 찾아오고 여름이 되면 풀이 다시 무성할 것을 믿습니다.
부끄러움을 묻었습니다. 부끄러움에게 무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무덤은 형식이 되었고, 그 안에 내용이 담겼으며, 그것은 부끄러움입니다. 나의 제삿날에 나는 나를 추궁합니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하이픈 속에 한없는 침묵이 담겼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뱉은 말이 시가 됩니다.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하고. 이 말의 끝에는 마침표도 물음표도 없습니다. 그저 조용히, 차분히 현재진행형임을 예고하고 있을 뿐입니다. 새벽을 알리는 힘찬 나팔소리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