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주남지를 찾았더니 어느사이 연이 이렇게 커서 꽃까지 피웠는가 싶었습니다.
연은 잎만 보아도 좋습니다. 시원시원하니 눈이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연꽃이 폈을까? 아직 안 폈을까? 생각하며 도착했는데, 연꽃도 피고
연밭에 사는 개개비(작은새)를 찍으려고 망원렌즈 장착하고 대기하는 진사님도 있었습니다.
아~~~개개비를 보진 못했지만 개개비의 소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오전에 비가 내렸는지, 아님 최근 내린 비가 아직 빠져나가지 못했는지
연밭 사이 깔아놓은 야자매트사이 물이 질척거려 제대로 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볼 만한 연꽃은 다 보고 왔네요.
늘 연밭사이 뒷모습 모델이 되어주신 어른스님께서는 차에 앉아서
멀리 연꽃을 구경하셨습니다.
피기시작한지 오래지않아 시들은 연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유학자인 주무숙(周茂叔; 본명은 周敦頤)은 <애련설 愛蓮說>이라는 글에서 “내가 오직 연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 깨끗이 서 있는 품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 한다.”고 하며 연꽃의 덕을 찬양하고 있다. 菊花를 隱逸者에 비유하고 牧丹을 富貴者에 비유하고, 蓮花를 君子에 비유하는 것은 周茂叔의 ‘愛蓮說’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 세조 때의 문신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1417∼1464)이 지은 원예(園藝)에 관한 책인 ≪양화소록 養花小錄≫에서도 연꽃의 품성을 “깨끗한 병 속에 담긴 가을 물이라고나 할까. 홍백련은 강호에 뛰어나서 이름을 구함을 즐기지 않으나 자연히 그 이름을 감추기 어려우니 이것은 기산(箕山)·영천(穎川) 간에 숨어 살던 소부(巢父)·허유(許由)와 같은 유라 하겠다.”고 평하고 있다.(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의 慧眼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蓮꽃을 군자에 비유함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군자란 공자에 의하면 한 마디로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사람(人不知而不穩)’이다. 군자는 자중자애하며 늘 삼가고, 절제하고, 참으며, 仁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사람이다.(옮겨온 글)
저도 연꽃은 군자중의 군자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기품있는 꽃이지요.
홍련과 백련사이 저 길을 못가고 말았네요. 질척거려서...ㅎㅎ
순백의 백련이 우아하고 청초하고 고결하게 피어 있습니다.
아마도 오전에 비가 왔나봅니다. 연잎에 빗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니 말이어요.
딱 담을 만큼만 담고 그 이상이면 쏟아 버리는 연잎.
탐욕 많은 이들이 이 연꽃의 비움을 본받아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습니다.
폭우, 폭염, 태풍 등등의 피해 없이 건강하게 여름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