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시간(아이온)은 노는 아이이니, 왕국은 아이의 것이다. 그의 철학이, 이제는 정론이라고 할 수 있는 생성과 로고스, 생성이나 로고스의 철학이라면, 이 문장도 그 맥락 안에서 이해해보는 것이 옳다. 생성에 초점을 두는 경우 아이온에 방점을 둔다. 로고스에 초점을 두는 경우 노는 아이의 놀이에 호기심을 갖는다. 생성과 로고스의 통합에 초점을 두는 경우 두 개념의 연접을 해석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성과 로고스의 이접을 독해해서 아이러니를 적시하기도 한다. 단 주의하라 헤라클레이토스가 명기하는 로고스는 속좁은 지성이 아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는 법과 관련되기보다는 비례, 균형과 관계하는 원리이다. 우연도 로고스일 수 있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생성(Werden), 정의(Dike), 투쟁(Polemos), 불이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이다.[니체의 바젤 시대,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Die vorplatonischen Philosophen)에 대한 강의는 F. Nietzsche, Kritsche Gesamtausgabe( 앞으로 KGW로 축약), Colli u.a.(Hg), Berlin u.a. 1995 인용. KGW II-4, S. 278 참조]
아이온의 의미를 많이들 강하게 현존의 시간으로 해석하고 싶어하나, 사실 이 말은 가장 넓게 시간이라는 의미부터, 가장 좁게 현생의 의미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러저러한 문헌들 용례들에서 그 의미의 폭을 좁히려는 노력들이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역운(Seinsgeschick)으로 읽었단다.
그리고 놀이는 크게 세 가지로 추정된다. 주사위 던지기 놀이, 장기, 왕 놀이(역할 놀이)가 있다. 이 밖에도 모래성 쌓기도 꽤 유력하게 검토되고, 심지어 끝말잇기 등의 말놀이 자체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주사위 던지기 해석에는 두말할 나위 없이 니체의 해석이 가장 유명하다. 고점에서의 우연, 저점에서의 필연, 이후의 세계의 변화 이것의 반복으로서 영원회귀의 생성...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도편 등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견되는 장기로 보기도한다. 신화학적으로는, 내가 보기에 다소 길게 우회하는데, 왕 역할 놀이로까지도 볼 수 있단다. 시뮬라르크들의 너울거림으로서, 그러나 한 단순성으로서 시간을 여기서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헌학적으로는 호머의 시를 참조할 시, 모래성 쌓기일 수도 있다.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혼자하는 놀이인지, 규칙이 어떠한 놀이인지 등등 많은 것들이 검토된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문장이 덩그라니 혼자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장의 앞 뒤도 모르고, 심지어 어디에 실려있었는지도 모르고, 언제 쓰였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다 추적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고, 힘써 추정해야할 것들이다. 최악의 경우는 실제로는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 아닐 경우이다. 그다음 악은 헤라클레이토스 스스로 자기 철학을 포기한 선언이 이 문구인 경우이다. 이런 경우들까지 상상해낼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원천적으로 이 문장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정낙림의 이 논문은 이 문구의 연구사를 매우 잘 정리해내고 있다. 내가 지금 옮긴 정낙림의 연구는 주로 독일학자들의 문헌학적 연구만을 다루었으나, 무려 에이포 용지로 330쪽이나 되는 이 문장에 대한 해석만을 다룬 프랑스의 논문집에서는 인류문화학적 해석들도 실려 있다-추후에 여기서 몇 문장을 옮겨와볼 생각이다. 그러니까, 도자기 그림 등에서 당대에 아이들이 했을 법한, 그리고 하지 않았을 법한 놀이를 추정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 문장의 음운론적 가치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음악성을 발굴해내기까지 한다.
* 정낙림은 이 문구를 많이 아끼는지, 놀이하는 아이의 철학.이라는 책도 냈다. 미독.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헤라클레이토스 단편 B52에 대한 한 연구 - 놀이 철학의 관점에서
정낙림(원광대학교)
니체연구 제17집
αἰὼν παῖς ἐστι παίζων, πεσσεύων· παιδὸς ἡ βασιληίη.
Héraclite d'Éphèse (en grec ancien Ἡράκλειτος ὁ Ἐφέσιος / Hêrákleitos ho Ephésios), 52 DK
le temps est un enfant qui joue
[242]
하이데거도 자신의 존재론과 관련하여 B52를 새롭게 해석한다. 오늘날 이른바 ‘주체의 죽음’, ‘탈중심’, ‘탈영토’, ‘탈코드’, ‘우연성’을 자신의 핵심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탈현대 담론에 서 B52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두 갈래. 1.‘판타레이’(panta rhei), 즉 만물유전설로 보는 것이다. 2. 또 하나는 20세기 들어와 많은 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입장인데, 비록 헤라클레이토스가 변화에 대해 언급하지만 변화 자체 보다는 변화 속의 통일과 조화의 법칙, 즉 로고스에서 그의 사유의 핵심이 있다고 본다.
[244]
그러나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라는 말은 사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플라톤이 헤라클레이토스를 의역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10). 유전설에 가장 가까운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은 B91번이다. “같 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가사적인 것을 고정된 상태에서 두 번 접촉할 수도 없다”11)
10) 클라우스 헬트 지음, 지중해 철학기행, 이강서 옮김, 파주: 효형출판사. 2007, 57쪽.
11) 단편12참조. 변화에 대한 다른 단편을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단편 49a); 모든 것은 어떤 다른 것으로 되어지고 이래서 다른 형태를 갖 는 것으로 보이며 수없이 다양한 상태로 변한다. 즉 “모든 것으로부터 일자가 만들어지 며, 하나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단편10); “신은 낮이요 밤이요 여름이고 겨울이며 전쟁 과 평화이며 풍요이며 빈곤이다”(단편 67).
1) aion
αἰὼν παῖς ἐστι παίζων, πεσσεύων· παιδὸς ἡ βασιληίη.
[251]
단편에서 해석의 가장 큰 걸림돌은 aion이다. 위에서 표본적으로 살펴본 것과 같이 aion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된다. “우리는 aion이라는 단어가 다의 적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 다.”31) 어원학적으로 보면 aion은 시간(Zeit)과 관계한다. 그런데 시간의 층위는 다양하다. aion은 그리스에서 통용되는 시간의 다양한 층위를 대변한 다. 즉, aion은 ① 시대나 기간이라는 중립적 의미의 시간, ② 영원 또는 영겁의 시간, 즉 우주론적 시간, ③ 인간, 특히 개인의 일생, 삶의 시간을 뜻하기도 한다.
[252]
헤라클레이토스의 aion이 그리스적 사유 전통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크로이처에 따르면 헤라클레이토스의 aion은 페르시아의 시간관에 많이 의존하는데, 페르시아의 시간관은 주르반(Zurvān)에 잘 드러난다. 주르반은 ‘시간’ 특히 영원한 시간을 의미하며, 주르반은 조로아스터교의 한 분파의 시조이다.
[253]
“우리는 확실히 헤라클레이토스가 조로아스트적으로 가르쳤다거나 혹은 옛 페르시아적인 수수께끼 같은 가르침을 단지 확장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문구를 알았다는 것은 증명된다, 그러한 문장들이 그에게 교육의 효소로 작용했다는 것은 확실하다.”38)
38) F. Lassalle, Die Philosophie Herakleitos des Dunklen von Ephesos, Berlin 1858, S. 357.
[254]
“그리스어 aion 뒤에는 페르시아어 Zurvān akarana, ‘끝없는 시간’이 서있다.”43)
43) H. Sasse, “aion, aionios”, in: Theologisches Wörterbuch zum Neuen Testament, Stuttgart 1933, S. 198. 이에 반해 노르덴(E. Norden)은 “aion에 대한 표상은 고대 그리 스적 사유 유산에 연결 된다”고 본다. E. Norden, Geburt des Kindes, Studien der Bibliothk Warburg III, Darmstadt 1969, S. 45
2) pais
αἰὼν παῖς ἐστι παίζων, πεσσεύων· παιδὸς ἡ βασιληίη.
[255]
pais는 단편 B52에서 그것에서 파생된 단어를 포함한다면 3번이나 등장한다. 그것은 짧은 단편에서 차지하는 pais의 비중을 짐작케 한다. 그리스어 pais는 원래 ‘아이’ 특히 사내아이를 의미하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들, 노예, 급사 그리고 매우 드문 경우지만 소녀, 딸을 의미할 경우도 있다고 한 다.46) 딜스(H. Diels)는 pais를 사내아이(Knabe)로 번역한다. pais에 서 파생된 것이 paizo인데 그것은 ‘놀이하다’라는 의미이며, B52에서 그것의 분사형인 paizon이 등장한다.47) 헤라클레이토스에서 pais의 의미는 단순 하지 않다. 그것은 pais에서 파생된 paidnos라는 단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두 가지 상이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천진난만한(kindlich), 둘째, 유치한(kindisch)의 의미가 그것이다48). 헤라클레이토스 시대에 pais와 paizo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지만, 부정적인 의미가 압도적이었다. 즉 그것은 유치하고 미성숙 한 것을 지칭한다.
[256]
이러한 견해를 강력히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가 보르쉬(T. Borsche)이다. 그의 확신에 따르면, 헤 라클레이토스도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인이 가졌던 아이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공유한다. “아이는 위버멘쉬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전의 어 떤 것이다. 그것은 가능하면 빨리 극복되어야하는, 인간존재의 결손의 한 양태 이다.”50) 아이에게 숭고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소크라테스 이전이 아니라, 낭만주의 정신의 창작물”51)이다.
[257]
단편 B121을 통해 우리가 최소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에페소스의 성인이 아이보다 지혜롭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가 성인보다 지혜롭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가 아이를 전적으로 부정 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그에게 부정적인 것은 어리석은 성인이다.
도대체 B52에서 ‘놀이하는 아이’는 누구인가? 이 질문의 가능한 대답으로 ‘아폴론’이라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이 주장에 대한 전거는 호머에 서 나온다. ≪일리아드≫ 15권에는 어려움에 빠진 트로이군을 돕는 아폴론이 묘사되어 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드니 아폴론은 선두에서 찬란한 방패 를 잡고 서 있다가, 강가에서 노는 어린애들이 모래사장에서 성을 쌓다가 다시 발로 헐어버리듯 간단하게 장벽을 밀어냈다.”54) 전쟁을 치루는 아폴론의 모 습은 모래사장에서 모래성 쌓기 놀이하는 아이의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이것 은 B52의 장기 놀이하는 아이의 모습의 선구가 된다고 일군의 학자들은 주장 한다.
259-261
니체도 베르나이 스의 입장을 충실히 따른다.58) “힘이 축적된 자의 이상으로서, 어린아이 같은 상태로서의 놀이, 무용한 것, 신의 어린아이다움, 놀이하는 아이(pais paizon)”59) 이것을 통해 니체는 B52에서 놀이하는 아이가 누구인가에 대 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B52에 등장하는 아이가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Zagreus)60)라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첫째, B52에 등장하는 아이가 왕국의 지배권 을 가지듯이, 제우스가 디오니소스에게 신과 세계의 지배권을 넘겨주었다는 점, 둘째, 디오니소스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디오니소스가 어린 아이일 때라는 점, 셋째, B52에서 아이가 가지고 놀이하는 도구, 즉 장기 놀이가 거인 족들이 어린 디오니소스를 유혹할 때 쓴 장난감 중의 하나라는 점, 넷째 놀이의 정신이 B52의 아이와 디오니소스 둘 다에서 결정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유가 디오니소스-자그레우스 신화와 밀접한 관계가 [260] 있다고 주장한 대표적 학자는 크로이처(F. Creuzer)이다. 그는 오르페우스 교가 그리스에 가진 영향력을 주목하고,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요한 생각도 “오르페우스 교의에 일치한다”61)고 본다. 오르페우스와 디오니소스 신화의 관계 는 중첩된다.62) 디오니소스의 사지가 거인 족에 찢기듯이, 오르페우스는 질 투에 불타는 뭇 여성들에 의해 찢어져 죽임을 당한다. 그들의 사지가 우주 창조의 요소가 되었다는 점도 일치한다. “디오니소스는 다수성, 즉 수많은 형식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체, 즉 공기, 물, 토양, 식물 그리고 동물. 이것은 사람들이 자그레우스(Zagreus), Nyktelios 그리고 Isodätes로 칭했던 신의 찢어진 조각이다……”63) 크로이처는 B52에서 놀이하는 아이가 디오니소스라고 보는 논거로 그리스에서 오르페우스 종교의 영향을 들고 있 다. 라살(F. Lassalle)은 크로이처의 입장을 지지한다. 라살은 헤라클레이 토스의 단편 52의 pais에서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를 목격했다. 물론 라살은 헤겔주의자답게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의 찢어짐, 분열은 아폴론에 의해 봉 합, 즉 통일된다고 본다. 그의 생각은 니체의 비극에 관한 저서들 속에 그대로 유지된다.
B52의 놀이하는 아이를 디오니소스로 보는 입장은 디오니소스가 여타 신들과 달리 아이의 시절이 그의 신화에서 각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신화에서 대부분의 신은 성년이후의 모습이 주로 기술된다. 그러나 디오니소스(Dionysos)는 명칭64)이 의미하듯이 출생과 아이 [261] 련된 이야기가 디오니소스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 결정적이다. 디오니소스의 수난에 관련된 이야기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 관한 기독교 교리의 선구일 뿐만 아니라 오르페우스 신화와 종교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65) 특히 디오니소 스의 아버지인 제우스는 아이 디오니소스에게 신들과 세계의 지배권을 넘겨준 다.66) 따라서 B52에서 왜 아이가 왕이 되는가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아이가 신의 아이라고 가정할 때, 그 아이는 디오니소스를 의미한다는 가정이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
B52의 놀이하는 아이와 디오니소스의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놀이’, 특히 ‘장난감’과 관련된 것에서 유래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헤라의 사주를 받은 거인족들이 어린 디오니소스를 잡아서 죽이기 위해 디오 니소스를 장난감으로 유혹한다. 그 장난감에는 구슬, 팽이, 주사위(장기) 등 다양하다.67) 제우스가 세계를 형성하는 행위를 주사위의 놀이로 설명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주사위는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로 가볍게 전환될 수 있음을 상징한다. 특히 주사위 놀이는 위에서도 보았듯이 조각난 신체가 우주의 구성물로 전환된다는 오르페우스적 세계관을 상징한다. 주사위 놀이하 는 (phesseuon) 것에서 우주론적 상징에 대한 오르페우스적 세계관을 헤라 클레이토스가 물려받았다는 주장이 가능하다68). 따라서 단편 B52에서 아이 의 놀이를 미성숙한 또는 로고스에 무지한 존재가 벌이는 하찮은 행위로 보는 것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진정한 의도를 오도할 수 있다.
제우스에게 주사위 놀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과 변전의 용이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상호 교통할 수 있고, 상대편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제우스는 세계를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세계와 신의 지배권(basileia)을 그의 아들에게 넘겨준다. 헤라클레이토스의 B52에서 등장하는 장기놀이도 주사위 놀이의 일종이며 놀이가 우연성에 의해 지배되며, 하나의 결과는 또 다른 것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놀이의 전형적 특징을 드러낸다.69)
61) F. Creuzer, Symbolik und Mythologie der alten Völker, 4. Theil, S. 28. “오르페우스 적 표상에는 (……) 다음의 의미가 놓여 있다, 아이 때 죽는 자그레우스-디오니소스에게 제우스가 세계 지배권을 넘겨주었다 (……) 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paidos basileie의 표상을 오르페우스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O. Kern, Orpheus, Berlin 1920, S. 56. Ders., Die Religion der Griechen, Berlin 1926, S. 129f. 참조.
3) pesseuo
αἰὼν παῖς ἐστι παίζων, πεσσεύων· παιδὸς ἡ βασιληίη.
[264]
어원적으로 pesseuo는 pessos에서 유래하며, 원래의 뜻은 장기놀이에서 돌, 주사위 돌, 주사위 놀이, 혹은 주사위 판을 의미한다. 그것에 파생한 pesseuo는 ‘장기(주사위) 놀이하는’의 의미를 가진다.78) 이것에 대한 전거 는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잘 보여준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장기(주사위) 놀 이 혹은 놀이 자에 대해 언급되는 경우는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더 나아가 플라톤[265]은 신의 우주형성과정을 장기놀이에 비유한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장기놀이 를 하는 자가 할 일로서 남아 있는 것은, 다만 말을 움직여 적절히 배치하는 것입니다. 클레이니아스: 어떤 방법으로요? 아테네 손님: 신이 만물을 보살 피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되는 방법을 취해야지요.”82)
82) Platon, Nomon 903d/e.
“마찬가지로 목적론으 로서 전체의 도덕적 경향은 배제된다.: 왜냐하면 세계아이는 목적에 따라 움 직이지 않고, 오히려 단지 내재적인 정의(dike)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합목적적으로 그리고 합법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은 전자 혹은 후자를 원하지 않는다.”85) “여기에 모든 목적론적인 세계이해에 반대하는 거부가 최고조에 달한다: 아이는 장난감을 던져버리고: 곧바로 그러 나 그것을 가지고 놀이한다.”86)
85) Nietzsche, KGW II-4, 278. KSA1, 832 참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86) Nietzsche, KGW II-4 280. 다른 곳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한번 장난감을 던져버리고: 곧바로 그러다 그것을 다시 시작하고, 무구한 기분으로. 그러나 곧바로 쌓 고, 연결하고 덧붙이고 그리고 그것을 합법직적으로 형성하고 그리고 내적 질서에 따 라”(KSA1, 831)
4) basileie
αἰὼν παῖς ἐστι παίζων, πεσσεύων· παιδὸς ἡ βασιληίη.
[266]
basileie는 basileia에서 유래하며 의미는 왕위, 왕의 권위 등을 뜻한다. 같은 어원에서 basileus도 파생한다.
우리는 (……) 단일한 해석을 포기해야만 한다.”87) 하이데거도 이 문제 에 대해 언급하지만 피상적이다. 하이데거는 1934/1935 겨울학기에 거행 된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강의에서 B52의 basileie를 지배, 혹은 통치에 해 당하는 독일어 Herrschaft로 번역하고 있다88). 하이데거는 이것의 번역이 쉽지 않음을 스스로 고백한다.89
프리스크도 호프만의 입장에 동의한다. “가장 최근에까지 (……) 거듭된 노고가 basileus가 인도 게르만어에서 유래했다고 보이려는 노력은 성과 없이 남아있다.”91) 그는 호[267]프만의 주장을 보다 깊게 파고들어, 획기적인 주장을 편다. 즉 그는 basileus 의 어원이 페르시아에서 기원했고, 그것의 최종적 근거는 페르시아 왕이라고 본다.
즉 B52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basileie는 어원적으로 Basilinda(왕 놀이)와 같 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문헌상 살펴볼 때 왕 놀이는 페르시아의 퀴로스 (Kyros)의 왕 놀이에 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는 출생과 관련하여 수난 받지만 적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페르시아의 왕이 되는 아이, 퀴로스가 운명적으로 했던 놀이를 생각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92)
[268]
소몰이꾼의 아이로 성장한 퀴로스가 열 살이 되었을 때 마을의 노상에서 같은 또래 소년들과 놀고 있었다. 놀이를 하던 중 소년들은 소치기의 아들이라 고 불리던 그 소년을 왕으로 뽑았다. 소년은 아이들에게 직책을 분담시켰는데, 몇몇은 집을 짓게 했고, 몇몇은 친위대가 되게 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왕의 눈’이 되게 하고, 다른 한 명에게는 자기에게 각종 보고를 전달하는 명예 를 부여했다.93) 이것이 바로 왕 놀이의 원형이다.
여기에서 핵심적 내용은 아이 퀴로스가 뽑기놀이에 의해 왕으로 지명되고 현실 왕의 역할을 놀이공간에서 수행 한다는 것이다. 바실린다(Basilinda), 즉 왕놀이는 퀴로스에서 유래한다.94
[270]
그런데 놀이하는 아이를 퀴로스로 본다면, 퀴로스가 아이들과 어울려서 하는 ‘왕 놀이’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거기에는 놀이의 규칙이 있다. 놀이의 승패를 결정하는 규칙이 있고, 그 결과 왕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의 부하들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하고 그의 왕국을 어떻게 통치하고 신하에게 어 떤 상과 벌을 줄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규칙이 있을 것이며, 놀이에 참가하 는 사람은 이 규칙에 따라야 한다. 이 점이 모래성 놀이와 디오니소스의 놀이, 특히 주사위 놀이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퀴로스의 왕 놀이에도 우연성이 개입하고 그것이 결정적이다.
[272]
B52는 헤라클레 이토스의 사유를 이해하기위해 통용되는 두 가지 길, 즉 생성과 로고스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이상적인 자기 초상화’를 발견한다. 특히 니체의 가장 중요한 저서 중의 하나인 뻕차라투스트 라는 이렇게 말했다뻖의 차라투스트라의 연설 에 등장하는 ‘세 가지 변화’에서 놀이하는 아이는 B52의 aion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그곳에서 니체는 놀이하는 아이를 통해 니힐리즘의 극복과 새로운 세계의 창조가 어떤 방식으 로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놀이는 목적과 인과 그리고 선․악의 사슬로 묶인 세계보다 더 힘이 있고 삶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B52의 놀이하는 아이(pais paizon)는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즉 영원회귀와 힘에의 의지 [273]를 구현하는 범형이다.
[273]
하이데거 역시 헤라클레이토스의 B52를 자신의 철학을 해명하는데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헤라클레이토스가 놀이로 우리에게 말하 는 것은 놀이에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즉 ‘왜 놀이하는가?’에 대한 답은 놀이 하기 때문에 놀이한다는 것이다100). 그에 따르면 근거물음과 존재물음도 놀 이의 일종이다. 존재자는 존재가 아니고, 존재에 대한 근거로 존재자를 근거로 설정할 수 없다. 즉 존재는 탈근거(Ab-Grund)이다. 근거가 없는 존재, 그 렇지만 매 순간 그 자신을 우리에게 보내주고 인간의 역사를 성립시키는 존재 를 하이데거는 존재역운으로 나타내는데, 이것은 놀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