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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실2 -사정, 사건, 사실, 사태

작성자괴목|작성시간26.01.05|조회수44 목록 댓글 0

사실2
-사정, 사건, 사실, 사태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 이 정언을 과학 법칙처럼 언급하든, 아니면 일기의 지극히 작은 고백처럼 사용하든, 이렇게 말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을 이룬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저 그렇게 자연히 흐르는 세계를 가만히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의 흐름에서 어떠한 부분을 의욕에 차서 조명했다, 즉 사건을 일으켰다. 그런데 우리가 세계 전체를 말할 수는 없고, 세계의 총체는 기호로 ‘그대로’ 드러날 수 없기에, 이에 기호와 기호화만의 특유한 장이, 과학 법칙 기호의 세계이든 일기 고백 기호의 세계이든, 일어난다.
사실이란 이 장이 세계 흐름과의 관계를 보존하고 있는 것을 일컫는다. 사막의 겨울에는 눈이 내리지 않기에 사막이라는 세계와 이 담론은 아무 관계도 없다고 보거나, 내 영혼에는 겨울이 없기에 내 영혼의 계절에서 이 담론은 틀렸다고 쓴다면, 이는 이 문장이 세계와는 무관하게 사실이 아니라고 재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이 기호장의 접촉면이 사실에서는 크게 중요하다. 이 장의 세계와의 관계 여부가 가장 자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이 접촉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보는 것은 세포막이지 세포질이 아니다. 기호이지 기호의 내부가 아니다. 이 기호가 사실이라면, 이 장이 작동할 때 세계는 이 기호의 접촉면을 이 기호의 정체로서 발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이 사실이라면, 겨울에 눈이 내릴 때 세계는 눈의 결정을 이 기호의 증거로서 목격할 것이다. 실로 이때, 사실일 때 중요한 것은 기호내재적인 진의이기보다는 기호외재적인 의미이다. 기호의 심화이기보다 기호의 확장, 진실보다는, 맥락이다. 달리 말해, 기호가 내구(內冓)하는 안으로부터의 뜻이기보다, 기호가 재구(再構)하는 바깥으로부터의 뜻이다.
결국 이 사실의 접촉면을 정의하는 방식은 두 가지일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부터 이 기호로의 압박과 이 기호로부터 세계로의 충력이 그것이다. 접촉면에서 이는 동일한 현상의 다른 두 이름이기에 매우 헷갈릴 수 있는 용어들로 구현되지만, 사실의 생성을 나타내려면 이 두 방식 모두 건너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 세계는 기호가 자신을 겪도록 내내 작용하고, 작용받은 기호는 세계를 겪는다. 접촉면에서는 세계를 겪고 있는 기호의 부글거림이 표현된다. 세계를 향한 기호의 (파토스)정념과 세계를 향한 기호의 (프락시스)행사.
# 그리고 동시에 기호는 세계로 자신의 충력을 계속 밀어내 세계를 자극하고, 자극받은 세계는 그만큼 바뀐다. 접촉면에서는 세계를 두드리는 기호의 웅성거림이 표현된다. 세계를 마주한 기호의 (프라그마)사건과 세계를 마주한 기호의 (파테마)정동.
 
 
 
프라그마는 접촉면의 가장 바깥이다. 프라그마는 세계와 직접 접촉하며 세계를 직접 반영한다. 투명한 기호는 이 프라그마가 세계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이 보이고, 이는 세계와 동행하는 ‘현실의’ 기호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긴다. 예를 들자면, 기사나, 보고문학, 또 사물로서는 바위, 나무 등속이 있다. 기호의 바깥에서는 만약에 기호가 완벽하게 투명하다면 현실의 기호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프라그마를 사실이라고 번역할 때 본원상 미묘한 난점들이 생긴다. 프라그마는 세계에 그대로 속하지 않고, 현실의 속성이나 부속일 수도 없다. 그런데도 기호는 명백하게 세계보다 작으며, 프라그마가 접촉면의 가장 바깥인 까닭에 현실과 직접 관계하는 기호의 면이기에, 현실이 기호를 둘러치고 있다고만 여기며, 이 환경이 기호를 지배하면서 속성이나 부속, 축약으로, 다른 말로는 상징으로 삼는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물방울 하나에 세계가 담겨 있다느니 하는 상투어를 비롯하여, 보고문학을 격하할 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오해를 완전히 피하면서 프라그마, 기호의 현실, 기호의 윤곽을 묘사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이 기호의 현실은 그 기호의 표면장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현실을 기호의 외곽을 통해 끌어들여 붙잡고 있는 내부의 힘이 있다. 이 기호의 권능을 발견할 때 기호의 내재학을 사유할 수 있다. 기호의 내재학은 이 권능이 기호의 안에서부터 밖으로 작용하는 회로를 자신의 구체로 삼는다. 그리고 이제 사유가는 프라그마 바깥 기호 접촉면에 은닉되어 보이지 않는 안쪽 기호 접촉면을 일컫는다.
 
현실을 담는 내면의 움직임, 우리가 실행이라고 퍽 적절하게 번역하는 프라시스가 있다. 그리고 현실에 반응하여 내면을 떠받치는 힘 접촉면이 아닌 접촉면의 내부에서의 충력의 장 파토스가 있다. 그리고 이것들의 회로도 그 자체를 로고스라고 부를 수 있다.
 
파테마는 기호 바깥 접촉면이 접하고 있는 기호의 생태이다. 파테마야 말로 세계에 속한다. 파테마는 기호가 아니며, 기호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파테마는 매우 중요하다. 실행하는 기호는 이 환경과 반드시 관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기호의 바깥에서는 반드시 이 생태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재인식되기 때문이다. 아무런 배경도 없다면 이 기호는 아무 곳에도 실재로 놓이지 않은 기호이고, 실재로 어떠한 변화도 이동도 할 수 없다. 파테마가 없는 기호는 현실적 기호는 아니지만 상상으로 작동해볼 수 있으니, 이론적인 도형들이 그러하다. 그런데 기실 이론적 도형조차도 머리 안에서든 종이 위에서든 현상하는 순간 파테마와 관계한다. 기호 입장에서 파테마는 자신이 놓이는 순간, 기호 자신이 자신을 벗어나서 자기 바깥 세계에 새기는 가장 확고한 흔적이다. 역으로 이 흔적이 있다는 것은 기호가 있다는 것이다. 파테마는 세계에서 행동하는 기호가 드러내는 현실의 변화, 우리가 확연한 움직임, 실재로 있다고 하는 정동의 결과이다.
 
 

* 처음으로 AI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려보았다. 가장 원했던 것은 파테마의 도상이 사과 아래가 아니라 잎 아래에 있어서 마치 사과의 싹이 난 것처럼, 파테마가 사과의 토양처럼 묘사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그린다면, 사건으로서 생성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만,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로 비취는 문제가 또 있다. 나는 여기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토양에 사과가 반쯤만 드러나면 어떨까, 그런데 사과는 쌍떡잎 식물인가 외떡잎 식물인가, 생각하다가 나는 여기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 그려놓고 바라보다가 생각이 났다. 이 그림은 플라톤의 동굴 우화와도 흡사하다. 동굴안의 정념의 장[파토스]에서 밖으로 나와[프라시스] 동굴의 경계선에 서서[기호의접촉면] 안에서 인식한 기호의 너울거림들이 조각상의 바[프라그마]라는 것을 재인식한다. 많이 지적되는 것인데, 이 죄수가 동굴 바깥에서 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조각상, 생생한 기호가 아니라 죽은 기호였다. 이는 죄수의 사실이 실재 자체가 아니라 실물이며, 의식의 가장 바깥이되, 여전히 의식의 기호의 가장 바깥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이는 프라그마에 대한 퍽 적절한 비유이기도 하다.
차이도 있다. 플라톤은 이 우화에서 동굴 바깥으로 나온 사람의 세계로의 기투는 묘사하지 않았다. 내 용어로는 파테마는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우화에서 로고스는 스스로 빛을 뿜는 동굴 밖 태양에 할당되었으므로, 그 우화만을 따른다면, 사실 이 그림에서 logos는 씨앗 부분이 아니라 바깥에 광원을 그려서 나타내야 했다. 그러나 내 기호론과는 맞지 않아서 일부러 그렇게까지는 따르지 않았다. 나는 씨앗으로서 로고스는 플라톤이 아니라 스토아철학의 개념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자아 혹은 의식을 하나의 사실로서 다룰 수 있는 방안을 이 모식도는 제안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실로서다루기는 기호로서다루기와 같은 말이다.
* 기호의접촉면을 기호막이라는 용어로 나타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세포질과 세포막 관계를 연구해보면 좋겠다. 특히 표면장력과 세포막의 관계가 궁금하다.
* 결론 내보자. pathos 사정(事情)(passion), praxis 사건(事件)(l'événement), pragma 사실(事實) (la chose), pathema 사태(事態) (la situation). 하나의 사실이라고 우리가 쉽게 말하는 이 말은 다층을 가진다. 그 다층은, 일컫건대, 사정, 사건, 사실, 사태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는 사태이다.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사정이다.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은 사실이다. “시력을 회복한다”는 사건이다.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흔히 시를 잃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 시력(視力)을 회복한다.
 
박성룡, '과목(果木)', "신풍토“, 1959.
박성룡 [朴成龍] 호 : 남우(南隅) 1934년 ~ 2002년
 
 
이름과 동사를 통해 pragma를 praxis와 결합해야 한다고 말할 때(262e13–14),
다음은 플라톤 『소피스트』 262e13–14의 핵심 구절에 대한 그리스어 원문과 직역입니다.
(문맥상 필요한 최소 범위를 포함해 제시합니다.)
 
그리스어 원문 (262e)
ὄνομα γὰρ καὶ ῥῆμα συμπλεκόμενα πρᾶξίν τινα δηλοῖ.
“이름과 동사가 서로 엮일 때, 어떤 행위(πρᾶξις)를 드러낸다.”
 
어휘·구문 해설 (직역 근거)
ὄνομα : 이름, 명사
ῥῆμα : 동사
συμπλεκόμενα : 서로 엮이며, 결합되며 (현재 중간/수동 분사)
πρᾶξίν τινα : 어떤 하나의 행위(불특정한, 그러나 개별적인)
δηλοῖ : 드러낸다, 밝힌다, 의미한다
 
ΞΕ. οὐκοῦν ὄνομα μὲν αὐτὸ καθ’ αὑτὸ οὐδεμίαν λέξιν σημαίνει,
οὐδὲ ῥῆμα χωρὶς ὀνόματος;
ΘΕ. πῶς γάρ;
ΞΕ. ἀλλ’ ὅταν ἀλλήλοις συμπλεχθῶσιν,
τότε πρῶτον λέγειν τι γίγνεται.
ΘΕ. πάνυ γε.
ΞΕ. ὄνομα γὰρ καὶ ῥῆμα συμπλεκόμενα πρᾶξίν τινα δηλοῖ.
ΘΕ. ἀληθῆ.
ΞΕ. καὶ τὸ μὲν πρῶτον καὶ ἐλάχιστον λόγον ἂν εἴη τοῦτο,
τὸ δὲ μὴ συμπλεκόμενον οὐ λόγος.
ΘΕ. οὐ γάρ.
ΞΕ. λόγος δέ ἐστιν ὅταν περὶ πράγματός τινος λέγῃ.
ΘΕ. πάνυ γε.
ΞΕ. οὐκοῦν καὶ ἀληθὴς καὶ ψευδὴς λόγος ἔσται;
ΘΕ. ἔσται.
ΞΕ. ψευδὴς μὲν δή, ὅταν ἕτερα λέγῃ τῶν ὄντων περὶ τὸ πρᾶγμα,
ἀληθὴς δὲ ὅταν τὰ ὄντα ὡς ἔστι λέγῃ;
ΘΕ. ἀνάγκη.
ΞΕ. λέγει δέ γε λόγος ὢν περὶ σοῦ νῦν ἢ περὶ ἄλλου τινός;
ΘΕ. περὶ ἐμοῦ δήπου.
ΞΕ. ἆρ’ οὖν ὁ λέγων ὅτι Θεαίτητος πέταται,
ἕτερά σοι προσάπτει τῶν ὄντων;
ΘΕ. πάνυ γε.
ΞΕ. ψευδὴς ἄρα λόγος ἔσται οὗτος.
 
낯선 이:
“그렇다면 이름은 그것 자체로는 아무 말도 뜻하지 않고,
동사도 이름 없이 홀로는 그렇지 않은가?”
테아이테토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낯선 이:
“그러나 그것들이 서로 엮일 때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말하게 된다.”
테아이테토스:
“그렇습니다.”
낯선 이:
“이름과 동사가 결합될 때, 어떤 하나의 행위(πρᾶξις)를 드러낸다.”
테아이테토스:
“참입니다.”
낯선 이:
“이것이 최초이자 최소한의 λόγος일 것이며, 결합되지 않은 것은 λόγος가 아니다. λόγος란 어떤 πράγμα에 대해 말할 때 성립한다.”
“그렇다면 λόγος에는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있겠지?”
“거짓인 λόγος란,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그 πράγμα에 속하지 않는 것을 말할 때이고, 참된 λόγος란, 존재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말할 때이다.”
“예컨대 ‘테아이테토스가 날고 있다’고 말하면, 너에게 너에게 속하지 않는 어떤 존재자를 덧붙이는 것이니, 이것은 거짓 λόγος다.”
 
https://plato-dialogues.org/fr/lexique.htm#paschein
 
 
프라그마 (명사; 복수형: 프라그마타):
프라그마는 ("agir, faire, accomplir 행동하다, 하다, 성취하다")동사 프라테인관련있는데, 이는 파테마가 ("subir, éprouver겪다, 경험하다")동사 파셰인과 관련있는 것과 같다. 파테마와의 관계 및 "사물"로의 일반적인 번역의 한계에 대해서는 파테마 항목을 참조하라.
 
Pragma (명사; 복수형 πράγματα)
프라테인 πράττειν
프라테마 πάθημα πάσχειν(«겪다, 경험하다»)
파셰인 πάσχειν
포이에인 ποιεῖν
파테마 πάθημα
파토스 πάθος
 
프라테인 (동사): "agir, faire, accomplir행동하다, 행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으로, ("subir, être affecté par겪다, 영향을 받다")파셰인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파셰인 (동사; 부정과거형 pathein) : 일반적으로 "겪다, 영향을 받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 subir, être affecté par »"행동하다, 하다, 성취하다" 또는 « s’occuper de »"처리하다")프라테인과 (« faire, fabriquer, produire »"만들다, 창조하다, 생산하다")포이에인과 구별된다. 파셰인은 주체적인 관점에서 프라테인과 포이에인의 활동적 개념에 반대되는 수동적인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즉, 파셰인은 겪고, 영향을 받는 경험을 의미하며, 프라테인과 포이에인은 주체가 능동적으로 행동하거나 창조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Pathèma (명사; 복수 pathèmata):
(2023년 2월 16일 수정) paschein에서 파생된 명사로, 아오리스트형 pathein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이는 prattein에서 pragma가, poiein에서 poièma가 파생된 것과 동일한 방식의 파생이다.
이러한 명사들은 또 다른 명사군과 대비될 수 있는데, 즉 paschein에서 파생된 pathos, prattein에서 파생된 praxis, poiein에서 파생된 poièsis이다.
첫 번째 계열의 단어들(pathèma, pragma, poièma)은 두 번째 계열의 단어들(pathos, praxis, poièsis)보다 더 구체적이며, 동사가 함의하는 바의 특정한 개별적 발생을 가리킨다. 즉 pathèma특정한 ‘정동(affection)’의 사례, 곧 누군가가 실제로 ‘겪는’ 어떤 구체적인 것을 의미하고, pragma특정한 ‘행위’의 사례, 하나의 구체적인 ‘사안’이나 ‘사건’을 의미하며, poièma하나의 구체적인 실현물, 그리고 더 전문적인 의미에서는 특정한 문학 작품을 가리키는데, 이것이 프랑스어 *poème(시, 시편)*의 어원이 된다.
반면 두 번째 계열의 단어들은 동사가 함의하는 바를 추상적으로, 그리고 특정한 사례에 대한 언급 없이 가리킨다. 즉 pathos일반적으로 ‘겪음/당함’이라는 사실 자체, 혹은 특정되지 않은 정동의 한 사례를, 그것이 단지 ‘겪음’의 발생이라는 점에서 가리키며, praxis특정되지 않은 ‘행위’나 ‘작용’, 혹은 단순히 ‘행위함’이라는 사실 자체를 의미하고, poièsis특정한 창작물을 가리키지 않은 채 ‘창조함’이라는 사실 자체를 의미하거나, 전문적인 의미에서는 특정 작품에 한정되지 않은 문학 작품성 자체를 가리키는데, 이것이 프랑스어 *poésie(시, 시문학)*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다.
 
pathèma(‘정동’, 즉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정동—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좋든 나쁘든—또는 그러한 정동에 놓인 자의 ‘심리 상태’)와 pragma쌍은 플라톤에게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플라톤이 『국가』 제6권 말미의 선분의 비유에서 선분을 이루는 네 구간 각각과 관련되는 것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 위해 pathèma라는 말을 사용하고, 또 여러 대화편에서 pragma라는 말을 로고스(logos) 안에서 단어들과 그 결합 뒤에 놓여 있다고 상정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라톤이 이 두 단어 가운데 하나를 사용할 때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상보적 관계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pragma흔히 ‘사물’로 번역하는 것은 축소적인데, 그렇게 번역하면 최소한 우리의 감각이나 정신에 대해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pragma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사물’—생명체를 포함하고, 나아가 ‘추상물’, ‘순수 지각가능한 것들’까지 포함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또한 ‘사실’이나 ‘사건’일 수도 있다. 이 세 단어, 즉 ‘사물chose’, ‘사실fait’, ‘사건événement’은 모두 pragma의 가능한 번역들이다.
플라톤이 선분의 비유에서 pathèma사용하는 것은, 가시적인 것의 영역에서든 지성에 의해 파악되는 것의 영역에서든, 우리의 모든 정신 활동이—그것이 감각에 의해 직접 유도되었든 아니든—정신 바깥에 있는 어떤 ‘무언가’(ti)에 의해 촉발된다는 점을 시사하기 위함이다. 이 ‘무언가’는 pragma이며, 반드시 감각적이거나 물질적이거나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사유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가 필수적인 것이다.
『소피스트』에서 엘레아의 이방인이 ‘동사’(rhèma)를 “행위들(praxesin, praxis의 여격 복수)에 대해 드러내는 것”으로, 이름’(onoma)“바로 그 행위들 안에서 행하거나 작용을 받는 자들(prattousi, prattein의 현재분사 남성 또는 중성 여격 복수)에 관한 음성적 표지”로 정의하고(『소피스트』 262a1–7), 이어서 몇 줄 뒤에 로고스(‘담론’)는 필연적으로 무언가에 대한 담론이어야 하며(tinos einai logon, 262e6), 이름과 동사를 통해 pragma를 praxis와 결합해야 한다고 말할 때(262e13–14), 그가 뜻하는 바는 로고스가 pragma—즉 우리의 사고를 (감각을 통해서든 아니든) 작동시키고 활성화하는 어떤 것—에 대한 참조 없이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pragma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praxis의 한 특정한 사례로서, 그 praxis에는 ‘주체’의 수동성이 포함될 수도 있다. 이는 그의 첫 번째 예인 “테아이테토스는 앉아 있다 Théétète est_assis *”(262a2)가 이미 보여 주는 바이다. 이 praxis는 특정한 동사(rhèma)에 의해 특징지어지며, 그 동사는 특정한 주체(행위자이거나 피행위자)를 전제하고, 이 주체는 이름(onoma)으로 서술된다.
그리고 로고스가 묘사하는 활동 속에서 주체가 행위자일 수도 있고 피행위자일 수도 있지만, 그 로고스가 다루는 pragma는—이를 단순히 ‘주체’나 ‘사물’로 한정하지 않고, 로고스가 묘사하는 ‘활동’의 전체성 속에서 보아야 하는데—항상 그 로고스를 산출하는 사람의 정신에 대해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그것을 pragma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며, 동시에 그 pragma그 사람의 정신 안에서 산출하는 것을 pathèma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프랑스어 번역에서 « est_assis »로 표기하며 « est »와 « assis » 사이에 밑줄로 표시한 공백을 둔 것은, 그리스어에서는 보조동사 없이 단 하나의 단어, 즉 동사형 kathètai (현재 수동 직설법)만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프랑스어에서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프랑스어에서는 수동태를 표현하기 위해 두 단어가 불가피하게 필요하며, 그중 하나가 바로 동사 « être(이다) »의 형태인 보조동사 « est »이다. 이 ‘이다’라는 동사는 이 인용문이 발췌된 소피스트논의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동사이기도 하다.
 
 
49. SOULEZ, 같은 책(o.c.) (주 34), p. 138: “Prâgma는 일상적 사용 맥락에서뿐 아니라, 그 기원에서처럼 법률적·수사학적 영역에서도, 담론이 다루는 문제를 의미하며, 더 좁은 의미에서는 담론의 외부 대상들뿐 아니라 담론에 대해 초월적인 것으로서 그 자체로 고려되는 사물들과 대비되는, 곧 담론의 사물의 의미를 가리킨다.” 철학적 귀결에 대해서는 SOULEZ, 같은 책, p. 193-198을 참조하라. 아울러 덧붙이자면, 그 자체로서 σημεία(기호들)의 조정(혹은 비조정)은 오직 그것들의 연결이 λόγος(담론)인지 아닌지의 지위에만 관련될 뿐, 성립 가능한 λόγος의 진리성이나 허위성과는 관련되지 않는다
Marieke Hoekstra, Frank Scheppers, "Ονομα, ρήμα et λόγος dans le Cratyle et le Sophiste de Platon. Analyse du lexique et analyse du discours


 
원제: Le projet d’une grammaire philosophique chez Platon : du Cratyle au Sophiste
저자: Antonia Soulez
출판: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UF), 1991
 
 
그렇다면 언어의 문장에서 “지시되는 것들”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플라톤은 그것들을 가리키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이데아에는 적용되지 않고 자연에서 발견되는 우연적인 사물들을 지칭하지도 않는다. 바로 ‘프라그마타(prágmata)’이다. 담론의 기표는 이데아도 아니고 세계의 대상도 아니다. 나는 소피스트에서 복수형으로 사용된 ‘프라그마타’라는 표현을 ‘사태(Sachverhalt)’로 번역하여, 담론의 기표가 지닌 관계적 구조를 강조하고자 한다. 이 관계적 구조는 분명히 “최고의 종류”들 사이의 가능한 관계들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
Antonia Soulez, la grammaire philosophique chez platon, 1991.
 
미독.
P. HADOT, « Sur les divers sens du mot Pragma dans la tradition philosophique grecque », in Concepts et Catégories..., P. Aubenque (1980), p. 309.
 
 
 
 

구분첫 번째 계열 (결과·개별적 발생)의미두 번째 계열 (과정·추상)의미
정동 / 겪음pathèma특정한 정동의 구체적 사례누군가가 실제로 겪는 개별적 정동pathos겪음/당함자체특정되지 않은 정동, 발생 일반
행위pragma하나의 구체적 행위, 사안·사건praxis특정되지 않은 행위행위함이라는 사실 자체
창작poièma구체적 실현물(전문적 의미: 특정 문학 작품)프랑스어 poèmepoièsis창조함 자체(전문적 의미: 작품 일반의 문학성)프랑스어 poésie
공통 차이동사가 함의하는 바의 개별적·구체적 발생동사가 함의하는 바의 추상적·일반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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