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 1일째(2013.11.22)/인천공항 /비엔티엔
때로는 우연처럼 다가오는 행운이 있다.
아내가 다니는 직지사 불교교양대학에 청강생으로 나가다가 그 분들의 졸업여행에 함께 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인원이 적어서 못 가게 될 거라는 예상을 깨고 마침내 스님 포함 20명의 여행 인원을 확보하였으니 이 또한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은 ‘임사체험’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죽음, ‘익숙한 공간으로부터의 나의 부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멀리서 ‘나’없는 공간을 바라보고 지나온 나의 행적을 살펴보면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되고 그래서 한없이 겸손해진다. 덤으로 얻어지는 것은 돌아왔을 때의 새로운 활력!
이번 여행지는 라오스다. 아는 선생님 몇 분들과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곳인데 지금까지 가지 못했다. 라오스는 우리나라보다 땅이 넓다. 남북한을 포함하면 22만㎢인데 라오스는 23.7㎢이니 한반도보다 조금 크고 남한의 2.4배 정도 된다. 인구는 667만명 (2008년 현재)이라고 한다. 수도는 비엔티엔(Vientiane)이며 68개의 종족이 섞여 살고 있다. 그래서 소수 민족의 용광로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소수민족을 사는 해발고도에 따라 세 개로 나눈다. 500m 이하에 사는 라오룸족(68%), 500m ~ 1,000m의 라오퉁족(22%), 1,000m 이상에 사는 소수 민족은 라오숭족(9%)이다.
라오스의 화폐 단위는 킵인데 1달러(우리 돈 1,070원 정도)가 7,000킵이다 .
라오스 1,000 킵짜리 지폐 앞면. 왼쪽부터, 라오숭, 라오룸, 라오퉁족 여인이 그려져 있다.
라오스의 정식 명칭은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이다.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다가 1949년 독립하였고, 1975년 군주제를 폐지하고 라오인민혁명당 일당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사회주의국가이나 1979년 12월부터 시장유통을 자유화하고 개인 경영을 인정하는 자유경제정책을 채택하였다. 그래서 빈부의 격차가 매우 크다고 한다.
일행은 오전 12시에 김천문화예술회관 주차장에 모였다. 스님 포함 20명이다. 모두의 얼굴에 설레임이 가득하다. 집행부에서 준비한 김밥과 간식을 받았다. 여행을 준비해본 사람은 안다. 앞에서 여행을 준비하는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박영옥 회장님과 오애순 총무님 그리고 김상임 법우님이 많은 수고를 하셨다. 여행비는 150만원이며 수미산여행사를 이용하였다. (공동 경비는 각 3만원씩 내고, 여행 중에 10불씩 더 냈다)
이번 여행의 인솔자 각승스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스님은 자상하고 섬세하시며 인정이 많으시다. (여행기간 내내 우리들의 사진을 찍어주시고 함께 생각을 나누었으며 늘 같이 호흡하셨다.)
버스는 네 시간에 걸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짐을 부치고 입국 수속을 끝낸 후 오후 7시 50분경에 진에어(Jin Air) 015편이 출발하였다. 좌우에 세 개씩 좌석이 있는 작은 비행기인데 엔진 소리가 매우 커서 모두들 힘들어 했다. 좌석의 앞뒤 간격이 좁은데다 기내식도 너무 빈약했다. 저가항공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진에어에도 좋은 점이 있다. 스튜어디스들이 예쁘고 친절하다. 그들은 치마가 아닌 청바지를 입는데 모두가 늘씬한 몸매에 귀여운 얼굴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말로만 듣던 베이글여(얼굴은 베이비, 몸매는 글래머)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자리가 중간 중간에 비어서 살며시 누울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우리를 싣고 갈 <진에어> 105편
라오스라는 땅과 그 곳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그들의 집과 사원, 시장, 푸르고 푸를 열대의 자연을 생각하면서 보던 책을 덮고 살풋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