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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당전서 읽기

6-1. 어떻게 살아야 가능한가

작성자구수경|작성시간19.06.30|조회수266 목록 댓글 0



6-1. 어떻게 살아야 가능한가

 

시집 권6송파수작(松坡酬酢)’이라고 이름 붙여진 몇 편의 시로 시작한다. 첫 시는 무자년(1828) 단오에 쓰인 시이다. 5의 마지막이었던 전간기사(田間紀事)’가 기사년(1809)에 쓰인 시였으니, 이 시들은 해배 후 쓰인 말년의 시이다. 10년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도디미 님이 못 찾는 것이라 아예 찾을 생각조차 안했지만 그저 궁금하다.)

송파(松坡)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명일까? 수작(酬酌)은 말이나 술을 주고받는다는 뜻인데, 수작(酬酢)으로 쓰였다. 검색하면 수초((酬酢)로 쓰인 곳도 있다. 앞의 글자()따르다는 의미가 뒷 글자()돌리다의 의미가 있다. 술이 아니라 시를 돌리다(짓다)는 의미일까. 현실에서는 수작 건다는 의미가 그리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건만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수작이 시작(始作)이고 시작(詩作)이다. 육방옹(陸放翁)은 송()대의 시인 육유(陸游)를 말하는데, 송옹(淞翁)은 누구일까. “세월은 이미 세 자루 촛불이 다하였고(年光已盡三丁燭)”는 생의 말년을 의미한다고 한다. 촛불 세 자루면 하룻밤을 났다고 하니!

허물 많고, 대낮도 컴컴했던 젊은 날을 보내고 늘그막에 한가히 전원에서 보내는 것도 은총이란다. 이제 쓸모없는 인생 얼마나 살지 늘 생각할 뿐(懶散常思幾許生)”이지만, “급한 성질 소마되어 기쁨과 노염은 없으나, 병든 몸의 지혜는 흐리고 갤 것을 아네(急性消磨無喜怒, 病軀靈慧識陰晴).” “곤궁한 삶이 참다운 부귀임을 이미 알았고, 예로부터 달관자는 어리석은 자와 같나니(已識窮生眞富貴, 自來達觀似冥頑).” 어떻게 살아야 가능할까? 선생의 시구처럼 달고 신 세상맛을 다 맛본 후라야 가능한가. 그럼에도 묘한 서글픔은 왜일까.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그런 서글픔.

 

단오에 육방옹의 시 초하한거여덟 수를 차운하여 송옹에게 부치다(端午日, 次韻陸放翁<初夏閒居>八首, 淞翁 戊子五月五日)

매실은 푸르게 익어가고 백합꽃은 향기로운데,
훈풍이 작은 창으로 미량을 맞아오네
세월은 이미 세 자루 촛불이 다하였고,
세간살이는 이제 십홀 방만 남았다오
보리 이삭 등장하니 주린 시절 지났고,
푸른 그늘 바다 같아 조는 때가 길도다
옛사람 주역 말할 제 어이 그리 허물이 많은고,
본디 빈 주머니가 주머니를 싸맴보다 낫다오.

梅子靑肥百合香, 薰風小牖迓微涼.

年光已盡三丁燭, 世界今餘十笏房.

麥穗登場飢境過, 綠陰如海睡時長.

古人說何多咎? 自是空囊勝括囊.

 

검은 구름 뭉게뭉게 대낮이 컴컴하고
오이 밭엔 한음의 두레박이 여전하도다
앵두는 일찍 시들어 오히려 흰빛이 남았고,
파초는 추위에 상하여 푸르지 못하네
얕은 여울엔 배가 막혀 이갑이 떠들어대고,
무너진 도랑엔 널빤지를 놓느라 원정이 분주하다
농가에 따로 천문 관측하는 방법이 있어,
항상 무저울이 편평한가 기운가를 본다네.

雨意萋萋作晝冥, 瓜田依舊漢陰.

櫻因早瘁猶留白, 蕉爲冬傷未放靑.

淺瀨膠船喧里甲, 敗溝設版走園丁.

農家別有天文志, 平仄常看水秤星.

 

늘그막에 한가히 이 띳집에 쉬면서,
한 평상에 앉고 한 침상에 눕고 하나니
보기 좋은 건 오직 남쪽 들의 아늑한 물이요,
마음에 상쾌한 건 곧 서늘한 북쪽 창이로다
문자를 가지고 겨루는 기세를 부리지 말라,
점차로 천지가 본디 장난마당임을 알았네
황혼이 되길 기다려 시끄러이 코를 고나니,
무더운 밤에 더구나 등불이 가증스러워.

晩年湯沐此茅堂, 坐一牀仍臥一牀.

悅眼物唯南垞淼, 快心事是北窓涼.

莫將文字施爭氣, 漸識乾坤本戲場.

待到曛黃轟鼻鼾, 炎宵況又惡燈光.

 

고요히 보니 쓸쓸히 손들 떠난 처음에,
한가히 거닐어라 바람 부들 쫓아갈 필요가 없네
기강이 엄격해라 벌은 임금을 높이 받들고,
사랑이 고루어라 제비는 새끼를 잘 치도다
한대엔 경학을 말하면서 실제를 빠뜨렸고,
송유는 이치를 통하여 이를 좇아 탐색하려 했네
무지개 한번 끊어지고 바위 안개 푸르른데,
또한 어떤 사람이 이 이치를 강론할런고.

靜觀蕭然客散初, 閒行不必逐風蒲.

紀綱嚴者蜂尊主, 慈愛均哉燕養雛.

代談經遺實際, 儒通理欲追呼.

虹橋一斷巖煙翠, 亦有何人講此無?

 

쓸모없는 인생 얼마나 살지 늘 생각할 뿐,
식은 재 마른 나무처럼 정 둔 데가 없다오
김을 안 매니 나물은 쑥 속에 파묻히고,
저술을 폐하매 책은 오히려 책상에 놓여 있네
급한 성질 소마되어 기쁨과 노염은 없으나,
병든 몸의 지혜는 흐리고 갤 것을 안다네
시가들의 격률이 번쇄한 게 시름겨워,
웃고 욕하며 붓 가는 대로 따라 짓노라.

懶散常思幾許生, 死灰槁木不鐘情.

忘鋤菜遂蒿中沒, 廢著書猶案上橫.

急性消磨無喜怒, 病軀靈慧識陰晴.

詩家格律愁煩璅, 笑罵從他信筆成.

 

자손에게 살림을 주관하도록 일임하여,
땔나무 팔아 쌀과 바꿔 먹는 게 생활인데
서쪽 백성은 풍속 후해 오히려 꿀을 보내고,
남녘 선비는 정이 깊어 늘 차를 부쳐 온다
지위 없어 가마꾼들 애쓰는 게 부끄럽고,
때로는 작은 배 끌고 깊은 골짜기에 노니네
, 길같이 쌓인 서적이 무슨 도움이 되랴,
한푼 돈을 샀을 땐 또한 스스로 자랑한다오.

一任兒孫自幹家, 販樵兌糴是生涯.

西氓俗厚猶貽蜜, 南士情深每寄茶.

無位肩輿羞蹩躠, 有時划艇弄谽谺.

等身書在嗟何補? 直一錢時也自誇.

 

까닭 없이 몸뚱이가 세간에 부쳐 있나니,
이런 무용지물이 어느 때나 돌아갈는지
집은 예찬의 시 속의 물을 임하였고,
몸은 서희의 그림 속의 산에 있도다
곤궁한 삶이 참다운 부귀임을 이미 알았고,
예로부터 달관자는 어리석은 자와 같나니
알건대 인생 고해에 부침하는 자들은,
응당 재주 많아 한가함을 견디지 못함이라.

無故形骸寄世間, 贅疣騈拇幾時還?

家臨倪瓚詩中水, 身在徐熙畫裏山.

已識窮生眞富貴, 自來達觀似冥頑.

遙知苦海沈浮者, 應是才多不耐閒.

 

생각건대 달고 신 세상맛을 다 맛보고,
전원에서 늙게 된 건 임금님 은총이로세
물 빠진 모래톱엔 갈대순이 싹터 나오고,
비 온 뒤의 울타리엔 밤꽃이 향기롭네
여종이 차조술을 빚으니 이는 중등 부자요,
아전이 세금 독촉 안 하니 소강의 상태로세
경황 한 장 다 쓰고 나니 비로소 어두워져라,
영매의 시절에 해가 치우치게 길도다.

甘酸世味憶皆嘗, 投老田園是寵光.

水退汀洲蘆筍茁, 雨餘籬落栗花香.

婢能釀秫斯中富, 吏不催租卽少康.

題徧硬黃窓始黑, 迎梅時節日偏長. (여유당전서1시집, 5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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