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거스름 없이 걷고 거슬림 없이 쓰다
“120일 동안을 아파 누웠다가 마침 용문산 수종사에서 온 현계 영공을 만났는바, 영공이 장차 남쪽으로 천진암에 가서 노닐고자 하므로 애써 영공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인하여 석천옹을 방문하여 함께 갔는데, 우리 세 집의 소년들과 계림ㆍ성구ㆍ규백도 따라갔다. 수남에 이르러 짓다(病伏十有二旬 適逢玄谿令公從龍門 水鍾而至 將南游天眞菴 勉而從之 仍訪石泉翁偕適 三家少年及季林聖九規伯亦從焉 到水南作.『여유당전서1』, 시집, 604쪽).”
천진소요집(天眞逍搖集)은 천진암에서의 기억을 노래한 시집인 듯하다. 선생은 10대 시절 형제들과 함께 이곳에 소풍 왔었다. 그리고 청년 시절에도 왔었다. 해배 후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늙어 병든 몸을 이끌고 천진암을 찾았다. 무려 넉 달을 앓은 후이니 쇠잔한 몸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꼬. 50여 년의 세월을 두고 이루어진 2박 3일의 시간. 먼저 간 형제와 일가(一家), 스승을 추모했다고 전해진다. 추억과 회한과 그리움의 시간이었지 싶다. 주역에 따라 총 64수라고 하는데(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종교적인 해석을 하기도 한다만(나는 아직 모르겠다)! 어린 시절 천진암에서는 세상에 거스름 없이 걷고(살고) 싶은 소망을 품었을까. 말년에는 거슬림 없이 쓰고(남기고) 싶은 소망이 있었을까. “선방엔 그 전 사람들을 찾아볼 곳이 없어라(禪房無處舊人求).”
석천옹의 사촌 옥벽에 의제하면서 숙천진사시의 운을 다시 쓰다(擬題石泉翁社村屋壁, 復用宿寺韻 玄谿)
속세의 생활 반평생에 바라는 것 없으나,
유독 맑고 그윽한 그대의 거처를 좋아하네
집에 전하는 구업은 천 권의 경서이고,
늘그막의 생애는 한 언덕의 보리밭일세
짙은 그늘 꽃다운 나무엔 지나는 새를 보겠고,
고요한 푸른 못에는 고기 노는 걸 알겠네
아무 일 없이 흉금을 헤치고 서로 마주하니,
저 강호에 둥둥 뜬 배와 서로 같구려.
半世塵寰無所求, 喜君居止獨淸幽.
傳家舊業經千卷, 晩境生涯麥一邱.
芳樹陰濃看鳥過, 碧潭風靜識魚游.
披襟共對虛無事, 等是江湖泛泛舟. (『여유당전서1』, 시집, 6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