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동주열국지 (東周列國志) - 周宣王聞謠輕殺 杜大夫化厲鳴寃

작성자엣랑|작성시간26.06.17|조회수30 목록 댓글 6

    【名品】  벗♡ 쉼터 幸福 사랑  지식 정보   한문(漢字) - 漢詩.古典

 

詞曰:「道德三皇五帝,功名夏后、商、周;英雄五霸鬧春秋,頃刻興亡過手!青史幾行名姓,北邙無數荒邱;前人田地後人收,說甚龍爭虎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cafe.daum.net/gf52esr

]

(辛棄疾의) 사(詞)에 이르기를, “삼황오제는 도덕이요, 하상주 삼대에는 공명이라. 영웅 다섯이 일어나 춘추시대가 소란했으나, 경각에 흥망은 지나가고, 겨우 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얼마이며. 북망산에 황량한 무덤은 얼마인가, 앞에 사람이 가졌던 땅을 뒷사람이 차지하려고 싸우니 용과 범이 서로 싸운 것을 일러 무엇하랴.” 하였다. 

【名品】 벗♡ 쉼터 幸福 사랑 *(19/금.광고/홍보/스크랩) & (타) 링크도배 없읍니다. & [운영진님] 발견시 (퇴출) ◎

http://cafe.daum.net/gf52esr♡

 

 

第一回 周宣王聞謠輕殺 杜大夫化厲鳴寃 

제1회; 주선왕이 노래만 듣고 함부로 죽이고 두 대부가 원귀가 되어 원통함을 호소하다. 

 

話說,周朝自武王伐紂,即天子位,成、康繼之,那都是守成令主。又有周公、召公、畢公、史佚等一班賢臣輔政,真個文修武偃,物阜民安。自武王八傳至於夷王,覲禮不明,諸侯漸漸強大。到九傳厲王,暴虐無道,為國人所殺。此乃千百年民變之始。又虧周、召二公同心協力,立太子靖為王,是為宣王。那一朝天子,却又英明有道,任用賢臣方叔、召虎、尹吉甫、申伯、仲山甫等,復修文、武、成、康之政,周室赫然中興。有詩為證:夷、厲相仍政不綱,任賢圖治賴宣王。共和若沒中興主,周曆安能八百長!

화설, 주나라는 무왕이 (폭군) 주(紂)를 물리치고 천자로 즉위한 데서부터 시작하여, 성왕과 강왕이 왕위를 이었다. 그들은 모두 주나라 기초를 세운 훌륭한 군주였다. 또 주공, 소공, 필공, 사일 등 어진 신하들이 정치를 보좌하였고, 문화를 일으키고 전쟁을 억제하여 물자가 풍부해지고 백성이 편안했다. 무왕에서 여덟 번 전하여 이왕(夷王)에 이르렀는데, (열국의 제후들이) 예를 지키는 것이 분명하지 않았고, 제후가 점점 강성해졌다. 아홉 번 전하여 여왕(厲王)에 이르니 포학무도하여 나라 사람에게 쫓겨나 죽었다. 이것이 천 백 년간 되풀이된 백성변란이 시작이었다. 또한 주공과 소공이 마음을 합쳐 이루어 놓은 문화도 무너졌다. 태자 정을 세워 왕으로 삼으니 그가 바로 (주나라) 선왕이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천자가 되었으나, 천성이 유덕하고 영특하였으며, 방숙, 소호, 윤길보, 신백, 중산보 등 어진 신하를 등용하여, 다시 과거 문왕, 무왕, 성왕, 강왕의 정치를 본받고자 노력하였다. 이에 주나라 왕실이 찬란하게 중흥하게 되었다. 시가 있어 이 일을 증명하기를, “이왕과 여왕의 정치는 참으로 옛날의 강령을 따르지 못했고, 어진 신하를 등용하여 나라를 바로잡은 것은 주선왕의 은덕이었다. 공화(共和 ; 여왕(厲王)후에 대신들이 14년간 의논하여 나라를 다스린 일) 이후에 만일 중흥주가 없었다면, 주나라 역사가 어찌 팔백 년을 누렸겠는가.” 했다.

【名品】 벗♡ 쉼터 幸福 사랑 *(19/금.광고/홍보/스크랩) & (타) 링크도배 없읍니다. & [운영진님] 발견시 (퇴출) ◎

http://cafe.daum.net/gf52esr♡

 

 

却說,宣王雖說勤政,也到不得武王丹書受戒,戶牖置銘;雖說中興,也到不得成、康時教化大行,重譯獻雉。至三十九年,姜戎抗命,宣王御駕親征,敗績於千畝,車徒大損。思為再舉之計,又恐軍數不充,親自料民於太原。那太原,即今固原州,正是鄰近戎、狄之地。料民者,將本地戶口按籍查閱,觀其人數之多少,車馬粟芻之饒乏,好做准備,徵調出征。太宰仲山甫進諫不聽。後人有詩云:犬彘何須辱劍鋩?隋珠彈雀總堪傷!皇威褻盡無能報,枉自將民料一場。

한편, 주나라 선왕이 비록 정사에 부지런했다고는 했으나, 무왕이 단서(丹書)를 얻어 계율로 삼아 (공덕이) 집집마다 창문에 새겨진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고, 또한 비록 중흥을 이루었다고 했으나 남만의 먼 나라가 여러 번 통역을 바꾸어가며 흰꿩을 공물로 바칠 정도로 교화를 크게 행했던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의 치세에도 역시 미치지 못했다. 주선왕 재위 39년에 강융(姜戎)이 명령을 어기니 선왕이 친히 정벌에 나섰으나 천무(千畝) 땅에서 패하여 전차와 병졸을 크게 잃었다. 다시 정벌할 생각이었으나 군사의 수가 충분치 않아 천자가 몸소 태원(太原)으로 가서 그곳의 백성들을 징발했다. 태원은 오늘날(명나라)의 고원주(固原州)로 바로 융적(戎狄)의 땅과 이웃해 있다. 징발한 백성들은 태원의 주민들인데, 호적을 대조한 후에 사열하고, 그 인원의 다소(多少)와, 또한 거마(車馬)와 양식과 사료의 많고 적음을 확인하여 출정을 준비하였다. 태재(太宰) 중산보(仲山甫)가 나아가 간(諫)했으나 듣지 않았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노래하기를, “개나 돼지를 잡는데 어찌 칼날을 더럽히려 하는가? 구슬을 던져서 참새를 잡으려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천자의 위엄이 다해 보복을 할 수 없다고 망녕되게 백성들을 징발하여 소란을 피우는가?” 했다.

 

再說,宣王在太原料民回來,離鎬京不遠,催趲車輦,連夜進城。忽見市上小兒數十為羣,拍手作歌,其聲如一。宣王乃停輦而聽之。歌曰:「月將升,日將沒;檿弧箕箙,幾亡周國。」 宣王甚惡其語。使御者傳令,盡拘衆小兒來問。羣兒當時驚散,止拿得長幼二人,跪於輦下。宣王問曰:“此語何人所造?” 幼兒戰懼不言。那年長的答曰:「非出吾等所造。三日前,有紅衣小兒,到於市中,教吾等念此四句,不知何故,一時傳遍,滿京城小兒不約而同,不止一處為然也。」宣王問曰:「如今紅衣小兒何在?」答曰:「自教歌之後,不知去向。」宣王嘿然良久,叱去兩兒,即召司市官分付傳諭禁止:「若有小兒再歌此詞者,連父兄同罪。」當夜回宮無話。

한편, 주나라 선왕(宣王)이 태원(太原)의 백성들을 징발하는 일을 끝내고 돌아오던 중에 왕성인 호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날이 저물었으나, 어가를 재촉하여 밤중에 성안에 들어서게 되었다. 문득 거리에서 어린아이들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한 목소리 같았다. 주선왕이 곧 어가를 세워서 노래를 들었다. 노랫말에 이르기를, “달이 뜨고, 해가 진다. 뽕나무 활과 풀로 엮은 화살통은 주나라가 망할 징조로다.” 했다. 주선왕은 그 노랫말을 매우 싫어하여 시종을 시켜 아이들을 모두 잡아오게 했다. 아이들은 놀라서 달아나고, 나이 든 아이와 어린아이 두 사람만을 잡아 와서 선왕의 수레 앞에 꿇어 앉혔다. 선왕이 묻기를, “그 노래는 누구에게서 지었느냐?” 하니, 어린아이는 벌벌 떨며 말을 못하고, 나이 든 아이가 대답하기를, “우리들이 지어서 부른 노래가 아니고, 3일 전에 붉은 옷을 입은 아이가 거리에 나타나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 퍼지자 경성(京城) 아이들이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모두 같이 부르게 되어, 한 곳에 멈추지 않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했다. 선왕이 묻기를, “지금 그 붉은 옷 입은 아이는 어디에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노래를 가르친 후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했다. 주선왕이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두 아이을 꾸짖어 돌려보내고, 즉시 사시관(司市官 ; 시장 감시관)을 불러 그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고, 이르기를, “만약에 어린아이가 그 노래를 다시 부를 경우, 부모를 연좌시켜 같은 죄를 주겠다.”고 했다. 주선왕은 그날 밤으로 궁궐로 들어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次日早朝,三公六卿齊集殿下,拜舞起居畢。宣王將夜來所聞小兒之歌,述於衆臣。「此語如何解說?」大宗伯即今禮部尚書召虎對曰:「檿,是山桑木名,可以為弓,故曰檿弧。箕,草名,可結之以為箭袋,故曰箕箙。據臣愚見:國家恐有弓矢之變」太宰仲山甫奏曰:「弓矢,乃國家用武之器。王今料民太原,思欲報犬戎之仇,若兵連不解,必有亡國之患矣。」 宣王口雖不言,點頭道是。又問:「此語傳自紅衣小兒。那紅衣小兒,還是何人?」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삼공육경(三公六卿)과 신하들이 궁전에 모여 배례(拜禮)를 드리고 일어나 늘어섰다. 주선왕이 어제 밤에 들은 어린아이들의 노래를 여러 신하에게 들려주고 묻기를, “그 노랫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니, 대종백(大宗伯 ;예부상서) 소호(召虎)가 대답하기를, “염(檿)은 산뽕나무의 이름이고 활을 만드는 재료입니다. 그래서 염호(檿弧)라고 합니다. 기(箕)는 풀이름입니다. 질겨서 화살통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살통을 기복(箕箙)이라 부릅니다.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는 나라에 궁시지변(弓矢之變 ; 전쟁)이 있을까 우려됩니다.”하니, 태재(太宰) 중산보(仲山甫)가 아뢰기를, “궁시는 곧 나라의 무기이니, 대왕께서 견융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태원의 백성들을 징발하여 일으킨 군대를 해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나라에 환란이 닥칠 것임을 예언하는 노래입니다.” 했다. 선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묻기를, “이 노랫말은 붉은 옷을 입은 아이가 전하였다는데 그 아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했다.

 

太史伯陽父奏曰:「凡街市無根之語,謂之謠言。上天儆戒人君,命熒惑星化為小兒,造作謠言,使羣兒習之此數語卻是怪事,謂之童謠。小者寓一人之吉凶,大則係國家之興敗。熒惑火星,是以色紅。今日亡國之謠,乃天所以儆王也。」宣王曰:「朕今赦姜戎之罪,罷太原之兵,將武庫內所藏弧矢,盡行焚棄,再令國中不許造賣。其禍可息乎?」伯陽父答曰:「臣觀天象,其兆已成,似在王宮之內,非關外間弓矢之事。必主後世有女主亂國之禍。況謠言曰:『月將升,日將沒』,日者人君之象,月乃陰類。日沒月升,陰進陽衰,其為女主干政明矣!。」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가 아뢰기를, “시중의 근거 없는 말을 요언(謠言)이라 합니다. 하늘이 임금에게 경계를 주기 위하여 형혹성(熒惑星;혜성)에게 명하여, 어린아이로 변해 요언을 만들어, 어린아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부르게 했으니 이 괴이한 일을 동요라고 합니다. 작게는 한 사람의 길흉을 말하고, 크게는 국가의 흥망에 관계됩니다. 형혹성은 화성이므로 그 빛깔이 붉습니다. 오늘날 망국의 노래는 곧 하늘이 왕께 경계를 주고자 함입니다.” 했다. 선왕이 말하기를, “짐이 오늘 강융(姜戎)의 죄를 용서하고, 태원의 병사들을 해산하며, 무기 창고에 있는 활과 화살을 모두 불사르고, 다시 영을 내려 나라 안에서 활과 화살을 만들어 팔지 못하게 하면, 그 화를 피할 수 있겠는가?” 하니, 백양보가 대답하기를, “신이 천문을 보니 그 조짐이 이미 나타나 왕궁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관(關) 안팎에서 일어나는 전란이 아니면, 후에 반드시 여자가 나라를 어지럽히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노래에 ‘달이 뜨고 해가 진다’ 라고 했으니 해는 임금을 말하고, 달은 음(陰)의 무리를 말합니다. 즉 해가 지고 달이 뜬다는 것은 음이 나오고 양이 쇠한다는 뜻이니 여자 주인이 정치에 간섭할 것입니다.” 했다.

 

宣王又曰:“朕賴姜后主六宮之政,甚有賢德,其進御宮嬪,皆出選擇,女禍從何而來耶?” 伯陽父答曰:“謠言『將升』『將沒』,原非目前之事。況『將』之為言,且然而未必之詞。王今修德以禳之,自然化凶為吉。弧矢不須焚棄。” 宣王聞奏,且信且疑,不樂而罷,起駕回宮。姜后迎入,坐定,宣王遂將羣臣之語,備細述於姜后。姜后曰:“宮中有一異事,正欲啟奏。” 王問:“有何異事?” 姜后奏曰:“今有先王手內老宮人,年五十餘,自先朝懷孕,到今四十餘年,昨夜方生一女。”

선왕이 또 말하기를, “짐은 강후(姜后)가 육궁(六宮)의 일을 잘 주재하고 있고, 또한 어진 덕이 있어, 나에게 바치는 궁녀들은 강후가 모두 선택하는데 여자로 인한 재앙이 어디에서 온다는 것인가?” 했다. 백양보가 대답하기를, “노랫말에 ‘장차 떠오르고’ ‘장차 진다’고 했으니 본디 목전의 일은 아닙니다. 더욱이 ‘장차’라는 말은 그러나 반드시 일어난다는 말이 아닙니다. 왕께서 지금 덕을 닦아서 재앙을 막으시면 자연히 흉한 것이 변하여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활과 화살을 태워서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했다. 선왕이 그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조회를 파하고, 퇴청하여 궁으로 돌아왔다. 강후가 맞이하여 좌정하자 선왕은 여러 신하의 이야기를 강후에게 상세히 말했다. 강후가 말하기를, “궁중에서도 이상한 일이 있어 바로 말씀드리려고 하던 참입니다.” 했다. 선왕이 묻기를, “무슨 이상한 일이 있소?” 하니, 강후가 아뢰기를, “지금 선왕(先王 ; 厲王) 때부터 있었던 늙은 궁인이 있는데, 나이가 50여 세가 되었습니다. 선왕 때 아이를 뱄다는데 지금 40여 년이 되어서야 바로 어제저녁에 여자아이를 낳았습니다.” 했다.

 

宣王大驚,問曰:「此女何在?」姜后曰:「妾思此乃不祥之物,已令人將草蓆包裹,拋棄於二十里外清水河中矣。」宣王即宣老宮人到宮,問其得孕之故。老宮人跪而答曰:「婢子聞夏桀王末年,褒城有神人化為二龍,降於王庭,口流涎沫,忽作人言,謂桀王曰:『吾乃褒城之二君也。』桀王恐懼,欲殺二龍,命太史占之,不吉。欲逐去之,再占,又不吉。太史奏道:『神人下降,必主禎祥,王何不請其漦而藏之?漦乃龍之精氣,藏之必主獲福。』桀王命太史再占,得大吉之兆。乃布幣設祭於龍前,取金盤收其涎沫,置於朱櫝之中。忽然風雨大作,二龍飛去。

선왕이 크게 놀라 묻기를, “그 여자아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강후가 말하기를, “첩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라 이미 사람을 시켜 가마니에 싸서 20리 밖의 청수하(淸水河) 가운데에 버리라고 했습니다.” 했다. 선왕이 곧 늙은 궁인을 불러서 아이를 밴 연고를 물었다. 늙은 궁인이 꿇어앉은 채로 대답하기를, “제가 듣기로, 하(夏)나라 걸왕(桀王) 말년에 포성(褒城)의 신인(神人)이 용 두 마리로 변해서 입에는 침을 흘리며 왕궁의 뜰 안에 내려앉더니 갑자기 사람의 말을 하며 걸왕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곧 포성의 두 주인이다.’ 하니, 걸왕이 두려워하여 두 마리의 용을 죽이려고 태사에게 점을 치게 했으나, 점괘가 불길하게 나왔습니다. 용을 쫓아내려고 하여 다시 점을 치게 하니 역시 불길하게 나왔습니다. 태사가 아뢰기를, ‘신인의 하강은 틀림없이 대왕께 상서로운 일입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이 용의 침을 받아서 보관하지 않으십니까?. 용의 침은 곧 용의 정기(精氣)라, 저장하여 두면 반드시 대왕께서 복을 얻을 것입니다.’ 했다. 걸왕이 태사에게 명하여 다시 점을 치게 하니, 크게 길한 징조라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용 앞에 제단을 만든 후에 비단 천으로 덮고 금 쟁반에 용의 침을 받아서 붉은 궤 속에 넣었습니다. 갑자기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더니, 두 마리 용은 날아가 버렸습니다.

 

桀王命收藏於內庫。自殷世歷六百四十四年,傳二十八主,至於我周,又將三百年,未嘗開觀。到先王末年,櫝內放出毫光,有掌庫官奏知先王。先王問:『櫝中何物?』掌庫官取簿籍獻上,具載藏漦之因。先王命發而觀之。侍臣打開金櫝,手捧金盤呈上。先王將手接盤,一時失手墮地,所藏涎沫,橫流庭下。忽化成小小元黿一個,盤旋於庭中。內侍逐之,直入王宮,忽然不見。那時婢子年才一十二歲,偶踐黿跡,心中如有所感,從此肚腹漸大,如懷孕一般。先王怪婢子不夫而孕,囚於幽室,到今四十年矣。夜來腹中作痛,忽生一女。守宮侍者不敢隱瞞,只得奏知娘娘。

걸왕이 명하여 (용의 침을 받은 궤를) 궁 안의 창고에 보관하게 했습니다. 은(殷) 왕조 644년 28왕을 거쳐, 우리 주나라 왕조 300년이 지나도록 (궤를) 열어 보지 않았습니다. 선왕(厲王) 말년에 이르러 그 궤에서 빛살이 비쳐 나왔습니다. 고지기가 그 일을 선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선왕께서 묻기를, ‘궤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 하니, 고지기가 선왕께 장부를 갖다 바치면서 용의 침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선왕께서 궤를 열어 보겠다고 명하셨습니다. 모시는 신하가 금궤를 깨뜨려 열고 금쟁반을 받들어 올렸습니다. 선왕께서 손을 들어 쟁반을 받으려고 하다가 실수로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금쟁반에 담겨 있던 용의 침이 뜰로 쏟아지자, 갑자기 자잘한 자라 새끼로 변하더니, 한 마리가 뜰 안을 돌아다녔습니다. 내시가 그것을 쫓았으나 왕궁의 안으로 들어가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는 겨우 열두 살이었는데 우연히 자라의 흔적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느껴지는 바가 있고 그때부터 점차로 배가 불러와서 마치 애를 밴 것같이 되었습니다. 선왕께서 여종이 서방도 없이 애를 밴 것을 괴이하다 생각하시고, 소인을 깊은 방 속에 가둔 이래 지금까지 4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밤중에 갑자기 배에 통증이 와서 겨우 여자아이를 낳았습니다. 궁을 지키는 시자(侍者)들을 감히 속이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왕후께 알리게 되었습니다. 

 

娘娘道此怪物,不可容留,隨命侍者領去,棄之溝瀆。婢子罪該萬死!」宣王曰:「此乃先朝之事,與你何干?」遂將老宮人喝退。隨喚守宮侍者,往清水河看視女嬰下落。不一時,侍者回報:「已被流水漂去矣。」宣王不疑。次日早朝,召太史伯陽父告以龍漦之事,因曰:「此女嬰已死於溝瀆,卿試占之,以觀妖氣消滅何如。」伯陽父布卦已畢,獻上繇詞。詞曰:「哭又笑,笑又哭。羊被鬼吞,馬逢犬逐。慎之慎之,檿弧箕箙.」

왕후께서 그런 괴물은 용납할 수가 없다고 하시고, 즉시 시자들에게 명하여 애를 가져다 강물에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천한 계집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하였다. 선왕이 말하기를, “이 일은 앞 왕조 때의 일이라 너와는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하고, 마침내 늙은 궁인에게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선왕은 곧 궁을 지키는 시자를 불러, 청수하로 가서 여자 아기가 떨어져 있는지 살펴보라고 명했다. 얼마 후에 시자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이미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했다. 주선왕은 의심치 않았다. 다음날 아침 태사 백양보를 불러 용의 침에 관한 일을 알리고 그로 인해 말하기를, “그 여자아이가 강물에 빠져 죽었으니, 경이 점을 쳐서 요기가 없어졌는지 어떤지 보시오.” 했다. 백양보가 점괘를 맞춰 보고 괘사(卦辭)를 바쳤다. 괘사에 이르기를,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또 울도다. 양은 귀신에게 잡아먹히고, 말은 개에게 쫓기는도다. 삼가고 삼가라. 산뽕나무 활과 쑥대로 맘든 화살통이로다.” 했다. 

 

宣王不解其說。伯陽父奏曰:「以十二支所屬推之,羊為未,馬為午。哭笑者,悲喜之象。其應當在午未之年。據臣推詳,妖氣雖然出宮,未曾除也。」宣王聞奏,怏怏不悅。遂出令:「城內城外,挨戶查問女嬰。不拘死活,有人撈取來獻者,賞布帛各三百疋。有收養不報者,鄰里舉首,首人給賞如數,本犯全家斬首。」命上大夫杜伯專督其事。因繇詞又有「檿弧箕箙」之語,再命下大夫左儒,督令司市官巡行廛肆,不許道賣山桑木弓,箕草箭袋。違者處死。

선왕이 그 (괘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백양보가 아뢰기를, “십이지간(十二支干)으로 미루어 보건대 양은 미(未)이고, 말은 오(午)입니다. 울다가 웃는 것은 희비의 상입니다. 그것은 응당 오미년(午未年)에 있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신의 생각으로는 요기가 비록 궁 밖으로 나갔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했다. 주선왕은 백양보가 아뢰는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하여 기쁘지 않았다. 곧바로 명령하기를, “성안, 성밖 할 것 없이 집집마다 조사하여 여자아이를 찾아라. 생사에 관계없이 찾아서 갖다 바치는 자에게는 비단300 필을 상으로 주겠다. 그러나 거두어 기르면서 고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이웃 사람이라도 관가에 고발하라. 역시 같은 상을 주겠다. 명령을 어기는 자는 그의 전 가족을 참수하겠다.”고 했다. (선왕은) 상대부(上大夫) 두백(杜伯)을 그 일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또 괘사(卦辭)에 ‘산뽕나무 활과 쑥대로 만든 화살통’이라는 말로 인해 다시 하대부(下大夫) 좌유(左儒)에게 명하여 사시관(시장 감독)들을 이끌고 가게를 순찰하여, 산뽕나무 활과 기초풀로 만든 화살통을 팔지 못하게 하고, 위반자는 사형에 처하게 했다.

 

司市官不敢怠慢,引著一班胥役,一面曉諭,一面巡綽。那時城中百姓,無不遵依,止有鄉民,尚未通曉。巡至次日,有一婦人,抱著幾個箭袋,正是箕草織成的,一男子背著山桑木弓十來把,跟隨於後。他夫妻兩口住在遠鄉,趕著日中做市,上城買賣。尚未進城門,被司市官劈面撞見。喝聲:「拿下!」手下胥役,先將婦人擒住。那男子見不是頭,拋下桑弓在地,飛步走脫。司市官將婦人鎖押,連桑弓箕袋,一齊解到大夫左儒處。

사시관(시장 감독)은 감히 일을 게을리할 수 없어 한 무리 일꾼들을 데리고, 한편으로는 (백성들에게) 알리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돌아다니면서, 단속을 했다. 그때 성안의 백성들은 (좌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성밖) 시골 사람들은 아직 (선왕의 명령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한 아낙네가 기초로 만든 몇 개의 화살통을 품에 안고 앞서고, 산뽕나무로 만든 활 10개를 등에 멘 남자가 그 뒤를 따랐다. 그 부부 두 사람은 멀리 떨어진 향촌에 사는 사람들인데 낮 동안에 시장에 팔 목적으로 성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였다. 그들은 미처 성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사시관(시장 감독)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었다. 사시관이 부하 일꾼에게 “잡아라.” 하고 소리쳐서, 앞선 여자는 잡았으나, 남자는 미처 사시관의 눈에 띄지 않아서, 재빨리 산뽕나무 활을 땅에 버리고 나는 듯이 도망쳤다. 사시관은 여자에게 칼을 씌우고 산뽕나무 활과 기초 화살통과 같이 하대부 좌유가 있는 곳까지 끌고왔다. 

 

左儒想:「所獲二物,正應在謠言。況太史言女人為禍,今已拿到婦人,也可回復王旨。」遂隱下男子不題, 單奏婦人:「違禁造賣,法宜處死。」宣王命將此女斬訖。其桑弓箕袋,焚棄於市,以為造賣者之戒。不在話下。後人有詩云:「不將美政消天變,却泥謠言害婦人! 謾道中興多補闕,此番直諫是何臣?」話分兩頭。再說那賣桑木弓的男子,急忙逃走,正不知官司拿我夫婦,是甚緣故?還要打聽妻子消息。是夜宿於十里之外。次早有人傳說:「昨日北門有個婦人,違禁造賣桑弓箕袋,拿到即時決了。」方知妻子已死。走到曠野無人之處,落了幾點痛淚。

좌유가 생각하기를, “노래에 상응하는 두 가지 물증을 얻었고, 더욱이 태사가 말하기를 여인으로 하여금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으며, 이제 여자를 이미 잡았으니 왕명을 완수한 것이다.” 하고, 즉시 남자는 숨겨서 말하지 않고 단지 여자만을 아뢰어, “금령을 어기고 활을 만들어 팔려고 했으니 법에 따라 처형해야 합니다.” 라고 했다. 선왕은 여자는 참하고 그 뽕나무 활과 기초 화살통은 저자거리에서 불태우라고 명하여 활과 화살통을 만들어서 팔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계를 삼도록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선정을 베풀어 하늘의 변란을 없애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요언을 빠져 (죄 없는) 부인을 죽였다. 나라를 중흥해서 잘살게 되었다고 공연히 말들 하지만, 이번에 직간(直諫)한 신하는 누구인가?” 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뽕나무 활을 팔려던 남자는 급히 도망을 하면서도 관리가 자기 부부를 무엇 때문에 잡으려고 한 까닭을 알지 못했다. 그 남자는 자기 부인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 성문 밖10리 되는 야산에서 밤을 새웠다. 그 다음 날 아침, 어떤 사람이 전하기를, “어제 북문에서 한 여자가 뽕나무 활과 기초 화살통을 만들어 팔지 말라는 왕의 영을 어겨서 잡혀 즉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했다. 비로소 아내가 이미 죽은 것을 알게 된 사내는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달려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且喜自己脫禍,放步而行。約十里許,來到清水河邊。遠遠望見百鳥飛鳴。近前觀看,乃是一個草蓆包兒,浮於水面。衆鳥以喙銜之,且銜且叫,將次拖近岸來。那男子叫聲:「奇怪!」趕開衆鳥,帶水取起蓆包。到草坡中解看,但聞一聲啼哭,原來是一個女嬰!想道:「此女不知何人拋棄,有衆鳥啣出水來,定是大貴之人。我今取回養育,倘得成人,亦有所望。」遂解下布衫,將此女嬰包裹,抱於懷中,思想避難之處。乃望褒城投奔相識而去。髯翁有詩,單道此女得生之異:「懷孕遲遲四十年,水中三日尚安然。生成妖物殃家國,王法如何勝得天!」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는 화를 면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발길 닫는 대로 10여 리를 걸어서 당도한 곳이 청수하 강변이었다. 멀리서 많은 새가 울며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한 아이가 풀로 엮은 자리에 싸여서 물 위에 떠 있었다. 여러 마리의 새들이 부리로 물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소리를 내 울면서 강변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했다. 그 남자가 보고 소리치기를, “기괴한 일이구나!” 하고, 그는 새들을 쫓아 버리고 물에서 거적자리에 싸인 것을 건져내서 풀밭이 있는 언덕으로 옮겨 풀어보니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살펴보니 계집애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여아를 누가 버렸는지 모르겠으나, 많은 새들이 부리로 물어 물가로 끌고 나온 것을 봐서 이는 필시 고귀한 신분의 귀인임에 틀림없다. 내가 오늘 데리고 가서 성인으로 키우면 또한 나의 공덕이 아니리오.”라고 했다. 그는 베적삼을 벗어 이 여자아이를 싸서 품에 안고 피신할 곳을 생각하다가, 그래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포성(褒城)을 향하여 갔다. 염옹(髥翁)은 이 여아가 목숨을 구한 것은 오로지 기이한 운명이라고 하면서 시를 지어 노래하기를, “애를 밴 지 장장 40년인데, 물속에서 사흘이 지났어도 애는 오히려 편안했도다. 요물이 자라나서 나라에 재앙을 일으키니, 왕법으로 어찌 하늘의 뜻을 이길 수 있겠는가?” 했다.

 

宣王自誅了賣桑弓箕袋的婦人,以為童謠之言已應,心中坦然,也不復議太原發兵之事。自此連年無話。到四十三年,時當大祭。宣王宿於齋宮,夜漏二鼓,人聲寂然。忽見一美貌女子,自西方冉冉而來,直至宮廷。宣王怪他干犯齋禁,大聲呵喝。急喚左右擒拿,並無一人答應。那女子全無懼色。走入太廟之中,大笑三聲,又大哭三聲,不慌不忙,將七廟神主,做一束兒捆著,望東而去。王起身自行追趕,忽然驚醒,乃是一夢, 自覺心神恍惚,勉強入廟行禮。九獻已畢,回至齋宮更衣。遣左右密召太史伯陽父,告以夢中所見。

선왕은 뽕나무 활과 기초 화살통을 팔려고 했던 부인을 잡아서 처형한 후, 동요에 나오는 경계의 말에 부응하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여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또한 태원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강융을 정벌하는 일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어 그로부터 몇 년간은 별일 없이 무사했다. 선왕 43년에 선왕이 종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재궁(齋宮)으로 나가 묵게 되었다. 밤이 이경(二更)이 되어 사람의 인적이 끊어졌을 때, 홀연히 아름다운 여인이 서쪽으로부터 아장거리며 걸어와 바로 궁정에 도달했다. 선왕은 그가 재의 금기를 범한 것을 괴이히 여겨 큰소리로 좌우의 시자들에게 명하여 잡아오게 했으나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여인도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태묘(太廟)에 들어가 크게 세 번 웃더니 또 크게 세 번 울고 난 후 당황하거나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주나라 칠묘(七廟)의 신주를 묶어서 들고 동쪽으로 걸어가더니 사라졌다. 선왕이 몸을 일으켜 쫓아가려고 하는 순간에 정신이 드니 바로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선왕은 노곤한 심신을 끌고 태묘에 들어가서 예를 행했다. 아홉 번 잔을 올리기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재궁으로 돌아온 선왕은 좌우를 시켜 태사 백양보를 아무도 몰래 조용히 불러 꿈에서 본 것을 알렸다. 

 

伯陽父奏曰:「三年前童謠之語,王豈忘之耶?臣固言:『主有女禍,妖氣未除。』繇詞有哭笑之語,王今復有此夢,正相符合矣。」宣王曰:「前所誅婦人,不足消『檿弧箕箙』之讖耶?」伯陽父又奏曰:「天道玄遠,候至方驗。一村婦何關氣數哉」宣王沈吟不語。忽然想起三年前,曾命上大夫杜伯督率司市,查訪妖女,全無下落。頒胙之後,宣王還朝,百官謝胙。宣王問杜伯:「妖女消息,如何久不回話?」杜伯奏曰:「臣體訪此女,並無影響。以為妖婦正罪,童謠已驗。誠恐搜索不休,必然驚動國人,故此中止。」

백양보가 아뢰기를, “3년 전의 동요를 왕께서는 어찌 잊으셨습니까? 신은 여자로부터 화가 생기고 요기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괘사(卦辭)에 울다가 웃는다는 말은 왕께서 이번에 꾼 꿈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했다. 선왕이 말하기를, “전에 한 여자를 죽인 것만으로는 산뽕나무 활과 기초 화살통의 동요를 징험하기에 부족하다는 말인가?” 하니, 백양보가 아뢰기를, “하늘의 뜻은 어둡고 멀어서 오랜 세월이 지나야 비로소 징험할 수 있습니다. 어찌 한 촌 아낙네가 천기의 운수에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했다. 선왕은 신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3년 전에 상대부 두백에게 명하여 사시관(시장 감독)을 거느리고 요망한 여자를 찾아내도록 명했으나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음을 생각해 냈다. 제사음식을 먹고 난 후, 조당에 돌아온 선왕은 백관들에게 제사를 지낸 고기를 나누어준 다음 두백에게 묻기를, “요망한 여자의 소식을 어찌하여 오랫동안 보고하지 않았는가?” 하니, 두백이 아뢰기를, “신이 몸소 찾았으나 그 여자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요부를 잡아 죄를 주어서 동요의 효험이 이미 밝혀졌다고 생각한 나머지 쉬지 않고 수색작업을 하면 백성들이 놀랄까 걱정하여 중지했습니다.” 했다.

 

宣王大怒曰:「既然如此,何不明白奏聞?分明是怠棄朕命,行止自繇。如此不忠之臣,要他何用!」喝教武士:「押出朝門,斬首示衆!」嚇得百官面如土色。忽然文班中走出一位官員,忙將杜伯扯住,連聲:「不可,不可!」宣王視之,乃下大夫左儒,是杜伯的好友舉薦同朝的。左儒叩頭奏曰:「臣聞堯有九年之水,不失為帝;湯有七年之旱,不害為王。天變尚然不妨,人妖寧可盡信?吾王若殺了杜伯,臣恐國人將妖言傳播,外夷聞之,亦起輕慢之心. 望乞恕之。」

선왕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그렇다면 왜 명백하게 아뢰지 않았느냐? 분명히 이것은 임금의 명령에 태만하여 멋대로 행한 것이니, 이런 불충한 신하를 어디다 쓰겠는가?” 하고, 무사들을 꾸짖기를, “조정 문밖에 끌어내어 참수하고 여러 사람에게 보이게 하라!” 했다. 백관들의 안색이 악하고 흙빛으로 변했다. 갑자기 문반 대열 중에서 한 사람의 관원이 뛰쳐나와 무사들에게 끌려 나가는 두백을 황급히 잡으면서 주선왕을 향해 외치기를,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했다. 선왕이 보니 바로 하대부 좌유(左儒)였다. 좌유는 두백의 친구로서 두백의 천거에 의해 벼슬길에 나온 사람이었다. 좌유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신이 듣기에, 요임금께서는 9년 홍수에도 황제로서 실덕한 일이 없었고, 탕임금은 7년 가뭄에도 왕의 위엄을 손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하늘의 변괴에도 별고 없었거늘, 하물며 오늘날에 요사한 여자를 이렇듯 두려워하십니까? 왕께서 만약 두백을 죽이시면 백성들이 요언을 퍼뜨려 변방 오랑캐가 전해 듣고 왕실을 업신여길까 두렵습니다. 원컨대 두백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했다.

 

宣王曰:「汝為朋友而逆朕命,是重友而輕君也!」左儒曰:「君是友非,則當逆友而順君;友是君非,則當違君而順友。杜伯無可殺之罪,吾王若殺之,天下必以王為不明;臣若不能諫止,天下必以臣為不忠。吾王若必殺杜伯,臣請與杜伯俱死!」宣王怒猶未息,曰:「朕殺杜伯,如去藁草,何須多費脣舌?」喝教:「快斬!」武士將杜伯推出朝門斬了。左儒回到家中,自刎而死。髯翁有贊云:賢哉左儒,直諫批鱗。是則順友,非則違君。彈冠誼重,刎頸交真。名高千古,用式彝倫。

선왕이 말하기를, “그대는 친구를 위하여 짐의 명을 거역하니 벗을 소중히 생각하고 왕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로다!” 하니, 좌유가 말하기를, “왕이 옳고 친구가 그르면 마땅히 친구를 버리고 왕을 따라야 하고, 친구가 옳고 왕이 그르다면 마땅히 왕을 버리고 친구를 따라야 합니다. 두백은 사형에 처할 만큼 중한 죄가 아닙니다. 왕께서 만약 두백을 죽이신다면 천하가 대왕을 어질지 못하다고 할 것이며, 신이 만약 간하여 중지시키지 못한다면 천하가 신이 불충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왕께서 만약 기어코 두백을 죽이시겠다면, 신도 두백과 같이 죽여주기를 바랍니다.” 했다. 선왕의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말하기를, “짐이 두백을 죽이는 것은 짚을 베는 것과 같다.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 하고, 소리쳐서 “빨리 참하라!” 고 했다. 무사가 두백을 궁궐 대문 밖으로 끌고 나가 목을 벴다. 좌유는 집에 돌아가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좌유를 찬미하기를, “어질구나, 좌유여! 직간하다가 용의 비늘을 거슬렸구나. 옳으면 벗을 따르고 그르면 임금도 거스르는구나. 서로 벼슬 살되 의를 중히 생각하고 생사를 함께 했으니 참다운 친구로다. 그 이름 천고에 드날림이여, 이로써 그들을 본받을지라.” 했다. 

 

杜伯之子隰叔奔晉,後仕晉為士師之官,子孫遂為士氏。食邑於范,又為范氏。後人哀杜伯之忠,立祠於杜陵,號為杜主,又曰右將軍廟,至今尚存。此是後話。再說宣王次日,聞說左儒自刎,亦有悔殺杜伯之意,悶悶還宮。其夜寢不能寐,遂得一恍惚之疾;語言無次,事多遺忘,每每輟朝。姜后知其有疾,不復進諫。至四十六年秋七月,玉體稍豫,意欲出郊遊獵,以快心神。左右傳命:「司空整備法駕,司馬戒飭車徒,太史卜個吉日。」

두백의 아들 습숙(隰叔)은 진(晉)으로 달아나 사사(士師 ; 형옥 담당)벼슬을 하여, 그의 자손은 마침내 성을 사(士)씨로 하였고, 범(范)을 식읍으로 받았다. 그런 연유로 또한 범(范)씨의 시조가 되었다. 뒷사람들이 두백의 충성을 애닯게 생각하여 두릉에 사당을 세우고 그 사당을 두주(杜主)라 하며, 또 우장군 사당이라고도 하는데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이것은 모두 후일의 이야기이다. 한편, 다음날 선왕은 좌유도 목을 찔러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백을 죽인 것을 후회하며 궁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부터 선왕은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이내 정신이 몽롱한 병을 얻게 되었다. 말의 두서가 없어지고 일을 하다가 자주 일을 잊어서 조회를 못할 지경이 됐다. 강후가 선왕이 병이 난 것을 알고 다시 간할 수도 없었다. 선왕 46년 가을 7월에 임금의 옥체에 차도가 있어 교외에 나가서 사냥을 하면 정신이 상쾌할 것 같기로 좌우에 명령하기를, “사공은 법가를 정비하고, 사마는 수레와 사람을 조심하여 갖추고, 태사는 길일을 택하라.”고 했다.

 

至期,王乘玉輅,駕六騶,右有尹吉甫,左有召虎。旌旂對對,甲仗森森,一齊往東郊進發。那東郊一帶,平原曠野,原是從來遊獵之地。宣王久不行幸,到此自覺精神開爽。傳命扎住營寨,分付軍士:「一不許踐踏禾稼;二不許焚燬樹木;三不許侵擾民居。獲禽多少,盡數獻納,照次給賞。如有私匿,追出重罪。」號令一出,人人賈勇,個個爭先。進退周旋,御車者出盡馳驅之巧;左右前後,彎弧者誇盡縱送之能。鷹犬借勢而猖狂,狐兎畏威而亂竄。弓響處,血肉狼藉;箭到處,毛羽紛飛。這一場打圍,好不熱鬧!宣王心中大喜。

그날이 되자 왕이 옥로(왕의 수레)에 타고 여섯 마리 말이 이끌었다. 오른쪽에는 윤길보, 왼쪽에는 소호가 모셨다. 깃발을 쌍쌍이 나부끼고 병장기로 무장한 군사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동쪽 교외의 사냥터를 향해 일제히 출발했다. 그 동쪽 교외 일대는 넓은 평원으로 원래 왕의 사냥터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선왕은 오랜만에 나와보니 정신이 상쾌했다. 선왕이 영채를 치게 하고, 군사에게 분부하기를, “첫째 논밭의 농작물을 밟으면 안 된다. 둘째 숲속의 나무를 태우거나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민가에 들어가서 함부로 백성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 사냥한 짐승이 많건 적건 모두 갖다 바쳐서 상급에 주는 데 참고하게 해야 한다. 만일 사사로이 은닉하여 후에 발각된 자는 중벌에 처한다.”고 했다. 왕명을 듣고 사람들은 용기를 뽐내어 서로 앞을 다투었다. 수레를 모는 자는 재주껏 전후좌우로 교묘히 달리고, 활을 가지고 있는 자는 종횡으로 활을 쏘아 그 실력을 뽐냈다. 여우와 토끼들은 매서운 매와 사냥개의 기세에 어지러이 달아났다. 활이 향하는 곳은 피와 고기가 낭자하고, 화살은 마치 새의 깃털처럼 날았다. 이 한바탕의 몰이야말로 신명나는 것이었다. 선왕이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cafe.daum.net/gf52esr

 

日已沈西,傳令散圍。衆軍士各將所獲走獸飛禽之類,束縛齊備,奏凱而回。行不上三四里,宣王在玉輦之上,打個眼瞇。忽見遠遠一輛小車,當面衝突而來。車上站著兩個人,臂挂朱弓,手持赤矢,向著宣王聲諾曰:“吾王別來無恙?”宣王定睛看時,乃上大夫杜伯,下大夫左儒。宣王喫這一驚不小,抹眼之間,人車俱不見。問左右人等,都說並不曾見。宣王正在驚疑。那杜伯、左儒又駕著小車子往來,不離王車之前。宣王大怒,喝道:「罪鬼,敢來犯駕!」拔出太阿寶劍,望空揮之。

해가 서쪽으로 이미 넘어가자 선왕은 영을 내려 포위망을 풀게 했다. 여러 군사가 각각 잡은 들짐승과 날짐승을 한데 묶어 메고서 개가(凱歌)를 부르며 돌아갔다. 어가가 궁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 지 3∼4리도 되지 않아 선왕은 옥련(玉輦) 위에서 갑자기 눈앞이 희미해졌다. 문득 저편에서 조그만 수레 한 대가 나타나서 정면으로 부딪칠 듯이 다가왔다. 수레 위에 두 사람이 붉은 활을 어깨에 메고, 붉은 화살을 손에 들고, 선왕을 향해 말하기를, “왕께서는 별고 없는지요?” 했다. 선왕이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니 바로 상대부 두백과 하대부 좌유였다. 선왕이 크게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니 사람과 수레가 모두 보이지 않았다. 좌우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두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선왕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두백과 좌유가 조그만 수레를 몰고 왕의 어가 바로 앞에 다시 접근해 왔다. 선왕이 대로하여 소리치기를, “죄를 지은 귀신들이 어찌 감히 어가를 범하려 하느냐?” 하고, 보검 태아(太阿)를 뽑아서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只見杜伯、左儒齊聲罵曰:「無道昏君!你不修德政,忘戮無辜,今日大數已盡,吾等專來報寃。還我命來!」話未絕聲,挽起朱弓,搭上赤矢,望宣王心窩內射來。宣王大叫一聲,昏倒於玉輦之上,慌得尹公腳麻,召公眼跳。同一班左右,將薑湯救醒,兀自叫心痛不已。當下飛駕入城,扶著宣王進宮。各軍士未及領賞,草草而散。正是:乘興而來,敗興而返。髯翁有詩云:「赤矢朱弓貌似神,千軍隊裏騁飛輪。君王枉殺還須報,何況區區平等人。」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cafe.daum.net/gf52esr

 

두백과 좌유가 일제히 꾸짖어 말하기를, “무도한 혼군아! 너는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무고한 우리를 망령되게 죽였으니, 오늘로 너의 큰 운수도 끝났다. 우리는 오로지 원한을 갚으려고 왔으니 우리 목숨을 돌려다오!” 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붉은 활에 붉은 화살을 메겨서 선왕의 심장을 겨누고 쏘았다. 선왕이 크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어가 안에서 혼절했다. 당황한 윤길보는 다리가 휘청거리고, 소호는 눈꺼풀이 떨렸다. 좌우의 시자들이 생강탕을 끓여 마시게 해서 정신을 들게 했다. 선왕은 여전히 가슴의 고통을 못 이기고 소리를 질렀다. 신하들이 어가를 재촉하여 성으로 들어가서 선왕을 부축하여 궁으로 돌아갔다. 군사들은 상급도 나누어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흩어지게 되었다. 이야말로, 흥겨운 마음으로 출발해서 흥을 망치고 돌아오게 된 것이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붉은 활과 붉은 화살을 메고 신처럼, 천명의 군사 속을 수레를 몰며 나는 듯이 달려오네. 왕은 공연히 사람을 죽이고 앙갚음을 받았으니, 하물며 구구한 보통 사람이야 일러 무엇하리오.” 했다.

 

不知宣王性命如何,且看下回分解。

선왕의 목숨이 어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1단은 시방 보러오실랴요^^
http://cafe.daum.net/gf52esr^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엣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0 방가요^^
    바쁜 일과 중에함께 참여를 해주셨서 감사를 드려요^^
  • 작성자동네방네 | 작성시간 26.06.18 늘을 유익 공감 이야기 ㄳㄳㄳ 를 드림니다
    http://cafe.daum.net/gf52esr^
  • 답댓글 작성자엣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0 방가요^^
    바쁜 일과 중에함께 참여를 해주셨서 감사를 드려요^^
  • 작성자멋진인연 | 작성시간 26.06.21 카페지기님께 ~
    방문을 할때마다 지식 게시물 감사를 드려요^^
    환절기 건강 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엣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2 new 방가요^^
    바쁜 일과 중에함께 참여를 해주셨서 감사를 드려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