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송어의 의미
흔히 연어란 바다에 살다가 산란할 때 민물로 올라오는 소하성 물고기 중 강해형을 총칭한다고 생각하고, 송어는 강해하지 않는 육봉형 물고기를 총칭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러한 생각은 꽤나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영동지방의 하천으로 올라와 산란을 하는 물고기 중 하나를 연어라고 불렀고, 다른 하나를 송어라 불렀습니다. 연어나 송어는 연어과(科, family) 연어속(屬, genus)에 속하는 특정 종(種, species)의 물고기의 이름일 뿐, 어떠한 성향의 물고기들 전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현대식 영어 이름으로 보더라도 연어가 chum salmon이고 송어가 cherry salmon(또는 masu salmon)이니, 연어나 송어나 모두 강해하는 물고기(영어로 salmon 부류)에 속하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연어가 salmon이고 송어가 trout이라고 이해하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salmon, trout의 의미
18세기의 유럽인이 아는 연어아과(亞科) 물고기는 단지 3가지 종(種, species) 밖에 없었고 영국인은 이를 각각 salmon, trout, charr라고 불렀습니다.
요즘에야 이 물고기들을 atlantic salmon, brown trout, artic charr라고 부르지만 당시로서는 salmon, trout, charr가 각각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앞에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salmon, trout, charr은 어떤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특정한 종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습니다. atlantic salmon이 강해형 물고기이니 salmon이라는 단어에 '강해'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텐데, brown trout의 강해형을 sea trout이라고 부른다는 것과 artic charr의 강해형을 구분하지 않고 artic charr로 부른다는 것을 본다면 salmon, trout, charr은 단지 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실 겁니다.
이처럼 연어아과 물고기를 salmon, trout, charr로 구분하는 유럽식 3분법은 연어아과 물고기의 분류체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유럽인이 세계 전체로 진출함에 따라, 특히 영국인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salmon, trout, charr의 친척 물고기들을 만나게 되는데, 영국인은 이러한 물고기 중에서 강해성향이 강한 부류를 salmon이라 부르고, 강해성향이 없거나 약한 부류를 trout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chinook salmon, coho salmon, sockeye salmon, chum salmon, humpback salmon 등의 salmon류와 brook trout, lake trout, bull trout, rainbow trout, cutthroat trout 등의 trout류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brook trout, bull trout, lake trout 등은 brown trout보다 artic charr에 가까운 물고기이지만 강해성향을 기준으로 trout이라는 이름을 붙여졌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강해성향에 따라 salmon과 trout으로 구분하는 미국식 2분법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명명체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trout이 송어가 되기까지의 과정
미국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 일본은 강해형 물고기에 대해 사케(サケ)와 마스(マス)를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똑같이 강해형이지만 긴자케(ギンザケ), 시로자케(シロザケ), 베니자케(ベニザケ) 등 사케라는 이름을 붙인 부류도 있고, 사쿠라마스(サクラマス), 사쓰키마스(サツキマス), 비와마스(ビワマス), 아메마스(アメマス), 마스노스케(マスノスケ), 히메마스(ヒメマス), 가라후토마스(カラプトマス) 등 마스라는 이름을 붙인 부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rainbow trout의 일본이름을 니지(ニジ, 무지개)와 마스의 합성어인 니지마스(ニジマス)로 정하면서 혼란이 시작됩니다. 육봉형 rainbow trout의 trout을 강해형 물고기를 의미하는 마스로 번역함에 따라 마스의 원래 의미가 모호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본의 오류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우리나라도 trout을 송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유명한 슈베르트의 가곡 'Die Forelle(영국의 brown trout과 같은 물고기)'를 '송어'라고 번역한 것이 그 예입니다.
민물에 사는 물고기를 잡는 내용을 담은 노래에 대해 바다에서 소상하는 송어 운운하니 참으로 가관이지만 일본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던 시기라서 일본의 오류까지 답습한 것입니다.
rainbow trout을 도입할 때 정문기박사가 한글이름을 도입자인 정석조와 송어의 합성어인 석조송어라고 정한 이후 trout와 송어를 동의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게다가 정문기박사는 한 술 더 떠서 기존의 송어(cherry salmon)의 이름을 아예 시마연어(러시아어 Сима와 연어의 합성어)로 바꿔 버리기까지 합니다.
Oncorhynchus masou는 분류상 연어속 어류이다. 미국에서는 이를 Cherry salmon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를 송어라고 불러왔기 때문에 진짜 송어(Salmo)속 어류와 혼동하기 쉬운 점을 감안하여 이를 '시마연어'라고 개명했다. '시마'라는 이름은 본 어류의 다산지인 소련 극동 지방 토인이 부르는 방언이다.(한국어도보, 125쪽)
salmon을 연어로, trout을 송어로 번역하면서 연어아과 물고기를 salmon과 trout으로 구분하는 미국식 2분법에 따랐기에 나온 결론입니다. 그런데, trout을 송어로 번역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salmon을 연어로 번역하는 것은 과연 적절할까요?
Salmon을 연어로 번역하면서 생긴 문제
Atlantic salmon의 학명은 Salmo salar인데, 이때 속명인 Salmo와 종명인 salar는 물론 salmon이라는 영명조차도 '뛰어오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sali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salmon을 연어로 번역하는 이상 Salmo는 마땅히 연어속으로, salar는 연어로 번역해야 일관성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salmon은 연어로 번역하면서 Salmo는 대서양연어속(최근의 추세) 또는 송어속(과거의 추세)으로 번역합니다.
그리고 Oncorhynchus를 연어속이라고 번역하고 Oncorhynchus keta를 연어의 학명이라고 합니다.
Salmon도 연어고 Oncorhynchus도 연어인데, 사실상 salmon과 동일어인 Salmo는 연어가 아니라니 어떻게 혼동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원은 같은 단어인데 번역이 각각 달라서 생기는 필연적 혼동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혼동을 없앤다며 몇 백 년 동안 불러오던 송어라는 이름을 trout을 번역하는 단어로 채택해버리니 혼동은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고, 이제서는 어류학자 조차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입만 열면 시마연어니 시마송어니 하고 말합니다.
이러한 잘못을 제대로 고치려면 salmon을 연어가 아닌 다른 말로 번역하고 trout을 송어가 아닌 다른 말로 번역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일 테니 rainbow trout을 무지개송어로 번역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하여 rainbow trout을 송어라고 부르면서 정작 송어를 시마연어라고 부르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물개에 관심이 많은 물개사냥꾼이라고 하더라도 물개를 개라고 부르고 개를 도그(dog)나 이누(いぬ)로 부를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