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독일의 사도 성 보니파시오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

작성자tina11|작성시간26.06.05|조회수14 목록 댓글 0


우상 숭배 나무를 쓰러뜨리는 성 보니파시오

독일의 사도 성 보니파시오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
          글쓴이 : 이석규 베드로 ㅣ 자유기고가 675년경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보니파시오는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하여 30세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교수와 설교자로서 활동하다가 선교 활동에 투신했다. 선교사로 활동하고자 하는 원의가 처음부터 순조롭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내 그레고리오 2세 교황에게서 독일 라인 강 동쪽에 사는 게르만족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라는 소임을 받았다. 이때부터 이름을 보니파시오로 바꾼 성인은 독일로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성인의 활발한 선교 활동을 지켜보고 또한 뛰어난 업적을 인정한 교황은 성인을 주교로 서품했고, 독일과 프랑크 왕국에 주재하는 교황 대사로 임명했다. 그리고 독일의 유력자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독일 선교 활동이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도 보장되도록 배려했다. 이로써 성인은 프랑크 왕국의 재상이던 카를 마르텔의 비호와 후원 아래 독일 전역을 마음 놓고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미 그리스도교가 전해졌으나 다시 이교(異敎)의 관습에 빠져버린 지역에서는 다시금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고, 그리스도의 빛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는 이 빛을 전파했다. 성인의 활동으로 독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수도원들이 세워져 발전하였다. 한편, 성인은 카를 마르텔의 아들인 피핀을 프랑크의 유일한 통치자로 세우는 대관식을 주재하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말마따나, “지칠 줄 모르는 활동력, 조직을 새로 구성하고 다지는 데 탁월한 재능, 적응력 있고 사교적이면서도 확고한 성격을 지닌” 성인은 ‘게르만족의 사도’ 또는 ‘독일의 사도’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선교사로서 큰 성과와 업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754년 마인츠 대교구의 교구장직을 사임한 뒤, 한때 개종했다가 다시 이교의 관습에 떨어진 지역을 방문하여 개종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주기 위해 준비하던 중에 이교도들의 급습을 받아 살해되었다. 성인의 축일은 6월5일이다. 이교도들이 신성시 하던 떡갈나무를 도끼로 찍어 그런데 성인의 선교 활동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여느 선교사들과는 다분히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당시 프랑크 왕국의 통치자이던 피핀과 그의 아들 샤를마뉴는 정복전쟁을 벌이는 한편으로 권력과 무력으로 사람들을 강압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곤 했다. 그러나 성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답게 그와 같이 강요하기보다는 그 대상을 설득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선교의 대상이 게르만 전사들인 만큼, 때로는 격렬하면서도 감정에 호소하는 설교와 극적인 일탈행위를 활용하기도 했다. 가령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723년경 한겨울, 성인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여행 중이었다. 근처에 이교도들의 마을 하나가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전에 ‘토르’라는 천둥, 전쟁, 농사를 관장하는 신을 섬기면서 이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곤 했다. 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로는 한동안 그러지 않았는데, 다시 사람을 토르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로 했다. 그들은 토르 신의 나무라며 신성시하던 떡갈나무 앞에서 제물을 바쳐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성인은 충격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깨우치기로 작정했다. 성인과 일행은 성탄절 전야에 그 마을에 도착했고, 곧바로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제물로 봉헌될 어린아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성인은 주교 지팡이를 손에 들고서 떡갈나무 주변을 에워싼 이교도들의 무리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여기 토르 신의 떡갈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제 이 십자가가 거짓 신 토르를 쳐부술 것입니다.” 마침 제사 집전자가 아이를 내려치려고 망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망치가 내려오는 순간, 성인이 지팡이를 내밀었다. 놀랍게도 커다란 돌망치는 부서졌고, 그 아이는 무사했다. 성인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숲의 아들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오늘 밤에는 피를 흘리지 말고 어머니의 품에서 끌려 나온 이 가엾은 아이의 목숨을 살려 주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님께서 태어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미의 신 발데르보다 더 아름다우시고 지혜의 신 오딘보다 더 참되시며 선의 신 프리야보다 더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오셨으니 이제 이런 희생제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헛되이 불러대던 어둠의 신 토르는 죽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마을에 그 신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 그리스도님의 밤부터 여러분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 피의 나무 따위는 여러분의 땅에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내가 이 나무를 없애버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성인은 가까이 있던 도끼를 집어 들어서 힘껏 나무를 찍었다. 한 차례 강한 돌풍이 숲을 지나서 불어오는가 싶더니 그 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쓰러졌다. 그리고 네 동강이 났다. 이때 성인은 신성시하던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놀란 사람들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면서 그들의 무릎을 툭툭 쳤는데, 이 몸짓에서 독일의 오랜 민속 춤사위가 만들어졌다. 성탄 전야에 전나무 한 그루를 집 안에 갖다놓고 꾸미는 게르만족 전통 생겨 이어서 성인은 경악한 게르만 사람들에게 설교를 계속했다. 떡갈나무가 쓰러진 곳 저편에 서 있는 작은 전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작은 나무, 곧 숲의 어린아이가 오늘밤부터는 여러분에게 신성한 나무가 될 것입니다. 이 나무는 평화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그 잎이 늘 푸르기 때문에 영원한 삶의 표징입니다. 이 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쳐오른 모습을 보십시오. 이제 이 나무를 아기 예수님의 나무라고 부릅시다. 그리고 이제는 이 나무를 숲이 아니라 여러분의 집에 가져다놓고 그 주위에 모이도록 합시다. 이 나무는 피를 흘리는 행위를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의 물들을 나누고 친절한 행위들을 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 게르만족 사람들 사이에는 새로운 전통 하나가 생겨났다. 곧, 전나무 한 그루를 집 안에 가져다놓고 초며 갖가지 장식물들로 꾸민 다음에 그 앞에서 구세주의 탄생을 기리며 축하하는 풍습 말이다. 한편, 이 떡갈나무가 허무하게 잘려버린 것을 계기로, 나무에 도끼를 들이대고도 멀쩡하게 살아남은 성인을 본 게르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많은 개종자들과 회심자들이 나왔다. 그리고 성인이 이렇게 베어 넘긴 떡갈나무는 경당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
- 출처 : 월간 레지오 마리애, [세상 속의 교회 읽기]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