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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오시는 예수님 - 매일의 영성체

작성자tina11|작성시간26.06.07|조회수20 목록 댓글 1


내 안에 오시는 예수님
- 매일의 영성체
          말씀자료 : 스테파노 M.마넬리 신부님ㅣ이분도상민 옮김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감실 안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내 영혼의 음식이시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 6,55).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영적으로 양육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충만한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나는 그분을 받아 모셔야만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 성 아우구스티노에 따르면 아프리카 히포 교구의 가톨릭 신자들은 성체성사를 ‘생명’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에너지, 즉 나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그 생명에 영양을 주어야 한다. 성체성사는 바로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에 영적 에너지를 부어주고, 채워주고, 보존해주고, 증가시켜주는“생명의 빵”(요한 6,35)이며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 6,58)이기 때문이다.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에 대한 직관이 천사들의 영광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처럼, 영성체는 우리의 그리스도교적 생명력을 지탱하는 데 필요하다.” 나는 육신에 활력을 주기 위해 매일 음식을 먹어야 되는 것처럼 매일 내 영혼에 영양을 주어야만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가르쳤다. “영성체는 우리가 매일 겪게 되는 우리의 나약함을 치료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매일의 빵이다.” 성 가롤로 보로메오도 같은 의미의 말을 남겼다. “우리의 육신에 영양을 주기 위해 빵을 먹어야 하듯이, 우리는 영혼을 위해 성체를 모셔야 한다.”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는 이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하나만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하나씩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셨다. 성체의 예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성체를 단 한 번이라도 받지 못하여 그로부터의 혜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그토록 감미롭고 건강하게 해주시는 바로 그 제병, 즉 사랑의 희생자이시다. 성녀 젬마는 이 사실에 감동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저는 예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너무나 감미로운 그 음식으로써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예수님께서 매일 아침 저에게 주시는 이 사랑의 치유는 저의 굳은 마음을 유연하게 만들어주고, 저의 모든 사랑이 그분께로 향하도록 해줍니다.” 성인들에게 매일의 영성체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모든 영혼들에게 주시어 그들의 생명과 사랑이 되고자 하시는 신성한 원의에 따라, 그들이 그 생명과 사랑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 되었다. 우리는 성목요일이 예수님께서 간절히 바라셨던(루카 22,15) 날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안네 신부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모든 축성된 제병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랑의 불로 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한 수녀에게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예수님께서 매일 천국으로부터 내려오시는 것은 금빛의 성합을 채우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오시는 이유는 또 하나의 천국, 즉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채우고자 하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을 마음 안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을 때에 그분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성녀는 다음과 같이 글을 이어갔다. “그러므로 마귀는 죄를 통하여 영혼의 지성소로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할 때면 최소한 그 영혼이 성체를 모시지 못하여 주인 없이 비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계략을 쓰는 것은 마귀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마귀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는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영성체를 궐하지 않도록 애쓰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치는 마귀의 세력을 물리쳐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멀리하는 것보다 마귀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내리는 이슬 매일의 영성체는 사랑과 힘과 빛, 기쁨과 용기, 모든 덕과 선이 솟아 나오는 샘이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요한 7,37)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분만이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성화 은총의 지위에 있는 그 누가 이 신성한 “주님의 식탁”(1코린 10,21)에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힘겨워할 것인가! 교회의 분리를 반대하다가 순교했던 영국의 대법관이자 인문주의자였던 성 토마스 모어는 매일 미사에 참례하였고 영성체를 하였다. 그의 친구들은 “그 많은 국정의 임무를 맡고 있는 평신도가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성인은 “자네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매일 영성체를 꼭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네. 물론 자네들의 말처럼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아주 많지, 하지만 나는 예수님과 함께할 때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다네. 하느님을 거스르게 될 유혹들도 많지만 나는 매일 예수님께로부터 힘을 얻어서 그 악의 유혹들을 멀리할 수 있네. 나는 어려운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빛과 지혜가 필요한데 매일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과 그 문제들을 상의할 수 있다네! 그분은 나의 위대한 스승이시라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유명한 생물학자였던 프레드릭 그랜트 밴팅에게 “왜 당신은 매일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도 애를 씁니까?”하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당신은 매일 밤 이슬이 내리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식물들이 자라기 어렵겠지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 식물들의 에너지 순환, 자연적인 재생, 수액의 균형, 즉 식물들의 생명 자체가 이슬을 필요로 합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영혼은 이 작은 식물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영성체를 함으로써 신선한 영적 이슬을 받아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이렇게 말했다. “그다지 바쁘지 않은 사람들은 영성체를 자주 해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할 일이 아주 많은 사람들도 영성체를 자주 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영성체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는 그의 자선 수도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게 어려운 수술을 하기 전에는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하도록 권고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의학은 위대한 과학입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의사는 하느님이십니다.” 나폴리의 유명한 의사였던 성 요셉 모스카티는 자주 왕진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매일 미사와 영성체를 궐하지 않기 위해 믿기 어려울 만큼 애를 썼다. 영성체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날이면 그는 환자들을 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는“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나는 나의 불쌍한 환자들을 구하기 위한 빛을 충분히 가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환자들에게 진료를 받기 전에 먼저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도록 권했다. 큰 희생이 요구된다고 하더라도 오, 성인들이 매일 영성체에 대하여 얼마나 큰 열정과 애정을 가졌던가! 누가 그것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을까? 매일 주님을 모시는 것을 단 한 번도 궐한 일이 없었던 쿠페르티노의 성 요셉은 그의 동료 수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페코리엘로(어린양)를 모시지 못하게 되는 날, 나는 내세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너무 아파서 성체의 주님을 모실 수 없었고, 바로 그날 그는 세상을 떠났다. 성녀 젬마의 아버지는 딸의 건강을 염려하여 매일 아침 미사에 가기 위해 너무 일찍 일어나는 성녀를 꾸짖었다. 이에 성녀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아버지, 성체성사의 예수님을 멀리하는 것이 제게는 더 해로운 일입니다.” 제노바의 성녀 가타리나는 제노바 시에서 미사와 영성체 금지령이 내려지자, 매일 제노바 밖 먼 곳에 있는 성당까지 걸어가서 영성체를 하였다. 누군가가 성녀에게 영성체를 하기 위해 너무 애쓰는 것 같다고 말하자, 성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만약 제가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불타는 석탄 위를 걸어 수 킬로미터를 가야 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것이 장미꽃 양탄자 위를 걷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성당이 그리 멀지도 않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우리에게 이것은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설사 큰 희생이 요구된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성합이 가득 차 있으니 빵이 없지요 매일 영성체를 통하여 영혼과 육신에 얼마나 많은 축복이 내리는지 살펴보자. 영혼을 위하여 : 교회의 교부요 박사인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만약 교만의 독소가 당신 안에서 부풀어 오른다면 성체를 바라보십시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숨어 계시는 성체는 당신에게 겸손을 가르쳐줄 것입니다. 만약 이기적인 인색함의 열기가 당신 안에서 솟아오르면 성체를 모십시오. 당신은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자애심과 이기심의 차가운 바람이 당신을 슬프게 하면, 천사들의 빵에로 서둘러 달려가십시오. 당신의 마음속에 애덕의 꽃이 필 것입니다. 만약 무절제로의 이끌림을 느낀다면, 지상 생활 동안에 영웅적인 자세로 사셨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십시오. 당신은 절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영적인 일들에 게을러지고 있다면, 천국의 음식을 당신을 강하게 하십시오. 당신은 열심해질 것입니다. 끝으로, 만약 부정(不淨)의 열기로 타버릴 것처럼 느껴진다면, 천사들의 잔치에로 가십시오. 그리스도의 티 없으신 몸이 당신을 깨끗하고 순결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성 가롤로 보로메오가 불량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어떻게 순결하고 올바르게 살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의 비결이 잦은 영성체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성인은 젊은 알로이시오 곤자가에게 영성체를 자주할 것을 권했는데, 그 청년은 훗날 백합의 순결함을 지닌 천사적인 성인이 되었다. 참으로 성체성사는 간택된 이들의 밀이요, 동정자(童貞자者)들을 길러내는 포도주이다(즈카 9,17 ). 그리고 젊은이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성 필립보 네리는 이렇게 말했다. “성체에 대한 신심과 복되신 동정녀에 대한 신심은 순결을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영성체 외에 20대의 마음을 순결하게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체 없이는 순결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진실이다. 육신을 위하여 : 성 루카는 주님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들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루카 6,19). 루르드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성체성사 안에 계신 우리 구세주로부터 치유를 받았던가! 얼마나 많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성체를 모신 후 건강과 힘을 되찾았던가! 하루는 성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가 자신이 운영하는 자선 병원의 많은 환자들이 영성체를 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바로 그날 병원 식료품 저장실의 빵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성인은 성합을 제대 위에 놓고 돌아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합이 가득 차 있으니 빵이 없지요!” 이것은 진리에 대한 증거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영혼을 위한 생명과 사랑의 충만함이시다. 그분 없이는 나는 비어 있고 메말라 있다. 나는 매일 그분과 함께 모든 좋은 것과 순결과 기쁨의 원천에서 살고 있다.
- 출처 : 「성체성사에서 만나는 예수님 사랑」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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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hnan | 작성시간 26.06.07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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