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 설교’(부분), 프라 안젤리코 프라 안젤리코의 산 위에서의 예수님 가르침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마태 5:3) 글쓴이 : 이석우 ㅣ전 교수
예수님 가르침의 백미는 산상수훈으로 알려진 8복에 대한 말씀이다.
이보다 더 격조 높고 힘찬 가르침이 또 있을까?
짓누르는듯한 무겁고 힘겨운 이세상 기존의 가치와 관념의 구각을
바위를 부수듯 깨쳐 버리고 새 시대를 선포하는 개벽같은 순간이다.
그의 가르침은 너무도 엄청난 역설이다.
회화성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 주제를 다루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말씀의 거대한 반향에 비해 12제자와 예수님 자신과 같은 단순대상을
어떻게 장엄하게 표출시킬 것인가는 아주 고심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규모의 장대함을 살리려고 넓은 산세를 도입하다보면
그 안의 인물들이 초라해질 수 있고 인물을 키우다보면
단순한 스냅사진같이 역동성이 사라진다.
작가 프라 안젤리코(c. 1400-55)는 이 점을 극복하는 데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크기는 그 비율에서 산보다 훨씬 크게 했다.
그러나 그 계곡과 능선을 비교적 자상히 그림으로써
그들과 산을 거의 대등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냈다.
그리고 그 산의 위엄을 더 드러나게 하기 위해
멀리 뒤에 파란색의 산맥을 한 겹 더 그렸다.
다시 그 위에 둥근 새벽빛 하늘과 또다른 하늘을 중복시켜
공간감을 무한으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산 중앙에 엄정히 걸터 앉은 예수님은 오른손을 높이 들어 그
가르침의 권위와 진실 그리고 절박감을 하늘을 가리키며 증거토록 하였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상속 받을 것이다.
의를 위해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자비로운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하느님을 볼 것이다.
화평케 하는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의롭게 살려고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10)
나 같은 속인에게 가장 넘어서기 어려운 부분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어서,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말 사전에 심령은 ‘마음속의 영혼’ 이라고 되어 있고 성경의
각주에는 ‘마음이 겸손하여 하느님만을 의지함’이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복이란 신의 축복을 말한다.
이는 자기중심의 생각과 욕심으로 가득채워진 마음이 아니라
빈 마음으로 하느님의 바램이 들어설 만큼
넉넉한 공간이 열려진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존재만큼이나 허무의 속성, 사라져갈 헛됨을 삶에서 절감하고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광이 끝내 한송이 들꽃 정도에 불과함을
기억하는 겸허한 심령을 말하는 것 같다.
이 가난한 마음이 제일 먼저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일이다.
우리의 영적인 그리고 일상의 양식을 허락하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며
악에서 구하여 달라는 간구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이들 대신에 세상기준의 복을 더 앞세워 바라고 있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하느님이 들어앉을 가난한 영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것조차 물질화 해버린 물화된 심성이다.
볼거리 놀거리가 많아서 마음이 가난해질 여백이 없다.
무의식 속에 베어있는 현실중심의 기복적 염원을 어떻게
하느님 나라 개념으로 대치 극복하느냐가 믿음의 최대 난제이다.
- 출처 : [가톨릭평화신문] 이창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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