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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침과 격려

작성자tina11|작성시간26.06.10|조회수17 목록 댓글 0
깨우침과 격려
            글쓴이 : 故 김남조 마리아 막달레나 ㅣ 시인 나는 문학을 하고 있다. 하면 문학 하나에 내 선택의 기회를 써버린 셈인가. 아니 그렇지가 않다. 문학은 선택의 일부일 뿐 나의 삶에선 그 외에도 여러 번 결정의 기회가 있었다. 종교와 결혼 등에서 작게는 여행의 행선지까지를 들 수가 있겠으며, 여러 선택과 가지런히 놓고 볼 때 문학이 특별히 중요했다 곤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문학 이상으로 포기 못할 몇 가지가 있었단 사실 때문이다. 내 영혼의 문제도 문제려니와 신과 사람과 자연 등이 문학을 상회하는 가치이던 점을 구태여 숨길 이유도 없을 듯 하다. 길고 은밀한 심정의 오지에 푸르른 나무들처럼 심어 두고 간절히 바라보며 비바람 사계절에 눈길을 돌릴 수가 없는 그 아프게 보배로운 것들. 그렇구나. 이 귀중한 연분들이 있었기에 생각과 말이 분수처럼 치솟아 오르고, 그리하여 문학의 기능을 아니 선택할 수가 없었다고 여겨진다. 소나무에 돋아나는 솔방울처럼 나의 운명, 아니 운명적인 만남 들이 돋아 올랐기에 오늘까지 이를 문학으로 풀어 온 것이었다. 단순히 문학인 게 아니고 인간적인, 그리고 작으나마 인격적인 면모의 그 엄격한 품평서일 수가 있었다. 그의 삶만큼 그의 사람됨만큼의 눈금을 짚어 보일 뿐 더이상의 평가 절상이 없다는 단정이 가능하다. 바로 이 점에서 수많은 문인들이 자기의 문학 옆에서 추워하며 초라하게 웅크리게 된다고 말하리라. 결국 삶의 이야기로 다시 왔다. 삶 안에서 삶과 살결을 맞대며 함께 지나온 긴긴 세월 끝에 지치고 늙어진 내 모습 나의 얼굴, 그 더욱 가려져 안 보이는 가책과 회오의 무수한 주름살들. 이 모두에 대하여 책임을 의미하는 그 서명과 날인을 면제 받을 수란 없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자아의 부담도 상당히는 익숙해져서 못 견딜 만하지는 않다. 근래에 이르러 삶과 세상에도 정이 들어 처음으로 위화감을 떨치게 되었고 편안함과 환희, 이러한 감정의 악수를 받곤 한다. 맛이 배어든 추수기의 과일처럼 내 안에도 삶의 여러 미각이 잦아들어 조립 단계가 끝난 한 기성품이 되었음을 알겠다. 이는 완성품의 뜻이 아니고 크게는 교정이 어렵게 된 고정 단계라는 그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나에겐 너무 늦어 버린 물음인 게 분명하다. 비록 그렇더라도 넉넉히 희망은 남아 있다. 아침마다 새롭게 광명해지는 천문의 원리부터를 깨우침과 격려로 믿고 신뢰하며, 생명을 주신 은혜와 삶 가운데의 가호를 끔찍이도 소중히 받들 일이다. 어떤 날은 책을 읽으면서도 전에는 무심했을 정신의 아픔이 병의 전염처럼 나의 정신에 옮겨온다. 정신의 아픔이나 그 어둠은 사람에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진정한 존재의 보건이란 육체와 정신, 아울러 영혼까지를 함께 고려하는 차원이 아니면 안 된다. 따라서 참 평화와 진정한 고요는 더한층 바라기 어려운 위치께 놓인다 하겠는 것을. 사는 일이 진정 두렵다. 큰 기관 하나를 운영하기보다 사람 하나의 삶의 영위가 더 어렵고 그 막중한 책임에 있어서도 더욱 무겁다고 말할 수가 있다. 머지않은 훗날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궁리하는 좌석이 아닌 어떻게 살았다고 하는 사실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리니, 그날의 두려움은 얼마나 더할 것이랴.
- 출처 : 「인생을 최고로 사는 23인의 지혜」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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