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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못 박긴 싫습니다

작성자tina11|작성시간26.06.10|조회수26 목록 댓글 0


두 번 못 박긴 싫습니다 .
          글쓴이 : 故 박완서 엘리사벳 ㅣ 소설가 ✠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려고 온 게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마태 5,17-37)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자들을 비웃거나 야유할 때 흔히 쓰는 말 중에 이런 게 있지요. 저 사람들은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주님 주님, 하면서 용서만 청하면 다 용서해줄 줄 아니까 비신자보다 나쁜 짓을 더 잘한다느니, 말솜씨만 휘번드르르 청산유수면 공산당 아니면 예수쟁이더라느니 하는 말 말입니다. 신자들이 이렇게 만만하고 파렴치하게 비쳐졌다면 그건 전적으로 신자들의 책임이지 그리스도교의 본질과는 무관하다는 건 성경을 단 몇 구절만 읽어도 당장 드러나고 맙니다. 특히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게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로 시작되는 마태오 복음 5장 17-37절을 읽으면서 감히 그리스도를 본받겠다고 약속한 게 잘못 걸려들어도 된통 잘못 걸려든 것처럼 억울해지기까지 할 정도로 엄혹합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시다니요? 주님은 툭하면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을 꾸짖거나 곱지 않은 눈으로 보시는 것 같아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엄포를 놓으신 예수의 모습을 그려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왜 있잖습니까? 교실에서 집단적으로 벌 받을 짓을 저지르고 난 개구쟁이들이 어떤 벌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뜻밖에 하나도 안 무서운 온화하고 부드러운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아이들은 금방 제 잘못을 잊어버리고 희희낙락 마음씨 좋은 선생님한테 기어오를 궁리부터 합니다. 그때 좋은 선생님이라면 마땅히 그런 개구쟁이들을 귀엽게 보시면서도 짐짓 엄한 얼굴로 내가 너희 잘못을 얼렁뚱땅 묵인하러 온 줄 아느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샅샅이 집어내러 왔다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군중도 율법의 형식, 겉껍데기에 얽매여 굳은 대로 굳은 율법학자들과는 어딘지 다른, 사랑과 연민에 넘치는 예수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사랑과 연민 없이 그 많은 병자를 고치실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숨통이 트이는 김에 쉽게 멋대로 살고 싶은 욕망을 은연중 드러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기를 펴는 김에 해이해진 군중을 상상하지 않고는 내가 율법을 없애러 온 줄 아느냐는 예수님의 엄포가 제 맛이 안 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말씀이 일시적인 엄포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분은 정말 사람 나고 율법 난 게 아니라 율법 나고 사람 난 것처럼 인간을 율법에 맞춰 왜곡하고 재단하려는 경직된 율법에다가 숨결을 불어넣으러 오셨습니다. 껍데기에다 알멩이를 채워 주러 오셨습니다. 그게 있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알맹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아아, 그건 사랑일 거라고 쉽게 정답을 알아맞혀봅니다. 우린 누구나 그리스도교가 사랑의 종교라는 것과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사니까요. 그래 그런지 세상은 온통 사랑 천지고 사랑 타령은 천하도록 범람하고 있습니다. 씹다 버린 껌보다 더 흔하고 천한 게 사랑입니다. 껌은 입 안에라도 들어갔다 나오지만 사랑은 입술 끝에 매달려 침도 안 묻히고 별별 요사를 다 부립니다. 만날 때도 사랑, 헤어질 때도 사랑, 배신할 때도 사랑, 사랑이 이름으로 온갖 무책임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사랑을 완성하러 예수님이 또 한번 오실까 봐 두렵습니다. 두 번 오시는 건 좋지만 두 번 못 박긴 싫습니다.
- 출처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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