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 뜨기
글쓴이 : 반숙자 벨라뎃다 ㅣ 수필가
작년 유월 어느 날입니다.
교중미사시간에 신부님 강론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신자들은 신부님들의 강론에 영적 목마름을 해갈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매 주일 강론에 감동을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신부님은 똑같은 마음으로 준비하셨어도
듣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미사강론이 신부님들 사목활동에
큰 숙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글을 써본 사람들은 압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작행위가
얼마나 피를 말리는 고행인가 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것도 성경말씀에 근거를 두고 매일 복음을 묵상하며
날마다 하시는 미사강론이니 그 부담감을 알고도 남습니다.
신자들은 강론을 들을 때
신부님이 얼마나 잘 준비하셨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주임신부님 강론의 주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요지입니다.
사람이 보는 시야는 겨우 140도 밖에 되지 않으나
물고기는 한쪽 눈만으로도 180도를 볼 수 있다,
양쪽 눈으로 보면 360도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회전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인간의 시야라는 것이 얼마나 한정적이냐,
그래서 잘 못보고 섣불리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해서
부부간에 이웃 간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는지,
또 미움이 얼마나 생기는지,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아야한다.
눈 너머에 있는 것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의 눈이 있어야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신부님께 강론원고를 달라고 청을 드렸지요.
신부님께서는 암 말씀도 없고 주지도 않으셔서
단념을 하려는데 한참 있다가 다시 오셔서 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원고를 펴들고 저는 말을 잃었습니다.
A4용지에 또박또박 두드린 원고 내용은 물론이려니와 원고 사이사이
빗금을 쳐 읽기 쉽게 표시를 해 두고 행간 곳곳에 첨삭도 있었습니다.
단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쓰실 원고를 정성껏 준비하신 것만도 어려운데
당신이 신자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연습에
연습을 하신 흔적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사제 서품 40년 되시는 베테랑 신부님이 이러시니
다른 신부님들은 오죽하실까요.
신부님들의 심금을 울리는 강론이 이토록 어려운 과정을 거처
우리 앞에 주님의 말씀으로 현현하는 까닭을 알고 난 후
사제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 너머에 있는 타인의 생각을 보는 눈이 신앙의 눈이고
사랑의 눈이고 생명의 눈이라는 말씀, 묵상합니다.
이제야 겨우 영혼의 속눈이 조금 뜨였다고 할까요?
- 출처 : 「미루지 않는 사랑」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