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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작성자tina11|작성시간26.06.15|조회수21 목록 댓글 0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작품해설 :  권용준 안토니오 l   교수    

1937년 여름, 파리의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는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평가받는 피카소가 그린 불멸의 명작이 전시된다.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전쟁의 광기와 만행을 
작가 특유의 기법으로 그려낸 <게르니카>이다. 
형태를 분할해서 표현하는 입체주의의 ‘파괴적’인 기법과, 
검정색과 흰색, 회색의 암울하고 비극적인 색조로 표현되어 있다. 
이 흑백의 대비는 그 어떤 인간의 조잡한 감정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웅장하고 장엄한 역사의 인식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주로 삶의 환희와 쾌락 등 자신의 개인적 사생활을 

작품 소재로 삼은 피카소가 역사의 장엄하고 숭고한 가치를 

그림으로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1936년-37년의 스페인은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군부 파시스트와 인민전선 정부 간의 치열한 내전이 한창이었다. 
가톨릭교회와 군부, 지주와 자본가의 후원을 받은 프랑코는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반면 중산층과 노동자가 지원한 인민전선은 유럽 각국과 

미국의 연합군인 국제여단과 소련의 후원을 받았다. 
이런 지지 세력만 보더라도 이 내전이 얼마나 비극적인

참화의 불씨를 잉태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대치의 국면에서 1937년 4월 26일, 
독일 나치가 프랑코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스페인의 북부 
바스크 지방의 한 한적한 마을 게르니카에 공격을 감행한다. 
특히 나치는 새로 개발된 무기의 성능 테스트를 위해 

이 시골마을을 폭격의 과녁으로 택했던 것이다. 
독일의 24대 폭격기가 쏟아 부은 총 폭발물은 24톤에 이르며,
이 공격으로 무방비의 게르니카는 도시 전체의 80%가 파괴되고, 
도시인구의 1/3에 달하는 1654명이 죽었다.

바로 이런 참상의 소식이 박람회의 벽화를 기획하던 피카소에게

작품의 소재를 제공하게 되었으며, 

그는 이 비극의 참상을 가슴에 상처로 간직한 채 

한 달 반이라는 짧은 기간에 <게르니카>라는 이름으로 완성했던 것이다.

극단적인 내면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각각 이미지를 살펴보면, 
왼쪽에 폭격으로 죽은 아이를 안고 입을 크게 벌린 채 

하늘을 향해 광기와 비탄의 절규를 외치는 여인의 모습이 있다. 
이 여인이 안고 있는 죽은 아이는 갈가리 찢긴 형태로 표현되어 있으며, 
그 어미의 모습은 머리카락, 눈썹, 눈알, 콧구멍, 칼날처럼 굳어진 혀 등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그려진 것이 없이

온통 일그러진 모습 그 자체로 매우 충격적이다.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죽음인가? 
그 어린 죽음이 이 세상 변화의 어떤 씨앗이 될 것인가? 
이 어미의 슬픔이 마치 아들을 잃고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침묵의 절규를 외친 성모 마리아 즉 ‘피에타(Pieta)’를 연상케 한다.

이들의 발치에는 덩치 큰 남자가 죽어있다. 

급작스런 폭력에 저항하다 가족과 조국을 지키지 못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의 오른팔에 들린 부러진 검이 잔인한 공격 앞의 나약한 인간, 
결국 무력하기에 죽음을 피하지 못한 가련한 인간의 운명을 절감하게 한다. 
그러나 그 부러진 칼과 칼을 쥔 손이 강하고 굳건한 것이 

영웅의 표상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름 없이 쓰러져간 자의 손이 악과 전쟁에서 나라와 

국민을 구할 수 있는 선(善)의 천사이자 진정한 영웅임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익명의 영웅이 검을 쥔 손에서 꽃이 피어있다.

그 위의 황소는 이 그림의 존재들 가운데 

아무 상처가 없고 표정조차 무심하다. 그 순수성과 무지의 모습으로

 이 황소는 핍박과 고통의 표적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바로 지금 무고한 죽음의 운명을 맞은 스페인 국민과 

이들의 고귀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 옆으로는 스페인에 무참한 공격을 감행하는 말이 있다. 
그 잔인하고 참담한 살인의 행각이 

그 입에 삐져나온 송곳 같은 무기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그런데 공격의 주체인 말조차 칼에 찔려 고통의 비명을 저지르는 것이, 
전쟁과 살상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불장난’인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그림 왼쪽으로는 부상으로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여인이 있다. 
전쟁의 끝은 죽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시달려야 하는 

고통의 상처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 뒤로 불기둥이 솟구치는 집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보인다. 
평소의 안식과 휴식의 공간이 한 순간에 죽음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쟁이란 이처럼 참화의 불길이 솟는 지옥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런 와중에 빛이 존재한다. 그림 중앙의 전등빛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빛은 하느님의 빛, 생명의 빛, 자연의 빛이 아니라 
인공의 빛, 문명과 과학의 힘으로 만든 빛이다. 
이 빛은 구원의 빛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학살을 용이하게 밝히는 죽음의 빛, 
나치가 사용한 살상 무기의 상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처럼 인간 문명의 빛을 밝힐 과학의 활용이 

그릇된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처럼 국가도 종교도 무고한 시민들의 고통과 죽음에 눈감고 있을 때, 
분연히 일어나 이들의 악행을 고발하고 역사와 국민의 무서운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엄중 경고한 상징물이 이 그림 속에 존재한다.
그림 중앙의 창문을 통해 들어온 등잔불이다. 
이런 어떤 구원의 기대로 할 수 없는 암울한 시국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은 이름 없는 다수의 민중이며 국민임을, 
비록 그들 하나하나의 존재가 이 등잔불처럼 미약하지만 진정한 가치, 
진리의 빛을 발하는 주체임을 은밀하면서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 등잔불을 내민 손의 주인은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위해

분연히 일어선 모든 국민들인 것이다.

그 등잔불을 쥐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듯한 사람의 

두 눈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이 공격을 감행한 것이 독일 나치이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실제 

프랑코의 야심이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이중적 진실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숨겨진 진실은 다양한 시각에서 볼 때 들추어지는 것이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전쟁과 학살은 광기서린 

만행이자 흉악한 죄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엄중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피카소 자신이 ‘미술은 단순히 장식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어떤 때에는 불의에 젖은 폭력에 항거하는 공격적이며 

방어적인 효과적인 도구이다.’라고 했듯이, 
모두가 침묵할 때 분개하고, 모두가 무지로 일관할 때 
진리가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것이 예술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무저항의 예술 이면에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8)는 성서의 말씀이 

배태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모두가 무서움과 공포로 일관할 때, 

하느님의 천명을 붓으로 그린 한 작가에게서

‘익명의 크리스찬’으로서의 위상을 확인한다.

<게르니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으로 옮겨진 뒤 
‘민주화한 조국에 그림을 돌려주라’는 

피카소의 유언에 따라 1981년에 스페인으로 반환되었으며, 

이후 해외반출은 물론 국내이동도 일절 허용되지 않는 

스페인의 국보이자, 스페인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다.


                 - 출처 : 경향잡지, [책 속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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