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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제다

작성자tina11|작성시간26.06.12|조회수10 목록 댓글 2

 

          나는 사제다 

 

말씀자료 : 이태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1999년 2월 2일 사제품을 받았다. 
일평생 참으로 기쁘고 가슴 설레던 날로 기억된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2012년, 그 기쁘고 설레던 날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가 스스로 자문해 본다.

사제품을 받고 1년 후 나는 사제생활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첫 보좌 신부 때 느꼈던 얼떨떨한 기분도, 
그 순수했던 마음들도 다 사라져 버린 채 그저 미사 집전하고, 
교리 가르치고, 청년들을 만나서 술 마시고, 
제 단체들과 그냥 저냥 지내는 이러한 하루하루가 너무나 지겨웠다.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하는 것인가? 원래 사제생활이 이런 것인가? 
아직 사제로서 채 익지 않은 열매 같은 나 자신이 

마치 사제생활의 끝에 와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또한, 선배 사제들의 모습과 변해가는 동기들,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가려고 

애써서 신부가 되었나 하는 자괴감까지 엄습해 왔다. 
마지막 비상구를 찾는 심정으로 선교 본당에 지원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 선포의 삶을 몸으로 

살아보면 어떨까라는 장대한 꿈을 펼쳐보려는 허황된 욕심에서였다.

처음에는 나름 열심히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어쩌면 사제생활에 염증을 느낀 내가 
자신에게 약간의 위로나 자기변명쯤으로 선택했던 삶이었다. 
교우들은 좋아했다. 젊은 신부가 참 열심히 사목한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질 뿐이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삶이 

진정한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려는 열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사제생활의 좋은 열매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점점 사제로서 짠맛을 잃고, 

빛을 잃어갈 즈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군종 사제로 발령이 났다. 
정말 사제생활을 포기하고 싶었다. 

‘군대’라는 것 자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더욱이 

두 번씩이나 훈련을 받아야 하고, 군복을 입어야 하고…….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안 가면 안 되느냐고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군종 사제로 입대를 하게 되었다. 참 기나긴 훈련이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그렇게 훈련이 끝나고 강원도 골짜기로 부임하게 되었다.

귀찮았다. 모든 것이. 주임 신부를 기다리는 군인 가족들도 귀찮았고, 
군종병들도 귀찮았다. 더욱이 군인 병사들은 더 귀찮았다. 
‘그냥 나를 가만히 놔둬!’라는 구호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리고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한밤중에 사제관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모든 것을 귀찮게 여기던 내가 그 전화를 받을 리 만무했다.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억지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퉁명스러운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 “여보세요?”라고 재차 큰 소리로 호통치듯 대답했다.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수화기에 대고 “어떤 놈이 장난질이야? 전화를 했을면 말을 해! 
싸가지 없는 놈이 장난 전화야!” 하며 큰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그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새벽 갑자기 성당 앞 도로에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하면서 잠이 깬 나는

군종병을 불러서 “야! 어디 불났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군종병이

 “신부님, 간밤에 전방 초소에서 이등병 하나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병원으로 옮기는 중인데 가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참 별일도 다 있네.’ 하면서 뒤돌아서려는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가 엄습해 오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젯밤 전화?”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얼른 옷을 챙겨 입고, 사단 의무대를 향했다. 
이등병 하나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다행히 아직 숨은 붙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전화기 앞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직감으로 그 이등병이 어젯밤 나에게 

전화했던 그 이등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거 나 때문에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온 힘을 다해 기도하며

 그 친구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병사가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줄 사람이 있다면…….’ 
하고 희망을 가져보고자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는데 

거기에 신부, 목사, 법사 전화번호가 있더란다. 

그래서 제일 위에 있는 신부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 통화가 바로 내가 한밤중에 받은 전화였다. 

내가 욕하고 끊어 버렸기 때문에 그 병사는 

곧바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던 것이다. 
다행히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 병사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나는 버렸지만 하느님께서 찾으신 것이다.

그날 이후 난 그 병사를 사제관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나는 ‘사제란 어떤 존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뼈저리게 성찰하기 시작했다. 
신학교 때 버려두었던, 사제 양성 교령부터 시작해서 

사제생활 지침 등을 다시 읽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나의 사제생활도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위문도 다니고, 열심히 강론 준비도 하고, 열심히 면담도 하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심히 병사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사제가 인간적으로 훌륭하든 훌륭하지 않든,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은 그 사제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삶을 다시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모든 사제는 그 존재 자체로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가끔씩 기도한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내 존재만으로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진정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하고. 

 

- 출처 :  「오 마이 파더 오 마이 시스터」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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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hnan | 작성시간 26.06.12 아 멘 !
  • 작성자라라라 | 작성시간 26.06.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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