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욕심으로 인하여 비참한 죽음을 맞는 아합 왕
말씀자료 : 경규봉 가브리엘 신부님 l 전주교구
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겨울에 거처하는 이즈르엘에 있는 별궁 근처에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이 있었다. 왕은 이 포도원을 정원으로 만들고자
나봇에게 유리한 제안을 하지만 나봇은 이 제안을 거절한다.
나봇이 왕의 제안을 거절한 까닭은 조상에 대한 공경심 이외에도
율법에 따르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은 팔아넘길 수 없기 때문이며(레위25,8-28),
그 땅은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한 몫씩 나누어 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스라엘 법에 따르면 임금도 자유민의 소유물을 제 맘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봇의 거절은 자유민의 자존심을 대놓고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봇이 왕의 제안을 거절하자 왕비 이세벨은 나봇을 모략하여 죽인다.
즉 나봇이 하느님과 왕을 욕하였다고 거짓 증언하게 함으로써 나봇을 죽인다
(하느님과 왕을 모독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출애 22,28; 레위 24,14).
그리고 왕은 그 포도원을 차지한다.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야고 1,14-15)
는 성서 말씀처럼 대부분의 문제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욕심은 인간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과도하고 무리한 욕심,
남을 배려하지 않는 욕심,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욕심은
여러 가지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된다. 욕심으로 인하여
다른 이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심한 경우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심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곧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은 하느님을 향하기에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채울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여 세상 것으로 욕심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많이 가짐으로써 욕심을 채우려고 한다.
그리하여 유혹을 빠지고 죄를 짓게 된다.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한다는 것이
율법을 거스른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별궁을 화려하게 꾸미고 싶는 욕심에 눈이 멀었고,
그리하여 왕비 이세벨의 모략에 따라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는
죄를 범하고 만다. 그리하여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는
엘리야가 예언한 대로 죽게 된다(1열왕 22,34-38; 2열왕 9,33-37).
아담과 하와의 욕심이 죽음을 가져왔듯이
그들의 욕심이 스스로를 죽음에 빠지게 했다.
개들이 아합의 피를 핥고, 이세벨을 찢고 뜯어먹는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양심의 소리에도 무감각해지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법과 인간의 도리마저 쉽게 저버린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합리화시키면서 하느님과 이웃으로부터 멀어진다.
욕심에 눈이 멀면 가족도 사랑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욕심의 노예가 되어 살 뿐이다.
그로 인하여 세상에는 죄와 악이 넘쳐나게 된다.
그 결과 욕심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이기적인 욕심이 사람을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한다(1디모 6,9)는 점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고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은 우리를 훈련해서
우리로 하여금 불경건한 생활과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하고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해 줍니다.
그리고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해 줍니다.”(디도 2,12-13)
는 말씀을 믿고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