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소용돌이 말씀자료 : 전삼용 요셉 신부님 ㅣ 수원교구
엘리야 예언자는 불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 올리어져
엘리사에게 자신의 겉옷을 떨어뜨려주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겉옷을 받고 성령으로 가득차서
그 또한 스승 엘리야 못지않게 큰일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건널 때에도 불기둥이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불기둥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엘리야가 예수님이라고 하면 불기둥은 십자가입니다.
자신을 죽이는 제단이고 그 불은 하늘에서 내려온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의 불로 자신을 봉헌하면
이 세상에 또한 성령을 전해주는 이가 됩니다.
가끔 화장터에 가서 관 속에 들어있는 작은 육체가
거센 불로 순식간에 태워져 재만 남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 남는 것은 한 줌의 재입니다.
이 세상 것은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 타고 재만 남았을 때, 그래도 무언가 남아있다면
그것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 참 나입니다.
이렇게 불로 내 자신을 붙잡고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들을
태워버리는 과정이 광야의 과정입니다.
가나안 땅에 다가갈수록 자신은 불로 옷을 태워 벌거벗겨지고
살을 태워 정결해지며 뼈를 태워 재만 남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제인 나도 아니요,
돈 많은 나도 아니요, 성공한 나도 아니요, 봉사자인 나도 아니며,
아버지나 어머니가 된 나도 아닙니다. 그냥 ‘나’ 자신입니다.
불로 탈 수 있는 세상 것이 다 타버리고 남는 나가 참 나입니다.
하느님은 태어날 때 숨만 쉬고 있을 때의 나를 원하십니다.
그때가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이 세상 것들로 자신을 꾸며가며 거들먹거리기 시작할 때
그분을 만들어주신 입장에서는 다시 그 옷들을 벗기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른이 되어도 그런 어린이의 순수함을 지킬 수 있는지를
시험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살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 나를 바보라 하여도, 무시하여도, 침을 뱉어도,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여도 그냥 웃어줄 수 있는 ‘멍청이’가 될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가벼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칫 영성생활을 하면서도 옷을 벗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두껍게 자기를 세상 것으로 채워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불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게 아닙니다.
광야로 나온 게 아닙니다.
저도 가끔은 무례한 모습을 보이는 신자가 있으면,
“사제에게 그러면 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사제의 옷을 입은 교만한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합니다.
아직은 벌거벗은 나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제로 옷 입혀진 나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는 ‘나중에’ 입혀진 옷입니다.
그런 것들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더군다나 이 세상에 어떤 유익한 것도 남길 수 없게 됩니다.
내가 타서 남길 수 있는 것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나는 불 소용돌이 속에서 광야를 걷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이집트 땅에 머물며 세상 것들로 참 나를
더 두껍게 가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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